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유키] 시야
2024. 2. 2. 프세터 백업
어떤 사람들은 아침마다 같은 습관을 공유한다. 잠에서 깨어나 뿌연 시야를 자각하고 머리맡 혹은 침대 옆 탁자 같은 곳을 더듬는다. 그리고 찾던 물건을 손에 들어 눈앞에 쓴다.
이즈미 유키도 컴퓨터 화면을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해커였기에 시력이 좋지 못했다. 매일 아침 깨어나면 제일 먼저 안경을 찾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기상 나팔이 울리지 않는 휴일, 유키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항상 안경을 두는 침대 위 선반을 더듬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안경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함을 느끼고 유키가 몸을 일으켜 선반 위를 보았다. 거기엔 있어야 할 안경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른 곳에 안경을 두었던가?
안경을 찾아 방안을 둘러보려던 유키는 옆으로 눈을 돌리자마자 안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안경을 쓴 카야모리 루카와 눈이 마주쳤다.
"잘 잤어, 윳키?"
순간적으로 고성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유키가 침착하게 물었다.
"너 뭐하는 거야?"
"앉아서 윳키를 보고 있어."
"그게 아니라 왜 네가 내 안경을 쓰고 있어."
"그냥. 궁금해서."
역시나 루카다운 이유였다. 유키가 저절로 올라오는 짜증을 삼키는 사이 루카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윳키 눈이 진짜 나쁜가 봐. 내가 윳키 안경을 쓰니까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
그럼 쓰지 않으면 되잖아!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일단 아침이니까 유키는 다시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구나, 그럼 이제 돌려주지 않을래? 그게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
유키가 손을 내밀었다. 유키의 손을 말끄러미 바라보던 루카가 눈을 한번 깜박였다. 두 번 깜박이기 전에 루카가 안경을 벗었다.
"윳키는 그럼 지금 아무것도 안 보이는구나."
그리고 안경을 돌려주는 대신 내민 손을 잡고 유키의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럼, 나는 제대로 보여?"
잡힌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키의 시야에 루카가 가득 찼다. 유키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안 보여. 그러니까 돌려줘."
"그래?"
유키의 대답에도 루카는 안경을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왔다.
"그럼 지금은?"
이제 둘의 얼굴은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습하고 뜨거운 숨이 피부에 닿았다. 초점은 아까보다 잘 맞을 텐데도 루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눈을 꾹 감고 유키가 소리 질렀다.
"보여! 잘 보인다고!"
닿아오던 온기가 천천히 떨어지자 유키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루카가 손을 내밀어 유키에게 안경을 돌려주었다. 유키는 안경을 낚아채 재빨리 쓰고 루카를 지나쳐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유키의 시야에는 차마 들어오지 못한 루카의 귓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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