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유키] 단추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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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가 투구 자세를 취한다. 그에 지지 않고 한쪽 다리를 높이 들고, 배트를 쥔 팔을 크게 당겨 공을 기다린다. 오직 1점 차의 아슬아슬한 순간. 땀이 괴는 손에 힘을 준다. 동시에 야구공이 던져지고, 다가오는 공을 있는 힘껏 쳐낸다. 경쾌한 깡 소리가 울렸다.

“홈런!”

“젠장!”

“해냈다!”

결과는 멋지게 승리! 같은 팀인 이치고와 하이 파이브를 하고, 분한 표정을 짓는 메구밍과 스모모를 향해 브이를 해 보였다. 메구밍은 툴툴거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툭 찼다.

“그럼, 아이스크림은 메구밍과 스모모가 사는 거지?”

“나는 언니 꺼 사줄거다냥. 저 녀석은 비싼 걸로 고를 것 같다냥.”

“쳇, 우리 부대장이니 어쩔 수 없제.”

“얏호!”

“나는 안 얻어먹어도 되는데.”

“그럼 내만 덤터기 쓰는기가?!”

셋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이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다. 낮의 볕이 눈부신 나비 공원에, 활기에 찬 웅성거림이 퍼져나간다. 이어지는 전투의 나날 속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물론 아이스크림 내기에 이겨서 기쁜 것도 있지만.

기분 좋게 흘린 땀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활짝 웃고 있는 나를 향해 메구밍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루카, 니 지금 단추 떨어진 거 아이가?”

그 말에 셋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셔츠의 세 번째 단추가 없어져 있었다.

“어라? 그러게?”

덕분에 옷깃이 벌어지며 그 아래 살이 드러났다. 이런 창피한 꼴을 하고 있었다니! 나는 벌어진 옷을 황급히 손으로 덮었다.

“너도 평범하게 단추가 떨어졌으면 가려야 한다는 의식은 있었다니 놀랍다냥.”

“뭐, 이 녀석도 그렇게까지 상식이 없는 녀석은 아니겠지. 의외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주 단추를 잃어버리곤 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 가슴 사이가 드러나는 것은 역시 조금 부끄러웠다. 이걸 어쩐다. 난처하게 옷을 누르고 있으려니 메구밍이 말했다.

“기숙사에 여분의 단추랑 바느질 도구 있데이.”

“알려줘서 고마워, 메구밍! 그럼, 아이스크림은 다음에 먹을게!”

“그건 고마 잊어뿌라.”

“메구밍이 사주는 아이스크림 기대할 테니까!”

“안 사 줄기다! 퍼뜩 단추나 꼬매라!”

나비 공원에 남은 셋에게 한 손을 흔들며, 다른 손으로는 가슴 사이를 누르고 황급히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길을 올랐다. 항상 두 팔을 흔들며 뛰어올랐는데 한 손을 고정하고 있으려니 움직임도 작아지는 느낌이라 불편했다. 얼른 기숙사로 가서 꿰매야지.

아레나 앞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갔더니 윳키가 항상 앉는 벤치에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윳키가 고개를 들었다. 작게 숨을 헐떡이며 윳키에게 인사했다.

“안녕, 윳키.”

“안녕. 아까도 애들이랑 야구하러 간다고 인사했던 것 같긴 하지만. 한 손은 왜 그러고 있어?”

“야구하다가 세 번째 단추가 떨어져서. 기숙사에서 꿰매려고.”

“그래서 한 손으로 가리고 있는 거구나.”

문득 수업 시간에 했던 바느질 실습을 생각했다. 내가 잘 꿰맬 수 있을까?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엄마가 꿰매줬으니까 전혀 해본 적도 없고, 나나밍이 응원―분명히 응원이었을 거다. 나나밍의 신뢰도 파라미터는 맥스니까.―해줬지만 역시 자신이 없었다.

“저기, 윳키―.”

애처롭게 윳키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더니 윳키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꿰매줄까?”

“아, 응! 윳키가 꿰매주면 백 점 만점일 거야!”

“시험이야? 나도 그렇게 바느질을 잘하는 건 아니야.”

“내 마음이 그렇단 거야. 솜씨와 상관없이 윳키가 해주면 기뻐.”

“그렇게 띄워줘도 아무것도 안 나와.”

“진심인데.”

손에 들고 있던 전첩을 주머니에 넣은 윳키가 치마를 정돈하며 일어섰다. 내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기숙사를 향해 걷는 윳키를 보고 밝게 웃었다.

“그렇게 웃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니까.”

“윳키 님의 실력 기대하겠소이다.”

“나 무슨 승단 심사라도 보는 거야? 그렇게 기대할 만한 실력은 아니라니까.”

기숙사에 들어와서 윳키가 선반을 뒤지자 금세 바느질 도구와 여분의 단추가 나왔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아는 것도 왠지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자, 이제 옷 줘봐.”

“잠깐만.”

단추 서너 개를 풀고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려서 벗어냈다. 윳키가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셔츠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위는 속옷 차림이 되었구나. 목욕도 같이하는 사이인데 괜찮지 않나. 언젠가부터 목욕할 때도 윳키는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게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 눈길을 피하는 윳키가 나는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하는 것 같은 모습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고개를 숙이고 바늘에 실을 꿰고, 하얀 셔츠를 잡고 윳키가 바늘을 쥔 손을 움직인다. 단추를 꿰매기 시작하는 윳키의 옆모습이 아름다운 실루엣을 그린다. 형광등의 빛이 매끄러운 이마에 떨어지고, 오똑한 코끝이 밝게 빛난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진지함이 느껴진다. 집중하는 윳키의 얼굴은 무척이나 고고하고 우아해서.

“윳키는 역시 코가 크네.”

단추를 달던 손이 우뚝 멈춘다.

“아직도 그 소리야? 하필 널 위해서 단추까지 달아주고 있는데 험담은 너무하잖아.”

“그치만 윳키는 코가 커서 예쁜 얼굴인걸.”

“보통 코가 크다는 걸 칭찬으로 쓰지 않아.”

“그런가. 윳키는 지적인 느낌이 멋진 미소녀인데.”

“그러니까 갑자기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니까.”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야. 윳키는 예쁘니까. 자꾸 보고 싶어져.”

윳키가 입술을 꾹 깨문다. 멈췄던 손이 다시 옷을 꿰고, 단추를 지나 실을 뽑고 높이 들어 올려진다. 그 움직임은 아까보다 느려져 있었다. 천천히 실을 통과시키고, 옷과 단추를 잇는 고리를 만들고, 셔츠에 잃어버렸던 것을 되돌려준다. 반복되는 움직임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눈꺼풀을 살짝 내리고 바느질에 열중하는 윳키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봄의 꽃가루가 내려앉은 것 같은 간질거림이 가슴에 퍼진다. 기분 좋은 울렁거림에 작은 노랫소리를 흥얼거린다. 벚꽃 같은 홍조가 윳키의 뺨에도 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매듭을 짓고 실을 끊어낸 윳키가 셔츠를 내게 건넸다.

“자, 다 됐으니까 입어봐.”

윳키에게서 셔츠를 받아, 벗었을 때처럼 위로 셔츠를 뒤집어쓰고 팔을 꿰었다. 그리고 단추를 하나하나 잠근다. 새로 단 세 번째 단추도 새것처럼 매끄럽게 잠겼다. 팔을 휘휘 휘저어보고 옷을 내려다본다. 벌어지는 곳 없이 제대로 입어졌다. 활짝 웃으며 윳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꿰매졌어! 윳키, 역시 최고야!”

그제야 윳키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다행이네. 나도 바느질은 많이 해본 건 아니니까.”

윳키가 달아준 세 번째 단추를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면, 다른 단추에 비해 조금 서툰 마무리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왠지 웃음이 나게 된다. 고개를 들어 윳키를 바라본다. 윳키의 단추에 손을 대고 말했다.

“이제 다신 떨어뜨리지 않을게. 윳키가 달아준 단추니까.”

윳키가 조금 당황한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치만 윳키가 느껴져서 마음에 든단 말야.”

“어차피 금방 또 떨어질 것 같은데.”

“맞아, 역시 나는 그러겠지?”

그건 좀 싫은데.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단추. 그걸 윳키가 달아줬다고 생각하니까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윳키 말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시무룩하게 세 번째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 윳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 떨어지면 또 달아줄 테니까.”

윳키의 말에 고개를 반짝 들었다. 시선을 빗기는 윳키가 보인다. 하지만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단추를 쥐었던 손을 뻗어 바늘을 잡았던 손을 감싼다.

“응! 몇 번이고 부탁할게!”

그리고 체온이 살짝 높은 손에 깍지를 꼈다. 쉽게 놓아버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엮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아, 맞다! 나 메구밍한테 아이스크림 얻어먹기로 했는데!”

“단추 달자마자 또 뛰어갈 셈이야?”

“음, 그럼 윳키가 사줘!”

“할 수 없네. 매점으로 가자.”

“네에~!”

맞잡은 손을 흔들거리며 걸어 나갔다. 윳키의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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