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아오] 놀이공원의 폐장시간이 되어도

sn by 송로
12
0
0

※ 헤븐 번즈 레드의 메인 스토리 2장, "여름! 수영복! 트로피컬 축제!" 이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7월 7일은 아오이 에리카의 생일입니다. 생일 축하해, 아오이!

눈을 떠보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카야모리 씨?"

아직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들려온 목소리를 따라 반사적으로 루카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은 아오이가 루카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루카는 무심코 공중에 떠 있는 다리를 흔들거렸다. 단단하게 잠긴 안전바만이 루카를 공중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주었다.

아, 맞아. 루카는 새삼스레 떠올렸다. 나는 아오이랑 자이로드롭을 타기로 했지.

아오이 에리카는 하이퍼사이메시아였다. 어떤 기억이라도 아오이에게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오이는 지금껏 두려운 경험을 의식적으로 피해 왔다. 남들은 평범하게 즐기는 귀신의 집, 번지 점프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루카를 만나, 아오이는 이때까지 못 해봤던 것을 전부 해보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얼마 전에 귀신의 집, 번지 점프까지 갔다 온 아오이는 이제 온갖 놀이기구를 섭렵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런 아오이와 함께 루카는 놀이공원에 왔다. 그날, 어디든지 어울려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역시 무서우신가요? 왠지 멍해져 계신 것 같아서…."

아오이가 풀죽은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아차, 여자애를 울리면 신사 실격이잖아. 나도 여자지만. 루카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나도 기대된다고 생각했어. 야호! 공중 낙하다!"

천연덕스럽게 주먹을 흔드는 루카에게 아오이는 그제야야 안심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번지점프까지 해보고 나니 겁이 없어졌는지 아오이는 수십 미터의 공중에서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었다.

"이제 곧 정상이에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내며, 아오이가 자이로드롭의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자이로드롭은 어느새 정상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높이에 주위가 동화 속 소인국의 나라처럼 작게 보였다. 아찔한 공포감과 두근거리는 기대가 섞여서 빠른 심장 소리로 되돌아온다. 들뜬 기색으로 아오이가 고개를 내밀어 루카를 바라보았다.

"낙하가 머지않았어요."

"그래, 떨어질 때는 어떨지 기대되는걸."

"그러면 같이 카운트다운 할까요? 셋!"

아오이는 완전히 들뜬 기색이었다. 미색의 피부에 도는 홍조를 보고 루카도 웃음을 터뜨렸다. 아오이, 정말 신이 났나 보네. 루카도 분위기를 타서 아오이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둘!"

"하나!"

그리고 빠른 낙하. 얼굴을 할퀴는 바람과 다리가 뜨는 무중력 상태가 심장을 아찔하게 죄어왔다. 안전바에 매달려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것도 즐거운 비명이었다. 주마등처럼 순간의 추락이 끝나고, 두 사람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이로드롭에서 내렸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여기서는 공포조차도 오락이었다. 도전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재미였다. 아오이가 포근한 시선으로 루카를 바라보았다. 카야모리 씨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거겠죠.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삼킨 감사를 모르는 채로, 루카가 아오이를 바라봤다.

"어때? 무서웠어?"

"떨어지기 직전에 카운트다운 할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맞아, 막상 떨어질 때보다 높은 곳을 내려다볼 때가 제일 무섭다니까."

이해한다는 듯이 맞장구치는 루카에게 아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평정심을 되찾았는지 즐거움만이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그치만 재밌었어요. 아마 평생,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예요."

"아오이는 모든순간을 잊을 수 없잖아?"

"그만큼 즐거웠단 거예요."

"그럼 잘됐네!"

상쾌하게 기지개를 켠 루카가 아오이를 돌아보았다. 한쪽 팔꿈치를 감싸고 팔을 다소곳이 모으고 있는 아오이에게 루카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아오이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오이가 그런 얼굴을 하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의외로 어울리네. 모순된 생각을 하면서 루카가 아오이를 기다렸다. 아오이는 성큼 루카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가볍게 놀란 루카를 아오이가 잡아끌었다.

"그럼 이제 롤러코스터를 타요!"

"어, 그럴까? 오늘따라 과감하네, 아오이."

"오늘만큼은 신나는 놀이공원 데이트니까요. 혹시 불편하셨나요?"

루카의 한마디에 아오이가 슬며시 팔짱을 꼈던 팔을 풀었다. 한 발 내디뎠다 싶으면 한발 물러나 루카의 기색을 살핀다. 과감해지기로 한 것 같은데, 결국 상대의 기분부터 신경 쓰는 아오이를 루카는 어쩔 수 없이 좋아했다. 루카는 조금 전에 떨어진 아오이의 손을 붙잡았다.

"불편하긴! 아오이 같은 미소녀와의 데이트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루카의 말 한마디에 아오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아오이는 살며시 루카의 손을 맞잡았다. 눈부신 햇빛이 둘의 걸음마다 반짝이는 카펫처럼 앞을 비추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둘은 롤러코스터로 향했다.

-

트랙을 되돌아온 롤러코스터가 루카와 아오이 앞에서 멈춰서고, 때맞춰 게이트가 열렸다.

"이게 시속 200킬로미터, 최고 높이 140미터의 롤러코스터…. 긴장되네요…!"

긴장 탓인지 미간을 찌푸리고 롤러코스터를 쳐다보는 아오이의 앞을 루카가 막았다.

"아오이, 여긴 내가 먼저 가게 해줘."

"어차피 먼저 타든, 늦게 타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카야모리 씨가 먼저 타고 싶다면 그러겠지만...."

비장한 표정으로 롤러코스터에 먼저 앉은 루카가 옆 좌석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 있지도 않은 선글라스를 벗어드는 시늉을 하며 루카가 말했다.

"어이, 거기 예쁜 아가씨, 내 옆에 타."

"헌팅이냐!"

이제는 능숙하게 찰진 태클을 넣은 아오이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루카가 키득거리며 옆 좌석을 톡톡 쳤다.

"부디 제 옆에 앉는 영광을 주십시오, 레이디?"

"그러니까 그런 느끼한 헌팅 멘트는 안 해도 앉을 거니까요."

"그럼 다행이다. 혼자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 너무 외톨이 같아 보이잖아."

"알겠어요. 최선을 다해서 카야모리 씨를 혼자 두지 않을게요. 아무리 카야모리 씨가 썰렁한 장난을 쳐서 두고 가고 싶어지더라도...!"

"아오이, 날 그렇게 생각한 거야...?"

장난인 듯 진심인 듯 농담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롤러코스터의 안전바가 내려왔다. 두근거리는 설렘을 숨기지 않고 아오이가 눈을 반짝였다. 루카는 롤러코스터 정도는 어린 시절 종종 타본 적 있어 아오이만큼 기대가 크진 않았다. 하지만 유명인이 되고 나서는 이런 곳에 올 기회가 없었거니와, 이렇게까지 기쁜 티를 내는 사람 옆에서 같이 들뜨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루카가 긴장 탓인지 슬며시 땀이 배어 나오는 손을 안전바 위에 올렸다.

발랄한 음악과 함께 천천히 롤러코스터가 출발했다. 처음은 빠르지 않은 속도로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레일을 타고 올라간다. 지금이 가장 기대가 부푸는 순간임을 루카는 알고 있었다. 높아지는 고도처럼 고조되는 감정을 느끼며 둘은 마른침을 삼켰다.

-

"진짜 재밌었어요!"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으며 아오이가 밝은 목소리를 쏟아냈다. 저절로 아오이를 따라 웃으며 루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로드롭에 롤러코스터, 그 외에도 후룸라이드, 쉬어가는 의미에서 회전목마, 바이킹까지 탔다. 이 정도면 에피타이저에 메인 코스,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맛봤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상하게 배는 안 고프긴 한데. 루카가 손차양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아직도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놀았던 것 같은데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은 듯했다. 잔잔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오이에게 루카가 물었다.

"다음에는 어딜 갈까?"

아까까지만 해도 가고 싶은 곳을 쏟아내던 아오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지그시 고요한 시선이 루카에게 머물렀다. 그 시선에 왠지 모를 긴장을 솟는 걸 느끼며 루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오이가 왜 그러지? 화장실이라도 급한가?

"아오이?"

"카야모리 씨."

조금 전까지 천진하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 무색하게 차분해진 목소리로 아오이가 루카를 불렀다. 루카는 아오이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음을 느꼈다. 심장이 어째선지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루카 자신도 어렴풋이 그 이유가 잡힐 것도 같아서, 도리어 불안하게 느껴졌다. 흔들리는 루카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아오이가 고했다.

"재밌었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에요."

아오이의 한 마디에 그림자가 기우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거짓말처럼 해는 자취를 감추고 주위는 스산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루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그들의 시선은 온통 둘을 향하고 있었다. 싸늘한 공기에 루카는 소름이 돋았다. 알 수 없는 현상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아오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예감이 루카를 더 초조하게 했다.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에요."

"그럴 수가…."

아오이의 말에 루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딘가에서는 예감하고 있었다. 이제 아오이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아오이가 있는 이곳은 루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루카는 아오이에게 필사적으로 물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에 조금만 더 머물면 안 될까?"

"안 돼요. 카야모리 씨한테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요."

"내가 가버리면, 아오이는 다시 혼자 남게 되잖아. 아오이도 나와 같이 가면..."

"카야모리 씨."

아오이가 루카의 손을 잡고 손안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끊어진 팔찌. 이전에 아오이가 귀신의 집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곳에 갇혔을 때 루카가 부적으로 가져갔던 미산가였다.

"이걸 되돌려 드릴게요. 그게 카야모리 씨를 지켜줄 거예요."

루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오이가 가지 않으면 나도 여기에 남겠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고개도, 입술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따뜻한 손이 루카의 몸에 닿았다. 아오이가 단호한 손길로 루카를 돌려세우고, 손가락으로 루카의 앞을 가리켰다.

"곧장 앞으로만 가세요. 누가 불러도 돌아보지 말고."

딱딱한, 그러나 힘이 담긴 목소리. 그리고 굳어있는 루카의 등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닿았다. 살랑거리며 스치는 간지러운 감각에 온유한 목소리가 섞였다.

"저도 카야모리 씨와 함께여서 즐거웠어요. 계속 함께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카야모리 씨한테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이만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따뜻한 손길이 루카의 등을 떠밀었다.

"잘 가요, 카야모리 씨.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음에 또 같이 놀아 주세요."

그 손길을 따라 루카가 걸음을 뗐다. 그림자가 루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늘한 한기를 안고 검은 덩어리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검은 인영은 일정 반경 이내로 다가오지 못했다. 루카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팔찌를 꽉 쥐고 뛰었다. 아오이가 가르쳐준 대로 곧장 앞으로만 나아갔다. 곧 놀이공원의 출구가 보이고, 루카는 게이트 밖의 빛으로 뛰어들었다.

-

"루카!"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루카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얀 천장, 그리고 다급한 얼굴의 유키가 보였다. 여기는 병원인가. 정신을 집중하면 병실의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루카가 버석한 입술을 뗐다.

"윳키…."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 마."

목소리가 볼썽사납게 갈라졌다. 그런 자각이 들어서 루카는 헛기침했다. 유키가 심각한 얼굴로 루카를 바라봤다. 유키의 눈동자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입이 다 마른 것 같아. 루카도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나 오랫동안 여기 있었어…?"

"너 3일 만에 깼어. 일어나지 말고 누워있어."

그래서 윳키가 그렇게 다급해 보였구나. 루카는 유키의 말대로 몸을 일으키지 않고, 침대에 편안하게 누웠다. 캔서의 공격에 주위가 암전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저승에 갔다 왔던 걸까? 죽는다면 지옥에 가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오이를 만났던 걸 보면 천국에 갈지도 모르겠다. 태평한 생각을 하며 루카는 눈을 깜박였다. 무의식적으로 쥐었다 편 손에 무언가가 걸렸다. 루카는 그 무언가를 놓치지 않도록 주먹을 쥐고 손을 눈앞에 들었다.

눈앞에 든 손에는 미산가가 쥐어져 있었다.

다행이다. 내 환상이 아니었구나.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안도를 느끼며 루카가 희미하게 웃었다.

-

고요한 오후. 기지 내의 장례식장에는 나비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또 누군가가 죽게 된다면, 세라프 부대원들은 다시 이곳에 모여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편이 나을지도. 벤치에 앉아 떠오르는 상념을 흘려보내며, 통통 튀어 오르는 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루카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루카."

"유이나 선배."

"옆에 앉아도 될까."

루카는 대답 대신 옆으로 비켜 앉았다. 유이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루카의 옆에 앉았다. 나비는 그동안에도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한동안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이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의식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이제 다 회복되었나?"

"응. 유이나 선배가 걱정해 준 덕분에 다 나았어."

"그거 다행이군."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나비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듯이 장례식장을, 기지 내를 돌아다닌다. 루카도 그저 자유로이 움직이는 나비를 시선으로 쫓았다. 그러다 문득 유이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유이나 선배."

"왜 그러지?"

"유이나 선배는 천국을 믿어?"

마치 지나가듯이 던져진 질문에 유이나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세라프 부대원은 항상 죽음과 가까이 있다. 동료들의 죽음과도, 본인의 죽음과도. 매일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늘 이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배인 30기 부대원으로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절이 느껴온 유이나였다. 양손에 깍지를 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유이나가 이윽고 답했다.

"사후세계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답해줄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이 세상에 없겠지. 진정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가. 그것은 신만이 아시는 일이다.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어."

루카도 무언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물어본 것이리라. 그렇다면 유이나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서 답하는 일뿐이었다. 그렇기에 유이나는 나름대로 생각한 최선의 답을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지의 미래에, 다시 동료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 말이 루카에게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 어찌 됐든 그것이 유이나로서는 수많은 전장을 헤쳐 나가며 골라낸 답이었다. 그 마음이 루카에도 닿았는지는 유이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유이나의 말을 듣고 있던 루카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을 잃었던 3일 동안 아오이와 만났어. 거기서 아오이랑 자이로드롭을 타거나,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하면서, 신나게 놀았어."

하늘을 바라보며 루카가 말했다. 어딘가 먼 목소리를 유이나는 주의 깊게 들었다. 루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때 꿨던 꿈처럼, 유이나 선배의 말대로 언젠가는 아오이와도 다시 만나서 즐겁게 놀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겠지?"

걱정을 떨쳐낸 듯이 밝은 목소리로 루카가 묻는다. 하지만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듯이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루카를 향해 유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담담한 유이나의 대답에 루카는 들여다보고 있던 미산가를 손안에 가뒀다. 끊어진 팔찌에서 희미하게 온기가 느껴진 것도 같았다.

안녕, 아오이. 언젠가 모든 여정이 끝나는 날에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서 그때처럼 놀이기구를 타자.

손안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루카는 잠시 눈을 감았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G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