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2차 창작

[정환수겸] 김감독의 내 집 마련 프로젝트 04

동네방네 소문 내자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수겸과 친구라는 이름으로 알고 지낸 시간만 해도 어언 20여 년이지만 현준은 아직도 김수겸이란 인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보통의 그는 현준의 예상 범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가끔은 상식 밖의 행동을 해서 현준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전부 당황을 넘어서 경악의 연속이었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바로 이 자리에서 수겸은 현준에게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했었고, 거절당하자마자 뛰쳐나가더니 이정환한테 프러포즈하러 갔다. 근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정신 나간 프러포즈는 성공했고, 이 결혼을 담보로 넣은 주택청약엔 덜컥 당첨되어버렸으며, 이제는 진짜로 결혼한다며 동네방네는 물론 온 세상에 소문까지 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현재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뉴스 메인은 프로선수 출신 대학리그 감독인 김수겸의 결혼 기사로 도배되어 있다는 말이다. 현역도 아니고 은퇴한 선수의 결혼 소식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결혼 상대가 꽤나 있는 집 자식이다 보니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기에 딱 좋았다. 게다가 김감독이 최근에 저지른 ‘예비 신랑과 그의 직장 앞에서 벌인 찐한 애정행각’은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많은 목격자가 사진과 동영상으로 온갖 증거를 남겨둔 덕에 SNS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간 뒤였다.

정작 사고를 친 당사자는 지금 현준의 앞에서 태평하게 음료나 홀짝이고 있었지만.

“다들 왜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니까.”

“그럼 뭐. 회사 로비에서 사장 아들한테 키스를 갈겼는데 사람들이 모른 척하고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어?”

“키스 아니었어. 그냥 얼굴에 입술만 좀 문댄 건데…. 축하 세레머니 같은 거였다고!”

“그러니까 그 세레머니를 왜 공공장소에서 하셨냐고요.”

“아니…. 나 참, 억울하네. 선수 시절 땐 경기 중에 골 넣은 후배한테 입술 박아도 기사에 별말 없었다고. 그땐 ‘기쁨을 주체 못 하는 김수겸 선수’, 뭐 이 정도였단 말이다!”

사실 현준은 수겸의 저런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상양고에서 함께 농구 하던 시절에도 수겸은 감독 역할을 할 때나 근엄했고, 선수로 뛸 때는 텐션이 10배는 높아져서 누가 슛이라도 성공했다 치면 득달같이 달려가 뽀뽀 세례를 퍼붓곤 했었다. 폴짝 뛰어서 안기는 것도 당시 같이 뛰던 주전들이 대부분 키가 커서 고목나무에 매미마냥 매달렸던 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같겠냐고요. 이 사람아….

“이정환은 뭐래? 기사 봤을 거 아냐.”

“기사 잘못 나왔다던데? 자기네 집이 재벌까지는 아니라고. 그리고 2세 아니고 3세래.”

“하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냐…. 아니, 도대체가 너희 둘 중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왜 없는 건데?”

수겸은 둘째치고, 이정환은 분명 현준이 기억하던 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다분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뀌면서 어딘가 잘못된 건지. 수겸을 통해 전해 들은 이정환은 현준이 알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긴 한가 싶었다.

“근데 나는 왜 보자고 한 거야? 설마 기사 난 거 자랑하려고 한 건 아닐 테고.”

“아, 맞다. 현준아. 네가 우리 결혼식 사회 좀 봐줘라.”

그러면서 테이블 위로 청첩장 한 장을 쓱 올려서 현준에게 내밀었다. 사회를 보는 거야 어렵진 않지만, 시간을 비우려면 날짜를 미리 확인해야 했다. 봉투를 열어서 안에 담긴 청첩장을 꺼내 열자마자 보이는 건, 하얀 종이 위 정갈히 써진 글씨들이었다. 으레 그렇듯이 결혼 소식을 알리기 위한 뻔한 문구가 적혀 있을 거로 생각해 무심히 읽던 현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 이게 뭐야…? ‘반대편 코트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던 저희 두 사람, 이제는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어, 어억-?”

“야, 그만해…! 소리 내서 들으니까 나도 닭살 돋는다!”

수겸이 기겁하면서 진짜 닭살이라도 돋았는지 양팔을 번갈아 가며 벅벅 문질러댔다. 들고 있던 청첩장을 도로 내려놓은 현준은 무슨 못 볼 꼴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허옇게 질려있었다. 진짜 속이라도 안 좋은 듯 한 손으로 배를 짚고선 현준이 물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낯 간지러운 멘트는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그게…. 우리 결혼 준비 도와주는 플래너가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셨냐고 물어보길래. 고등학생 때 같은 지역 농구선수였다고 했더니 너무 아름다운 스토리라면서 청첩장 문구에 넣는 게 어떻겠냐고….”

“아무리 그래도 미화가 너무 심하지 않냐? 나도 분명 그때 같은 코트 위에 있었는데 내 기억은 이렇지 않다고!”

“안 그래도 얼마 전에 권혁이랑 다른 상양 친구들 만나서 청첩장 줬는데. 걔들도 다 너 같은 반응이더라.”

“물론 너희가 코트 위에서 서로를 보고 있기는 했지. 아주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지.”

“그건 그래. 그때는 3년 내내 목표가 타도 해남, 타도 이정환이었으니까.”

어느새 그들은 같은 추억을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우여곡절 많았던 고등학교 농구부였지만 그곳에서 하고 또 해도 재미있는 모험담과 평생 보게 될 친구들도 얻었다. 이런 추억을 함께 공유한 친구가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한다니. 현준은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튼. 네 결혼식 사회는 내가 맡을게. 어떻게든 시간 맞춰서라도 이건 해야지.”

“그래. 고맙다.”

“결혼식엔 또 누가 와? 내가 아는 사람이 상양 애들 말고 또 있을까?”

“글쎄. 아, 남진모 감독님 기억나? 그 당시에 해남 감독님이셨던. 그분이 우리 주례 봐주시기로 했어.”

“생각난다. 그 고릴라 닮으신 감독님. 맞지?”

“맞아. 여전하시더라. 그리고 또, 준섭이랑 호장이 기억하나?”

“얼굴 보면 기억날 거야. 근데 그 둘, 저번에 너한테 찾아와서 이정환이랑 파혼하라고 했다던 그 후배들 아니냐?”

“아, 그건 저번에 정환이랑 넷이 만났을 때 사과받았어. 그날 만나서 청첩장 줬는데 전호장이 그러더라. 자기가 꼭 축가 부르고 싶으니까 하게 해 달라고.”

“뭐? 그래서 하기로 했어?”

“하라고 했지. 꼭 하고 싶다고 사정사정을 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 그 녀석 축가 부르러 나와서 괜한 소리 하는 거 아냐? 저번에 너한테 찾아갔던 것처럼 아직 앙금이 남아 있을지 모르잖아.”

“에이, 설마. 그리고 뭐, 결혼식장에서 난리 좀 치면 어때. 그럼 빅 이벤트 하나 더 추가되는 거지.”

“제발 부탁인데, 이 이상 화제가 되는 건 삼가 줘.”

상상만 해도 재밌는지 웃기 시작한 수겸과 달리 현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이 결혼도 현준의 시선으로 봤을 땐 너무 요란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헷갈리기도 했다. 이 결혼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주택청약을 위한 무리수였다는 사실을 자꾸 잊게 되는 것이다.

“너 청약 당첨된 아파트는 입주일이 언제야? 결혼식 지나고 들어가나?”

“응.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바로 들어가면 딱 맞아.”

“뭐? 너 신혼여행도 가?”

“어. 그렇게 됐다.”

현준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아무리 이 결혼이 김수겸과 이정환이 작당 모의해서 성사된 퍼포먼스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말이 안 됐다.

“아니, 너희가 신혼여행을 왜 가는데? 너네 설마 그동안 모두를 속이고 진짜로 사귀고 있었던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있냐. 나도 원래 신혼여행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정환이가 꼭 가야 한다고 그러잖아.”

“그 녀석 무슨 꿍꿍이야, 대체?!”

현준이 정환에 대한 의심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는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수겸이 말했다.

“신혼여행 가면 정환이네 회사에서 유급휴가 별도로 5일 나온다고 무조건 가야 한다던데?”

“그럼 인정이지. 나라도 간다. 무조건 간다.”

그 말 한마디에 현준의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원래 경조 휴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쓰는 거지. 근로자라면 응당 누려야 할 권리지. 

그런데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이 개운하지 않은 느낌은 왜일까. 잠깐만, 아까 수겸이가 뭐랬더라? 정환이?

“너 근데 언제부터 이정환을 정환이라고 불렀냐?”

“…내가 그랬다고?”

심지어 자각도 없어?!

현준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린 안경을 다시 추켜올렸다. 김수겸은 겉으로 보기에 낯가림이 없고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속으로는 엄청 벽을 쳐놓고 정말 친하다고 믿는 소수의 사람만 곁에 두는 인간관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수겸이 자신과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을 떼고 친근하게 이름만 부르는 경우는 없다고. 현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 짧은 시간에 수겸이 벽을 허물만큼 이정환과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너, 고새 이정환이랑 많이 친해졌나 보다?”

“결혼 준비하느라 자주 봤더니. 좀 편해졌나 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수겸을 보며 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이제 한배를 탔으니까.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그렇지. 우린 공범이니까.”

“…너는 좀 입조심을 할 필요가 있어. 너 만약에 이거 들키면 청약 자격 박탈로 안 끝나는 거 알지? 까딱하다간 법원에서 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조심하려고. 우리 결혼한다고 기사도 뜨고 순식간에 여기저기 퍼지는 걸 보니까, 내가 꼭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영…. 찝찝하달까….”

“그만! 너 지금부터 공범, 사기, 이런 단어 전부 금지야. 그리고 너희 결혼에 이런 비리가 있는 걸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그러는 너도 입에서 비리라는 말이 잘도 나오면서 뭘. 내 주변엔 너 말고 없고. 정환이 주변엔 준섭, 호장이 말고는 모를걸?”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그 둘이 과연 끝까지 비밀을 지켜줄까?”

“걱정 마. 둘 다 이정환의 아주 충직한 후배들이라. 정환이한테 해가 가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수겸이 호언장담했지만 현준은 좀처럼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니 그저 이 결혼이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어쨌든 시간은 간다. 수겸은 정말이지, 눈뜨니 결혼식장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결혼식 날이 가까워질수록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빴던 건, 결혼식 당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음을 이 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헤어니 메이크업이니 하는 것들을 받고, 비싸지만 불편한 턱시도로 갈아입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예식장에 도착하니 온갖 인파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수겸은 이날, 살면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 웃으면서 인사하고 악수하느라 얼굴엔 경련이 오고 손에 더는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투정 부릴 수도 없었다. 정환은 수겸보다 배는 더 바빴기 때문이었다. 정환의 하객이 훨씬 많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수겸을 찾는 하객들이 없는 틈을 타서 뻣뻣해진 목덜미를 주무르고 있는데 뒤에서 수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돌아보자, 멀끔하게 차려입은 준섭과 호장이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준섭의 옆에는 비슷한 키를 가진 남자가 한 명 더 서 있었는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수겸이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쓰는데 준섭이 먼저 눈치껏 그를 소개했다. 

“감독님, 결혼 축하드려요. 이쪽은 제 친구 황태산이요.”

“그래. 와 줘서 고맙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겸이 먼저 손을 내밀자 태산이 마주 잡고 짧게 악수를 하며 꾸벅 인사했다. 말수가 적은 친구인 것 같았다. 이 사람 저 사람 상대하느라 지친 수겸으로선 차라리 이쪽이 더 편했다. 그러나 이 정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감-독-님-! 이렇게 입으시니까 진짜 멋지시네요-?! 물론 우리 정환이형 만큼은 아니지만.”

“너야말로 그렇게 머리 단정하게 묶은 거 처음 본다? 너도 양복이 있긴 했구나.”

“무슨 소리예요. 그러면 결혼식 오는데 머리를 산발하고 오겠어요? 그리고 오늘 제가 축가 부르는 거 잊으신 거 아니죠? 기대나 하고 계십쇼!”

“기대는 무슨. 너야말로 축가 부르다가 울지나 마!”

“네? 제가 울긴 왜 울어요!!”

농담으로 던진 말에 발끈해서 꽥꽥거리는 호장을 보고 수겸도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약 한 시간 뒤, 수겸은 자신의 입이 방정이었음을 깨닫고 함부로 입을 놀린 걸 후회했다. 정말 말이 씨가 됐는지, 축가를 부르던 호장이 벅찬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축가는 흐지부지 마무리되었고, 이날의 촬영 비디오는 두고두고 호장의 놀림감이 되었다. 

준비 과정부터 당일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결혼이었지만 다 끝나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하며 느낀 두려움과 설렘 때문일까? 아니면 30년 동안 쌓아온 나의 모든 인연을 마주하며, 그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느낀 고마움과 부담감 때문일까? 결혼식만 끝나면 전부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깨가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잠시나마 좋았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수많은 하객 앞에서 정환과 수겸이 비록 가짜일지언정, 서로 간 사랑을 맹세하고 반지를 나눠 낄 때. 수겸이 바라본 정환의 얼굴엔 벅찬 떨림이 가득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수겸은 자꾸만 그 얼굴이 떠올랐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수겸은 생각했다. 신혼여행,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만약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온 평일에 바로 출근해야 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 다음 날에 바로 하와이로 떠버린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 세계 최고의 휴양지에서, 첫날은 호텔에서 아낌없이 뻗어 있었고 둘째 날부터 신나게 돌아다니며 먹고 놀았다. 정환은 심지어 서프보드까지 손수 챙겨와서 원 없이 파도를 탔다. 일주일 동안 여기서 이렇게 놀고먹을 생각을 하니 행복이 뭐 별건가 싶었다.

그 날도 정환은 서핑하러 바다에 들어가고, 수겸은 야자수 밑 선베드에 누워서 술이나 홀짝이고 있었다. 이대로 늘어져서 낮잠이나 자볼까 하는데 선글라스를 쓴 수겸의 얼굴 위로 길게 그늘이 졌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익숙한 모국어에 벌떡 일어난 수겸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정체를 확인했다. 하필이면 상대방이 태양을 등지고 서 있어서 눈부심에 수겸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잠시 후, 햇빛에 적응이 되자 수겸은 자신에게 말을 건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너…. 윤대협?”

“네. 기억하시네요?”

“너를 어떻게 모르냐. 국내에서 NBA 진출한 몇 안 되는 선수인데. 그나저나 여기서 다 보네?”

수겸이 반갑게 말을 붙이자 대협도 웃으면서 답했다.

“사실 저, 곧 국내 리그로 복귀해요. 복귀 전까지 남는 기간이 있어서 휴가차 왔어요. 참, 결혼 축하드려요.”

“아, 알고 있었구나. 고마워.”

생각지 못한 축하의 말에 수겸이 머쓱하게 웃었다. 분명 수겸도, 대협도 얼굴은 웃고 있는데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빨리 이 분위기를 깨고 싶어서 수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국내 복귀면, 어느 팀이랑 계약했어?”

“A팀이요. 감독님 현역 때 뛰시던 곳. 그런데, 감독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지금 대학리그 감독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 녀석이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내 소식은 누구한테 듣고 있었던 거지? 반문하고 싶었으나 대협이 쉴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감독님 결혼하신단 소식 듣고 결혼식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갈 수 있었을 텐데. 제가 감독님 결혼식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뭐? 그게 누군데?”

“제 전 애인이요.”

대협이 웃으며 건넨 마지막 말에 수겸은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뜬금없이 내 결혼식에 웬 전 애인? 내 결혼식에 온 손님 중에 전 애인이 있는 건가? 근데 전 애인이면 헤어진 거 아냐? 왜 만나고 싶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대협이 수겸의 뒤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 마침 저기 오네요.”

그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방금 막 바다에서 나왔는지 물기를 닦으며 서프보드를 옆에 끼고 이쪽으로 오는 정환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수겸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수겸이 다시 대협을 돌아봤을 때, 그는 이 사태가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제 전 애인이요.”


* 전 남친의 등장으로 긴장감을 좀 조성해 보았습니다.

* 이미 끝난 관계인데 이것도 CP명을 적어야 좋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애매하고 미리 적으면 괜히 스포만 되는 거 같아서 표기를 안 했는데 혹시 이런 거에 지뢰 있으신 분이 계셨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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