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5)
日影華劍_이환연
*
이환연은 다시 내려치는 검에 몸을 틀어 검을 피하고는 손에 흙을 쥐어 그에게 뿌렸다. 잠시 상대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그를 발로 차, 거리를 벌리고 놓친 검을 주웠다.
상대의 시야 탓에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이환연은 오른팔의 소매를 걷었다. 본래 제대로 아물지도 않은 상처가 강한 힘을 무리해서 막으려는 탓에 벌어졌는지 붕대가 검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환연은 상처 탓에 떨리는 그의 오른손을 보았다. 본래도 그리 작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더 심해진 탓에 이런 손으로 검을 쥐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주변에 상단원들이 이환연을 믿고 숨을 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이환연은 오른팔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그리곤 손에 붕대를 감아 검을 놓치지 않게 고정했다.
뒤이어 부름을 받은 화백과 수림이 이환연의 주위로 검을 들고 나타났다.
이환연은 더 이상 몸을 숨겨도 의미가 없기에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쳤다. 상처가 아려오며 흐르는 피가 그의 소매와 손을 적셔왔지만 이환연은 조금도 물러설 생각도 기세가 꺾이지도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 화백이 이환연을 향해 검을 찌르며 들어왔다. 이환연은 자신을 향해 매섭게 들어오는 검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들었다. 아랫입술을 꾹 다문 채, 아주 간사한 차이로 검날을 피해내고 상대의 목에 다시 검을 찔렀다.
벌어진 상처가 이환연의 손에 힘을 빠지게 만들었지만 여유를 가질 틈이 없었다. 화백이 찔러 들어오는 뒤를 바로 이어 수림이 이환연을 베어버릴 기세로 뛰어 들어왔다.
이환연은 이를 악물고 아파오는 팔에 힘을 주었다. 화백을 발로 밀어내고 나서야 검을 뽑아내고 들어오는 수림에게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바로 이어 들어오는 대장의 칼날. 이환연은 가까스로 그 검을 피하고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인상을 찌푸린 이환연이 숨을 골랐다.
화백을 베어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관호라는 자를 부르러 간 진연이 어느새 이환연 앞의 적들과 합세했다.
지금 상태로 두 명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지만 네 명은 무리였다.
이환연은 속으로 제때제때 자신의 상태를 돌보지 않은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몸을 돌보느라 이 자리에 없었다면, 습격받은 이곳의 상단원들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을 테니까.
상황이 희망적이지는 못했지만 이환연은 절망하지 않고 여기서 더 벌어지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 대해 자신을 달래고 안도했다.
합세한 네 명은 서서히 이환연을 포위해 압박해왔다.
이환연은 이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어도 하나라도 머릿수를 줄여 조금이라도 더, 남은 상단원들을 안전하게 만들고 말겠다 각오했다.
누가 먼저 검을 휘두를 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팍!
허공에서 무언가 날아오더니, 진연을 맞추더니 진연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한 목소리.
"이야. 누군진 몰라도 내 일거리를 낚아채 가 버렸네? 오랜만에 들어온 일이었는데. 아주… 곤란해."
이윽고 나무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목소리의 주인은.
남세화였다.
"세화!"
"여-. 연비대협. 내가 좀 늦었지?"
아는 얼굴의 등장에 반가웠던 이환연은 남세화를 반겼다. 그리고 남세화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능청스럽게 환연에게 인사했다.
"나 참, 상단원에 섞여 들어간 목표를 잡으라더니… 웬걸, 벌써 죽어있네. 연비 대협이 그럴 일은 없고. 너네 작품이야?"
"......"
"그렇게 경계하지 말고… 눈빛으로 사람 죽이겠다."
눈앞의 셋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합심해 남세화를 향해 튀어 올랐다.
"한꺼번에 셋은 비겁하잖아!"
남세화는 자리에서 높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소매에서 비도를 여러 개를 꺼내 날렸다.
남세화가 날린 비도에 관호가 맞고 밀려났다.
공격을 받고 악에 받친 관호는 바로 검을 고쳐 쥐고 다시 달려들었다.
관호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마치 그를 기다렸다는 듯 이환연이 검을 휘둘러 그의 검을 쳐냈다.
힘에 밀려 검이 뒤로 밀려난 관호는 그대로 몸이 열렸고, 이환연은 그가 방어할 새도 내어주지 않고 또 한 번 적의 목을 꿰뚫었다.
"......"
남세화가 그런 이환연을 바라보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은 피로 덮여 있었고, 어느 표정도 없었다.
남세화는 고개를 돌려 남은 둘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주춤한 기색이 있었으나 그들은 목표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봐. 저 마차에 뭐가 실려있지?"
"......."
남세화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 그렇게 버텨도 상관은 없어. 사람 입 열게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바뀌는 남세화의 기세에 그들은 그의 공격을 대비할 준비를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남세화의 움직임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날린 비도는 수림의 목을 찔렀고, 남세화는 비도를 떠나보냄과 동시에 수림에게 접근해 그 비도를 뽑아냈다.
"끄윽."
핏물 섞인 신음과 함께 수림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비도를 회수한 남세화는 곧바로 홀로 남은 적들의 대장을 제압했다.
그의 손발의 힘줄을 모조리 끊어 버리고는 목덜미를 쥐어 끌고 이환연에게 다가갔다.
"연비대협. 괜찮아?"
"네."
"상단원들은?"
"잠시만요."
이환연이 수풀 속으로 들어가 잠시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상도를 제외한 남은 네 명의 상단원들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역시 연비대협이야. 다들 무사하시네."
"...그렇지도 않아요. 다른 한 분은…"
"너무 신경 쓰지 마. 그 사람 내 의뢰 목표거든. 마교… 첩자랬나?"
"마교요.?"
마교라는 말에 이환연의 얼굴색이 변했다. 다른 상단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마...마교라면!"
"상도 형씨는 착실하고 인품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게 사실이요!?"
대부분은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지만.
"뭐… 일단 나도 의뢰인에게 전해 들은 거니까… 그나저나. 상단형씨들께선 저 안에 든 게 뭔지 알아?"
"저흰 운반 의뢰만 받았습니다. 안에 있는 물건은 절대 건드리지도, 열어보지도 말래서 아는 게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연비대협? 거기서 뭐 해?"
남세화가 이환연을 부르자 그제야 이환연이 대답을 했다. 남세화가 상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쓰러진 적들을 살피던 이환연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얼굴 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른 적들의 주검도 살펴보더니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연비대협. 안색이 너무 창백해. 무리한 거 아니야?"
"...괜찮아요."
이어 남세화가 이환연이 손에 쥔 것에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이가장 일원임을 증명하는 호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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