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6)
日影華劍_이환연
*
이환연이 손에 든 청색의 호패. 그것은 이가장에서 값을 받고 강호에서 가주에게 일을 받아 활동하는 자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호패가 분명했다.
"응? 이가장 호패네. 이 녀석들이 갖고 있었어?"
"이 호패… 아세요?"
"그럼. 거기 깐깐한 가주 아저씨가 단골손님이거든. 어찌나 귀찮게 하는지, 악질이야 악질. 왜 본부에선 그런 사람을 받아주는 건지."
"단골… 이라고요?"
이환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손에 쥔 호패를 보며 복잡한 얼굴을 지어냈다.
"아… 몰랐어? 충격 받은 얼굴이네. 속세 권력자들이 다 그렇지 뭐. 지위 지키려고, 일 처리 탈 없게 하려고. 다..."
"......"
이환연의 반응에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것 같아, 남세화가 급히 그를 달래주었지만 이환연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가장은 정파에서 주요 세가들 다음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주는 가문이었다. 가주 이혁린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지위와 명성을 쌓아 이름을 떨칠 수 있었겠는가. 전부 직접 뛰고 돌아다녀, 일일이 얼굴을 비춰가며 수많은 일을 쉬지 않고 해내었기 때문이다.
비록 힘이 모자르고 뜻이 달라 이혁린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이환연이었지만, 그가 누구보다 존경하고. 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인물이 이혁린이었다.
그런 인물이 암살업부의 단골손님이라는 소식이, 이동 중인 상단을 습격해 물건을 빼돌리려 했다는 사실이 이환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환연은 손에 쥐고 있던 호패를 소매 안으로 넣었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가문으로 돌아가 이혁린에게 사실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연비대협 일단은 마을로 내려가자. 상단원들도 준비 다 끝난 거 같은데."
"...네."
이환연과 남세화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엔 상단원들이 이미 채비를 마치고 둘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남세화가 발로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던 대장 녀석을 툭툭 건드렸다.
"야. 저기 뭐 들었어?"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네놈들이 직접 보던가. 퉷."
"이게 진짜…"
남세화가 손에 잡은 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손발의 힘줄이 모두 끊긴 사내는 바닥에 그대로 처박힐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너…"
"세화, 잠시만요."
남세화가 손을 풀며 내팽개친 사내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이환연이 그를 멈춰 세웠다.
"왜… 그래?"
"뭔가 이상해요."
이환연이 고개를 들어 주변의 무언가를 살피는 듯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마차 주변의 상단원들을 모두 자신의 주변으로 모이게 했다.
"잠시 조용히 계세요."
이환연이 모두에게 경고하고 몸에 긴장감을 높이자, 남세화도 같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하! 그렇게 쓸데없이 분위기 잡는다고 내가 순순히…"
털썩.
사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사내가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자 위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내려왔다. 뒤이어 풀숲에서 한 명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상도는."
흑의인의 무리 중 한명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건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상단원의 이름이었다.
풀숲에서 나타난 흑의인이 고개를 젓자, 흑의인들의 시선이 풀숲에서 나타난 자에게서 이환연의 무리 쪽으로 옮겨졌다.
"목격자가 너무 많다. 모두 정리한다."
"예."
흑의인들이 모두 검을 뽑아 들고 기세를 올렸다. 불길하고 답답한 기운.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세를 흑의인들이 뿜어냈다.
이환연은 그 기세만으로 그들의 소속이 어딘지 알아낼 수 있었다.
'마교…!'
그들은 이환연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
마교.
그들은 30년 전까지 중원과 끊임없는 전쟁을 해오던 세력이었다.
강한 힘을 추구하고 손속에 자비가 없었으며, 목표를 위해 자신의 목을 날리면서까지 이루어내는 악착같은 성격을 가졌으며.
그런 그들의 손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으니. 그들의 존재를 두려워 않는 존재가 없었다.
30년 전, 마교는 중원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표면상으로는 마교와 중원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따금 이런 식으로 침입한 마교도들에 의해 피해를 입는 곳이 있었다.
이환연의 가문 또한 그러했다.
이가장은 본래 세가로써, 이환연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평화에 금이 간 건 마교의 교주로부터 시작되었다.
천마신교의 천마.
그가 어째서 중원에 발을 들였는지, 어째서 그의 발이 도착한 곳이 자신의 가문이었어야 했는지, 그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천마는 직접 발을 옮겨 가문에 몸을 들였고. 이환연의 형, 이환야를 데려갔다.
이후 내부가 발칵 뒤집힌 가문은 이환야를 찾아오기 위해 수도 없이 마교에 숨어들고 공격도 했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오히려 침략이라는 명분으로 교도들에게 공격받아 멸문당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몸을 피해 빠져나오는 것에 성공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이환연 자신과 이환위는 살아남아 이가장으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아버지. 이혁린은 집안의 안전을 위해 이환야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마교와의 악연을 더 이상 쌓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이환연은 그 날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천마가 이환야를 데려갔던 그날. 이환야는 천마가 오기 직전, 무언가를 느꼈는지 이환연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겼다. 그리고 근처에 있을 이환연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순순히 천마를 따라가는 것을 택했다.
이환야와 천마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진 모른다. 이환연은 불길함에 급히 뛰쳐나왔으나 보이는 건 천마를 따라가는 이환야의 뒷모습이었다.
어릴 적 지독히도 약했던 신체 탓에 이환연은 뛰어나온 것만으로도 힘을 다했다. 이환야를 붙잡을 수도,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저 답답하게 아파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무력하게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잊을 수 없었다. 이환연은 명령으로까지 해서 가문의 과거를 묻으려는 이혁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 날의 이환야의 뒷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자신의 가슴 속에 새겼다. 가문을 공격한 교도들의 마기를 똑똑히 지켜보고 기억했다.
강호에 나온 지금. 이들을 만나는 순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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