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루카유키] 발렌타인데이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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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루카의 눈은 일찍 떠졌다. 유키가 매일 아침 루틴으로 헤비메탈 곡을 틀기도 전에 루카 스스로 일어났다. 루카가 좋아하는 시끄러운 음악을 저장해둔 전첩에 스피커를 연결하려던 유키는 눈을 반짝 뜨고 있는 루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가 서쪽에서 떴다는 듯이 바라보는 유키에게 루카가 힘차게 인사했다.

“윳키, 좋은 아침!”

평소와 다른 모습에 잠깐 놀랐던 유키도 정신을 추스르고 루카에게 답했다.

“좋은 아침. 오늘은 웬일로 일찍 일어났네.”

“응,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루카의 대답에 유키가 잠깐 주위를 돌아보았다. 메구미는 의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타마는 잠이 덜 깬 채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는 루카를 유키가 마뜩잖게 바라보았다. 유키가 보기에도 루카는 퍽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유키는 거기에 올바른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렇지, 해피 발렌타인.”

루카의 말에 답한 것은 카렌이었다. 차분한 미소로 카렌이 침대맡 선반에서 선물상자 5개를 꺼냈다.

“뭐꼬, 중요하다 캐서 생일이라도 되는기가 했더니 고작 발렌타인이었나.”

“그래도 친구들끼리 우정을 교환할 수 있는 소중한 날인걸.”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메구미는 카렌의 초콜릿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츠카사도 의기양양하게 정성껏 포장된 상자 5개를 꺼냈다.

“나도 같이 만들었어!”

뽐내는 듯이 말하는 츠카사에게 카렌이 다정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잠시 훈훈한 초콜릿 교환식이 이어졌다. 선물을 나눠 받은 31A 대원들이 감사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츠카사와 카렌의 초콜릿을 받은 유키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나는 너희 몫을 준비하지 않아서.”

“사과할 거 없어, 우리가 좋아서 만든 건데.”

“맞아! 답례는 화이트데이에 해도 돼!”

“결국 받을 생각이었냐고.”

화기애애하게 카렌과 츠카사의 초콜릿을 받은 31A의 표정이 밝았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루카가 자꾸만 유키를 힐끔거렸다. 무언가 기대하는 눈이었다. 유키도 그 시선을 느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았고, 아침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초콜릿의 힘이었는지 평소보다 느슨했던 훈련이 끝나고 자유 시간이 되었다. 카페테리아에서 나온 유키는 평상시처럼 걸음을 옮기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유키의 뒤에서 따라오던 발걸음이 동시에 멈추고, 유키와 루카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쫓아오는 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유키가 루카를 쳐다보았다. 노려보는 듯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루카가 입가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윳키는 나한테 초콜릿 안 줘?”

“뭐?”

“발렌타인데이니까, 뭔가 준비하지 않았나 해서.”

“…아침에 말했잖아.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그런가.”

“그런 거야.”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루카의 시선을 피해 유키가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유키의 걸음에 맞춰 계속 따라왔다. 결국 유키는 다시 뒤돌아보았다.

“따라오지 마.”

“싫어.”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

“윳키의 초콜릿 받고 싶으니까.”

“그런 거 없대도.”

“거짓말.”

어째선지 확신을 하고 말하는 루카 덕분에 유키는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걸 느꼈다. 지금의 유키에겐 루카에게 선물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루카가 기대하는 것처럼 보여서 유키는 가슴이 따끔거리는 듯했다. 잠깐 입술을 깨물었던 유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너에게 줄건 없으니까.”

결국 유키는 차가운 한 마디를 남기고 걸음을 옮겼다. 쌀쌀맞은 말 때문인지 뒤따라오는 발소리도 왠지 기운이 빠진 듯이 느껴졌다. 하지만 루카는 단념하지 않고 유키를 쫓아왔다.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분을 유키가 곱씹고 있을 때였다.

“앗, 루카다!”

“카야모리 씨, 안녕하세요!”

“카야모리, 안녕!”

“오, 잇치, 니나, 미노링에 욧층, 이스즛치, 무아까지! 다 같이 나들이라도 가는 거야?”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니까, 어제 다 같이 초콜릿을 만들어서 나눠주는 중이에요.”

유키는 자연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느끼고 인상을 썼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신경이 쓰이는 건 자신이라니 촌극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유키는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루카와 31E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루카 꺼도 만들었으니까 줄게!”

“나한테? 초콜릿을?”

“뭐, 나름대로 너한텐 신세 지고 있으니까. 답례야.”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응, 잘 가!”

루카가 훈훈한 분위기로 초콜릿을 교환하는 현장을 고스란히 목격한 유키는 참지 못하고 루카를 향해 내뱉었다.

“좋겠네. 초콜릿 받아서.”

“응, 이렇게 준비해주다니 고맙지.”

어쩐지 답답해지는 기분을 떨쳐버리려고 애쓰며 유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제 만족했지? 아사쿠라에, 토죠에, 31E한테도 초콜릿을 받았으니까.”

퉁명스러운 말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루카로부터 유키가 시선을 비꼈다. 질투한다는 걸 모를 수가 없는 태도였다. 아마 루카도 느꼈겠지. 그것을 의식한 유키의 뺨이 점점 붉어졌다. 괜한 화풀이를 한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유키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루카가 바로 유키를 잡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시도였다.

“윳키, 혹시 질투했어?”

“그런 거 아니야!”

유키가 붙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려고 했다. 하지만 꽉 잡은 루카의 손은 뿌리쳐지지가 않았다. 단념한 유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치려는 유키의 시도가 멈춘 것을 느낀 루카가 손을 내려 유키의 손을 감싸 쥐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루카가 말했다.

“물론 다른 애들에게 초콜릿을 받은 것은 기뻐.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한 건 윳키의 초콜릿인걸.”

모든 것을 꿰뚫려 보인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유키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유키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루카가 이었다.

“나 사실 어제 윳키가 카페테리아에서 초콜릿을 만들고 있던 거 봤어.”

숨기고 있었던 비밀을 들킨 유키가 헛숨을 들이켰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유키의 손을 루카가 꽉 잡았다.

“윳키가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초콜릿을 만들었다면 그걸로 좋아. 하지만 만약 그게 나를 위해 만든 거라면 나한테 줬으면 좋겠어.”

이제 숨이 닿을 거리로 다가온 루카가 유키에게 속삭였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윳키한테 초콜릿을 받고 싶으니까.”

맞잡은 손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잠시 시간이 흘렀다.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고 있던 유키가 천천히 루카에게서 손을 빼냈다. 이번엔 루카도 순순히 놓아주었다. 곧 유키가 품속에서 초콜릿 상자를 꺼내 루카에게 건넸다.

“맛없어도 모르니까.”

“응, 그렇지만 윳키가 주는 거니까 기뻐.”

루카가 활짝 웃으며 유키가 건넨 상자를 받았다. 그 모습을 보며 유키도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루카가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상자를 꺼냈다.

“어제 급하게 준비하느라 내 건 수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받아줘!”

“안 줘도 괜찮은데.”

“하지만 기쁘지?”

“뭐, 마음대로 생각해.”

쑥스러운 듯 안경을 추어올리는 유키를 보며 루카가 해맑게 웃었다.

“화이트데이 때는 꼭 나도 수제로 준비할 테니까!”

“네 실력이면 수제가 아닌 편이 나은 거 아니야?”

“너무해!”

푸념하듯 말하면서도 싱글거리던 루카가 윳키의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달콤함에 섞여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다. 쓴 것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랑스러운 쓴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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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칭찬하는 산양

    추운 밤길을 이 글을 보면서 걸으니 따뜻해지고 미소가 지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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