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킴쓔
* 이 글은 동물 보호나 생명의 가치를 논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작중에 들어간 묘사는 호열이 죄책감을 가지고 백호를 밀어내는 게 보고 싶어서 가져온 장치일 뿐입니다. 픽션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주세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길. 어느 마을에 호랑이를 잘 잡기로 유명한 사냥꾼이 살았는데 그의 집 대들보엔 ‘바를 정(正)’ 자가 20개나 새겨져
월한강청(月寒江淸) 「달빛은 차고 강물은 맑게 조용히 흐른다.」는 뜻으로, 겨울철의 달빛과 강물이 이루는 맑고 찬 정경(情景)을 이르는 말. 본디 자연이 어떠한 연유로 자아를 가지게 되면 그 자연에 속한 정령이 되는데, 정령이 된 영들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연의 힘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를 알지 못하였고 초자연적인
그 인간이 생을 다하면, 너는 다시 내게 종속되는 거야. 맹세할 수 있겠어? 센도? 루카와는 간만에 홀로 외출했다. 볼 일이 있어 쇼호쿠에 잠시 들렀는데 마침 장이 서는 날이어서 센도에게 줄 선물까지 사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 강의 상류에 다다르자 센도와 함께 사는 집이 보였다. 그런데 집에 가까워질수록 루카와는
"앗, 대협아 미안해!" "아냐, 내가 못 봤네. 미안." 대협은 자신의 몸에 맞고 튕겨 나간 농구공을 잡으러 달려 가며 말했다. 이번 패스미스는 분명 주던 쪽의 실수였는데도 대협은 늘 상대를 타박하거나 인상 한 번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 떨어진 농구공을 주어 들고 가볍게 드리블하며, 연습 중인 동료들에게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능남에서 주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기내는 고요했고 비즈니스석에 탑승 중인 정환은 안경을 쓴 채 이번에 참석하는 학회에서 발표 예정인 논문을 미리 읽고 있었다. 그때 기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승객 중에 의사분 계시면 신속히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닥터콜이었다. 정환은 읽고 있던 논문을 덮고 눈을 찡그렸다. 사실
오늘의 전호장은 역대급 하이텐션임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환과 함께 가을체전 대표로 선발되어 훈련을 하러 가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해남에서 1학년에 주전을 꿰찬 수퍼루키이긴 했지만 설마 도내에서도 10명만 뽑히는 도내 대표로까지 선발될 줄은 몰랐다. 감독님께 선발 소식을 듣자마자 농구장에서 방방 뛰어다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린 놀러 가는 게 아
01. 키싱 부스 “...뭔 부스?” “키싱부스(Kissing Booth)라고, 키, 싱, 부, 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호장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아니, 그게 대체 뭔데 나한테 하라는 건데?” “축제 때 판매하는 키싱부스 티켓 구매한 사람은 부스에 가서 그 안에 있는 사람하고 스킨쉽을 할 수 있는 거지.” “반에서 한 명
2년 간의 방황을 끝내고 화려하게 북산 농구부에 복귀한 정대만은 그 해의 인터하이를 불태우고 윈터컵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무사히 농구부 추천 전형으로 대학에 안착할 수 있었다. 비로소 제 2의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대만은 대학 진학 전에 공백기에 잃어버린 체력을 올리는데 몰두했고, 대학 리그에 입성할 즈음엔 부족했던 체력도 많이 보충하여 이제 그의 대학
침대 위에 쓰러지듯 풀썩 엎드렸다. 어찌나 몰아붙였는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확실히 30살이 되니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이 와중에 눈치 없이 뒤에서 바싹 붙어있는 근육 덩어리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냈다. “무거워. 저리 가.” 까칠한 언동에도 상대방은 웃기만 하고 순순히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곤 얼굴을 팔
“너희는 앞으로 살면서 무수히 많은 소비를 하게 될 거야. 푼돈 한 푼, 두 푼 쓰는 거야 막 써도 괜찮지만 금액이 커질수록 생각하는 시간도 그에 비례해야 한다. 쉽게 말해 큰돈일수록 이것저것 따져가며 신중히 써야 한다는 거지. …근데 이 자식들아, 감독님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씀 해주시는데 귀담아 안 듣냐?” 수겸이 앞에서 열변을 토하든 말든
정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작 상대방은 정환의 그런 표정은 아랑곳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분명 저쪽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는데, 정환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만했다. 김수겸은 그저 이정환의 고교 시절 친구…는 아니고, 동창…이라기엔 같은 학교는 아니었으며. 좋게 말해봐야 선의의 경쟁자…?
이정환과 결혼하게 된 이상 수겸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백이면 백, 이정환 쪽이 손해를 보는 결혼이었으니 정환의 측근들이 거세게 반발할 거란 예상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어쩌면, 아침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우리 아들과 헤어지라며 돈 봉투를 내밀거나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절하면 물세례가 쏟아지겠지. 그
수겸과 친구라는 이름으로 알고 지낸 시간만 해도 어언 20여 년이지만 현준은 아직도 김수겸이란 인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보통의 그는 현준의 예상 범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가끔은 상식 밖의 행동을 해서 현준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전부 당황을 넘어서 경악의 연속이었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 굳이 표기하자면, 대협→정환수겸 여기는 지상 최대의 휴양지, 하와이. 이곳에서 무려 6박 7일의 꿀 같은 신혼여행…을 빙자한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내 남편의 전 애인을 마주치고야 말았다면?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에 당황할 새도 없이, 이쪽으로 오는 정환을 향해 수겸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지 마. 이리 오지 말고 저쪽으
신혼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자 정환과 수겸은 이제 공식적으로 부부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막 일상으로 복귀한 신혼부부에게 주변인들의 무수한 관심이 쏟아졌고, 개중에는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신혼여행은 어땠냐, 결혼하니까 뭐가 좋으냐, 신혼생활은 잘 즐기고 있냐는 둥 물어오면 곤란하다는 듯 웃어넘기기 바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할 말이
현관 앞에 놓인, 크기가 조금 다른 실내화가 두 쌍. 세면대 위엔 색깔이 다른 칫솔이 두 개가 꽂혀있고. 협탁 위엔 다이아가 박힌 결혼반지가 한 쌍 놓여있다. 그리고 안방 라지킹 사이즈의 침대 위 베개는 두 개, 이불은 하나. 거실 한복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린 결혼사진까지. 그저 흔한 신혼집의 풍경이었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고, 누가 봐도 거리낌이
‘오늘 운수가 나쁘네.’라고 생각했었다. 겨우 한 모금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이 미끄러져서 쏟아버렸다. 급한 대로 티슈를 왕창 뜯어서 사무실 책상 위에 흐르는 액체를 막아내기 바빴다. 컴퓨터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급급해서 휴지로 마치 거대한 댐을 만들 듯이 빙 둘렀다. 그새 여기저기 튀어서 커피 얼룩이 진 와이셔츠를 갈아입고 왔는데, 세상에…
말에는 힘이 있어서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사랑의 말도, 한 번 내뱉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한을 풀듯이 사랑을 속삭이고 쉴 틈 없이 입 맞췄다. 이젠 술기운에 얼굴이 달아오른 건지 숨이 차서 그런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잠깐 떨어져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수겸이
<1> 벌레 탈옥 사건 “수겸아!! 왜 이제 오는 거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먼저 들어온 사람이 더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반갑게 마주하는 건 이 신혼부부에겐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지금의 정환은 마치 구세주라도 보는 눈빛과 목소리로 수겸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수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으려는데 정환이 후다닥 수겸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