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유키] 목소리가 닿지 않아도
특별히 힘든 싸움은 아니었다. 돔 주변의 경계 임무, 허브 캔서 없이 산발적으로 돌아다니는 야생 캔서를 정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였다. 이미 허브 캔서를 몇인가 토벌해 온 31A에게는 쉬운 일이었지만, 긴장을 푼 탓일까 마지막에 와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었다.
“루카!”
마무리를 위해 뛰어들다 정면으로 캔서의 음파 공격을 맞은 루카가 비틀거렸다. 당황해서 루카의 이름을 외친 것도 잠시, 일단 공격을 날린 캔서에게 최대 출력의 포격을 날리고, 아사쿠라와 아이카와가 일대를 정리하는 사이 귀를 붙잡고 있는 루카에게 달려갔다.
“루카! 괜찮아?!”
눈살을 찌푸리고 루카의 어깨를 잡았다. 루카는 괴로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두 귀를 감싸고 있는 루카의 손을 치우고 루카의 귀를 살펴보았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출혈 같은 건 없었지만, 귓속의 신경 따위를 다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의무병에게 가자. 통신할게.”
서둘러 전첩을 조작하는 내 손을 루카가 붙잡았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루카가 말했다.
“들리지 않아.”
“…뭐?”
“아무것도 안 들려, 윳키.”
순간 전첩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루카의 말을 이해하기 무섭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일시적인 청각 장애입니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을 겁니다.”
의사의 설명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나을 때까지 잠깐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영구적인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다행이네, 루카. 조금만 참으면 되겠어.“
그렇게 루카에게 말을 걸었다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카를 보고 아차 싶었다. 그래, 지금 루카는 아무것도 안 들리지. 경솔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책상 위에 메모지를 집어 루카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제야 루카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새삼 간단한 의사소통도 어려워진 루카를 깨달았다. 귀환하는 내내 곁에 있었으면서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니. 영영 듣지 못하게 되진 않더라도 당장 루카는 대화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곁에서 도와줘야만 해, 그런 결심이 섰다. 그런 마음을 담아 루카의 손을 잡으니, 루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뭐야, 윳키. 함부로 여자아이의 손을 잡다니 변태~.”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와? 말로 하지 않고 루카의 손을 꽉 잡자, 루카가 활짝 웃었다.
“장난이야, 장난. 이제부터 같이 다녀주려고? 고마워.”
장난치지 말라는 의미로 다시 손을 꾹 눌렀다. 그것도 장난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루카는 계속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천진난만한 루카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진지해졌으면 했다.
루카의 손을 잡고 진찰실 밖으로 나오니 대기하던 31A가 우리를 둘러쌌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사쿠라가 물었다.
“루카는 괜찮아?”
“그래. 다행히 앞으로도 계속 안 들리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하지만 청력을 회복하기까지 하루나 이틀 걸린다고 해.”
“다행이다. 걱정했어. 루카 씨도 영영 잃어버리는 줄 알고.”
“응, 정말 다행이야.”
“그럼 나을 때까진 이즈미가 봐줘야겠구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이상한 소리 하면 가만 안 둬.”
“아이고, 무서버라. 알았데이.”
“두 사람, 행복하게 사세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한 지 10초도 안 지나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기에에에엑! 유키 씨가 무서워요! 도망가야지!”
“별일 아니라니 우리도 그만 갈까?”
“응! 루카 씨를 부탁할게, 이즈미 씨. 루카 씨도 얼른 낫길 바랄게.”
루카의 상황을 알기 전까진 심각한 분위기였던 31A가 평소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돌아왔다.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왔지만, 헬기에서는 계속 진지하게 루카를 돌보고 있었으니, 이 녀석들도 동료가 소중한 거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루카를 맡기고 가버리는 점이 얄밉긴 하지만,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다시 와주기는 할 것이다.
…그렇겠지?
한바탕 소란스럽게 하고 떠나간 동료들의 뒷모습을 미덥지 않은 눈길로 쫓는데 손이 잡아당겨졌다.
“무슨 얘기 했어?”
자연스럽게 묻는 루카에게 무심코 목소리로 답하려다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차, 지금 루카는 아무것도 안 들리지. 그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전첩으로 입력해서 보여주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루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알려주지 않아도 알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루카가 대화에서 소외된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걸 지금 깨닫고 심각해졌다. 원래도 친구가 많은 루카니까 지금 상황이 아주 불편하고 서운할 테다. 전첩으로 텍스트를 쳐서 대화하는 것도 불편하고, 내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목소리를 직접 뇌로 전달하는 통역기…를 만드는 건 전문가도 아니고, 보조기구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렵다. 혹시 히구치에게 물어보면 그런 장치가 있을까?
그런 것들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더니 루카가 내 양 뺨을 손으로 감싸 꾹 눌렀다. 굳어져 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얼빠진 모양으로 변했다. 루카가 그런 나를 향해 웃었다.
“윳키의 그런 표정, 별로 보고 싶지 않으려나. 지금은 나도 여유가 없으니까, 윳키의 웃는 얼굴만 보고 싶어. 평소에도 웃어줬으면 하지만.”
루카의 한마디로 내 표정이 누그러졌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불안할 루카에게 내가 위로를 받아버린 상황이라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미안, 고마워. 그렇게 말하려고 움직이던 입술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지? 그동안 고민해 보지 못한 상황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팔을 벌려 다가가 루카를 꼭 끌어안았다.
이게 맞겠지? 너무 과감했나? 그냥 전첩에 써서 보여줬어도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미 먼저 끌어안아 놓고 갑자기 떨어지기도 뭐해서, 그대로 어색하게 루카의 등을 토닥거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맞닿은 신체로 퍼져나간다. 평소보다 빠른 고동은 누구의 것일까. 한동안 잠자코 내게 안겨있던 루카가 말을 꺼냈다.
“와우, 윳키, 오늘따라 과감하네. 드디어 나를 유혹하기로 한 거야?”
“이, 이상한 의미로 끌어안은 건 아니니까! 고맙다는 걸 전달하려고 한 거니까!”
루카의 말에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자기가 먼저 끌어안고서 상대에게는 전달되지 않을 츳코미를 했다는 창피함에 헛기침했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루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뜨거워진 얼굴을 누르는 내 손을 루카가 잡았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까 윳키가 가자는 대로 갈게. 계속 곁에 있어 줘?”
따스한 손이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쥐었다. 붙잡힌 손에서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같이 생활해 온 동료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아까의 말대로 순순히 따라오는 루카를 데리고 일단 히구치에게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세라프 부대의 연구원이니, 도움이 될 만한 장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렇게 히구치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연구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소로 가는 길,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31E의 오오시마 무우아가 루카에게 말을 걸었다.
“헉, 헉, 루카! 안녕!”
인사를 듣지 못하고 지나가려는 루카의 손을 붙잡아 세우고, 나는 몸을 돌려 무우아에게 말했다.
“지금 루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대신 손을 흔들어서 알려줘.”
무우아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루카는 지금 아무것도 안 들리는 거야? 루카, 안녕. 지금 손 흔드는 건 보여?”
“어, 무우아. 안녕!”
“말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들리진 않는 거지? 힘들겠다….”
“일시적인 거니까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나을 거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눈을 깜박이며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루카를 보고 무우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나도 만약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이치코 언니가 상냥하게 부르는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거겠지? 아아, 상상만 해도 너무 슬퍼.”
지금 상황이 불편하긴 하겠지만, 이렇게 공감해 주고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루카도 기쁘리라. 그런 말을 전달하려고 입을 연 순간 무우아가 이상한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아, 언니들이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는 고통, 슬픔…. 아아, 너무 기대돼서 참을 수가 없어…!”
…혹시 오오시마 무우아는 이상한 사람인 건가? 그런 생각을 했했지만, 루카에게 물을 수도 없고, 본인 앞에서 말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서 말로 꺼내진 않았다.
“헉, 하지만 그럼 나를 상냥하게 욕해주는 마리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거잖아! 아아, 어쩌지?”
“저기, 무우아, 우린 이만 가볼게. 러닝 열심히 해.”
“아, 응! 루카,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 안녕!”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안녕.”
루카를 붙잡고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하는 무우아를 피해 서둘러 거리를 걸었다. 문득 루카가 어깨를 톡톡 쳐서 뒤돌아보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루카가 말했다.
“나 대신 친구한테 인사해 줘서 고마워.”
“아니, 뭐 그런 거 가지고.”
“분명히 무우아는 이상한 얘기를 했을 텐데 잘 들어줘서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야.”
“알고 있었던 거냐고! 원래 그런 애였어?! 몰랐어! 아니, 알고 싶지 않았어!”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는 루카를 보고 나도 허탈하게 웃었다. 수도 없이 얘기를 나눠왔으니까 아마 들리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 거겠지. 들을 수 없어도 어렴풋이 대화의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신뢰가 있다는 점이 조금은 기쁘다.
그래도 정확히 전달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대화가 더 많다. 부디 히구치에게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루카의 손을 잡고 다시 연구소로 향했다.
“일시적인 청각 장애라고? 그거 흥미로운걸.”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다 들은 히구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런 히구치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말해두지만, 루카를 이상한 연구에 이용하려고 하면 화낼 거니까.”
“뭐, 그렇겠지. 너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연구해 볼 생각은 없어. 그보다 도움이 될 만한 청각 보조 장치라…. 한번 찾아보지.”
“고마워, 히구치.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면 다음에 내가 부를 때 와서 연구를 도와주도록 해.”
“그 정도야 얼마든지.”
“찾는 동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뭐가 나올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알았어.”
평소와 같은 구부정한 자세로 연구소 직원 출입 통로로 사라진 히구치를 바라보는 나의 손을 루카가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리니 루카가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또 히구밍이야?”
왜긴,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있나. 너야말로 왜 화가 난 건데. 난데없는 투정에 기가 차서 대답하려다 전첩을 꺼내 들었다. 대답을 입력하려는 나의 손에서 전첩을 뺏어 든 루카가 재차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 말했다.
“나도 히구밍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왔다는 건 알아! 그런데 왜 히구밍인데?!”
허. 어이가 없어서 짧은 숨을 터뜨렸다. 제대로 이유도 알면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 전첩을 품에 꼭 끌어안고 노려보는 루카를 마주 쏘아보다가 심호흡했다. 일단 전첩을 돌려달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루카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안 돌려줄 거야.”
그걸 설명하려고 돌려달라는 거잖아!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기분을 꾹 삼키며 다시 손을 까딱였다. 그래도 루카는 여전히 도리질할 뿐이었다. 그럼 어쩌라는 건데.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참고 루카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루카도 지지 않고 나에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저 고집을 어떻게 꺾어야 할까.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투성이인데 거기에 하나 더 얹어주는 것이 참 인심도 좋았다.
이대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어깨에 힘을 빼고 루카의 손을 잡았다. 전첩을 숨기려다 뜻밖에 손을 잡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루카와 시선을 마주하고, 잡은 손을 양손으로 감싸 손등을 토닥였다. 기분이 풀렸는지 입가가 씰룩이는 루카를 이제 됐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애써 굳은 얼굴을 한 루카가 말했다.
“아까처럼 안아줘.”
저걸 진짜! 잡은 손을 내팽개치고 지금이라도 저 얄미운 얼굴에 꿀밤을 먹여주는 게 나을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루카의 생떼를 들어주는 게 나을지 저울질했다. 결국 그 수밖에는 없는 거겠지. 미간을 찌푸리고 루카의 손을 놓았다.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루카를 힐끔 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고 루카를 끌어안았다. 아까처럼 등도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얼마간 그러고 있었을까. 가슴 앞에 있던 루카의 손이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둘러졌다. 슬며시 허리를 끌어안는 것도 왠지 짜증이 났지만, '참을 인' 자를 마음속으로 그렸다. 곧 루카가 내 목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부드러운 손짓으로 쓸어올렸다. 무심코 힘이 들어가는 몸을 루카가 지그시 안았다. 귓가에 루카의 숨결이 닿았다.
“윳키.”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속삭였다.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감각에 굳어있을 때쯤, 밀폐된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애정행각은 방에 가서 하지 그래? 여기는 러브호텔이 아니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루카를 밀어낸 내가 히구치에게 돌아서서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아, 아니! 애정행각이 아니야! 루카의 정서가 불안정해서! 잠깐 정서적 치유를!”
“퍽이나 그랬겠군. 빨리 원하던 거나 가져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청기다. 이거라면 가까운 곳에서의 대화 정도는 가능할 거야. 전투에서 활용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일시적으로 안 들리는 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히구치의 눈에 경멸이 어린것 같았지만, 멋쩍은 기분을 숨기며 히구치에게서 장치를 받아서 들었다.
“그래, 고마워. 잘 쓰고 돌려줄게.”
“받았으면 얼른 꺼져. 닭살 돋는 장면을 보는 건 취미가 아니야.”
“그, 그러니까 애정 행각이 아니라니까!”
“그걸 판단하는 건 너희가 아니겠지. 당장 나가.”
“큭…. 알았어, 어쨌든 고마웠어.”
멀뚱히 서 있는 루카의 손을 잡고 연구소를 나왔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쳐다보는 루카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히구밍이 질투했어?”
“아니, 질투라기엔 벌레 보듯이 하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창피한 감정을 애써 털어내며 보청기를 루카에게 끼워주고 말을 걸었다.
“루카, 잘 들려?”
루카는 아무 대답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 들리는 건가? 아무래도 오래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으니 고장난 걸지도. 그렇다면 여전히 루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 원점이잖아. 그래도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허탈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내가 허탈한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하지만 루카는 지금도 들리지 않아서 괴롭겠지. 내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자 루카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까지도 계속 윳키가 같이 있어 줬잖아. 윳키가 옆에서 도와주면 괜찮을 거야.”
루카의 낙천적인 말에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낮부터 같이 있었던 것에 관해서 하는 말뿐이겠지만, 왜인지 간지럽게 들렸다.
“지금까지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도 계속 곁에 있어 줘.”
부드러운 미소로 루카가 말했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뒤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나 신뢰가 담긴 말을 들려주는지 알 수 없었다.
루카는 왜 이렇게까지 동료를 믿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영향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분명 네가 그런 사람이라서 모두 너를 좋아하는 거겠지. 그리고 나도 그런 루카이기에 신뢰하고, 또…. 상대에게는 닿지 않을 말을 중얼거렸다.
“나야말로 네가 곁에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어. 너를 좋아하니까.”
나야말로 루카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입술을 읽을 수 없게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루카의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멍하니 루카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가능성에 천천히 입을 벌렸다.
“윳키…. 그렇게나 나를 좋아하는 거구나.”
예상을 확인시켜 주는 루카의 말에 비명을 질렀다.
“절대 아니야! 그보다 들리잖아! 왜 안 들리는 척한 거야?!”
“그야 들린다고 하면 윳키 혼자 전첩을 만지거나 하면서 나를 두고 갈지도 모르잖아! 더 이상 안심시켜 주려고 안아주지도 않을 거고!”
“사심이 가득하구만! 그렇다고 사람을 속이면 어떡해! 그보다 아까 한 말은 잊어버려!”
“싫어! 평생 기억할 거야! 윳키는 나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다닐 거야!”
“외치지 마! 머릿속에서 지워! 그건 헛나온 거야! 진심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어! 아~, 녹음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한 번만 더 말해줘.”
“말하겠냐! 이제 됐어, 혼자서 어디로 가버려!”
“싫어 싫어, 윳키~, 좋아하는 사람을 혼자 두지 마~.”
달라붙는 루카를 떼어내려다 실패하고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사다난한 하루였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오늘은 정말 최악의 하루였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