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유키] 네 솔직한 욕망을 보여줘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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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 기념 서큐버스x수녀

※ 중세도 아니고 무언가의 창작 AU. 보고 싶은 것만 쓴 느슨한 설정입니다.

이즈미 유키는 똑똑했다.

보통이라면 경외와 환심을 샀을 일이었지만, 이즈미 가의 부모님에게, 그리고 그 이웃들에게 그 사실은 징그럽고 두려운 것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이즈미 유키는 여자였다. 자고로 여자는 순종적으로 남자에게 복종하면 족한 생물, 글을 읽고 쓰고 학문을 쌓는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그런 이유로 유키는 아직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할 어린 나이부터 신전에 보내졌다. 유일하게 여자가 배우는 것이 용서되는 공간. 그렇게 유키는 사제가 되었다.

부모와 떨어져 사제가 된 것이 유키에게 외로움이나 불편함으로 생각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야 아주 어릴 때는 몰래 이불 속에서 울기도 하였지만, 매력적인 지식을 품은 서적으로 빽빽이 채워진 도서관과 유키의 질문에 올바르게 답해줄 식견 있는 스승을 포기하고 부모를 찾는 나약함은 이제 이즈미 유키에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마를 부르고 싶다고 유키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럴 땐 갸이아그레이보도도도~라고 외치는 거잖아?"

"갸이아그레이보도도도~가 뭔데?! 왜 그런 걸 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야 영혼의 외침이니까."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유키가 목을 가다듬었다. 직위가 올라 고해성사를 시작한 지 한 달. 언젠가부터 매일같이 찾아와 고해를 빙자한 헛소리를 늘어놓는 카야모리 루카가 신경 쓰여서 유키는 견딜 수가 없었다. 

루카와의 첫 만남은 약초를 뜯으러 숲에 갔을 때였다. 유키는 최근 관심을 가진 기계에 관한 책을 사고 싶어서 다소 무리해서 깊은 숲까지 들어갔었다.

'더 들어가면 위험해. 깊은 숲에는 악마들이 살거든.'

갑자기 들려온 충고에 돌아보자, 거기엔 짧은 금발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소녀가 있었다. 유키가 웅크려 앉은 몸을 일으켜 소녀를 바라보았다. 옷차림으로 보아 마을에서 사는 평민 소녀 같았다.

소녀가 말한 전설이라면 유키도 알고 있었다. 유키는 악마를 믿지는 않았지만, 그런 전설이 생길 정도면 무언가 위험한 짐승이나 무언가가 있으리란 건 알 수 있었다. 사제복을 털고 일어선 유키가 가볍게 묵례했다.

'고마워, 나도 모르게 그만 실수할 뻔했네.'

'별거 아니야. 너는 사제야?'

'응, 아직은 수습이지만 곧 있으면 정식 사제가 될 거야.'

'흐응, 그렇구나.'

흥미롭다는 듯이 금발의 소녀가 유키를 훑어보았다. 그 시선에 왠지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유키가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뭐야?'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

'관심… 이라고 해야 하나, 위험을 알려줬으니까, 답례하고 싶어. 이래 봬도 사제니까, 웬만한 부탁은 들어줄 수 있을 거야.'

'그렇구나. 나는 카야모리 루카. 그럼 가끔 윳키한테 놀러 가도 돼?'

'윳키? 별명이야? 그런데 내가 이름을 알려줬던가?'

'사제니까 안 거 아닐까? 그보다 윳키를 찾아가도 돼? 된다고 해줘, 얼른.'

'으응, 그래. 원한다면 언제든지 와도 좋아.'

'신난다! 그럼 자주 놀러 갈게!'

그리고 루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루카가 발이 빠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유키는 마을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루카는 빠짐없이 유키의 고해성사 시간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날 봤던 소녀가 이런 애인 줄 알았으면 허락하지 않는 거였는데. 유키는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와도 좋다고 해놓고 이제 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 미안했다. 덕분에 유키는 하루하루 온갖 헛소리를 들으며 스트레스로 머리가 뭉텅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윳키도 한번 들어봐. 하드록!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라니까."

"사제가 그런 음악을 들어도 되겠어? 종교계에서 그런 건 악마의 음악이라고 한다고."

"그런 거라면 악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신전에서 할 말이 아니야."

칸막이 너머에서 종알거리던 루카가 벽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럼 윳키도 같이 타락하는 건 어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귀에 지나치게 달게 느껴졌다. 루카의 목소리는 심장에 직접 닿는 듯이 떨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펴며 유키가 대답했다.

"불경한 소리 그만해. 내가 신의 이름으로 용서해 줄 테니까 이제 가봐."

"네~."

고해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던 루카가 벽 너머의 유키를 돌아보고 윙크했다.

"다음에 또 봐~!"

"인제 그만 왔으면 좋겠지만."

"이미 허락했으니까 안 돼! 잘 있어!"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유키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벽에 힘을 빼고 기댔다. 한번 올 때마다 기운이 쭉 빠지게 한다. 마치 폭풍 같은 소녀였다. 하지만 덕분에 하루가 지루할 틈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 안 오게 되면 서운할지도 모르겠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유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길드는 건 야생동물 같은 루카가 아니라 자신 같았다. 잡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든 유키가 자세를 바로 했다. 곧 다음 신도가 들어왔다.

-

예배 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 사제들에게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에 유키는 혼자만의 연구에 빠져 있었다. 유키가 관심 있는 분야는 최근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오토마타에 관한 연구였다. 덕분에 기계 부품이나 귀한 서적을 구하느라 늘 돈이 모자랐지만, 다른 취미나 욕심이 없는 유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도 유키는 필요한 부품을 사기 위해 상점에 들렀다. 유키가 자주 방문하는 상점은 사츠키 가문의 잡화점이었다. 사츠키 가문은 유명한 대상인 가문으로 여러 도시에 큰 상점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운영하는 잡화점은 사츠키 가문의 막내딸 사츠키 마리가 운영하고 있었다.

사츠키 마리는 어째선지 이즈미 유키를 존경하고 있었다. 남들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는 걸 동경하는 듯했다. 마리가 추켜세워주는 게 유키로서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유키도 마리가 은근히 내비치는 존경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가끔 마리가 챙겨주는 할인이나 덤이 늘 돈이 부족한 유키에게는 든든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유키는 사츠키 상점의 단골이 되어 있었다.

"사츠키, 실례할게. 내가 찾는 부품이 있는데."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연 유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마리는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나타나 접객했다. 사츠키 가문의 비전으로 그렇게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거의 동시에 여러 손님을 접객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그런데 지금 마리는 유키가 부르는데도 바로 나타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의아해하며 유키가 상점 선반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음, 하아…."

츕츕거리는 소리를 내며 키스하는 두 여성을 보고 유키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마리는 금발의 닌자와 키스하고 있었다. 마리와 눈이 마주치고 유키는 황급히 숨었다. 마리가 닌자의 어깨를 톡톡 치고 밀어냈다.

"아델쨩, 손님이 온 모양이에요."

"그건 소인도 알고 있소.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안 되오?"

"농땡이 피우지 마라, 욘석아~♬ "

아델쨩이라고 불린 닌자가 아쉽다는 듯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물러났다. 유키 옆으로 다가온 마리가 접객용 미소를 지었다.

"이즈미 씨, 오늘도 또 오셨네요♬ 오늘은 뭘 찾으세요?"

"아, 그게 오늘은 이 부품을 찾으러 왔는데."

"금방 찾아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역시 순식간에 유키가 원하던 부품을 찾아온 마리가 웃으며 상품을 내밀었다.

"여기요♬"

"고마워, 그런데…."

유키가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까 봤던 광경은 분명히 연인 간의 밀회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금발의 닌자와 마리 모두 여자였다. 그런데 여자끼리 그런 게 가능한가? 눈을 내리깔고 혼란에 빠진 유키를 말없이 응시하던 마리가 부품을 유키 손에 쥐여 주었다.

"아까 그건 본 그대로랍니다♬ "

"하지만 너희 둘 다 여자잖아. 그런데 연인이 될 수 있어?"

"이즈미 씨."

곧은 눈빛으로 유키의 눈을 바라보며 마리가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한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사랑을 할 수 있어요."

유키가 멍하니 마리를 바라보는 사이, 마리가 웃는 얼굴로 돌아와 접객을 계속했다.

"아직 대금을 내실 때는 안되신 거죠? 오늘도 외상으로 달아놓겠습니다♬ "

"…그래 주면 고맙겠어."

얼떨떨한 기분을 지워낸 유키가 상점의 현관을 나서기 전에 마리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고마웠어, 사츠키."

"안녕히 가세요♬"

아직 혼란한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마리의 배웅을 받으며 유키는 무거워진 발걸음을 애써 옮겼다.

-

어둠과 고요가 내려앉은 밤, 유키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였다. 유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금발의 닌자와 키스하던 마리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두 명의 미소녀, 서로가 닿을 듯이 가까이 맞붙은 몸, 물기 어린 소리를 내며 맞닿던 입술. 그런 잔상이 유키를 괴롭혔다.

여자끼리 그런 짓을 하는 게 금기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가슴이 타는 듯이 뜨겁지도 않을 터였다. 나도 사실은 그런 걸 꿈꾸고 있었던 걸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전에는 매해 남자와 정을 통해서 쫓겨나는 사제들이 있었다. 그 추방자들을 보면서 유키는 자신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남자를 보고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자신의 연구와 미래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남자를 저울질하면 유키는 당연히 현재의 생활이 중요했다.

하지만 만약 상대를 바꾼다면. 유키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영상에서 금발의 닌자가 다른 금발의 소녀로 바뀌었다. 발랄하게 흔들리는 금색 단발, 붉게 물든 동그랗고 큰 눈망울,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내는 입술. 만약 내가 루카와 키스하게 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유키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정말? 나는 혹시 정말로….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데 머릿속의 루카와 자신이 키스하는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악!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던 유키가 문득 자신의 입술을 더듬었다. 하지만, 상상일 뿐이지만, 정말로 루카와 키스를 한다면. 거기까지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불렀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유키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루카가 창문틀에 앉아서 유키를 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유키가 소리를 질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 위험하니까 얼른 들어와!"

"별로 위험하진 않은데. 알았어. 영차."

가볍게 창문을 타고 들어온 루카가 유키의 침대로 다가왔다. 눈을 휘둥그레 뜬 유키가 입을 벌리고 루카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온 거야?! 유키의 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루카는 성큼성큼 유키에게로 다가와 어느새 유키의 앞에 섰다.

"여긴 어떻게 왔어? 그보다 왜 온 거야?"

"그야 윳키가 불렀으니까."

루카가 웃으며 유키에게로 몸을 기울여 유키의 어깨를 밀어 쓰러뜨렸다.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진 유키 위에 루카가 올라타고 유키의 턱을 잡았다.

"드디어 자각해 준 거야, 윳키? 생각보다 늦었네."

"뭐, 뭘 자각해? 이거 놔."

"싫어~."

유키의 흔들리는 동공을 향해 루카가 약 올리듯이 살짝 혀를 빼물었다. 여린 초식동물처럼 저항도 하지 않고 살짝 몸을 떨고 있는 유키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고개를 숙인 루카가 가볍게 유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가족들 사이에도 할 수 있을 가벼운 접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유키의 뺨은 붉게 물들었다. 뜨거운 반응에 루카가 초승달처럼 눈을 휘어 웃었다.

"윳키는 정말 나를 좋아하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더니."

"내가 언제?!"

"윳키, 나랑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열렬한 시선으로 나를 봤다고? 진작부터 나랑 닿고 싶었던 거지?"

"그런 적 없어! 네가 착각하는 거겠지!"

"착각할 리가 없어. 나는 악마니까 사람의 마음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는걸."

선홍빛의 눈동자로 자신을 비추는 루카에 유키가 도리질을 쳤다.

"세상엔 악마 따위 없어. 또 멋대로 헛소리를 떠드는 거지?"

"믿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러면서도 윳키, 날 뿌리치지 않잖아."

봐봐, 라고 말하는 듯이 루카가 손가락을 펴서 유키의 뺨부터 목선, 그리고 봉긋하게 솟은 가슴까지 훑어내렸다. 누가 느끼기에도 성적인 함의를 품은 손길에도 유키는 뿌리치지 못했다. 그저 얕게 호흡하며 가슴의 고동을 높이고 있었다. 마치 이 뒤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키가 눈을 꽉 감았다. 거기에도 저항은 없었다.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유키의 귓가에 닿았다.

"그럼 윳키가 바라는 대로 해줄게."

-

사제의 아침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날 유키의 아침은 조금 늦었다. 어딘가 뻣뻣한 움직임으로 늦은 아침 일과를 재빨리 마치고 유키는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몇 명의 사람을 어딘가 멍한 상태로 보내고, 다시 고해실의 문이 열려 새로운 사람을 들여보냈다. 유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신도님께선 무슨 죄를 지으셨나요."

머지않아 귀에 달콤하게 감기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노래하듯 말했다.

"지금부터 죄를 지으려고 하는데, 사제님께서 어울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익숙하지만, 예전보다도 달큰하게 달라붙는 목소리를 알아채고, 이상하게 고조되는 감각을 느끼며 유키가 얼굴을 붉혔다. 떨리는 손을 맞잡고 유키가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답했다.

"신도님께서 바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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