펜호크

HQ by juj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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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보라, 메이지호크 

안개전사 얘기하는데 정보가 적어서 입맛대로 갖다붙임 어차피 호크 꿈이니까 ㄱㅊ


마바리, 내 충실한 개.


 호크가 끄트머리에서 악몽으로 변질한 꿈으로부터 깬다. 밀려오는 진한 불쾌감으로 미루어 아마도 악몽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팔을 뻗는다. 그녀의 마바리는 늘 그녀의 손이 닿는 거리에서 따끈한 존재감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손을 뻗어 짧게 깎여진 털을 쓰다듬는다. 인간의 체온을 약간 웃도는 따스함, 까끌거리는 털 끝. 잠결의 마바리는 귀엽게도 끼잉 소릴 내더니 제 주인이 쓰다듬기 쉽도록 다시 자리를 고쳐 눕는다. 정말 뒷맛 씁쓸한 꿈을 꾼 거 같은데... 마바리도 꿈을 꾸니? 네 조그만 머리로도 열심히? 호크는 쓰잘데 없는 궁금증을 거두고 마바리를 쓰다듬는 일에 열중한다. 그리고 벌써 흐려진 종전의 꿈을 다시 곱씹는다.

 호크의 꿈은 그 성정만큼이나 거침이 없고 장황하며 가볍다. 꿈에서 호크는 때로 선장이고 좀도둑이다. 장소는 로더링이기도 하고 오스타가였다가 이사벨라의 미사여구가 덧붙여진 묘사 속 리베인이다. 등장인물은 실로 방대한데, 지금은 시야에 쿠나리가 가득 들어차 있다.  호크는 본 것 중에서 가장 거대한 쿠나리를 떠올렸고 그 쿠나리는 금방 커크월의 수두룩한 동상과 진배 없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리쇽으로 변한다. 이제 아리쇽은 호크를 향해 다가온다.

 이거 어쩌면 야한 꿈인가? 호크는 부질 없는 기대를 한다. 그도 그럴게, 아리쇽은 반쯤 헐벗어서는 문자 그대로의 거대한 가슴을 내놓고 있다. 파렴치한 쿠나리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워페인트의 색이었다. 강렬한 적대감의 비타르 대신 발광하지 않는 펜리스의 리륨 마킹처럼 횟빛이 도는 흰색. 아마 흰 조가비의 껍질을 갈아냈겠지. 그리고는 그 물감을 드러팔로 털로 만든 붓 끝에 천천히 적셔야 해. 호크 콧잔등의 물감처럼 대충 손 끝으로 문질러서는 절대 저렇게 정교한 무늬를 낼 수 없으니까. 근데... 그거 네가 직접 그려? 혹시 내가 대신 해줘도 될까?

 욕망이 그득한 물음에 아리쇽은 답하지 않고, 대신 몇 마디 무어라 내뱉었는데 들어본 적 없는 쿤라트임에도 불구하고 호크는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는 우리 중 하나다. 커크월의 아리쇽이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상냥한 호의에 호크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호크는 그제야 제 주위의 자욱한 안개를 알아차린다. 아니, 안개가 아니다. 물 탄 우유처럼 뿌옇지만 말린 엘프루트처럼 건조하다. 누군가 마법이나 약초 포션으로 안개를 제법 비슷하게 흉내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앞의 아리쇽과 쿠나리들은 안개 전사일 것이다. 펜리스에게 주워 들은 이야기가 좀 흥미로웠던 모양이지. 

 이제는 안개 전사가 되어버린 아리쇽에게 이곳이 세헤론이느냐고 묻는다. 아리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호크는 주변의 안개 비슷한 것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드러나는 자욱한 녹음을 감상한다. 도망친 노예가 이곳에서 평안을 찾았을까 물어도 알 방도는 없다. 여기는 호크의 유치하고 조그만 상상력이 빚어낸 세계이므로. 호크는 아리쇽의 어깨 너머로 펜리스를 찾을 수 있을지를 기대하며 바쁘게 눈동자를 굴린다. 그러나 오로지 이방인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호크는 혼자다.

 적어도 펜리스는 아니었을 것이다.

 템플러에게서 도망친 배교자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노예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체제로부터 도망친 자유인들도 그들의 흰색 워페인트처럼 온 몸을 감싼 문신을 보고 운명처럼 받아들였을 거란 말이다. 함께 사냥을 하고, 먹고 마시며, 호크는 절대 들어보지 못했을 노래를 읊조리며, 무겁고 눅눅한 정글의 공기를 나누며……. 서로는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커크월의 가엾은 사람들이 처지 비슷하게 처량한 사람들을 끌어 안듯이 돌보았을 것이다. 호크는 그 곳이 꿈 속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벅차오르는 소속감을 느꼈다. 그런데 펜리스가 왜 거길 떠났더라? 

 그들을 죽여.

 누군가 터무니 없는 명령을 내렸다.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호크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꿈인데 무슨 개소리야, 씨발! 그러나 여전히 꼼짝할 수 없고, 의지와 상관 없이 호크는 아리쇽을 향해 큼지막한 대검을 빼어든다. 호크는 절망과 공포를 느끼면서 아리쇽의 심장을 겨눈다. 그리고 힘을 주어 찌른다. 무너지는 아리쇽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그 다음은 베어내고, 휘두름 한 번에 수십의 안개 전사들이 스러져감을 지켜본다. 마지막 남은 쿠나리를 죽일 때 튄 피를 닦아내고 나서야 호크에게 대면이 허락되었다. 호크는 혐오로 가득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다.


 펜리스, 내 충실한 늑대.


 거기에는 호크가 있다. 

 호크는 그제서야 자신이 펜리스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거기까지 회상을 마치고 나면, 호크는 참을 수 없는 불쾌함으로 팔뚝을 벅벅 긁으면서, 아무래도 펜리스에게 사과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멈춘 쓰다듬에 마바리는 작게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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