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전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카야모리 루카의 생일은 6월 24일입니다. 생일 축하해, 루카! 서서히 햇빛의 따가움이 살갗에 닿고, 공기가 무거워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정이 쉽게 달래지지 않는 계절에, 혼란스러운 진실과 함께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낸 31A는 임무 중에도 마음이 흩어져 있었다. 다섯 명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익숙해질
※ 5장 전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득 지금은 몇 시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동자를 움직이기 전에, 내려다보고 있는 전첩에 반사되는 눈부심으로 정오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먼저 짐작했다. 전첩의 상단 바에서 13:27이라는 숫자를 확인한 유키가 고개를 쭉 들어 올렸다. 프로그래밍 작업이 계속되어서 피로한 목을 주무르며 잠깐 눈을 감았다. 레이징
잠이 안 온다. 캄캄한 천장을 바라보며 이즈미 유키는 되뇌었다. 잠이 안 와. 억지로 눈을 감아도 생각은 끊이지 않고, 다시 전선에 서야 하는 내일에 대한 걱정과, 오늘 먹었던 점심 맛있었지, 같은 사소한 회상과,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상념을 차례로 떠올리다 보면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 잠들지 않는 밤이 흘러갔다. 큰일인데. 내일도 정찰
투수가 투구 자세를 취한다. 그에 지지 않고 한쪽 다리를 높이 들고, 배트를 쥔 팔을 크게 당겨 공을 기다린다. 오직 1점 차의 아슬아슬한 순간. 땀이 괴는 손에 힘을 준다. 동시에 야구공이 던져지고, 다가오는 공을 있는 힘껏 쳐낸다. 경쾌한 깡 소리가 울렸다. “홈런!” “젠장!” “해냈다!” 결과는 멋지게 승리! 같은 팀인 이치고와 하이 파이브를
“만약에 말야.” 갑자기 운을 떼는 루카 덕분에 유키는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정면을 보았다. 먼저 말을 꺼내고도 루카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헤집으며 뜸을 들였다. 그런 루카를 재촉하지 않고 유키는 등을 반듯하게 세워 루카를 바라봤다. 오늘 웬일인지 둘이서만 아침을 먹자고 할 때부터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 2024년 만우절 기념입니다. “윳키, 정말 싫어!” 다짜고짜 쏟아진 말에 유키가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제복을 지나 시선을 올리면, 아름다운 이목구비의 얼굴이, 심한 말을 내뱉었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미소를 띠고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미소와 다르게 유키는 웃지 않았다. 얌전히 벤치에 앉아 전첩을 만지던 사람한테 찾아와서 하는 말
※ 5장 전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윳키, 요즘 힘들지 않아?” 루카의 갑작스러운 걱정에 유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나란히 앉아있던 루카와 시선이 맞았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벤치에서 오전의 휴일이 천천히 흘러가는 자유 시간. 언제나처럼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로 도피하려던 유키는 한순간에 찌르고 들어온 루카의 질문에 목표를 잃고 방황
그날 루카의 눈은 일찍 떠졌다. 유키가 매일 아침 루틴으로 헤비메탈 곡을 틀기도 전에 루카 스스로 일어났다. 루카가 좋아하는 시끄러운 음악을 저장해둔 전첩에 스피커를 연결하려던 유키는 눈을 반짝 뜨고 있는 루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가 서쪽에서 떴다는 듯이 바라보는 유키에게 루카가 힘차게 인사했다. “윳키, 좋은 아침!” 평소와 다른 모습에 잠
※ 5장 전편 결말까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휴일의 오후였다. 이어지는 싸움의 나날도 멀게 느껴지고, 한때 마음을 적셨던 소동도 가라앉았을 무렵.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다시 소녀들은 전장으로 나서야 하고, 아직 모두의 가슴을 할퀸 상처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그런 하루였다. 그런 날에도 이즈미 유키는, 한가할 때면 언제나 앉는 아레나 앞
거지 같은 아침이네 II 메모스 보고 쓴 개잡썰입니다 나오기 전에 날조해라가 저의 신조 설정 오류나 캐붕 주의.. “윳키, 괜찮아?” “아, 어어… 이 정도는…” “무리하지 마. 컨디션이 나쁘면 쉬어 줘.” 그럴 순 없었다. 쉰다니. 컨디션이 나쁜 건 어디까지나 내 불찰이었다. 캔서랑 싸워야 하는 위급한 시국에, 다른 일로 밤잠을 설치는 여유
“원, 투, 쓰리, 체크 오케이. 해치 개방합니다.” 하얀 벽이 열리고 검고 반짝이는 우주가 눈앞으로 펼쳐진다. 중심을 잡기 어려운 무중력 상태에서 공기를 분사해 앞으로 나아간다. 고개를 돌리면 우리의 푸른 행성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거기서 반대편을 향해 무수하게 빛나는 천체를 바라본다. 분명 감탄해야 마땅할 광경인데도 내 심장은 침착했다.
지금 일본 세라프 부대 기지에서는 한가지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점심시간, 31C 부대의 분고가 세계 멸망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항상 하던 역할극이라는 뜻이다―텐네의 약이 부대원들의 식사에 섞여 들어갔고, 지금 그 효과가 나타나는 중이었다. 그렇게 약의 효과로 모든 세라프 부대원은 진심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윳키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질문에 나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없다고 답할 수 있었다. 나는 해커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컴퓨터를 만지는 게 더 편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랑이 아닌 호감이라면 나도 누군가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지나는 거리에서 주위의 소음을 지우기 위해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
[지금 카페테리아 앞에 있어. 데리러 와줘.] 전첩을 터치해서 린네를 보낸다. 답장은 안 봐도 괜찮을 테니까 송신을 마친 전첩은 주머니에 넣는다. 처마 밖으로는 겨울답지 않은 장대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축축한 한기를 몰아내려고 나는 팔짱을 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춥다. 하지만 이제부터 기다리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미소가 빙그레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마다 같은 습관을 공유한다. 잠에서 깨어나 뿌연 시야를 자각하고 머리맡 혹은 침대 옆 탁자 같은 곳을 더듬는다. 그리고 찾던 물건을 손에 들어 눈앞에 쓴다. 이즈미 유키도 컴퓨터 화면을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해커였기에 시력이 좋지 못했다. 매일 아침 깨어나면 제일 먼저 안경을 찾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기상 나팔이 울리지 않는 휴일
스무 해에 조금 못 미치는 기억 속에서 밴드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 따위 조금도 없었다. 본업은 해커이고, 어떤 밴드를 좋아하긴 했지만, 나도 밴드를 하겠다는 마음이 들진 않았다. 그런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뒤집고, 나는 드럼 앞에 앉아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 생명체와 싸우는 군대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인데, 거기서 밴드까지 해야
특별히 힘든 싸움은 아니었다. 돔 주변의 경계 임무, 허브 캔서 없이 산발적으로 돌아다니는 야생 캔서를 정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였다. 이미 허브 캔서를 몇인가 토벌해 온 31A에게는 쉬운 일이었지만, 긴장을 푼 탓일까 마지막에 와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었다. “루카!” 마무리를 위해 뛰어들다 정면으로 캔서의 음파 공격을 맞은 루카가 비틀거렸다
지금 카야모리 루카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려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루카는 두 눈을 이즈미 유키에게 고정했다. "루카, 너 왜 밥은 안 먹고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 "응? 아냐 아냐, 지금 먹으려고." "왠지 수상한데. 너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 "그럴 리가! 그냥 윳키가 먹는 반찬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그래." "평
4박 5일간의 로케가 끝났다. 길었던 촬영은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매번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로케는 피곤하다. 정식으로 데뷔하고나서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 외 이미지 메이킹이나, 예능 같은 방송 출연이나, 음악을 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은 솔직히 지겨웠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