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번즈 레드

[루카유키] 질투는 최고

2023.12.2. 프세터 백업

sn by 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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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오후였다. 큰 고비를 넘긴 세라프 부대는 한동안 긴급한 출동 없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더욱이 오늘은 휴일이니 정기수업과 훈련도 받지 않고 느지막한 점심을 먹은 뒤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낮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는 무표정으로 전첩을 만지는 윳키가 있다. 임무도 훈련도 같이하니까 휴식까지 함께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곁에 있고 싶으니까, 여유롭게 작업을 할 장소를 찾는 윳키를 쫓아왔다.

어차피 신경 써줄 여유는 없다고 퉁명스레 말해도, 그래도 괜찮아, 라며 윳키의 옆에 앉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가 말을 걸면 꼬박꼬박 대꾸해주고, 지금처럼 말을 걸지 않아도 햇살에 반짝이는 은발이나, 지적인 느낌을 주는 얼굴이나, 매력적인 선을 그리는 몸매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무엇보다 사귀고 있으니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전첩에 대고 무어라 말하거나 빠르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윳키를 보면 의미는 모르지만 무언가 대단한 걸 하는 것 같다. 실제로도 천재 해커니까 대단한 일이겠지. 평소라면 말을 걸어서 주의를 이쪽으로 향하게 하겠지만, 오늘은 왠지 나른한 기분이 윳키를 바라만 보고 있게 했다.

따스한 바람이 분다. 발밑이 10센치 정도 떠있는 듯이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언제까지나 이어졌으면 하는 평온한 시간.

그때, 전첩의 알림음이 부푼 기분을 터뜨렸다. 짧은 낮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앉아있는 사이, 윳키가 찡그리고 린네를 열었다.

“아, 내 린네가 아니네. 루카, 네 쪽인가 봐.”

윳키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내 전첩을 꺼내 린네를 열어보았다. 아상이다.

“어디 보자. ‘큰일이오. 어묵이 너무 많이 남았소. 카야모리 공도 얼른 카페테리아로 와주시오.‘"

큰 소리로 아상의 메시지를 읽는 나를, 윳키가 눈썹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메시지를 끝까지 읽은 내가 윳키에게 말했다.

"이런! 큰일이야! 윳키, 나는 카페테리아로 가볼게!”

어묵이 남는다니 어쩔 수 없지. 분명 아이찡이 만든 어묵일 거다. 도움을 요청한 아상에게 가려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뜻밖에 윳키가 붙잡았다.

“그거 정말 큰일이야? 어묵 정돈 남을 수 있잖아.”

“그럼, 큰일이지. 만약에 남은 어묵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서 강을 오염시키고, 그 오염된 물을 물고기가 다시 먹어서 어묵이 되고, 다시 그 어묵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다 보면, 환경오염으로 돌연변이 캔서가 만들어질지도 몰라! 그랬다간 인류는 디엔드라고.”

“비약이 너무 심해! 그렇게는 안되지! 그냥 네가 어묵이 먹고 싶은 것뿐 아니야?!”

“뭐, 그 이유도 조금은 있지.”

어깨를 으쓱하는 나를 윳키가 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윳키는 여전히 내 소매를 놓지 않았다. 분명 힘껏 뿌리치면 떼어놓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윳키를 거부하고 싶진 않았다. 자리에 다시 앉아서 윳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윳키도 지금 작업이 바쁜 거잖아? 금방 갔다 올게.”

윳키가 눈을 내리깔았다. 윳키의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인다. 여전히 날 붙잡은 채로 망설이던 윳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어묵 따위에 널 뺏기는 내 기분이 되어보라고.“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약한 윳키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무심코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해버릴 듯한 충동을 억누르고 다시 한번 나긋나긋 설득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상도 곤란해하니까 지금은 용서해줘.“

윳키의 눈썹이 축 처진다. 어떡하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입술 끝이 저절로 올라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으며 미안한 목소리를 꾸민다.

”미안, 윳키.“

윳키가 고개를 숙였다. 슬그머니 윳키의 손에서 힘이 풀린다. 어라, 너무 심했나? 장난이었다고 말하려는 순간, 윳키가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

”가지마.“

윳키의 두 팔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뺨에 부벼진다. 귀 옆에서 바로 들리는 윳키의 목소리에 내 심장은 이미 터져버렸다. 벌써 윳키에게 넘어가 뭐든지 들어줄 상태의 나를 모르고 윳키가 계속 속삭였다.

”사귀는 사이라면 나를 우선하라고, 바보야.“

이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넵.“

윳키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이미 백 번이라도 더 항복할 수 있었다.

사귀는 사람의 질투는 정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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