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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으니 소풍가서 물놀이도 좀 할 수도 있지!

Type: Americano

- 수위가 없는 일반적인 소설형태의 글타입 Type: Americano 신청글입니다.

- 파이널판타지14 장르 / ㅎㅉㄹ님 신청글.

- 캐릭터 이름 제외 전문공개 허가를 받아 전문 올립니다.  

- 신청자님 이름을 A, 신청자님 언약자분을 B로 두었습니다.

- 언약자관계인 두 사람의 '평소에 보고 느꼈던 분위기를 토대로 글을 써달라'라는 요청 및 캐릭터와 '물놀이, 소풍'의 주제로 작업했습니다.

- 신청 글자수는 공미포 7천자. 총 공미포 7,101자로 마무리했습니다.


날이 좋으니 소풍가서 물놀이도 좀 할 수도 있지!

 

copyright by. Mer

 

때는 맑고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곧 가을이 다가온다고 맑고 화창한 하늘을 자랑하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여름이라는 듯 한낮에는 더위를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날씨.

 

“B님, 우리 간만에 소풍가지 않을래요?”

“갑자기 소풍이요?”

 

의아하게 바라보는 눈을 보며 A가 싱긋 웃었다. 갑자기 소풍 좀 갈 수도 있죠. 날이 좋잖아요. 안 그래요? 웃으며 건네는 말에 B는 창밖을 내다봤다. 맑게 갠 가을 하늘. 제 언약자의 말대로 소풍가기 좋은, 그런 화창한 날씨가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하늘잔에서 이정도로 맑은 하늘은 좀처럼 보기 힘든데, 정말로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며 B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게도 일정은 비어있었다. 긍정의 대답을 듣고 신나서 쫑긋거리는 두 귀를 바라보며 그녀는 작게 웃었다. 언제 봐도 활기 넘치고 귀여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B님, B님! 피크닉가면서 먹을 간식거리를 싸볼까 하는데 뭐가 먹고 싶어요?”

“으응? 글쎄요. A님이 해주시는 거면 다 좋은데?”

 

아니, 혼자만 준비하지 말고, 같이 해요. 왜 자연스럽게 혼자 다 하려고 하는 거에요?! B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A의 목소리가 들려온 주방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도대체 뭘 얼마나 준비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식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걸 대체 언제 다……?”

“아니, 사실 별안간 뭔가 이것저것 만들어서 먹고 싶어져서 재료를 잔뜩 준비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잔뜩 준비해서 날도 좋은데 소풍이나 가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서 사실 소풍 갈래요? 하고 물어본 거에요. 머쓱하게 웃으며 말하는 제 언약자를 보며 B는 자신의 이마를 탁 때렸다. 아니 어쩌다가 의식의 흐름이……? 그렇지만 제 언약자가 기뻐하면 그걸로 좋다고, 사실 소풍은 저도 가고 싶었으므로 기쁘게 피크닉용 간식 준비를 돕기로 결정한 그녀였다.

 

“그런데, 뭘 만들 거에요?”

“음……. 역시 소풍가서 먹는 먹거리의 정석은 샌드위치려나?”

“샌드위치! 좋아해요! 이것저것 맛있는 것 잔뜩 넣어서 만들어요!”

“그럼 샌드위치에 주스도 챙기고……. 아, 쿠키도 구울까요?”

“A님의 쿠키! 아주 좋아요!”

 

그럼 저는 샌드위치 밑 재료 손질을 도와드릴까요? B이 식빵과 과일, 치즈 등을 주섬주섬 챙기며 눈을 빛냈다. 어라? 그럼 B님이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시는 건 어때요? 쿠키를 굽는 데에도 시간을 많이 쓸 것 같은데. A의 말에 에? 제가요?! 하고 놀라던 B가 이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아주 맛있게 만들어볼게요! 과일 사라다를 넣은 샌드위치부터 햄과 치즈를 넣은 스탠다드한 샌드위치까지 자신이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은 전부 만들어보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언약자를 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A는 엄마미소를 한껏 가득 지은 채 밀가루와 버터 같은 베이킹 재료를 꺼내들었다. 언약자가 샌드위치를 만드는 동안 옆에서 쿠키를 구울 생각에서였다. 커피쿠키, 오랜만에 구워보는데 괜찮겠지?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한창 납품을 한다고 잔뜩 만들어대던 자신의 감을 믿어보기로 하고 눈대중 계량으로 제작을 시작했다.

 

“B님, 커피쿠키 괜찮아요?”

“A님이 만들어 주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정말인데…….”

“그럼 정말 커피쿠키로 구울 거에요.”

“응응, 좋아요.”

 

밀가루 반죽을 이미 시작한 시점에서 물어보는 것은 늦은 것 아닐까 싶었지만, 기우였던 모양으로, 커피쿠키도 좋아한다는 언약자의 말에 A는 만족하는 얼굴로 쿠키 반죽을 마저 시작했다.

 

*

 

“완성!”

“……이거 양이 좀 많아 보이는데요?”

“괜찮아요. 다 먹을 수 있어요.”

 

다 만들고 나니 어쩐지 두 사람이 먹기에는 조금 많아 보이는 피크닉 바구니가 완성됐다. 사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식재료의 양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미래였지만 두 사람은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푸짐하게 싸놓고 나니 중요한 사항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싸들고 어디로 갈 거에요?”

“아.”

“…….”

“그걸 안 정했네.”

“아무래도 소풍 간다는 사실에만 신나서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죠, 우리.”

 

그렇다. 간식준비는 다 끝내놓고 정작 어디로 소풍을 나갈지, 그 장소를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피크닉 바구니를 다 싼 시점에 생각해낸 두 사람이었다. 어차피 식으면 큰일 나는 음식도 아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쿠키, 그리고 시원한 주스류 위주로 피크닉 바구니를 꾸렸으니 소풍 나갈 장소를 정하느라 조금 시간을 지체해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소풍 장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스타 델 솔은 어때요? 바다 모래사장에서 일광욕도 하고 간식도 먹고 물놀이도 하고!”

“좋은 생각이지만 코스타 델 솔은 너무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검은 장막 숲으로 가고 싶지는 않은데, 어디가 좋을까……. 생각보다 쉽게 범위가 좁혀지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한 끝에 그들이 정한 피크닉 장소는 다름 아닌 라벤더 안식처. 두 사람의 지인이 보유 중인 개인 주택 앞에서 아래쪽으로 쭉 내려오면 있는 보랏빛 나루 근방 야이누 파의 뜰이었다. 서서히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단풍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그리다니아의 숲으로 가도 좋았고 혹여 늦여름의 시원한 바다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라면 코스타 델 솔이나 안갯빛 마을의 해변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으나, 기왕이면 가기 편한 곳! 이라는 느낌도 있고, 꽃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이 피크닉을 즐기기에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고른 장소였다. 때마침 두 사람 다 그 지인의 개인 주택을 공유 받고 있었기 때문에 텔레포를 타고 이동하기도 편했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물론 언약 텔레포가 있기 때문에 굳이 그걸 따질 필요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무엇보다 폭포 주변으로는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이 잘 되어있었기에 물놀이가 하고 싶어지면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기다가 쉴 수도 있어서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지인의 집이 가까이 있었기에 정 뭐하면 쳐들어가서 쉬어도 된다는 장점도 그들의 계산 한 축에 끼어있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말은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근데 그 근방으로 간다고, 잠깐 집 좀 빌리겠다고 말 안 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마음대로 쓰라고 공유해준 건 그 사람인데 뭐.”

“정말로 괜찮은 거 맞는 건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언약자를 뒤로하고, A이 웃으며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앗, A님 같이 가요! 뒤에서 다급한 외침과 함께 발소리가 들렸다.

 

* * *

 

“와아, 날씨 엄청 좋네요! 소풍 나오기 좋은 날씨를 잘 고른 것 같아요!”

 

꽃구경도 하고 물놀이도 하겠다는 목적으로 장소를 골랐지만, 돗자리는 꽃밭의 옆이 아닌 물가에 깔았다. 아무래도 날이 많이 서늘해졌다고는 하나, 한낮의 더위는 아직 제법 무더워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물가에 앉아있으니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시원하게 들려온다.

 

“폭포소리가 생각보다 거슬리지 않고 배경음마냥 들려와서 좋은 것 같아요.”

“아, 저렇게 맑은 물을 보면 뛰어들고 싶어지는데…….”

 

물놀이를 하기는 역시 조금 춥겠죠? 제 언약자의 물음에 B은 ‘글쎄요…….’ 하고 말을 흐렸다. 날이 서늘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여름에 가까운 날씨라 낮에는 굉장히 더웠기 때문이었다. 잠깐 물놀이를 즐기고 좀 서늘해지면 나와서 말려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즈음, 그런 생각을 한 건 B 뿐만이 아니었는지, 대충 물놀이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물가로 이미 달려가고 있는 A를 보며 B는 반쯤 비명 지르듯 쫓아갔다. 그렇다고 혼자서 그렇게 냅다 뛰어들지 마시구……! 풍덩! 졸지에 함께 물속에 다이빙으로 뛰어들게 되었지만 어푸푸 고개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고 마주한 두 사람의 얼굴은 짜증도 신경질도 없이 웃음만이 가득하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그런가? 다들 밖으로 많이들 나왔네요.”

“그러게요. 코스타 델 솔 같은 곳으로 갔으면 미어터졌을 수도 있겠어요.”

“그건 조금 싫을지도…….”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저도 생각해요. 둥둥 떠있기도 나쁘지 않은 정도.”

“A님이 즐겁다면 다 좋아요.”

 

지금은 해가 중천을 지나 기울어지기 시작하며 잔뜩 데워진 지열이 뜨거운 열을 발산하는 시간. 두 사람은 물속에서 나올 생각 없이 시원한 물의 온도를 즐기며 유영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 탓에 한낮에는 물놀이를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이 꽤 되어서, 복작복작함이 느껴졌다. 물론 미어터질 정도는 아니어서 두 사람은 나쁘지 않다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놀러 나온 다른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어울리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어차피 모험가 거주구에 사는 모험가 동지들이라 타인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인 탓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은 두 사람처럼 물 위에 둥둥 떠서 여유를 만끽하는 무리, 물가에 앉아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보수가 어땠으며 이 일은 너무 위험했고 저 일은 이런 저런 팁이 있더라. 이곳에 가면 꼭 이건 먹어봐야 한다고 카더라 식의 정보를 주고받는 무리, 그늘에 숨어 연인들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무리 등으로 나뉘어 복작복작했는데 그럼에도 서로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은 지키고 있었기에 이정도면 나름 성공한 장소선정 아닐까?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

 

“A님, 배고프지 않아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한참을 놀다보니 허기가 진다. 뭐라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싸온 간식을 먹을까요? 햇볕이 따뜻하니까 햇볕 아래에서 먹으면 옷도 금방 마를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나란히 물 밖으로 나와 그늘에 깔아뒀던 돗자리를 그늘 바깥 양지까지 끌어와 다시 깔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크닉 박스를 열어 샌드위치와 쿠키, 주스 등을 꺼내 늘어놓으니 주변에서 다른 모험가들이 먹을거리를 들고 다가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합석해도 될까요?”

“싸오신 음식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 저희들 것이랑 조금 바꿔서 나눠 드실래요?”

“저 집이 요 앞이라서 진짜 거창한 거니까요! 정말 이상한 사람들 아니니까요!”

 

분명 둘 만의 소풍, 둘 만의 피크닉이었음에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야외에서 즐기는 파티가 되어있었다. 둘 만의 소풍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이런 복작거리는 광경도 나쁘지 않아서,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손을 잡고 웃으며 이 시간을 즐겼다. 간식인지 점심인지 모를 밥을 먹으며 도중에 뺨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손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언약자 관계라는 것을 들은 주변 다른 모험가들은 야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흐뭇해하는 반응을 보여주고는 했다.

 

“밥 먹고 바로 물에 들어가는 것은 좋지 못해요. 아시죠?”

“아쉽지만 발만 담그고 물가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한 근황 토크라도 나눌까요?”

“이렇게 친해진 것도 인연인데 완전 남남으로 모르는 척 헤어지기는 아쉽잖아요.”

“그보다 쿠키 진짜 맛있어요! 어쩜 이렇게 잘 구우셨어요? 저는 맨날 태워서 곤란한데.”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리기 마련이라, 두 사람은 다른 모험가들의 무리에 녹아들어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소화시킨 뒤에는 물장구를 치면서 누가 더 빠르게 수영을 하는지 겨룬다거나, 갑자기 한명을 지목해서 냅다 물에 던져버린다거나 등의 장난도 치며 놀았다. 분명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을 터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그렇게 놀았다.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제 언약자가 즐거우니 된 것 아닐까? B과 A은 서로 나란히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상대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저희는 슬슬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

“저희는 조금 더 이곳에서 놀다 들어가려구요.”

“이제는 해가지면 기온이 금방 떨어지니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세요!”

“걱정 고마워요!”

 

다른 모험가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나서도 나란히 물가에 몸을 담그고 앉아 손장난을 치고,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며 둘 만의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해가 지려는 듯 슬슬 서늘해지는 기온을 느끼고 물 밖으로 나왔다. 옷을 꾹 짜서 물을 최대한 짜냈음에도 뚝뚝 물기가 떨어지는 탓에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웃으며 돗자리와 피크닉 가방을 정리해서 그대로 언덕길을 올랐다. 옷이 마를 때까지 잠깐이나마 지인의 개인 주택에서 신세를 져볼 생각에서였다.

 

“실례합니다!”

“집주인 없는데 막 들어가도 괜찮은 거에요?”

“응응, 괜찮아요. 어차피 이집 주인도 우리 집에 밥 먹듯이 놀러오니까.”

“이게 맞나…….”

 

반신반의한 얼굴로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들어오자마자 보이 거대한 수조를 지나쳐 실내에 정원을 만들어둔 마냥 꽃과 연못이 가득한 1층을 지나,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면 아담한 오두막집에 들어온 것 같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벽난로는 따로 보이지 않지만 훈훈한 내부의 공기를 보아하니 따로 보온을 위한 장치가 상시 가동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름에는 더울 텐데 싶다가도 지금은 다 젖어있는 상태라 한기마저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는 딱 알맞은 온도라서, B과 A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켠에 놓여있는 흔들의자에 몸을 의탁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매번 이렇게 따뜻하게 해둬서 여름에 더워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핀잔주고는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따뜻한 온도가 늘 유지되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러게요. 잔뜩 젖어서 추웠는데 금방 따뜻해져서 옷도 곧 다 마를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지. 바닥에 물기가 흥건한 건 조금 미안할지도…….”

“그것도 금방 마르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금방 마를 거에요.”

“응…….”

 

두 사람의 말대로 실내에 훈기가 감돌다보니 몸이 노곤하게 녹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로인해 노느라 느끼지 못했던 뒤늦은 피로감과 함께 졸음이 몰려오는 듯, A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B가 말을 걸었다. 졸려요? 응, 졸려요, 그렇지만 여기 우리 집이 아닌데? 알게 뭐야. 그 사람 집이 내 집이고 내 집도 내 집이지. 그게 무슨 논리에요. 졸려서 그래. 응, 그래 보여요. 되도 않는 만담에 가까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흔들의자 위에서 꼬옥 끌어안고 앉아 있으니 졸음이 옮기라도 한 모양이다. 연달아 터지는 하품에 이어 시선이 마주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정말 나란히 하품이나 하고 말이에요.”

“그거 누가 할 소린데.”

 

여기서 자다가 집주인 돌아오면 쫓겨나요. 슬슬 돌아갈까요? ‘우리들의 집’으로. 제 언약자의 물음에 A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같이 자주는 거에요? 언제는 같이 안 잤어요? 안 자줬잖아. 거짓말쟁이. A님 많이 졸린 것 같네요? 응석이 잔뜩 늘었다구요. 응석부리는 중 아닌데. 그래요, 그럼 그렇다고 해줄게요. 자, 일어나요. 힘들겠지만 그래도 더 힘들어지기 전에 텔레포를 타자구요.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제 언약자를 어르고 달래서 일으킨 B이 먼저 텔레포를 탄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약 텔레포를 타고 쫓아와요. 알았죠? 잠들지 말고! 여러 번 신신당부를 하던 끝에 텔레포를 타고 B이 먼저 사라진다. 링크펄을 통해 얼른 타고 넘어와요! 하고 A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그녀는 제 언약반지에 입을 맞추며 텔레포를 시전 했다.

 

“스윗 마이 홈……!”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침대로 다이빙하려는 언약자를 다급하게 B이 잡는다. B님 대체 왜 잡는 거에요? 나 졸려. 잘 거라면 집에 와서 자라면서요.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B는 작게 웃다가 달래듯 고개를 저었다. 물놀이 하고 와서 씻지도 않고 그냥 자러 가려는 건 아니죠? 자, 얼른 욕실로 가요.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몸을 좀 담구고 와야 감기도 안 걸릴 거에요.

 

“……B님도 같이 들어갈 거죠?”

“같이 들어갈까요?”

“……응.”

 

좋아요. B이 작게 웃으며 졸음에 못 이겨 비척비척 걷는 A를 부축해 욕실로 향했다. 목조 욕조로 몸을 담그기 좋게 설계된 탕에 A를 앉히고 저도 곁에 앉아서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다보면 오지 않던 잠이 오기 마련이다. 노곤하게 풀리는 몸에 반쯤 눕듯이 욕조 벽에 기대어 몸을 담그고 있으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졸려서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굴던 언약자가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붙어온다.

 

“너무 기분 좋아요.”

“오늘은 하루 온종일 물속에만 있네요.”

“그래도 오늘 소풍 즐거웠죠, B님?”

“응. 다음에 또 놀러 나가요.”

 

머리를 마주 기대며 상대의 손을 꼬옥 붙잡으니 마주잡아오는 손길이 기껍다. 꾸벅꾸벅 다시금 졸기 시작하는 언약자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며 이름을 부르니 간지럽다고 웃으며 바라보는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마주친 시야에 둘은 말없이 웃으며 눈을 감고 조용히 입을 맞췄다. 가볍게 입술을 부비는 정도의 입맞춤이었지만, 조용B 둘만의 공간에서 노곤하게 몸을 녹이며 나누는 스킨십은 그 이상의 만족을 주고 있었다.

 

“아, 이러다 우리 A님 여기서 자겠다. 슬슬 일어나요.”

“으응, 싫어어…….”

“뭐가 싫어어…… 에요? 자, 일어나요.”

“뽀뽀해주면.”

“이게 무슨 소리람?”

 

되도 않는 어리광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뽀뽀는 해준다. 그러면 또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며 제 발로 비척비척 욕조 밖으로 나와 주는 모습에 B는 빙그레 웃으며 수건을 꺼내오는 것이었다. 이건 A님 수건. 자, 얼른 물기 닦아요.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여기 앉아있으면 머리도 말려줄게요. ……응. 그렇게 물기를 닦고 머리까지 다 말린 두 사람이 침실로 들어왔을 때는 시간이 꽤나 지나 있어서,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B 상태였다. B은 여전히 졸음을 참지 못하고 졸리다고 칭얼거리는 제 언약자를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 침대에 눕히는데 성공하고 나서야 안도의 B숨과 함께 제 이마의 땀을 슥 닦아냈다.

 

“후, 그래도 집에서 잠드는 데는 성공했네요.”

“……B님도 같이 자요.”

“나는 우리 집으로 가야죠.”

“같이 자…….”

 

우리 A님 어리광쟁이가 다 되었네요. 못 이기는 척 옆에 다가가 누우니 자연스럽게 팔이 넘어와 허리를 끌어안는다. 이제 어디 못가. 여기서 나랑 자는 거에요. 어디 안 가요. A님 두고 내가 어딜 가요? B님 맨날 바빠서 자주 못 보잖아. 그건 미안해요. 응……, 그러니까 같이 자. 그게 무슨 논리람? 작게 웃으면서 등을 도닥이다보면 우응, 하고 잠투정을 하면서도 품에 파고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퍽이나 귀엽다고, B는 그렇게 생각했다.

 

“A님, 자요?”

 

그렇게 B참을 도닥이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얼굴을 들여다봤을 때, 이미 새근새근 곤B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제 언약자를 바라보며, B은 낮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잘 자요, A님. 오늘도 고생했어요.”

 

굳게 닫힌 입술 위로 살포시 내리 앉은 입술에 분명 자고 있는 것이 분명B 사람의 입 꼬리가 빙그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B의 입 꼬리도 똑같이 호선을 그린다.

 

잘 자요. 좋은 꿈이 당신의 꿈자리에 찾아오길 바라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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