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알렐루야.

노트르담 드 파리 | 콰지에스

by 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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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_욥기 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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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추물. 노트르담의 종지기란 그런 것이다. 당나귀 털처럼 거친 머리칼은 산수유와 같은 붉은 색이며, 일그러진 얼굴 거죽은 순수함과 절망으로 이지러진다. 외눈박이인 그는 두 줄의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뒤틀린 등은 노트르담의 첨탑처럼 솟아올랐으며 휜 척추와 절뚝대는 다리는 성당의 뼈대처럼 굳건하다. 가련한 꼽추는 그 자체로 성당의 영혼이었다. 그의 친구인 가고일 석상들과 꼭 닮은 추한 형상. 높은 종탑에 올라앉아 지상을 굽어보는 괴물. 결코 자신을 위해, 그의 행복을 위해 종을 울려본 적 없는 종지기. 낡은 종탑만이 그의 세상이자 은신처다. 불공평한 이 세상으로부터 저를 갈라놓은 채. 그럼에도 파리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평범한 삶은 추한 꼽추가 죽도록 갈망하는 달콤한 축복이었을진대. 콰지모도는 제 발밑으로 기어다니는 그들을 지독히 사랑하고, 또 증오한다. 벽에 매달려 내려다보는 작은 삶들은 콰지모도에게 희한한 위안을 안겨 주었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손쉽게 짓뭉개버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율에 휩싸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전율이 온 몸을 휩쓸고 시린 정적만을 남겼을 땐 콰지모도는 끔찍한 혐오에 몸을 떨며 그의 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울퉁불퉁한 손을 모아 쥐고 하늘을 바라본 꼽추의 얼굴은 후회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채 쉴 새없이 흐르는 눈물로 얼룩진다. 오, 아버지. 나의 창조주시여. 부르튼 입술 새로 토해내는 것은 굶주린 짐승의 것과 같은 거친 울부짖음이다. 성당의 뼈가 흐느끼고, 탑이 진동한다. 갈라져가는 그 울음에 종지기의 애인들이 신음하며 잘게 떨고, 차마 그를 달래줄 수 없음에 재차 침묵한다. 가엾은 꼽추는 신의 이름 앞에 죄악을 게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키마이라의 우짖음이 점차 사그러들어갈 때쯤 문득 콰지모도는 생각한다.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서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능하신 이의 이름 앞에 엎드려 가슴을 쥐어뜯고 입술을 짓씹으며 온 힘을 다해 회개하는 참회자의 모습을. 이 모든 걸 지켜보실 그의 주를. 그리고 콰지모도는 몸을 일으킨다. 태산과 같은 등을 흔들며, 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다시 죄를 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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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모도는 때때로 어둠에 잠긴 텅 빈 광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떠올린다. 돌바닥 위로 맨발을 내딛으며 춤을 추는 집시 여인을.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을. 성한 한쪽 눈으로밖에 그녀를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말았던 그 날의 저주를.

광장의 이방인들은 집시들의 노래를 부른다. 성가대가 부르는 거룩한 찬송과는 동떨어진, 불결한 소리. 마치 비명과도 같은 노랫소리는 파도처럼 콰지모도의 귓전을 때리고 진흙처럼 질척하게 흘러내린다. 그들은 누굴 향해 찬양하나. 그들 자신인가? 이방인들의 신인가? 혹은 그들의 여왕인가. 감히 바라보아서도 안 될 죄악. 하지만 본디 죄악이란 사랑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 않은가. 달콤한 과육에 길들여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 바짝 마른 목에 축여진 한 모금의 물은 얼마나 감미로웠던가.

탬버린 소리에 맞춰 집시들은 더러운 발을 구르고 나병 환자처럼 온 몸을 더듬으며 춤을 춘다. 그 탬버린을 든 사람은, 에스메랄다. 아, 에스메랄다. 혀가 아리도록 달콤한 그 이름. 콰지모도는 잔뜩 쉰 목을 재촉해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른다. 에스메랄다, 에스메랄다. 어떤 보석이 그대 검은 눈동자보다 찬란할까요? 그 어떤 실이 물결치는 그대 아름다움을 수놓을 수 있나요? 그리고 감히 어떤 비단이 그대 아름다운 마음씨만큼 고울 수 있을까요. 마치 그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듯 콰지모도는 어느새 두 손을 모아 쥔다.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은 꼽추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진다. 으르렁거리고 씩씩대는 그 얼굴은 마치 가고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형상이다. 그리고 그는 외친다. 에스메랄다, 날 바라봐줄 수 있나요. 이런 날 사랑해줄 수 있나요, 에스메랄다. 세상의 불행을 짊어진 그의 등은 이제 흐느끼고 있다. 마디가 하얘지도록 맞잡은 두 손이 경련하며 풀어진다. 눈물을 머금은 외눈이 광장을 비추는 여명과 마주치고 나서야 그는 깨닫는 것이다.

불행한 꼽추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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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랄다는 사랑을 노래한다. 백마를 탄 그녀의 애인에게 더 큰 사랑을 바치기 위해. 한 마리의 제비와도 같은 그녀에게 콰지모도는 차마 추악한 욕망을 드러낼 수 없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온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한다는 것을.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외침은 꼽추의 거친 목구멍 깊숙히 욱여넣어진다. 그리고선 달디 단 유황불이라도 삼킨 것마냥 투명하게 웃는 얼굴 위에 고통에 가득 찬 눈물을 흘리곤 하던 것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광장에서, 성당의 벽을 타고 아득히 들려오는 집시의 노래를 들으며 콰지모도는 한낮의 꿈을 꾼다. 그녀가 노트르담 성당으로 찾아와 제일 큰 마리아의 웅장한 축가 아래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하지만 에스메랄다가 바라보는 이는 불운한 꼽추가 아니다. 태양처럼 빛나는 왕자는 멋진 철 갑옷을 두른 채, 흰 드레스를 입은 에스메랄다의 갈색 피부에 입 맞추고 휘날리는 꽃잎 밑에서 아름다운 춤을 춘다. 그리고 콰지모도는 그들을 위해 제일 큰 마리아를 울린다. 뎅, 뎅, 뎅. 마리아의 울음에 항상 몸을 떠는 허름한 종루에서 거대한 종의 움직임을 좇으며. 미래를 약속하는 반지의 영원함을 저주하며. 막 하나가 된 연인들의 환호성을, 속삭여지는 달콤한 언약들을 들으며. 종지기는 종을 울린다. 그들을 위해. 생생한 꿈을 꾸고 나면 고행자처럼 몸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면서도 콰지모도는 차마 상상할 수 없다. 에스메랄다와 함께하는 자신의 모습을. 곱사등이에 애꾸눈, 다리를 저는 괴물을 더 추하게 만드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떠올릴 때면, 콰지모도는 뒤틀린 입술을 한껏 구기며 황홀한 웃음을 짓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제 저주받은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었노라고. 어둠의 독수리들이 살점과 뼈를 모두 뜯어내고 부수면 그 자리에 온전히 남는 것은 더 커다란 사랑 뿐일 것이라고. 이리저리 굽어지고 뒤틀린 가련한 몸에 얼마나 많은 애정이 들어차 있는지 그녀는 절대 알지 못하리라. 콰지모도는 미소짓는다. 울긋불긋 얼룩진 그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 있으며, 또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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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모도는 숨을 고른다. 오, 단 한번만 그녀를 만져볼 수만 있다면. 하나뿐인 시야에 맺히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면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강줄기처럼 흐르는 검고 굵은 머리카락과 달빛이 빚어낸 것 같은 고아한 얼굴, 빛나는 갈색 피부와 시원시원하게 쭉 뻗은 팔 다리. 에스메랄다가 그의 앞에 있다. 하지만 극장의 커튼처럼 우아하게 걷힌 눈꺼풀 밑 석탄같은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있다. 토끼같이 크고 맑은 눈은 제 얼굴을 가린 채 입술을 짓씹는 꼽추를 향해 천천히 깜빡인다. 마치 나비처럼 천천히 유영하는 속눈썹의 움직임에, 콰지모도는 숨을 쉴 수조차 없다. 그리고 그 순간 결심한다. 그녀를 지켜주겠노라고. 가장 높은 곳에서 항상 지켜보며 그녀의 낮과 밤을 편하게 해주겠다고. 걱정말아요, 난 언제나 깨어있을테니. 그댈 지켜줄게요. 콰지모도는 미소짓는다. 다시 한번, 그의 친구들을 닮은 미소를.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부드러운 손과 투박한 손이 마주잡은 그 순간을 콰지모도는 절대 잊지 않는다. 아니, 잊지 못한다. 성당의 장미창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던 그녀의 모습을. 오로지 그에게만 닿은 위안을. 그의 여신이 콰지모도, 그를 위해 미소지은 찰나의 열락을.

에스메랄다. 그녀는 고운 갈색빛 손을 들어 가벼이 입맞춘다. 비틀린 입가에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기쁨을 담은 꼽추를 보며. 제 손길이 닿은 손등을 어루만지며 즐거운 듯이 휘청거리는 그를 바라보며 에스메랄다는 꼽추의 얼굴로 하여금 느꼈던 두려움조차 모두 잊은 채, 비틀대는 걸음을 따라 즈려밟으며 봄꽃과도 같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꼽추는 점점 멀어져 간다. 일그러진 얼굴에 말간 선의를 띄운 채로. 다리를 절뚝거리고 등을 꿈틀대며 성당의 기둥들 사이로 사라진다.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의 단단한 어깨, 억센 팔. 무엇 하나 손아귀에 잡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허공을 가른 손은 가지런히 모아진 채 가슴께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녀는 기망하고 마는 것이다. 그 앞에 무릎 꿇어 본 적도 없는, 성모 마리아에게. 아베 마리아. 저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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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솟은 기둥의 거대한 그림자는 꼽추를 내려다보며 온통 덮어 삼킨다. 콰지모도는 어둠 속에 잠겨 길을 찾아 헤멘다. 그의 에스메랄다에게로 가기 위해. 부드러이 얼굴을 감싸는 작은 빛을 느끼자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쳐든 채 돌처럼 굳어간다. 해를 따르는 해바라기처럼, 꼽추의 하나뿐인 시선은 단단히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더러운 집시, 이교도, 저 이방인. 푸르른 치맛자락에 스며들어 검게 물든 죄악. 허나 무릎을 꿇고 마리아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그녀에게. 보잘것없는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게. 높은 종탑에서 바라보아도 영영 닿을 수 없도록 구름처럼 날아오르던 그녀.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에게 손을 뻗는다. 날개를 펼쳐도 한없이 작을 뿐인 제비에게 가엾음을 느끼고, 뜨거운 눈물에 달구어지는 가슴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녀의 것과 함께 울렁이는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면 콰지모도는 의심하고 만다. 신은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가. 더럽고 불결한 집시 여인의 기도를 듣고 있는가. 콰지모도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향유로 씻겨진 손을 들어 가슴팍에 모은다. 열이 올라 거칠어진 입술에서는 닳아빠진 음성이 흘러나온다. 아베 마리아, 기도를 듣고 있다면, 부디 그녀를 가엾게 여겨주소서. 텅 빈 성당 안, 무릎꿇은 그들의 바람은 마침내 한 목소리가 되어 울린다, 지켜주소서, 이 세상에 가득찬 죄악과 불행들로부터. 콰지모도는 기도를 마친 채 지쳐 잠든 집시를 바라본다. 고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 줄기 눈물을 향해 손을 내미려다, 마구 꺾이고 튀어나온 그 투박함에 진저리를 치며 다시 거두고 만다.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두 줄기의 슬픔이 흘러내리고 있다. 울퉁불퉁한 얼굴을 타고 내려와, 붉은 옷깃을 적시고 성당 바닥에 조그마한 자욱을 남긴다. 콰지모도가 여기 있었다. 에스메랄다,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깨지지 않을 맹세를 했노라. 장미창에 산산히 부서져 조각난 채 성당 바닥을 수놓는 달빛은 집시 여인을 비춘다. 몸을 감싸안은 채 평화롭게 잠든 그녀를. 감히 거룩하다 고할 수 있는 그 자태를. 콰지모도는 속삭인다. 그대 일상의 안온함이 영원하기를. 그리곤 다짐한다. 그댈 영원토록 찬양하겠다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들이 그댈 기억하게 하겠노라고. 에스메랄다를, 기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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