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살 일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자
Type: Americano
- 수위가 없는 일반적인 소설형태의 글타입 Type: Americano 신청글입니다.
- 파이널판타지14 장르 에렌빌 드림 / 콜리에서 신청받아 작업한 글입니다:)!
- 신청자분 요청으로 드림주 이름은 전부 모험가로 대체되어있습니다.
- 주신 신청내용: 장문의 썰형태입니다:) / 전에 신청주신 내용의 후일담? 느낌.
- 드림주는 종족적인 특징과 말투 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부탁하셔서 묘사 뿐만 아니라 대화체의 대사도 거의 없다고 보시는 편이 맞습니다.
- 신청 글자수는 공미포 5천자. 총 공미포 6,603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오해살 일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자
copyright by. Mer
“……이어서 해. 눈 감고 있을 테니까.”
그 뒤로 짧게 입술을 닿았던 때가 불과 엊그제와도 같았는데……. 연인이 되었음에도 한걸음 가까워지지 못해 서먹함이 느껴지던 모험가와는 그 뒤로 꽤나 진전이 생겨서, 에렌빌은 종종 모험가가 탈을 쓰지 않은 맨얼굴을 마주할 때가 생길 정도가 되었다. 탈을 벗은 모험가의 모습이 탈을 쓰고 있을 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굉장히 건조한 반응이라 어라?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탈이 너무 시끄럽게 생겼던 탓이고, 사실 모험가는 탈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와 별반 크게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크게 반성을 하기도 했다. 물론, 외관을 보고 상대를 판단 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최근에는 탈을 벗은 상태에서도 그를 살짝 끌어안고 뺨을 가볍게 부비듯 맞부딪치는 행위-물론 왜 이런 행위를 하는지는 아직 에렌빌은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며 조만간 물어봐야지 싶다가도 아직 물어볼 타이밍을 잡지 못해 물어보지 못한 상태이다-도 종종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중으로, 그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으면 이제 달달하게 깨를 뿌릴 일만 남았을 터인데…….
“……저기, 모험ㄱ….”
“……!”
“아! …………또 도망쳤나….”
이게 몇 번째야. 난감하다는 얼굴로 머리를 헤집으며 한숨을 쉬는 남자, 에렌빌은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던 곁에는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맴돌며 지켜보기만 하다가, 참다못한 에렌빌이 말이라도 걸까 싶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빛의 속도로 스킬을 써서 도망을 가버리는 모험가 탓이었다.
“아니 그니까 뭐냐고…….”
이렇게 모험가가 그의 곁을 맴돌면서도 막상 그가 다가가면 도망치게 된 원인은 사실 그에게 있기는 했다. 사건발단은 바로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렌빌은 함께 조달꾼으로 일하는 동료 중 하나와 우연히 한 지역에서 만나게 되어 근황보고 겸사 밥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린 날이었다. 사실 에렌빌은 그 식당을 지나가면서 봤을 뿐 가본 적이 없었지만 같이 가는 동료는 종종 들르던 장소였는지 맛을 보장하겠다는 일장 연설을 지겹게 들으며 간 곳이었다. 과연 주문해서 받은 음식은 꽤나 맛이 좋아서, 에렌빌은 옆에서 자신의 말이 맞지 않으냐며 우쭐거리는 동료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동료가 아니라 모험가와 함께 먹으러 왔으면 좋았을 것이며 분명 좋아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그런 생각만 가득한 상태였다. 그래, 여기까지는 분명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이것이었는데, 이곳 식당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푸근한 인상의 남성이 두 사람의 테이블 위에 오징어 튀김을 내려놓고 가면서 한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 서비스! 커플들에게만 주는 거야.”
딱 봐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서비스. 거절할 이유야 없지만 서비스를 주는 이유야 몹시도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사유다. 동료 사이로 왔고 무엇보다 저는 연인이 따로 있는데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 그렇게 고민하는 찰나, 동료의 반응이 더 빨랐다.
“우와, 감사합니다!”
“아니, 잠깐. 하……, 너는 또…….”
“아니, 이럴 땐 그냥 조용히 받아먹는 거라고.”
“……말을 말자. 너나 많이 먹어라.”
냉큼 서비스를 받아 챙기고 신나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동료를 보며 에렌빌은 반박할 의지를 잃고 한숨과 함께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들었다. 일말의 죄책감 탓에 서비스로 받은 튀김에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설마 모험가가 이 광경을 봤겠냐는 안일한 생각에 뒤늦은 부정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랬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모험가는 때마침 그 근방에서 에렌빌이 본 적 없는 눈사람 탈을 쓴 채 의뢰를 받은 의뢰품을 제작하고 있었고, 좀 전의 그 광경을 죄다 보고 들어버린 것이었다. 에렌빌이 본 적 없는 눈사람 탈을 쓰고 있었으니 에렌빌이 그를 알아봤을 리도 없고, 주변에 그런 식으로 탈을 쓴 채 제작을 하고 있던 다른 모험가들도 꽤 되었기에 설마 있겠어? 하고 안일하게 넘긴 채 음식을 먹고 있는 에렌빌을, 모험가는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말없이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난 뒤로는 줄곧 에렌빌의 주변에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위성처럼 맴돌다 다가오거나 말을 걸면 도망치는 상황의 연속인, 그런 상태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 * *
사건의 전말을 다시금 떠올리며 에렌빌은 제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 뒤로 같이 갔던 동료를 한창 나무랐지만 상대는 도리어 상대가 너무 속이 좁은 것 아니냐는 말만 해서 천불만 얻고 돌아온 상태였다. 그 동료와는 그 뒤로 연락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연인을 향해 좋지 않은 말을 쏟는 이를 좋게 볼 리가 전무했으니까. 그렇지만…….
“……설마하니 그 자리에 있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물론, 그 자리에 모험가가 없었어도 이미 모험가와 연인이 된 이상, 사장이 그렇게 서비스를 내어주고 동료가 냉큼 감사하다고 받더라도 정정하는 것이 맞았지만 하지 못한 에렌빌의 죄는 크지 않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오해를 풀고 싶어도 저리도 모험가가 도망을 쳐버리면 어떻게 오해를 풀어? 이 상태가 되어버린 에렌빌은 오늘도 한숨만 깊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기회는 노려보겠지만, 과연 저 모험가가 자신에게 잡혀 줄 날이 올까? 아니, 그럼 오해를 풀 날이 전혀 없는 것 아냐? 그 전에, 그렇게 할 말 있다는 얼굴-탈을 쓰고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직감적으로 에렌빌은 알았다-로 빤히 보면서 왜 자꾸 도망가? 오기만 점점 늘어가는 가운데, 기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
“모험가.”
“……!”
여느 때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던 모험가를 에렌빌이 불렀다. 평소와 다른 부분이라면 평소에는 모험가가 바라보고 있는 앞쪽에서 모험가를 불렀다면, 이번에는 모험가의 등 뒤편에서 그를 부른 정도의 차이.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탓인지, 그냥 방심했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스킬-교묘한 점프-을 쓴 모험가가 바로 에렌빌의 곁으로 착지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조금 멍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으니 분명 예상치 못한 상황에 뛰어야할 위치를 잘못 보고 점프를 쓴 탓인 듯 싶었지만, 이것은 에렌빌에게 기회나 다름없었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칠 어벙한 조달꾼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착지장소에 당황한 모험가가 빠르게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보다 에렌빌의 손에 붙잡히는 것이 더 빨랐다.
“드디어 잡혔네.”
“……!!”
“대체 언제까지 도망칠 셈이야?”
댁,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그간 저가 얼마나 이렇게 말을 걸고 싶었는지 아냐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고, 자신이 잘못했으니 짜증은 내지 않겠지만, 그렇게 할 말 있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말 걸면 도망가는 연유가 무엇이냐고, 에렌빌은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상대는 뚱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쪽을 말없이 쳐다볼 뿐이다.
“…….”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분명 ‘너야말로 나에게 할 말이 있지 않아?’ 하는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하, 됐다. 도망치고 다닌 것을 탓하려고 붙잡은 게 아니니까. 애초에 내가 잘못했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도, 혹여 손을 놓으면 모험가가 그 틈을 타서 도망칠까 붙든 손에는 더더욱 힘을 준다. 솔직히 말하면 모험가는 이미 충분히 저를 뿌리치고 도망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사실 또한 에렌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놓으면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 그런 건 없다. 사실 모험가는 에렌빌이 손에 힘을 주어 저를 잡은 시점에서 도망칠 의지를 버리고 얌전히 잡혀있었지만 마음이 급한 상대는 그것을 알 리가 없다. 모험가가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재차 확인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에렌빌이 조금 다급함이 엿보이면서도 진지하게 모험가의 얼굴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만 내가 댁에게 오해를 풀 기회를 줘.”
“…….”
무슨 오해? 그렇게 묻는 것 같은 분위기에 에렌빌은 다시금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 일단 당신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물론, 댁이 그 자리에 있었던지 없었던지는 상관없이, 내가 바로 커플 아니라고 정정했어야 했어. 그 부분은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사실 정정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이미 받은 서비스고, 동료 녀석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 하니까, 귀찮아서 정정하지 않은 내가 정말 잘못했어. 후에 그 녀석에게는 한마디 했어.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댁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늘어놓길래 그 뒤로 더는 연락이고 뭐고 상종하지 않고 있지만……. 미안, 이 또한 변명으로 느껴질 것 알아. 하지만 내가 잘못 한 건 아니까. 사실 바로 사과하고 싶었는데, 네가 도망 다녀서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어. 내가 얼마나 속이 탔는지 당신은 모르지? 물론, 당신은 그만큼 더 다른 이유로 속앓이를 했겠지만……. 에렌빌은 솔직하게 사과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또한 변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연인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한다? 그건 에렌빌의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험가도 분명 그렇게 도망을 치면서도 본인 나름대로의 속에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을 생각하니까 도리어 더 미안한 기분이 드는 그였다. 이렇게 솔직하게 사과하면서도 상대가 쉽게 마음을 풀고 받아 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
모험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천천히 쓰고 있던 탈을 벗은 모험가가 그대로 에렌빌의 목을 끌어안았다. 말없이 그렇게 끌어안았을 뿐이었지만, 꼬옥 목을 끌어안는 팔에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나름의 용서 표현임을 에렌빌은 본능적으로 눈치 채고 모험가의 허리에 팔을 둘러 마주 안았다.
“당신은 너무 착해.”
그걸 알면 알아서 잘하라는 뚱한 대꾸가 돌아온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금 미안하다고 사과의 인사를 건넨 에렌빌이, 모험가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나름 애정을 담은 사과의 표현임을 깨달은 모험가의 뺨이 살짝 붉게 상기되어있었지만, 눈을 감고 그저 모험가를 품에 담은 채 안도감을 느끼던 에렌빌이 그것을 알아챌 일은 없었다. 잠시 후, 모험가가 품에서 고개를 빼꼼 들고 에렌빌의 뺨에 자신의 뺨을 부비듯 가볍게 맞부딪친 뒤 그대로 텔레포를 타고 어디론가로 사라지는 바람에 에렌빌은 또다시 대체 그건 뭐야? 친한 사람들 사이에 나누는 인사랑 비슷한 무언가? 애정표현인 줄 알았는데 인사였던 거야? 하고 혼란에 빠진다. 다시 생각해보면 얼굴에 비하면 한참 그 크기가 큰 탈은 뺨을 부비려고 했어도 그 크기 때문에 거리감이 맞지 않아 탈의 입술이 부벼지는 광경이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물어보기도 전에 사라진 모험가 탓에 물어보지 못하고 이번엔 다른 궁금증 때문에 머리를 싸매며 한숨을 내쉬게 된 에렌빌이었다.
“나중에 물어보지 뭐. 이제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테고.”
모험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보고 도망치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 * *
얼마 뒤, 에렌빌은 우연을 가장해 자연스럽게 전의 그 식당을 다시금 찾았다. 이번에는 모험가를 대동한 방문이었다. 일전의 일을 사과할 겸, 휴가를 내고 모험가와 짧게 여행을 다니며 들른 것이었는데, 조금은 언짢은 반응을 보이는 모험가에게 이곳의 음식은 너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서 데리고 왔다는 말을 건네니 납득하고 오히려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에렌빌은 정말 진작 먼저 같이 와볼 것을 그랬다고 조금 후회했다. 주문한 음식은 정말로 맛있어서, 모험가가 기분 좋게 식사를 즐기고, 그것을 에렌빌이 옆에서 보면서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즈음, 지난번처럼 식당주인이 그들이 있는 테이블에 다가와 오징어 튀김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는다.
“자, 커플에게 주는 서비스! 맛있게 먹으라고!”
“……!”
접시를 내려놓으며 내뱉는 말까지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서비스로 오징어튀김을 두 사람의 테이블에 두고 가버린 사장이 이번에는 옆 테이블에 가서 또 다른 오징어튀김 접시를 내려놓으면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 커플에게 주는 서비스! 맛있게 먹으라고!”
“오, 감사합니다!”
말없이 옆 테이블을 바라보던 에렌빌이 한숨과 함께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그 옆에서 에렌빌을 쫓아 옆 테이블에 시선을 주고 있던 모험가도, 탈을 쓰고 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간 자신이 마음고생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
“사실 그냥 인심이 좋은 사장님이었던 것 아닐까 싶은데.”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오해해야만 했지? 안 그래, 모험가? 허탈한 웃음이 나온 두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장님이 내어주는 튀김 서비스를 거절하기에는 너무 맛있었다고 한다. 사실 모든 음식이 다 맛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서비스로 받았던 오징어튀김이 제일 맛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두 사람은 다음에 또 와서 저 오징어튀김을 먹자는 약속을 하며 사이좋게 식당을 나섰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도망치고 피해 다니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그림이었다.
*
“그래도, 나름 잘 먹었지?”
그 서비스는 식당주인의 좋은 인심표현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이없지만……. 에렌빌의 말에 모험가가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오늘은 이 근방에서 묵을 것 같은데 괜찮아? 아니, 쓸데없는 질문이었나? 모험가는 작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가 해가 질 무렵, 마물이 출몰하지 않을 법한 안전지대를 찾은 에렌빌이 모험가와 함께 잠자리를 정돈하고 굿나잇 인사를 하려던 때였다. 이번에도 탈을 벗고 곁으로 다가와 어김없이 그를 살짝 안고 제 뺨을 부비듯 맞부딪치는 모험가를 보며 에렌빌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거, 인사인 것 같은데 말야…….”
“……?”
“탈을 쓰고 있을 때도 종종 이렇게 할 때 있잖아? 그 때는 탈의 뺨이 아니라 입술인 것 같았지만…….”
그거, 인사하려고 한 건데 거리감 때문에 탈의 입술이 닿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그런 거야? 에렌빌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듣고만 있던 모험가가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입가를 가리고 웃는 것을 보니 모를 수가 없다. 일부러 그랬구나. 전에 이미 외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고 반성한 적이 있었지만, 역시 탈을 쓰고 있던 쓰고 있지 않던 당신은 당신이구나…….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내가 좋아하는 너이구나. 에렌빌은 그렇게 문득 깨닫고 마는 것이었다.
“장난도 좋지만 다음에는 장난 말고, 진심으로 해줘.”
“……?”
“왜 모르는 척 보는데?”
“……!”
모험가의 입술에 입을 맞춘 에렌빌이 씨익 웃으며 제 잠자리로 향한다. 잘 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험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모험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누울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의아하게 여긴 에렌빌이 고개를 돌려 돌아봤을 때, 그는 붉게 물든 채 그저 멍하니 서있는 모험가를 발견했다. 슈뢰딩거? ……! 다시 곁으로 다가가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눈치 챈 듯, 화들짝 놀란 모험가가 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을 에렌빌이 붙잡았다.
“……?”
“……댁이 그런 얼굴로 있으니까……,”
괜히 내가 못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분명 이래도 아무 문제없는 사이기도 하고, 이미 해본 사이인데 댁이 새삼 그렇게 반응하면 더 해주고 싶어진다고. 조금은 투덜거리는 말투로 한숨과 함께 말을 뱉은 에렌빌이 진지한 눈으로 모험가의 눈을 마주하며 묻는다.
“싫었어?”
도리도리. 그럼? 더 해도 괜찮아? 침묵과 함께 고민하듯 눈을 굴리던 상대가 이내 고개를 짧게 끄덕인다. 허락과 함께 에렌빌이 다시금 모험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조금 전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도장 찍듯 꾹 누르다가 조금 벌어진 입술 틈을 비집고 붉은 살덩이가 들어온다. 물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침입한 것은 아니고 혀끝으로 입술을 핥고 두드리며 곧 들어가겠다는 신호를 주고 침입한 것이지만 난생 처음 혀가 들어오는 깊은 키스에 놀란 모험가는 뻣뻣하게 굳다 못해 놀라 도망치려들다가 그대로 뒷목에 손이 감기며 뒷통수와 허리를 잡혔다.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는데 성공하자 각도를 틀어 깊게 키스하면서 자꾸만 도망치려는 모험가의 혀를 집요하게 쫓아 옭아매고 치열을 꼼꼼하게 훑은 에렌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하게 떨어졌다.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은사가 가늘게 이어지다 툭 끊어지고, 숨을 몰아쉬던 모험가가 가늘게 상대를 흘긴다. 그렇지만 이미 귀까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흘겨봤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서, 에렌빌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을 뿐이었다. 싫었어? 속삭이듯 묻는 물음에 그렇게 흘기면서도 모험가는 고개를 젓는다. 마주하는 시선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에렌빌은 그것을 읽고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무시했다. 야외에서 첫 관계는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너무하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밤이 늦었어. 댁도 피곤할 텐데 자야…….”
“…….”
어쩐지 조금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붙잡는 손길이 느껴져서 에렌빌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그 손을 마주 잡고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대로 따로 자기는 댁에게도 나에게도 아쉬운 일일 테니까……. 그렇지만 오늘은 손만 잡고 잘 거야. 무슨 구시대적 짐승남이 할 법한 말을 이런 분위기에 이런 야외에서 하는 거냐고, 뚱한 얼굴이 되돌아왔지만, 에렌빌은 나름 유쾌한 기분을 느끼며 모험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제 정말로 잘 시간이야.”
잘 자. 분명 손만 잡고 잔다고 했으면서 품에 끼워넣고 잠드는 모양새가 불만을 일으킬 법도 하건만, 그럼에도 안정감이 드는 모양인지 모험가는 잠깐 뒤척이다가도 금방 눈을 감고 안정된 숨소리를 내뱉는다. 비록 야외에서 노숙을 하며 청하는 잠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게 꿈의 세계로 떠날 수 있었다.
좋은 꿈 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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