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2차 창작

[정환수겸] 김감독의 내 집 마련 프로젝트 05

하와이에서 생긴 일

* 굳이 표기하자면, 대협→정환수겸


여기는 지상 최대의 휴양지, 하와이. 이곳에서 무려 6박 7일의 꿀 같은 신혼여행…을 빙자한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내 남편의 전 애인을 마주치고야 말았다면?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에 당황할 새도 없이, 이쪽으로 오는 정환을 향해 수겸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지 마. 이리 오지 말고 저쪽으로 좀 가라, 제발!

바쁘게 움직이는 수겸의 눈동자 신호를 잘못 해석했는지, 정환은 오히려 빠르게 다가왔다. 결국 수겸은 등을 돌려 잠시 후 벌어질 사태를 외면하고자 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정환이 마침내 그 옆에 서 있던 대협을 발견했다.

“너…. 윤대협?!”

“정환이형, 오랜만이네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삼자대면이었다. 수겸은 마지못해 정환을 돌아보았는데, 이 사태에 가장 놀란 건 아무래도 정환인 듯했다. 몹시 당황한 얼굴로 수겸과 대협을 번갈아 보던 그가 대협에게 물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어떻긴요. 저도 휴가 왔죠. 우리 사귈 때도 여기 자주 놀러 왔었잖아요.”

수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자 정환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수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쩐지 첫날부터 여기저기 능숙하게 다니더라 싶었는데. 한두 번 와봤던 게 아니었구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건 수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더 열 받는 건, 지금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형, 결혼했다는 소식 들었어요. 결혼하니까 기분이 어때요?”

“….”

“당연히 좋으시겠죠? 첫사랑이랑 결혼하셨는데.”

순간 머리에 번개라도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수겸은 방금 들은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싶었다. 그러나 정환과 눈을 마주친 순간,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자마자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허어-? 설마 몰랐어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그 윤대협 조차도 놀란 반응을 보였다. 수겸은 자신의 시선을 외면하는 정환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방금 그 말이 사실이야?”

“….”

“이정환! 사실이냐고 묻잖아!”

정환이 낮은 한숨을 쉬며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수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수겸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게 왜 안 중요해!! 내가 미리 알았으면, 너한테…!”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수겸은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제삼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정환에게 더는 화를 내고 싶지가 않아서 수겸은 자리를 뜨기로 결심했다.

“수겸아-!!”

정환이 그대로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수겸의 팔을 붙잡았으나, 수겸은 잡힌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 가버렸다. 멀어지는 수겸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정환이 이내 머리를 부여잡고 선베드에 주저앉았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대협이 정환의 곁에 다가와서 그 옆에 앉았다. 정환은 그런 그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너 설마 일부러 온 건…. 아니다, 내가 무슨 소릴….”

“일부러 온 거 맞아요.”

대협의 대답을 들은 정환이 그제야 옆자리에 앉은 대협을 돌아보았다. 대협은 선베드에 모로 앉아 양발을 번갈아 까딱거렸다. 시선은 계속 움직이는 발끝을 향해 있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형이 진짜 행복한지.”

“너 그게 무슨…?”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대협이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정환의 시선이 자연스레 대협의 휴대전화로 향했다. 잠금 화면엔 하얀 턱시도를 입은 정환이 활짝 웃고 있었다.

정환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대협이 씁쓸하게 웃었다.

“태산이한테 부탁했어요. 결혼식장에서 형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형이 턱시도 입은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요.”

“….”

“근데 사진 보니까 형이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그래서 궁금했어요. 진짜로 행복한가.”

내가 없어도 행복한 건가. 형은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건가. 대협은 차마 뒷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이미 자신의 시선을 외면하고 돌려버린 고개와 다물어진 턱이, 마치 자신의 마음까지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저 국내 리그로 복귀해서 다음 주면 귀국해요.”

대답은커녕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형이 예전에 저한테 그랬었죠. 너 지각하는 습관 못 고치면 나중에 정말 중요한 순간에 지각하게 될 거라고.”

아, 이제서야 돌아본다. 정환과 눈이 마주치자 대협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려 했다. 그러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사실은 울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형. 제가 너무 늦었나요?”


수겸은 근처 해안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걸으면서 머릿속으론 끊임없이 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하며 자신이 했던 말들을 되뇌었다.

‘방금 그 말이 사실이야?’

‘이정환! 사실이냐고 묻잖아!’

‘이게 왜 안 중요해!! 내가 미리 알았으면, 너한테…!’

미리 알았으면, 너한테 절대로 청혼 안 했을 거야. 내 욕심 때문에 네 감정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발끝에 걸리는 애꿎은 모래알들을 퍽퍽 발로 차면서 화풀이를 하듯이 걸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건지. 이미 혼인신고도 진작 했고. 온 동네 시끄럽게 사방팔방 소문내면서 결혼식까지 마쳤는데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겸은 스스로 너무나 화가 났다. 정환의 후배들이 찾아왔던 그 날, 정환과 만났을 때 거절할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그만두자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 애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꾸미는 게 아니었는데.

모래사장 한복판에서 수겸의 걸음이 멈추었다. 자꾸만 눈앞에 결혼식장에서 서로 반지를 교환할 때 보았던 정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수겸이 한숨과 함께 거친 숨을 토해내었다.

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 리가 없을 텐데.

문득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해는 이미 반쯤 수평선 아래로 넘어가고 있었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이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수겸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서, 정환에게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김수겸의 사전에 문제를 직면했을 때 회피하는 법은 없었다. 늘 그래왔듯이 물러서지 않고 담판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맨정신으론 도저히 정환의 얼굴을 볼 낯이 없어서 약간의 도움은 빌리기로 했다.


카드키가 도어락에 닿자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돌아갔다. 홀로 호텔 룸에 앉아서 초조하게 발코니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던 정환이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기다리던 사람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수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정환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수겸아…!”

“이정환.”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것도 잠시, 이내 어색해져서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흔들리는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서 방황하던 정환의 앞에 수겸이 가지고 온 비닐봉지를 들어 올려 흔들어 보였다. 봉지 안의 맥주병들이 서로 부딪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같이 마실래?”


어른이 되고 나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술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그래서 너 말이야….”

“응?”

“나 언제부터 좋아했냐?”

그래서 이렇게 술기운을 빌려 속에 있는 말도 꺼내 본다. 맨정신이었으면 도저히 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망한 기분은 여전해서 수겸은 딴청을 부리며 애꿎은 술잔만 빙빙 돌렸다.

“모르겠어…. 하도 오래전이라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그게 뭐냐? 첫사랑이라면서. 그걸 까먹어?”

“까먹은 게 아니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냥…. 언제부턴가 쭉 좋아했어.”

대답을 마친 정환이 남은 술을 모두 털어 넣고 술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웠다. 평소 같았으면 수겸이 채워줬겠지만, 이 어색한 분위기에선 좀처럼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근데 왜 나한테 고백 안 했냐?”

“하하…. 그게 궁금해? 왜? 그때 고백했으면 받아줬을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네가 안 했으니까.”

“고백…. 하려고 했었어. 결국 못 했지만.”

정환은 술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쓸쓸한 얼굴이었다. 고백조차 해보지 못하고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첫사랑을 다시 떠올린다는 건 그런 기분이겠지. 그러나 곧 털어버리려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한 모금 마신 후에 수겸에게 말했다.

“내가 고백하려고 할 때마다 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수겸은 저도 모르게 이마 한쪽에 자리 잡은 흉터로 손이 갔다. 이미 오래전에 다친 그곳엔 새로 자라난 살이 뒤덮여서 이제는 하얀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그 하얀 흉터를 매만지며 수겸 또한 생각에 잠겼다.

정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수겸은 결코 평탄하다고 볼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전국 제패를 꿈꾸고 뛰었던 코트 위에서 부상을 당해 쓰러졌고 팀은 그대로 탈락했다. 괜찮다고,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후 복잡한 사정으로 수겸은 농구부의 감독직까지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의 인터하이에서 언더독으로 불리던 학교에 패배해 예선 탈락하였다. 정환은 이 모든 걸 다 지켜본 장본인이었다.

고백하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수겸이 당시에 정환의 고백을 받아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정환도 그렇게 느끼고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치한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고백도 안 하고 포기를 하나? 그 정도로 좋아했던 건 아니었나?

마침 정환의 잔도, 처음 따놓은 맥주병도 비어있었다. 수겸이 새 맥주병을 꺼내 병따개로 뚜껑을 땄다. 뻥 소리가 나며 병뚜껑이 테이블 너머로 날아갔다. 수겸이 다시 정환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슬쩍 운을 떼었다.

“내가 원래 이런 거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닌데. 아무튼.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되냐?”

“뭔데?”

“너 윤대협이랑 언제 사귀었어?”

이크. 하마터면 잔이 넘칠 뻔했다. 넘치기 직전에 병을 세우자 다행히 거품만 위로 올라오고 넘치진 않았다. 잔을 받아서 든 정환이 부스스 웃었다.

“나 해남대 다니다가 중간에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갔었거든. 마침 우연히 윤대협도 같은 지역에 있는 대학 농구팀 소속으로 유학 중이었고. 뭐 타지에서 동향 사람끼리 자주 만나다 보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했던 거였군.

“내가 원래 이런 거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닌데, 크흠…. 그래서 얼마나 사귀었어?”

“음, 꽤 오래 만났는데…. 유학 내내 사귀었고, 나 먼저 귀국하고도 꽤 오래 롱디 했었으니까.”

“뭐야…. 근데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냐?”

“대협이가 워낙 유명한 선수니까. 나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끝까지 좋은 놈이었네. 재수 없는 녀석. 그러니까 그 잘난 윤대협이 헤어지고도 미련이 넘쳐서 신혼여행지까지 쫓아오고 그랬겠지.

수겸이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잔에 담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탕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정환에게 또 물었다.

“정환아. 내가 원래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아닌데….”

“하하. 그냥 물어봐도 괜찮아.”

“…윤대협하고는 왜 헤어졌어?”

이번엔 답이 바로 나오진 않았다.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수겸도 가만히 앉아 정환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함께하는 미래가 보이질 않아서.”

고심 끝에 내놓은 답이었다. 그럼 나와 함께하는 미래는 보이냐고. 수겸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술과 함께 말을 삼켰다.

잠시 정적과 함께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이정환. 정적을 깨고 수겸이 정환을 불렀다. 정환이 돌아보자 수겸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고 있었다.

“나 오늘 궁금한 거 다 물어본다. 너 솔직하게 대답해.”

수겸의 기세에 움찔한 정환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너 나랑 결혼한 이유가 진짜로 뭐야?”

“음…. 첫사랑이 아무하고나 결혼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뭐? 그게 다야? 진짜로? 딴마음 있는 거 아니고?”

“사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잠시 어색해진 공기에 둘 다 말을 잃었다. 각자 자기 술잔만 쳐다보고 있는데 수겸이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소리쳤다.

“그럼 저번에 내가 물어봤을 때는 왜 이혼하면 알려준다고 그랬어?”

“하아…. 내가 너 좋아서 결혼한다고 하면 너 나랑 결혼 안 해줄 거였잖아.”

“그건 그런데…. 그래도 어떻게 이혼할 때 알려주려고 했냐! 그때까지 사람 속이고 나중에 미안하게 만들려고?!”

“아니, 그럴 의도까지는….”

“아니긴 뭐가 아닌데. 진짜 나만 나쁜 놈 만들려고.”

억울해 보이는 수겸의 얼굴을 보자 정환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난 그냥…. 네가 이혼하자고 할 때 고백하면서 한 번 붙잡아나 보려고 했지.”

“허? 그래서, 내가 만약에 망설이면?”

“그땐 내가 네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려야지.”

이젠 수겸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두 사람 다 한결 풀어진 모습으로 킬킬거리며 웃었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수겸이 먼저 말했다.

“미안해. 네 마음을 이용하려던 건 아니었어.”

“네가 뭐가 미안해. 너한테 숨긴 건 난데. 그리고 결정도 내가 한 거야.”

“이정환.”

“응?”

“너…. 아직도 나 좋아해?”

허공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 술기운이 올라선 지 둘 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답을 기다리는 수겸의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응….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정환의 표정은 결혼식장에서 반지를 교환할 때 보았던 그때와 비슷했다. 진짜 왜 몰랐을까. 바보같이.

“미안. 사실 나는 엄청 갑작스러워서….”

“알아.”

“나는 솔직히…. 네가 싫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

“응. 이해해.”

잔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진심이었다. 수겸은 더는 정환을 속이거나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정환이 먼저 진심을 내보인 만큼 이제는 수겸도 진심을 다해서 정환을 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환아. 우리가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부부니까….”

이 관계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 사이에 더는 비밀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서로 숨기는 건 없었으면 좋겠어.”

“그래. 약속할게.”

수겸이 먼저 잔을 내밀자 정환도 잔을 내밀었다. 두 술잔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하와이의 밤이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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