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루카유키] 너를 유혹하고 있어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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윳키는 이상하다.

이즈미 유키. 고등학생이면서 천재 해커. 오키드라는 해커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해 세계 3차 대전을 막는 활약을 했다. 지금은 세라프 부대에 소속되어 31A의 부대원으로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있다. 31A의 균형을 잡아주는 츳코미 담당이자 참모 역할이다. 원조 She is Legend의 팬으로 나, 카야모리 루카를 좋아한다.

문제는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턱에 손을 대고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윳키는 나를 좋아한다. 종종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을 정도로. 그렇게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날 좋아한단 말이지? 중요한 문제는 거기 있었다.

윳키는 나를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나한테 고백하지 않지?!

나는 인상을 쓰고 턱을 쓰다듬었다. 이건 중대한 문제다. 어쩌면 인류의 존망이 걸려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충분하다. 윳키의 나에 대한 마음이 폭주해서 윳키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제대하게 된다면 31A의 사기가 내려갈 것이다. 돌격부대인 31A의 사기가 내려가면 세라프 부대 전체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거고, 이건 인류의 반격이 실패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문제다.

물론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내가 윳키의 고백을 듣고 싶으니까. 단순히 지나가듯이 좋아한다느니, 팬이라느니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해 달라는 약속의 말이 듣고 싶다.

하지만 윳키는 솔직하지 못한 부끄럼쟁이니까, 순순히 말해주지 않는다. 윳키, 쪼잔해. 분명 그렇게 살다 간 혼자 늙어 죽겠지. 그렇게 되면 윳키가 불쌍하니까 친절한 내가 윳키가 고백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는 척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윳키를 고백하게 할 수 있을까? 세라프를 들고 지금 당장 고백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볼 거라고 협박하기? 그랬다간 바로 징계감이다. 기숙사 방에서 야한 코스튬을 입고 윳키를 기다리기? 그런 건 너무 부끄러워서 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침착하자. 이럴 때일수록 동료에게 의지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윳키를 제외한 31A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제일 먼저 츠카삿치를 찾았다. 아마 도서관에 있겠지?


도서관에 들어오면 독서에 열중하는 츠카삿치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이세계 전생 라이트 노벨을 읽고 있으려나. 슬쩍 제목을 봤더니 '친구 제로 히키코모리였던 내가 전생해 보니 치트 능력 스파이?!' 라고 쓰여있었다. 츠카삿치를 위해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안녕, 츠카삿치. 고민거리가 있는데 들어줄래?"

내가 부르자 츠카삿치는 바로 책을 내려놓고 나를 향해 대답했다.

"루카구나.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실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고백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 이즈미 씨를 말하는 거지?"

"맞아! 바로 맞췄네."

"나도 연애는 잘 알지 못해. 하지만 내가 읽은 책에서는 그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주면 단숨에 반해서 고백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구나. 그거참 어렵네. 그래도 한번 해볼게. 고마워, 츠카삿치!"

"뭘 그 정도로. 언제든지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나는 첩보원이니까!"

"그래, 츠카삿치는 훌륭한 첩보원이야. 다음에도 상담해 줘. 그럼 갈게, 안녕!"

"잘 가!"

츠카삿치의 조언을 들은 나는 일단 윳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윳키는 아레나 앞 벤치에 앉아서 전첩을 조작하고 있었다. 평소와 같구나. 나는 윳키의 옆으로 가서 윳키에게 위기가 닥치지 않는지 지켜봤다."...뭐야. 할 말 있으면 해."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더니 윳키가 말을 걸었다. 인상을 쓴 얼굴이 불쾌해 보였다. 어째 고백을 듣기 전에 나에 대한 호감도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계속 대답하지 않으면 정말로 윳키의 나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찍을 것 같아서 곧장 대답했다.

"윳키에게 위기가 닥치지 않는지 보고 있었어."

"뭐야, 마치 나에게 위기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투잖아. 혹시 내가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그렇게 만드는 거야?"

"윳키가 자연스럽게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밖에."

"뭐냐고?! 날 암살하고 싶은 거야?! 동료를 위기에 빠뜨리지 마!"

그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려오는 미노링이 보였다.

"비켜 비켜!"

"이거다!"

나는 멋지게 윳키의 앞을 막아섰다. 아슬아슬하게 미노링이 나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뿌듯하게 이마의 땀―흘리진 않았지만―을 닦았다.

"휴, 위험했어."

"뭐가 위험했는데.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스쳐 갈 일도 없었잖아. 스스로 뛰쳐나와서 치일 뻔한 거잖아. 도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건데."

"어때? 반했어, 윳키?"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 어디에 반할만한 요소가 있었는데. 있으면 제발 설명 좀 해줘라."

"실패했나."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래도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다음은 카레링에게 물어봐야겠다.


카레링은 아카데미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오늘도 카레링은 귀엽다. 잠깐 가련한 미소녀의 자태를 감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카레링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카레링!"

"안녕, 루카. 오늘도 기운이 넘치네."

"나야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 게 장점이지.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나라도 괜찮다면 들어줄게."

"고마워, 카레링. 카레링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고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할 거야?"

"유키 씨 말하는 거야? 그야 나라면…."

"나라면?"

"납치해서 고백할 때까지 손톱을 하나씩 뽑는다!"

"카렌쨩!"

"나약한 녀석! 고백―자백―이라고 하면 당연히 고문! 그런 효율적인 방법을 두고도 쓸데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었단 말이냐!"

"너무 잔인하잖아! 그리고 그런 짓을 했다간 당장 잡혀서 감옥에 갇힐걸?"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는 카렌쨩도 경찰에게 잡혔잖아."

"흠, 그건 맞는 말이군. 그럼 게임에서 죽여라."

"과연 효과가 있을까? 믿음은 안 가지만 카렌쨩 말대로 해볼게."

"응,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도 응원할게."

"카레링! 고마워!"

"왜 조언을 해준 건 난데 아사쿠라가 감사를 받는 거냐!"

"뭐, 그럼 카렌쨩도 고마워. 나는 이만 가볼게, 안녕!"

"행운을 빌게, 루카."

귀여운 카레링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다시 윳키를 찾았다. 윳키는 여전히 아레나 앞 벤치에 있었다. 나는 비장하게 목소리를 깔고 윳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나랑 같이 가자."

"또 뭔데?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해."

"이제 윳키랑 나는 게임 센터에서 게임할 거야."

"왜 멋대로 정하고 있어? 나는 안 할 거야."

"제발 하자! 재밌을 거야!"

"이건 안 하는 게 더 귀찮겠네. 알았어, 같이 갈게."

"얏호!"

윳키와 함께 게임센터에 온 나는 대전용 FPS게임을 골랐다.

"지금부터 윳키를 때려눕히겠어."

"FPS 게임인데 왜 때려눕히는 거야. 굳이 말하면 총으로 쏘는 거겠지. 뭐, 좋아. 하는 이상 나도 안 봐줄 테니까."

"언제든지 덤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윳키에게 이기려고 노력했던 첫판. 훌륭하게 패배했다.

"어째서?!"

"굳이 말하자면 나는 조준형 세라프고 너는 검 세라프니까 그런 거 아냐? 나도 게임을 많이 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다시 할래!"

"뭐, 웬만하면 빨리 끝내줘."

야심 차게 시작한 두 번째 판, 멋지게 패배했다.

"말도 안 돼!"

"저기, 이거 네가 이겨야 끝나는 거야? 그럼 네가 자신 있는 종목으로 바꾸던가. 나도 귀찮거든."

"꼭 이거로 이길 거야! 두고 봐!"

"아, 이거 엄청나게 피곤해질 것 같아…."

의욕이 가득하게 시작한 세 번째 판, 드디어 승리했다!

"됐다! 이겼다!"

"와, 그것참 축하할 일이네. 이제 나는 가도 되지?"

"어때, 윳키? 나한테 반했어?"

"잘도 반하겠다. 아니, 이거 설마 내가 너한테 반해야 끝나는 거야? 그럼 반한 걸로 할게. 제발 봐줘라."

"이것도 틀렸나…."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게임 센터에서 나왔다. 하지만 아직 조언해 줄 사람이 두 명이나 남았다. 실패의 경험을 털어내며 이번에는 오타마님에게 가보기로 했다.


오타마님은 마침 다리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바다가 그리운 걸까. 아련하게 호수를 바라보는 오타마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타마님, 안녕."

"아, 루카 씨! 앗, 볼을 손가락에 찔렸어요."

"어때, 기운이 좀 났어?"

"그런 장난으로 보통 기운이 나는 건가요? 저는 원래도 기운 없지 않았어요!"

"그런 것치고는 조금 쓸쓸해 보이던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러는 루카 씨야말로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티가 나? 사실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고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참고로 이미 두 번 실패했어."

"그것참 어려운 일이네요! 유키 씨가 워낙 만만치 않긴 하죠."

"오타마님도 바로 알아차렸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난제, 전 함장이었던 이 쿠니미 타마가 해결해 보이죠!"

"오, 믿음직스러워!"

"으으음, 제 생각에는…."

"생각에는?"

"으으음…."

"음…."

"자, 잠깐만요! 곧 좋은 생각이 날 거예요!"

"그래, 믿을게, 오타마님."

"제 생각에는…."

진심으로 고민해 주는 오타마님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눈썹을 찌푸리고 열심히 고민하던 오타마님이 이윽고 눈을 떴다.

"전에 함선에 있을 때 고향에 연인을 두고 온 선원이 그랬어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보고 싶다고! 그러니까 일단 유키 씨한테서 거리를 두면 어떨까요?"

"오, 그렇게 해볼게. 그런데 우리 항상 같은 기지에서 생활하고 기숙사 방도 같잖아. 그럼 어떡하지?"

"앗, 그, 그건…!"

안절부절못하던 오타마님이 다시 해답을 찾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자유 시간만이라도 거리를 두는 거죠! 그러면서 린네를 보내서 루카 씨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 고마워, 오타마님!"

"헤헤헤, 별말씀을!"

"다음에 또 같이 낚시하자. 재밌는 놀이 또 생각해 올게."

"아, 네! 다음에 또 같이 놀아요!"

작은 손으로 열심히 나를 배웅해 주는 오타마님을 뒤로하고 길을 걷는데 윳키와 마주쳤다.

"너 아까부터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앗, 윳키! 지금은 만나면 안 돼. 나를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나는 이만 갈게, 안녕!"

"아니, 얘기를 좀 들어!"

윳키를 피해 나비 공원 나무 뒤에 숨었다. 슬쩍 살펴보니 윳키는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다행이네. 이제 조금만 기다렸다가 린네를 보내볼까.

"아, 루카. 안녕. 지금 뭐 하는 거지?"

"앗, 유이나 선배! 안녕. 별건 아니고 숨바꼭질? 같은 거려나. 윳키한테서 모습을 숨기고 린네를 보내려고."

"후훗, 재밌게 노는구나. 시간이 있으면 같이 자율 훈련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권유하려고 했더니 이미 일정이 있는 거지?"

"아니야! 윳키 앞에만 없으면 되는 거니까 같이 아레나에 가자."

"정말 괜찮은 건가? 뭐, 루카가 그렇다면 같이 갈까."

"응, 정말 괜찮아!"

그렇게 아레나에 갔다 와서 유이나 선배와 헤어지고 나니 윳키에게 린네 보내기를 잊었단 걸 깨달았다. 이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그치만 내가 안 보이는 시간이 길수록 윳키가 나를 더 많이 생각하는 거겠지? 지금이라도 윳키에게 린네를 보냈다.

[어때? 안 보이는 동안 내가 그리워졌어?]

[같이 있고 싶지도 않은 사람은 그만 신경 쓰고 너랑 있는 사람이나 챙기지그래.]

어라? 어째선지 오히려 차가워진 것 같다. 이 방법도 통하지 않았나 보다. 식은땀이 솟는 기분이었다. 이제 정말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메구밍…. 제발 메구밍한테 좋은 수가 있기를…! 나는 초능력 수련을 하고 있을 메구밍을 찾아갔다.


"내 힘을 빌려 달라고?"

"그래, 이제 의지할 사람이 메구밍 밖에 남지 않았어."

"흥, 그런 거라면 진작 내를 찾지 그랬나! 내 초능력이 필요한 거제? 을마든지 도와주지! 말만 해라! 자동차든 포크레인이든 내 초능력으로 띄워 주마!"

"아니, 필요한 건 지혜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고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작 그따위 일에 나를 부른 거였나! 이즈미라면 빨리 가서 고백이든 키스든 해버리면 그만 아이가!"

"그치만 고백받고 싶단 말이야! 어떻게 고백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내가 니 때문에 몬산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생각해 줄께."

"고마워, 메구밍!"

"고백받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맛있는 밥이라도 먹여주면 되는 거 아이가. 우리 어무니도 내가 토라져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맨들어줬는데 그러면 맴이 사르르 녹았제."

"나는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데."

"그건 알아서 해라."

메구밍의 조언을 듣고 일단 카페테리아로 왔다. 맛있는 밥이라. 요리를 잘하는 쿠랏치에게 물어보면 될까? 하지만 일단은 내 힘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 무작정 시도해 보기로 했다.

볶음밥이라면 쉽지 않을까? 아무튼,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다 넣고 볶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게다가 기름을 많이 넣으면 기름기가 흘러서 뭐든지 맛있어질 거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라, 기름이 좀 많나? 뭐, 괜찮겠지.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거라고."

"미안…."

군데군데 탄 자국이 있는 번들번들한 볶음밥을 윳키가 한 숟가락 떠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새삼 내 형편없는 요리 실력이 느껴져서 부끄러웠다. 나는 힐끔힐끔 윳키의 눈치를 보며 탄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셨다.

"뭐, 그래도 네가 열심히 만들어준 거니까, 잘 먹을게."

떨떠름한 목소리지만 내 성의를 받아들여 주겠다는 말에 번쩍 고개를 들고 윳키를 쳐다봤다. 윳키는 차분하게 한입씩 볶음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작게 오물거리는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볶음밥을 한입 먹었다. 맛없다. 끔찍하게 맛없는 볶음밥이었다. 그래도 묵묵히 먹어주는 윳키를 보며 끝까지 다 먹어냈다.

"그래서 오늘은 도대체 뭐였던 거야?"

기름기가 묻은 입을 휴지로 닦아내며 윳키가 물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패잔병의 마음으로 울적하게 대답했다.

"윳키가 고백해 줬으면 해서."

"뭐를?"

"나에 대한 마음을."

침착했던 윳키의 표정이 단숨에 흔들렸다. 또 그런 표정이었다. 뺨이 붉어지고, 눈길이 헤매고, 수줍음을 감출 수 없는 표정.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윳키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너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윳키는 날 좋아하잖아?"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료로서야. 여자끼리인데 그런 마음이 있을 리가 없잖아."

매번 듣는 말인데 오늘따라 마음을 깊게 할퀴는 말이었다. 오늘만큼은 웃으며 말할 수가 없어서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도,"

만약이라는 단어 뒤에 따라붙는 단서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윳키의 녹색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겨우 나를 향했다. 망설이면서도 윳키는 말을 이었다.

"네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네게 부담이 될까 두려워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방황하는 시선과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음에 울린다. 부담이라니 그럴 일은 절대 없는데. 하지만 윳키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분명 내가 억지로 이해시켜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럼 기다릴게. 윳키가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기다려도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나도 계속 윳키 곁에 있는 거지."

"뭐야, 그거 고백이야?"

"응, 고백. 윳키가 허락할 때까지 끝나지 않아."

윳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싫다기보다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만둬, 어차피 진심도 아니고."

이제 수줍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윳키를 향해 활짝 웃었다.

"싫어, 이제 무를 수 없으니까 책임져야 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기다림이었지만, 윳키의 발갛게 물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왠지 그날이 오기까지 계속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 가슴의 두근거림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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