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유키] 정말 싫어
※ 2024년 만우절 기념입니다.
“윳키, 정말 싫어!”
다짜고짜 쏟아진 말에 유키가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제복을 지나 시선을 올리면, 아름다운 이목구비의 얼굴이, 심한 말을 내뱉었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미소를 띠고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미소와 다르게 유키는 웃지 않았다.
얌전히 벤치에 앉아 전첩을 만지던 사람한테 찾아와서 하는 말이 그거라니. 유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루카는 원래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니 갑자기 싫다고 외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늘은 만우절이고.
속이 빤히 보이는 장난에 유키가 루카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루카는 역시나, 정말 싫다고 말한 것과 다르게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나 흔해서 오히려 피해지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저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니, 즐거움의 효율이 남다르다. 유키는 새삼스레 감탄했다.
루카는 싱글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쪽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겠네. 순순히 손에 들었던 전첩을 주머니에 넣은 유키가, 앞에 서서 반짝거리는 눈을 한 루카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 그래. 나는 정말 좋아해.”
유키의 말을 듣자마자 루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인데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다니, 진정한 미소녀는 다르구나. 어딘가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유키는 여전히 반만 뜬 눈으로 루카를 쳐다보았다.
“윳키,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알아. 만우절이잖아? 너 같은 녀석들이 딱 좋아하는.”
“알고 있었잖아! 근데 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응, 오늘은 만우절이지. 좋아해~, 루카~. 정말 좋아~.”
“너무해, 윳키! 윳키는 내가 싫은 거야?!”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좋아한다니까.”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흐름이 되었는지 루카는 점점 뾰로통하게 변해갔다. 이런 점까지 진짜 어린애 같다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생각하는 것처럼 해주고 싶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 나이도 됐는데. 카야모리 루카한테 기대해서는 안 될 생각을 떠올리며 유키가 교차한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루카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내가 싫다고 말했는데 윳키는 아무렇지도 않아?”
“네가 만우절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자신한테 질렸는지 루카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러게 누가 뻔한 장난을 치랬나. 측은한 마음도 들지 않아서 유키는 루카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아, 만우절은 누가 만들었담. 이런 어린애 장난이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한숨이라도 내쉬고 싶어지는 기분을 삼키며 유키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유키의 공세에 잠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루카는 아직 기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다시 유키에게 말했다.
“나도 윳키가 정말 좋아!”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반응에 유키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 그래? 나는 네가 정말정말 좋은데?”
“나는 윳키가 3달 만에 먹는 초콜릿 바만큼 좋아!”
유키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는 구체적인 표현까지 들어가며 말꼬리를 잡는 게 지기 싫어하는 일곱 살 아이 같았다. 거기에 별 어려움도 느끼지 않고 유키가 대답했다.
“나는 네가 1년 만에 나온 좋아하는 밴드의 신곡만큼 좋은데?”
유키의 대답에 곧바로 루카가 기세를 올렸다.
“나는 1년 내내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혀도 윳키가 좋아!”
“나는 10년 동안 신발 안에 돌멩이가 박혀있어도 네가 좋은데?”
“나는 지금껏 받은 인세 전부를 내도 좋을 만큼 좋아!”
“나는 지금껏 받은 거에 앞으로 받을 연봉을 내도 좋을 만큼 좋은데?”
“나는 이 우주보다 윳키가 더 좋아!”
“나는 모든 우주를 합친 것보다 네가 더 좋은데?”
한참 다투듯이 말을 쏟아내던 루카가 유키의 말끝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불안한 느낌을 받으며 유키가 물었다.
“왜 웃어?”
“아니, 윳키는 날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그 말에 유키의 얼굴이 천천히 익어갔다. 그제서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카의 말에 반박하는 것에 열중해서 의식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낯부끄러운 고백뿐이었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떠들었는지. 유키의 열렬한 고백을 만끽한 루카의 웃음이 부끄러움을 더했다. 뒤늦은 깨달음에 유키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루카가 외쳤다.
“윳키의 고백 잘 들었어! 그럼 나중에 뵙겠소이다!”
유키가 뭐라고 토 달기 전에 루카는 재빨리 뒤돌아 도망쳤다. 그리고 벤치에 혼자 남겨진 채로 그동안의 대화를 곱씹던 유키는 결국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댓글 2
칭찬하는 산양
문장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행복해져서ㅜ귀에 걸린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아요ㅠㅠ 루카유키 이 귀여운뇨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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