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2차 창작

[정환대협] Doctor Call

현대AU / 외과의사 이정환과 여객기 승무원 윤대협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기내는 고요했고 비즈니스석에 탑승 중인 정환은 안경을 쓴 채 이번에 참석하는 학회에서 발표 예정인 논문을 미리 읽고 있었다. 그때 기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승객 중에 의사분 계시면 신속히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닥터콜이었다. 정환은 읽고 있던 논문을 덮고 눈을 찡그렸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 닥터콜은 그닥 달가운 콜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외과의인 정환에게 기내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은 대부분 비전공 분야인 경우가 많았다. 이 비행기에 나 말고 다른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정환이 통로 쪽에 있는 승무원에게 다가갔다. 승무원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다급히 의사를 찾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인가?

"해남대병원 외과의 교수 이정환입니다. 닥터콜하셨죠?"

"교수님! 지금 빨리 가봐야 해요! 저를 따라오세요!"

한시가 급한 모양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환은 언제 망설였냐는 듯 승무원을 따라 뛰었다. 아무래도 이 비행기에 탑승 중인 의사는 자신 한 명 뿐인 것 같았다. 객실을 지나 승무원들이 일하는 곳까지 진입했는데 환자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설마 승객이 아니라 승무원 중에 응급환자가 있나? 근데 왜 승무원들이 하나도 안 보이지? 이윽고 앞에서 뛰던 승무원이 조종실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정환이 제일 먼저 발견한 건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승무원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서너명쯤 되는 괴한들이 총을 들고 위협하고 있었다. 괴한 중 한 명이 정환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쳤다. 정환은 반사적으로 양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하이재킹(highjacking)이었다.


"의사 선생님이신가요?!"

조종실에 있던 남성 승무원 중 한 명이 물었다.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테러리스트 중 하나에게 영어로 말을 하더니 일어나서 정환에게 다가왔다.

"저희 기장님이 등에 총을 맞으셨어요.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올렸던 팔을 내리고 환자 앞으로 이동했다. 의사가 된 지 십년이 넘었지만 닥터콜은 처음이었는데, 거기다가 하이재킹까지 당하다니… 정환은 자신의 처지를 속으로 비관하며, 다급한 손놀림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하필 쓰러진 사람은 이 비행기의 조종사였다. 그는 오른쪽 날개뼈 부근에 총을 맞은 채 쓰러져 있었다. 정환에게 말을 걸었던 남성 승무원이 비상의료용구(EMK)를 건넸다. 정환은 힐끔 승무원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았다. 윤대협 사무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무장님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 말씀하세요."

대협이 정환의 지시 대로 움직이며 정환을 도왔다. 마침내 정환은 환자의 출혈을 잡는데 성공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무장님, 기내에 산소호흡기가 있을까요?"

"네, 저쪽에 있습니다. 잠시만요."

다시 일어선 대협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뭐라 뭐라 말하더니 다시 정환에게 돌아왔다. 

"문 밖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제가 옮기는 걸 돕겠습니다."

"그러면 환자분 다리를 잡아주세요. 제가 상체를 잡겠습니다."

정환과 대협이 합심하여 조심스럽게 환자를 옮겼다. 다른 승무원이 조종실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고,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이 총을 들고 뒤따라왔다. 조종실 문이 다시 잠기고 정환과 대협은 환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협이 산소호흡기를 건네며 조용히 속삭였다.

"선생님, 치료하시면서 들으세요. 지금 저희 비행기는 하이재킹 당했고, 기장님이 부상을 입으셔서 현재 부기장님이 조종 중입니다."

"이런, 그래도 괜찮나요?"

"부기장님도 베테랑이셔서 비행엔 문제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대협이 그들을 따라온 테러리스트를 눈만 돌려 힐끔 바라보곤 다시 속삭였다. 테러리스트는 다행히 그들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인지 그들의 행동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환은 더 처치할 게 없었지만 일부러 환자를 살피는 척 연기했다.

"문제는 테러범들이 요구하는 목적지까지 가기엔 연료가 부족합니다. 무리해서 비행하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불시착할 수도 있어요."

"그럼 어쩌죠?"

"일단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척하다가 중간에 다른 공항에 비상 착륙하려고 합니다."

"가능한가요?"

"비행 중엔 그들도 모를 겁니다. 문제는 저희가 착륙하려는 공항의 관제탑인데, 허가받지 않은 여객기가 착륙하려고 하면 아마 저희한테 통신을 시도할 거예요."

"그럼 들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말하다말고 대협이 정환의 상체를 위아래로 훑었다. 정환이 뻘쭘하게 쳐다보자 대협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선생님 몸 좋아 보이시는데, 혹시 테러범 중에 한 명만 제압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승무원용 테이저건 빌려드릴게요. 제가 신호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테러범 하나만 테이저건으로 제압하고 총만 뺏어서 저한테 던져주세요."

"하나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요?"

"총만 있으면 나머지는 제가 상대할 수 있어요."

정환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대협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사격 주니어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그렇게 정환은 얼떨결에 대협의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다. 별다른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했다. 대협이 먼저 일어나서 그들을 감시 중인 테러리스트에게 뭐라 말하더니 다시 정환에게 말했다.

"선생님, 화장실은 이쪽입니다."

"아, 네…"

정환은 눈치껏 대협의 손이 가리킨 쪽으로 움직였다. 승무원들이 사용하는 기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협도 따라 들어왔다. 좁은 내부에 문짝만 한 두 남자가 들어가자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 서로 몸을 밀착하고 있었다. 대협이 일부러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테이저건을 꺼냈다. 말없이 손동작으로만 작동법을 보여주더니 정환의 손에 쥐여주었다. 정환이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채로 테이저건을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대협이 작게 속삭였다.

"이따가 신호하면, 아시죠?"

"신호는 뭘로?"

"이렇게요."

대협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했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정환을 보며, 대협은 승객인 정환까지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속으로 사죄했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대협도 무서웠다. 그렇지만 티 내지 말아야지. 승객을 불안하지 않게 하는 건 승무원의 의무니까. 싱긋 웃은 대협이 정환의 입술에 짧게 입 맞췄다. 깜짝 놀란 정환이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 막는데 대협이 정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사실, 선생님 엄청 제 취향이시거든요. 그러니까…"

"무사히 살아남으면 저랑 데이트해주세요."


두 사람은 감시역인 테러리스트와 함께 조종실로 복귀했다. 이미 하이재킹 현장을 목격한 정환은 다시 객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정환은 승무원들 옆에 앉았고, 대협도 그 근처에 앉았다. 정환은 긴장감에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요하던 기내에 갑자기 지지직- 하는 전파음이 들렸다. 대협이 말했던 관제탑에서 통신을 보내는 것 같았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영문을 모르는 승무원들은 물론 테러리스트들까지도 그쪽으로 시선이 쏠려 있었다. 정환이 대협을 바라보자 대협이 한쪽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지금이다! 정환은 재빨리 품속의 테이저건을 꺼내 바로 옆에 있던 테러리스트의 뒷목에 내리꽂았다.

엄청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조종실은 한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테이저건을 맞은 테러리스트가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총을 떨어뜨렸다. 정환이 떨어진 총을 대협이 있는 쪽으로 걷어찼다. 재빨리 총을 주워든 대협이 바로 총구를 겨냥하며 소리쳤다.

"모두 고개 숙여!"

탕- 탕-, 탕- 탕-, 탕- 탕-!

대협의 손을 떠난 총알들이 정확하게 두 발씩 테러리스트들의 가슴에 꽂혔다. 사격 청소년 국가대표다운 깔끔한 솜씨였다. 계속 총구를 겨눈 상태로 앞으로 나간 대협이 쓰러진 테러리스트들의 몸에서 흉기를 분리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린 다른 승무원들도 대협을 도왔다. 정환도 테이저건으로 제압한 테러리스트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포박했다. 

"누구 다친 사람 있어요? 모두 괜찮아요?"

정환이 소리치며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승무원 중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정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협에게 다가갔다. 정환을 발견한 대협이 반갑게 달려 와 정환에게 안겼다.

"선생님! 저희 이제 살았어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뇨, 사무장님이 다 하셨죠."

"선생님 안 계셨다면 못 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협이 활짝 웃자 정환은 심장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긴장이 풀려서 일까, 눈앞에 사무장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환의 시선을 느꼈는지 대협이 갑자기 쑥스러운 듯 품에서 떨어졌다. 정환이 무언가 말하려 하는데,

"꺄악- 저기! 저기!"

한 승무원의 다급한 비명소리에 두 사람이 돌아보자 바닥에 쓰러진 테러리스트 중에 한명이 숨겨둔 다른 권총을 정환에게 겨누고 있었다.

"선생님!!!"

탕-

쿠웅-

정환이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정환의 위엔 대협이 올라가 있었다. 대협이 정환을 밀어 넘어뜨린 것이다. 쓰러진 정환의 시야로 다른 승무원들이 테이저건으로 권총을 쏜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 이 피… 선생님 피예요?"

대협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정환이 아래쪽을 보았다. 정환의 와이셔츠에 피가 빨갛게 물들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정환의 피가 아니었다.

"아, 내 피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다…"

"젠장, 사무장님!"

정환이 다급하게 일어나서 쓰러진 대협을 끌어안았다. 대협의 오른쪽 옆구리에 총알이 박혀 있었고 출혈량이 상당했다. 정환이 재킷을 벗어 급하게 상처 부위를 압박하며 소리쳤다.

"누가 EMK 좀 가져다주세요! 빨리! 사무장님, 사무장님! 정신 잃으면 안 돼요!"

"선생님…"

점점 대협의 눈동자가 흐려지고 있었다. 정환은 필사적으로 생각 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이런 수술 수백번도 더 했다. 얼른 총알 빼내고 응급처치하면… 그때, 상처 부위를 압박하며 피범벅이 된 정환의 손에 대협이 자신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전 걱정 안 해요, 선생님…"

점점 창백해지는 대협의 얼굴에 정환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정환을 보며 대협이 미소 지었다.

"선생님이 저 살려주실 거잖아요…"

"…네, 제가 꼭 살려줄 게요. 당신 절대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그러니까…"

눈앞이 흐려져서 대협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활주로로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아, 너무 아픈데…'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대협은 식은땀이 절로 나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일어나질 못 하겠어… 한참을 끙끙거리던 대협은 간신히 눈을 떴다. 흐렸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자 본인이 낯선 장소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주변 분위기로 보아 일단 병원인 건 분명한데… 병원?

그제서야 대협은 자신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총상을 입었던 오른쪽 옆구리를 확인하자 이미 치료가 끝난 듯 드레싱이 되어 있었다. 대협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상처를 지혈하려 애쓰던 정환이 생각 났다. 이정환 선생님, 무사하신 걸까? 잠시 후 대협이 깨어난 것을 확인한 의료진들이 도착했다. 대협은 그들에게서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대협과 정환이 탑승했던 비행기는 그 후 무사히 인근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착륙하자마자 대협은 현지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었고, 정환이 비행기에서 응급처치를 해둔 덕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했다. 여기는 아직 현지 병원이었고, 대협이 깨어났으니 몇 가지 검사를 거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면 귀국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대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 간호사가 대협에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맡기고 갔다며 대협의 가방을 건넸다. 가방을 열어보니 휴대전화와 여권, 지갑 등이 들어 있었다. 없어진 물건이 없나 하나하나 확인해보는데 지갑에 못 보던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열어보니 놀랍게도 정환의 명함과 함께 직접 쓴 듯한 쪽지가 들어있었다. 대협은 쪽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급하게 하느라 예쁘게 꿰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귀국하면 연락 주시겠어요?

평생 a/s 해줄게요.]

-Fin.


* 각종 설정 오류들은 무시해주세요. 이거 그냥 픽션이니까ㅋ

* 대협아 자꾸 입원시켜서 미안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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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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