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유키] 밀물이 멈추면

2023.10.30. 프세터 백업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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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도가 밀려들었다. 모래사장을 때리는 바닷물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러가고, 그 자리엔 무너진 모래성이 남아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한 광경이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루카는 또 한 번 모래성을 쌓았다. 하얀 다리에는 검은 모래알이 붙어있었다. 치마는 바닷물을 머금고 짙게 젖었고, 허리께까지 축축했다.

하지만 루카는 어린애 같은 미소를 띠고 모래를 쌓아 올렸다. 곧 부수어질 모래성을. 성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를 모래의 언덕이었지만 루카는 계속 쌓았고, 파도는 그것을 지워냈다. 고사의 창과 방패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환이었다. 그러나 끝없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끝없이 대응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언젠가는 끝날, 무의미한 반복이었다.

"루카."

이름을 부르면 순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하자."

말을 건네자, 루카가 고개를 숙여 무너진 모래의 언덕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에도 파도는 오고, 다시 모래는 흩어져간다.

루카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이것까지만 쌓고."

그리고 다시 흩어진 모래를 그러모아 모래의 성을 쌓았다. 지치지도 않는 듯이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바람에 밀려드는 거대한 고동과 함께 사라져 버릴 잔해를 루카는 끌어안아 쌓아 올렸다.

거품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물러났다. 바닷바람은 유난히 쌀쌀했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을 바라보다 나도 그 앞에 앉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모래를 모았다. 루카의 행동을 따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래를 쌓았다.

모래를 쌓는 손이 겹쳐졌다. 나무토막처럼 차가운 손이었다. 그럼에도 가슴은 이상한 열기로 가득 찼다.

저녁이 되어서야 바다가 물러나고, 해안선이 닿지 않는 모래사장에 높게 쌓인 모래성이 만들어졌다. 그때쯤에는 피로인지 만족인지 모를 감정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옅은 미소를 짓고 모래성을 바라보는 루카에게 말했다.

"내일이 되면 다시 파도가 와서 무너뜨릴 거야."

석양빛에 감싸인 루카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슬로모션처럼 느리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으로 활짝 웃었다. 반짝거리는 목소리로 루카가 내게 대답했다.

"괜찮아. 그럼 다시 쌓으면 돼."

사그라지는 빛 속에서도 루카의 얼굴은 환하게 보였다. 손을 뻗어 루카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에 조금씩 온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내일도 다시 모래성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 하늘에 가장 먼저 뜨는 별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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