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헤번레 / 루카유키] 크리스마스니까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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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AU

※ 성인물 걸기 애매해서 안 걸었는데 수위 묘사 있습니다. 주의.

문을 눈앞에 두고 긴장한 채로 목을 가다듬는다. 초인종을 누르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릴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나 상상했지만, 지금 처음으로 맞는 순간이었다. 밖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떨리게 한다. 하지만 단순히 추위만으로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 긴장한 손을 마주 잡는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루카와 사귀고 나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24일에 약속 있냐는 가벼운 물음으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는 루카의 권유를 무심코 받아들인 것도 잠시, 지나서 떠올려보면 그건 크리스마스 데이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몇 안 되는 친구인 아사쿠라에게 물어보면 역시 그건 데이트잖아, 라고 말했다. 그제야 긴장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에게 아사쿠라는 분명 단순한 데이트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깨끗이 씻고 몸단장을 하고 가라며 입욕제와 향수를 선물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라고 말하면서도 나도 서서히 그런 예감을 받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아사쿠라의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약속 당일, 뜬눈으로 지새운 나는 약속 시간 세 시간 전부터 몇 번씩 목욕을 하고―결국 아사쿠라가 준 선물도 제대로 사용했다―만전의 준비를 해서 약속 30분 전부터 루카의 집 앞에 왔다.

자신의 몸에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가 낯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의식한 거 아닐까, 루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웃어버리면 어쩌지, 그렇다고 눈치도 채지 못하면 그것도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온갖 고민이 뒤섞여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치만 크리스마스니까. 기껏 루카가 초대해 줬으니까.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마침내 초인종을 눌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기다리면, 뭘 하고 있었는지 우당탕하는 요란한 인기척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은 핏자국 같은 폰트와 악마 숭배라도 하는 것 같은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얼굴에 뒤집어쓴 루카였다.

"안녕."

"몇 번이나 안녕하겠다! 뭐야, 그 차림?! 어디 몇 번이나 밴드 라이브라도 가는 거야?! 잘 보니까 라이브 굿즈를 온몸에 두르고 있잖아! 우리가 약속한 게 라이브였냐고! 그럼 처음부터 말해! 그럼 이런 원피스나 코트가 아니라 거기에 맞춰서 입었을 거 아냐!"

"아냐 아냐, 약속 장소는 우리 집 맞아. 대신 지금부터 집에서 크리스마스 라이브를 여는 거지. 티셔츠랑 굿즈도 내가 직접 만들었어. 멋지지?"

"아니, 전혀. 센스가 무슨 80년대 밴드 스타일이라고. 왜 이렇게 전통적인 걸 좋아하는데. 그거야? 크리스마스도 명절이니까 전통을 중시해 봤어요~ 같은 거야? 록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잖아! 크리스마스랑 록을 비교하면 80세 노인과 신생아 수준의 시대 차이가 있잖아! 아니, 나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제 내가 하는 태클도 엉망진창이 되고 있잖아! 제발 봐줘라!"

"자자, 그러지 말고.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억압에 저항하고 사랑과 평화를 전파했잖아? 그거야말로 록 스피릿이잖아?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엔 역시 록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 시절에는 록 따위 없었다니까? 인간으로 치면 수정란은커녕 난자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니까? 제발 이 이상한 태클도 그만하게 해줘!"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 걸 보면 윳키도 엄청 기대되나 보네. 관객을 기다리게 할 순 없지. 그럼 바로 첫 번째 곡으로 갈까?"

"우리 데이트하는 거 아니었어? 기대한 내가 바보 같잖아! 내 설렘을 돌려달라고!"

"자, 들어줘! Burn My Soul!"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카는 폴짝폴짝 집 안으로 들어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태로 현관을 통해 들어왔다. 벌써 세 시간은 떠든 기분이었다. 다른 커플들처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세 시간을 보냈다면 이 정도로 지쳤겠지. 하지만 아직 루카를 만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가서 초밥 정식이나 시켜 먹는 게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여기까지 오기 위해 했던 준비가 전부 헛수고가 되겠지. 그건 또 싫어서 오기로라도 버티고 앉았다.

루카의 단독 라이브는 멋대로 시작해서 어느새 첫 곡의 하이라이트에 접어들고 있었다. Burn My Soul. 루카가 작사 작곡한 곡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노래였다. 나도 이 곡을 좋아한다. 아니, 애초에 루카가 부르는 곡 중에 좋아하지 않는 노래 따위 없다. 그도 그럴 게 나는 She is Legend의 팬이었으니까. 카야모리 루카 개인을 좋아하기 이전에 가수 카야모리 루카를 좋아했다. 가장 먼저 반한 모습이니까, 어이없긴 했어도 지금 루카가 라이브를 해주는 순간이, 분하지만 좋았다.

루카가 놓아둔 것 같은 형광봉을 집어 들고, 나도 어느새 루카의 라이브에 푹 빠져 방안에서의 작은 콘서트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어줘서 고마워! 다음 라이브에도 꼭 와줘!"

마치 진짜 라이브를 하듯 손을 흔드는 루카에게 나도 형광봉을 흔들어 주었다. 끝에 가서는 나도, 루카도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잠깐 여운에 잠긴 사이, 기타를 내려놓은 루카가 외쳤다.

"우와, 엄청 배고파! 이제 밥 먹자."

"나 오고 나서도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음식 다 식지 않았어?"

"괜찮아, 다시 데우면 돼."

주방에 들어가서 음식을 데워 온 루카가 식탁에 요리를 올려놓았다. 치킨과 피자, 작은 조각 케이크였다. 확실히 루카 취향이기는 했다. 제대로 된 식사라는 느낌은 안 들어도 크리스마스니까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피자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베어 물었다. 느끼하고 자극적인 맛이 느껴졌다. 문득 먹고 나면 입냄새가 나는 거 아닐까 고민이 되었지만, 시작부터 꼬여버린 데이트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루카가 틀어둔 티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잡담하다가 식사를 마치고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앉았다. 그러고 보면 트리는 또 제대로 꾸며놨네. 루카가 트리 밑에 있던 선물 상자를 들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 윳키. 크리스마스 선물."

루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수상했다. 무슨 해골 반지가 들어있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달 모양의 은빛 귀걸이였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선물에 눈을 깜박였다. 상자에서 귀걸이를 집어 든 루카가 말했다.

"윳키는 아직 귀 뚫지 않았지? 내가 뚫어줄게."

금세 거리를 좁혀, 가까이 다가온 나직한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음에 기대 따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천천히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방황하는 시선을 돌려 루카를 바라보았다. 바로 근처에 있는 루카를 보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한 내가 말했다.

"괜찮아?"

뭐가 괜찮냐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말이 그렇게 튀어나왔다. 루카는 어르듯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아프지 않게 금방 끝내줄게."

루카가 한 손에는 귀걸이를 들고 내 귀를 잡았다. 눈을 꾹 감고 있으니 따끔한 감각과 함께 귓불에 차가운 핀이 느껴졌다. 휴지로 피를 닦아낸 루카가 다른 쪽도 똑같이 뚫어주었다. 그동안 귀를 뚫을 생각도 못 했던 시간이 허무할 만큼 시원하게 끝나버렸다. 멍하니 귀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루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앞으로도 계속 귀걸이 끼고 있어. 잘 때도 껴야 해. 빼놓으면 금방 막히거든."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는 루카에게 알겠다는 답을 되돌려 주었다. 다시 루카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기왕이면 내가 준 귀걸이로 해줘."

왠지 심장 박동이 조금 높아진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처럼 해사하게 웃는 루카를 보고 옆으로 내려온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분위기는 기대도 안 했는데 다시 긴장감이 올라왔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를 진정시키려고 심호흡하는데 루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윳키 뭔가 좋은 냄새가 나."

그 말에 잠깐 숨을 멈췄다. 여기 오기 전에 혼자 했던 상상과 거기에 맞춰서 애썼던 어리석은 시간 들이 떠올라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던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루카의 시선을 피하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으로 부르니까, 나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바보 같은 상상인 건 나도 알아! 혼자 들떠서 이상한 짓이나 하고…. 그러니까 루카, 너는 신경 쓰지 마."

"윳키."

차분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루카를 쳐다보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며 루카가 물었다.

"하고 싶어?"

"아니,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니까. 너는 그런 생각도 안 했을 거 아냐."

부끄러워서 오히려 무뚝뚝해지는 말투를 듣고도 싫은 내색 없이 루카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나도 윳키와 하고 싶어. 하지만 윳키가 싫어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야. 만약 윳키도 나랑 같은 마음이라면 나는 좋아."

평소답지 않은 성실함으로, 그럼에도 다정하게 눈과 눈을 맞추며 루카가 말했다.

"윳키는 어때?"

언젠가부터 멈췄던 숨을 천천히 내쉬고 들이마셨다. 잡힌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솔직히 말로 하는 것은 부끄럽다. 하지만 루카도 진심을 말해줬으니까,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나도 너를 좋아하니까, 너와… 하고 싶어."

"윳키."

잡은 손을 끌어당긴 루카가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당황해서 루카의 몸을 밀었다.

"잠깐만, 나 아까 땀 흘려서 냄새날 텐데? 그리고 양치도 못 했어!"

"괜찮아, 오히려 그게 더 좋으니까."

"변태냐?!"

목 언저리를 입술로 찍어 누르던 루카가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추었다. 가볍게 입술을 연거푸 부딪치던 루카가 내 입술을 살짝 물어 이로 긁었다. 내가 입을 벌리자, 루카의 혀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서툴게 따라오는 나에게 맞춰 부드럽게 루카가 움직였다. 호흡이 흐트러지고 벅찬 감각이 가슴을 간지럽혔다. 몇 분이나 흘렀는지 모를 때쯤 루카가 입술을 뗐다. 숨을 몰아쉬는 내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부딪친 루카가 내 손을 잡고 일으켰다.

"여기서 할 순 없잖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는 루카를 따라 침대로 가서 다시 입을 맞추었다. 나는 루카의 움직임에 가까스로 따라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카의 리드가 능숙해서 몸을 맡기고 있으면 몽롱한 쾌감이 기분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몇 차례의 키스가 끝났을 때 어느새 옷은 벗겨져 있었고, 속옷만을 걸친 나를 루카가 밀어 넘어뜨렸다.

"윳키 속옷 귀여워."

"신경 써서 골랐으니까. 부끄러운 말 하게 하지 마."

"그치만 귀여운걸."

루카가 내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허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천천히 올라와 가슴을 어루만졌다. 입과 손을 이용해서 몸 곳곳을 애무하는 행동에 몸이 천천히 열기를 띠었다.

"아, 루카…."

침대에 늘어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루카가 속삭였다.

"좋아해, 윳키."

-

다 끝나고 나서는 온몸에 힘이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고 움직일 의지를 잃었다. 루카가 나를 향해 옆으로 누워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윳키, 씻을 거야?"

"그래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어."

그러자 루카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씻겨줄까?"

명백한 의도가 느껴지는 말에 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싫다고 할 만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던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루카가 나를 안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 거지?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나는 루카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돌아가기는 그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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