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유키] 좋은 목욕의 날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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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이 11월 26일은 좋은 목욕의 날이라고 하네요.

휴일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까지는 훈련이니 임무니 바쁜 날의 연속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주일 중 하루밖에 쉴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인류가 위기에 처해있는 요즘 같은 때에 불만을 말할 수야 없었다. 그나마 요즘은 부대 연합 작전 같은 큰 임무가 없어서 다행이다. 그런 때는 휴일조차 가질 수 없을 때도 잦았으니까.

기껏 얻은 휴일이라고 해도 딱히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벤치에 앉아서 GOONG-DI의 설정을 조정하는 것뿐이라고 해야 하나. 이러면 입대 전에 해킹하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고 카페테리아로 가려던 참이었다.

"윳키, 오늘 바빠?"

"아니, 딱히 일정은 없는데. 무슨 일이야?"

"바쁘지 않으면 오늘 나랑 노천탕에 갈래?"

"뭐, 할 일은 없으니까 그래도 되긴 하는데 갑자기 노천탕이라니 별일이네."

"오늘은 좋은 목욕의 날이래. 그러니까 같이 목욕하러 가자."

"그럼 그렇게 할까."

"응! 신난다!"

루카가 해맑게 웃었다. 겨우 노천탕에 같이 가자고 한 것 가지고 뭐 저렇게 신날까. 목욕이라면 기숙사의 대욕탕에서도 실컷 같이하고 있다. 새삼 특별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즐거운 일이 많으면 좋은 거겠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아침을 먹자마자 루카는 레저 거리로 가자고 졸랐다. 성격도 급하지. 아침을 먹자마자 목욕하는 건 시기적으로 좀 어떻나 싶다.

"그치만 빨리 윳키랑 탕에 들어가고 싶은걸~."

루카가 떼를 쓰는 일이야 흔하지만, 오늘따라 마음에 걸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루카를 쳐다보았다.

"무슨 이상한 일 꾸미는 건 아니지?"

루카가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너라서 의심하는 건데."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다고 나나밍의 훌라춤에 걸고 맹세할게!"

"뭐에 거는 건데. 나나세는 훌라춤 따위 추지 않잖아."

"응.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뭐야, 결국 뭔가 꾸미고 있다는 뜻 아냐?!"

"아무튼! 자, 걱정 끝! 이제 레저 거리로 가자!"

"아, 밀지 마!"

뒤에서 밀어대는 루카 덕에 억지로 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명백히 수상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루카가 하는 일이 별일이겠나 싶어 끝까지 버티진 않았다. 내가 마지못해 레저 거리로 향하자, 루카가 웃으며 옆에 와서 걸었다. 햇살에 부드럽게 반짝이는 금발만큼이나 화사한 미소였다.

"윳키랑 같이 목욕하는 거 기대되네."

"뭐야, 평소에도 같이 목욕하잖아."

"그만큼 매일매일 기대된다는 뜻이야!"

"너는 참 기대될 것도 많다."

그 미소에 이끌려 나도 같이 웃어버리고 만다. 참 속도 편하다.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면서. 그렇게 태평한 면이 루카의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루카에게 익숙해져서일까.

-

다보여 온천에는 나와 루카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오전부터 목욕탕에 갈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일까. 루카는 익숙하게 키를 받아서 탈의실로 나를 끌고 갔다.

"자자, 들어가, 들어가."

"그렇게 재촉 안 해도 간다니까."

"이제 와서 도망가기 없다?"

"진짜 뭘 꾸미고 있는 거냐고."

대답 없이 헤실헤실 웃기만 하는 루카를 흘겨보다 옷을 벗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그렇다. 스타킹부터 시작해서 한 겹 한 겹 옷을 벗었더니 시선이 느껴진다. 옆을 보면 루카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아니, 새삼 보니까 윳키 몸매가 좋다 싶어서."

"아저씨냐. 어차피 여자끼리인데 열심히 봐서 뭐 해."

"그치만 윳키 역시 미소녀잖아. 만지면 말랑말랑할 것 같아."

"성희롱하지 마."

"칭찬인데."

한심한 말을 늘어놓는 루카에게 일일이 반응하기도 힘들다. 나는 마저 옷을 벗어 바구니에 담고 루카를 돌아봤다.

"나 먼저 들어갈게."

"응. 나도 곧 갈게."

간단하게 대답한 루카가 팬티를 벗었다. 숙인 등이 둥글게 휘어지고, 가느다란 다리에서 하얀 팬티가 미끄러져 내렸다. 쭉 펼친 팔을 따라 체모가 적은 다리가 곧게 뻗어 있었다. 건강한 피부 빛을 띤 루카의 다리는 매끄러웠다. 역시 몸매가 좋은 건 네 쪽 아니야? 속으로 떠오른 말을 삼켰다.

팬티를 바구니에 담으며 이쪽을 보는 루카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속이 뜨거운 듯한 기분을 누르며 몸을 돌려 목욕탕 쪽으로 갔다. 왠지 걸음걸이가 어색해져 버렸다. 매일 보는 모습인데 왜 긴장을 하는 거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샤워기의 물을 틀어 몸에 끼얹었다.

샤워장에서 간단하게 몸을 씻고 있으려니 옷을 벗은 루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씻는 거 도와줄까?"

이미 샤워 타올을 들고 거품을 내는 루카에게서 샤워 타올을 뺏어 들었다.

"또 이상한 곳 만지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안 그래, 안 그래. 진짜 씻겨주려고 한 것뿐이야."

"너한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 됐어, 나 혼자 할 수 있어."

"아~, 아쉽게 됐네."

혀를 차는 루카를 두고 바디워시로 몸을 씻어냈다. 하여간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같은 여자끼리인데 만져서 즐거울 일이 있나. 물론 만지면 부드럽다거나, 말랑하다던가, 그런 촉감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무심코 내 몸을 만지는 루카의 손길을 상상했다가 세차게 도리질 쳤다. 아니 나는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밀어내듯 힘주어 몸을 씻었다.

-

매일 대욕탕에서 목욕하고 있지만, 노천탕에 들어가는 경험은 또 신선했다. 약간의 기대를 하고 유리문을 열어보면 야외의 하늘이 다 보이는 노천탕이 펼쳐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질 듯이 개방감이 있었다. 부푼 기대감을 쏟아내듯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기엔 바깥 공기가 꽤 추웠다. 이러지 말고 얼른 들어갈까. 찰박거리는 바닥을 디디고 따뜻한 김이 솟는 욕조에 천천히 몸을 담갔다.

"하아…."

뜨끈한 물 온도에 몸이 녹는다. 탕의 열기가 몸에 퍼지며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서늘한 공기에 식었던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감각이 나른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바람과 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 온도가 대비되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노천탕은 또 다르구나. 벽에 편안하게 기대어 욕탕에 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감각을 만끽했다.

"윳키, 즐기고 있네."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들어온 루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하지 않아도 몸을 감싸는 따스함이 천국과 같았다.

"너도 어서 들어와."

"응.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다보여 온천의 노천탕은 1인용 욕조가 여러 개 늘어선 형태였으니까, 당연히 루카가 옆의 욕조에 들어갈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성큼성큼 다가온 루카는 내 옆이 아니라 내가 들어온 욕조에 발을 밀어 넣었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이건 1인용 욕조라고!"

"걱정하지 마, 윳키. 다리를 잘 접으면 둘이서 들어갈 수 있어."

"왜 그래야 하는데?! 옆에 멀쩡히 빈 욕조가 있잖아!"

"윳키, 요즘 같은 시대에 물과 에너지를 절약해야지. 혼자서 욕조를 다 쓸 생각을 하면 안 돼."

"아니, 그렇다고 1인용 욕조에 둘이나 들어가는 게 말이 돼?! 얼른 나가!"

"싫어~."

히죽거리는 웃음을 짓고 루카는 기어코 내가 있는 욕조에 몸을 구겨 넣었다. 루카의 발이 내 허리에 닿았다. 동시에 내 발도 루카의 허리쯤에 닿아서, 어쩔 줄 모르고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렇게 몸부림칠수록 루카에게 닿는 면적이 늘어날 뿐이어서, 결국 루카에게 닿지 않게 하는 것을 포기하고 루카의 허리에 발을 얹었다. 민망함과 그 원흉에 대한 원망을 담아 쏘아보는데도 루카는 싱글싱글한 미소를 띨 뿐이었다.

"역시 좁잖아. 이거 어떡할 거냐고."

"부부가 마음이 맞으면 칼날 위에서도 잘 잔다잖아. 우리 사이에 불편할 게 뭐 있어."

"우, 우린 부부도 아니거든?! 그리고 평범하게 좁아! 나가! 아니면 내가 나갈래!"

"안돼! 윳키도 같이 있지 않으면 싫어~!"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나를 루카가 붙잡아 눌렀다. 비틀거리던 몸이 욕조에 잠긴다. 루카가 팔을 뻗어 어깨를 누른 탓에 어느새 루카가 내 몸 위에 올라타듯이 덮쳐 누르고 있었고, 내가 턱까지 잠긴 채로 루카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어이없음을 넘어서 부끄러워지려는 순간 루카가 내게 이마를 맞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윳키, 피곤하지? 내가 마사지해 줄게."

그리고 루카는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벌써 손을 뻗어 팔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멋대로 만져지고 있는 몸을 굳히며 대답했다.

"아, 아니,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윳키는 항상 나를 보조해 주느라 힘들잖아? 그 답례야."

"그,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쉿, 내가 알아서 잘해줄 테니까 긴장 풀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루카는 내 팔을 꾹꾹 눌러 주무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욕탕에 잠겨 마사지를 받고 있으니 확실히 몸이 좀 풀리는 것도 같았다. 더 저항해봤자 여기저기 부딪쳐서 다치기만 하겠지. 할 수 없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루카에게 몸을 맡겼다. 루카의 손길은 너무 아프지 않고, 그렇다고 부드럽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딱 적절한 세기로 몸을 풀어주었다.

조물조물하고 살을 누르며 팔을 천천히 올라간 손길이 이제 어깨를 주물렀다. 딱딱한 어깨에 팔을 마사지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강도로 자극이 전달되었다. 억눌렀던 신음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굳었던 근육이 풀어지는 감각에 신경이 쏠려 신음을 흘리고 있는 자신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아, 루카…. 더 세게…."

꾹꾹 어깨를 자극하던 손은 어깨 근육이 조금 부드러워졌을 때쯤 떨어졌다. 여운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 루카의 손이 허벅지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몸을 루카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실 나, 계속 윳키의 허벅지 만져보고 싶었어. 분명히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겠지 싶어서."

속삭이듯 말하는 루카에게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허벅지에 느껴지는 강한 자극에 입술을 깨물고 등을 벽에 기댔다.

이건 조금 위험한데 싶었지만, 조물조물 허벅지를 주무르는 손길이 기분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허벅지 안쪽의 무른 살을 자극하는 감각이 뱃속을 묵직하게 했다. 다리 전체를 한번 쓸고 차지게 만지는 동작에 몸속에 찌릿한 전류가 흐른다. 뜨거운 손길이 심장을 죄어왔다.

"아, 루카…."

애원하는 듯한 한숨이 샌다. 루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낯선 느낌이 몸을 감싸는데,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야, 오히려 더 해줬으면….

"윳키…. 좀 더, 해도 괜찮아?"

나른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였다. 그리고 그 유혹하는 듯한 속삭임이 주는 달콤함에 오히려 정신이 깨어났다. 루카가 주는 감각에 잠겨 있던 나는 귓가에 들려온 루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취하고 있는 행동을 새삼 의식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나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탕 밖으로 나왔다.

"뭐, 뭘 더 해! 나, 난 이만 간다!"

"어?! 어디 가, 윳키!"

황망한 표정을 짓는 루카 앞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튀었다. 애타게 부르는 루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황급히 목욕탕을 벗어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동료랑, 그것도 전 최애 밴드의 최애 멤버랑!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숨기며 나는 재빨리 옷을 입고 다보여 온천에서 뛰쳐나갔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홧홧한 열기를 느끼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루카와 단둘이 노천탕에 가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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