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유키] 사랑의 묘약

2024. 1. 22. 프세터 백업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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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카야모리 루카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려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루카는 두 눈을 이즈미 유키에게 고정했다.

"루카, 너 왜 밥은 안 먹고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

"응? 아냐 아냐, 지금 먹으려고."

"왠지 수상한데. 너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

"그럴 리가! 그냥 윳키가 먹는 반찬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그래."

"평범한 고등어구이인데. 너 생선도 안 좋아하잖아."

"그렇긴 한데 오늘따라 맛있어 보이네."

"조금 줄까?"

"아니 괜찮아! 윳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역시 수상해."

가늘게 눈을 뜬 유키를 향해 루카가 방긋 웃었다.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였지만, 유키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수상하다. 분명히 루카에겐 무슨 속셈이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노려본다고 루카의 속셈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유키는 찜찜한 기분으로 다시 수저를 들었다. 그런 유키를 루카는 유심히 바라봤다.

지금 유키의 식사에는 사랑의 묘약이 들어 있었다. 먹게 되면 가장 처음에 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텐네의 특제 약으로, 물론 맞은편에 앉은 루카가 넣은 것이었다. 유키가 요즘 나한테 소홀한 것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런 물음을 텐네에게 네 번쯤 하고서야 텐네에게 이거나 받고 사라지라는 짜증과 함께 얻은 약이었다.

이 약을 먹이기 위해 루카는 유키와 단둘이 점심 약속을 잡았다. 분명히 효과가 검증된 약이라고 했으니까, 이제 곧 유키가 나한테 매달리며 계속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겠지. 그 광경을 상상하면 저절로 치솟는 입 끝을 루카는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 아직도 밥이 많이 남았잖아."

"아, 응! 다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다가 훈련 늦겠어."

유키의 말에 루카가 황급히 수저를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루카는 힐끔힐끔 유키를 쳐다보았다. 상대를 관찰하는 시선이 오가며 식탁에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대화 없이 식기 부딪치는 소리와 주위의 웅성거림 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데도 유키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루카의 안색은 어두워지고, 점심을 다 먹었을 때쯤에 루카는 명백히 실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아레나로 갈까. 그렇게 싫은 표정 해도 훈련은 해야 해."

"윳키…."

"왜."

"혹시 무슨…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들지 않아?"

"아니 전혀. 아! 너 혹시 내 밥에 설사약이라도 탔어?!"

"내가 윳키에게 그런 짓을 할 것 같아?!"

"아니면 됐고. 이상한 말 그만하고 가자."

"으응…."

결과적으로 유키는 루카가 원하는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아레나로 가는 유키의 뒤를, 루카가 터덜터덜 따라갔다. 그래도 혹시 몰라. 훈련하는 사이에 약효가 나타나서, 자유 시간에는 윳키가 나만 따라다닐지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루카는 아레나로 향했다.

-

"8시 방향, 중형 캔서 발견!"

"윳키랑 츠카삿치는 엄호 사격, 나하고 카렌쨩이 갈게!"

"알았어!"

31A는 재빠르게 대열을 갖추고 중형 캔서를 공격했다. 이제 익숙해진 전투 양상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31A는 중형급 캔서를 쓰러뜨렸다. 무리의 중심이 되는 캔서를 쓰러뜨리고 31A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즈미 씨! 3시 방향에서 기습이야!"

"앗."

잠깐 긴장을 놓은 사이 들어온 공격에 유키가 뒤늦게 반응했다. 유키가 정통으로 공격을 받기 직전, 루카가 민첩하게 움직여 공격을 막아냈다.

"루카!"

"이거나, 먹어랏!"

캔서의 공격을 떨치고 루카가 캔서를 베었다. 유키에게 기습을 해온 소형 캔서는 루카의 일격에 쓰러졌다. 캔서의 피를 흩뿌리는 루카를 유키가 붙잡았다.

"괜찮아, 루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나는 괜찮아."

루카의 팔을 잡고 머뭇거리던 유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잠깐 집중을 못했어. 고마워, 루카."

유키가 눈을 살며시 내리깔고, 공격을 막아낸 루카의 팔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루카가 입을 살짝 벌리고 바라봤다. 혹시, 이건 유키가 나한테 반한 걸까? 이제라도 약효가 들어서? 부푼 기대를 안고 루카가 유키에게 물었다.

"혹시 반했어?"

"뭐?"

"윳키가 나한테 반했는지 묻는 거야."

이번엔 유키의 입이 벌어졌다. 기대를 가득 담고 유키를 바라보는 루카에게 유키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헛소리 그만하고 훈련이나 마저 해!"

-

중간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있었지만, 훈련은 순조롭게 끝났다. 츠카사와 카렌은 아카데미의 매점으로 향했고, 메구미는 나비 광장, 타마는 자판기를 구경하러 갔다. 뒤늦게 아레나를 나서는 유키의 뒤를 루카가 쫓았다.

"윳키, 기다려!"

"뭐야, 무슨 용건이라도 있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윳키는 나를 따라와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약속이라도 했던가?"

"약속은 안 했지만, 윳키는 나한테 반해서 나를 쫓아다녀야 하는 거잖아."

루카의 말에 유키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유키가 물었다.

"…누가?"

"윳키가."

"누구를?"

"나를."

"뭐 한다고?"

"좋아한다고."

순식간에 유키가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유키를 볼수록 루카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분명히 사랑의 묘약이랬잖아! 4차원, 이 거짓말쟁이! 당장 바닥에 엎드려 좌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을 삼키며 루카가 속으로 외쳤다.

루카가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루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비실비실 시선을 피했다. 그런 루카를 보며 유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침울한 루카를 향해 유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루카, 나는 너를 좋아해."

뜻밖의 고백에 루카가 확 고개를 들었다. 결 좋은 금발이 흔들리고, 동그랗게 뜬 눈에 기쁨이 반짝였다.

"그럼 이제 윳키 눈엔 나만 보이는 거지? 좋아! 윳키가 내 팔에 매달려서 '그동안 소홀히 대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루카만 바라볼게. 사랑해.'라고 말하면 날 쫓아다닐 수 있게 해줄게!"

"하겠냐!"

"안 하는 거야?!"

유키가 소리 지르자, 루카는 다시 기가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시 당황하는 것 같던 유키가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널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료로서고,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니야. 먼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할 때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거야."

루카는 내키지 않는 듯이 보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만 들어줘."

"뭔데."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포옹하자."

"뭐, 뭐…?"

"좋아하는 사이면 안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잖아. 자, 어서."

유키가 얼굴을 붉히고 허둥지둥하는 사이, 루카가 유키에게 다가가 두 팔로 유키를 안았다. 루카의 고개가 윳키의 어깨 위에 맞물리듯 얹어졌다. 유키의 가는 허리를 루카가 두 팔로 감싼다. 그러나 유키의 팔은 갈 곳을 모르고 허공에 떠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서 루카의 포옹을 받고 있던 유키가 이윽고 외쳤다.

"좋아한단 말 취소야!"

곧 엄청난 기세로 루카를 밀치고 달아난 유키의 뒷모습을 루카가 황망히 바라보았다.

-

"4차원!"

평소처럼 연구에 전념하고 있던 텐네에게 루카가 다가와 외쳤다.

"뭐야, 카야모리인가. 그리고 난 4차원이 아니야!"

"들어봐, 4차원! 4차원이 준 사랑의 묘약 전혀 듣질 않잖아! 불량품을 준 거 아니야?"

언제나처럼 텐네가 화를 내도 듣지 않고 루카가 칭얼거렸다. 텐네가 인상을 쓰고 약을 들어 올렸다.

"그럴 리가. 내가 너에게 준 건 제대로 검증도 거친 진품 사랑의 묘약이다."

"거짓말, 내놔 봐! 이번엔 내가 한번 먹어볼래!"

"여기서 멋대로 마시지 마! 그럼 네가 나한테 반할 거 아니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루카를 보며 텐네가 고소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나저나 네가 약 올라 하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군. 내가 말해주지 않은 게 하나 있긴 했었지."

"그게 뭔데?!"

"그 약은 말이다. 원래 사랑하고 있는 상대를 봤을 때는 약효가 나타나지 않아. 어떻게 보면 사랑의 묘약이니, 이미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

"그렇구나, 4차원. 빨리 말해주지."

"큭큭. 이렇게 듣고 나니 너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지? 얼른 바보 같은 사랑싸움은 그만하고 화해라도 해."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이미 그 약 마셨어."

"뭐라고?!"

"4차원, 오늘따라 예뻐 보이네. 나랑 같이 데이트 할래?"

"으아아악! 당장 뱉어! 그리고 4차원이라고 부르지 마!"

텐네가 해독약을 만들기까지 일주일. 그동안 루카는 어린아이를 쫓아다니는 수상한 페도 여고생으로 불렸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G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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