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루카유키] 시계탑의 꿈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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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꿈을 꿨다.

광장의 시계탑을 오르는 꿈. 실제로는 계단을 오르는 게 힘들긴 해도 오르다 보면 정상에 닿을 텐데, 꿈에서의 시계탑은 공중으로 연결된 계단이 한없이 이어져서, 나는 계속해서 그 탑을 오르고 거기서 기억의 조각을 모아 모두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탑을 오르는 꿈이었다.

고독한 꿈에서 깨어보면 아직 방안은 어둡고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내가 잠을 설치는 일은 잘 없는데 신기하네. 내일도 힘든 훈련이 계속될 테니 다시 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꿈을 꿀 때 느꼈던 불안함이나 외로움이 가슴을 초조하게 죄어와서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와서 윳키를 내려다본다. 윳키는 반듯한 자세로 누워서 잔다. 얌전하게 자는 모습이 윳키답다. 슬며시 옆에 누워도 모르지 않을까.

가만히 윳키의 코에 손가락을 대본다. 숨은 쉬고 있네. 손가락을 치우니 잠깐 눈살을 찌푸렸던 윳키가 눈을 떴다.

"루카?"

"응."

어두운 와중에도 나를 단번에 알아본다. 그 사실이 어쩐지 기쁘다. 시야가 아직 또렷하지 않은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보는 윳키에게 다가가 옆에 누웠다.

"잠깐, 뭐 하는 거야."

"같이 자고 싶어서. 안될까."

안 된다고 하지 말아줘. 그런 마음을 담아 윳키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세차게 뛰고 있는 고동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얼굴도 붉어졌을 테다. 역시 윳키는 나를 좋아하는구나. 숨겨지지 않는 감정을 느끼니 불안했던 심장이 조금 가라앉는다.

잠깐 말이 없던 윳키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마음대로 해."

"얏호."

작은 소리로 환호하니 윳키가 작게 웃었다. 어라, 어쩐지 말썽쟁이 동생을 보는 듯한 웃음이야. 하지만 어쨌든 내 말을 들어주었으니까 좋은 거겠지? 나는 윳키를 꼭 끌어안은 채로 윳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바로 곁에 있어 준다. 거기까지만이라도 좋았는데 윳키는 몸을 돌려 내게 팔 하나를 가만히 올렸다.

"윳키?"

"뭔가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움찔했다. 이내 긴장을 풀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윳키한테는 숨길 수 없구나. 하긴 누구라도 갑자기 이러면 눈치채겠지만. 망설이던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꿈을 꿨어. 어디까지나 높이 이어진 시계탑을 계속해서 오르는 꿈. 아무도 없고 나만이 고독하게 그 탑을 오르고 또 올랐어."

소리 내 말하니 꿈에서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다시 떠올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시계탑을 오르면서 캔서들을 만났다. 한 마리 한 마리 베어나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곁에는 이제 누구도 없다는 외로움이, 나만이 남겨졌다는 고독감이 괴로웠다. 

"그렇구나."

어느새 윳키의 손이 느린 박자로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얼굴이 축축하지. 나는 손으로 눈을 비벼 눈물을 훔쳤다. 윳키의 토닥임에 조금씩 노곤함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에 한 가지만 묻고 싶었다.

"윳키는."

"응."

소리 내 물으려고 하니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왜 그래, 그런 건 나답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도 차오르는 망설임을 겨우 떨치고 말을 꺼냈다.

"윳키는 나를…, 내가 없어져도 나를 계속 기억해 줄 거지?"

원래 하려던 물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한발 물러서서 질문을 던졌다. 원래 바라는 것은 좀 더 깊은 것이지만, 그것은 분명 약속할 수 없으니까, 마음속으로만 삼킨다.

윳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윳키의 눈을 절박하게 마주 본다. 이건 부탁이다. 윳키는 이렇게 물으면 분명히 거절하지 못할 걸 아니까 이렇게 묻는 거다. 나도 한발 양보했으니까 그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이기적인 마음을 담아 묻는다.

초조하게 어둠에 잠긴 얼굴을 응시하면 이윽고 윳키가 대답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게."

"아."

"고독하게 두지 않을게."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가슴이 뛴다. 우리가 있는 곳은 전쟁터.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미 죽어간 부대원들이 있다. 세라프를 들고 싸워나간다는 건 그런 의미다. 그걸 윳키도 잘 알고 있으니까, 평소의 윳키라면 약속하지 않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기억해달라고 한 건데.

분명히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이다. 하지만 윳키라면 어떻게든 지켜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장 바랐던 것을 대답으로 들었다는 기쁨이 벅차올라서 활짝 웃었다.

"윳키~."

"그렇게 붙으면 불편하잖아. 제대로 누워."

그렇게 핀잔해도 기쁨이 커서 잘 들리지 않았다. 들려도 들을 맘 없으니까. 나는 윳키를 꽉 끌어안았다. 윳키가 불편한지 몸을 뒤척였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어쩌지,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윳키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윳키의 향이 가슴 속에 가득 찼다. 부드러운 품에 얼굴을 묻고 미소 지었다. 내일은 왠지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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