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시리즈

A씨의 혼란스러운 하루

대만준호. 적과의 동침에서 이어집니다.

1.

대학교 2학년인 A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트위터부터 확인을 한다. 밤새 쌓인 피드를 침대에 누운 자세 그대로 한 번 훑는데, 모든 피드를 확인하고 난 뒤에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그 자세 그대로 크롬 어플을 실행한 뒤 메인에 떠있는 자주 가는 페이지로 접속한다. 그곳은 모 커뮤니티로 비교적 여성이 많은 공개 커뮤니티인데, A씨는 개중에서 단 하나의 게시판만 들어간다. 프로농구 게시판. 그렇다. A씨는 프로농구팬이다. 좋아하는 구단은 타이탄즈. 최애선수는? 당연히, 타이탄즈의 대표 슈터 정대만이다.

A씨가 자주 가는 게시판은 모든 구단의 팬들이, 또 모든 선수의 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하지만 모든 구단과 선수가 공평하게 지분을 가져갈 수는 없는 법. 누군가는 자주 언급되지만 누군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 정대만의 경우엔 단연 전자였다. 프로농구 데뷔 때부터 타이탄즈에 몸담았고 하위권이었던 팀을 매번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게 만든 주역 중 하나이니, 타이탄즈 글의 3할 이상 지분을 차지하고도 남을 수밖에. 타이탄즈 팬 중에 정대만 안 좋아하는 사람 없단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닌 셈이다. 한편, 정대만이란 한 선수 때문에 농구를 보기 시작했다든가, 타이탄즈 팬이 되었단 사람들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그러다가도 다른 선수를 더 좋아하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그래도 그 중 절반 이상은 정대만과 타이탄즈의 팬으로 자리매김 했는데 그 덕에 정대만은 게시판 내에서 가히 종일 언급된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 A씨는 그런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게시판을 눈팅하는데 썼다. 그래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지금은 비수기인터라 비교적 자신의 삶도 제법 돌보는 중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올해 타이탄즈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경기를 치루고도 탈락하는 바람에 중간고사도 얼추 방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챔프결정전까지의 경기를 안 본 건 아니었지만 게시판 눈팅까지는 안 할 수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이 끝난지 어느새 열흘이 지났고 게시판은 우승의 여운도 어느 정도 잠잠해져 소소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올해엔 FA 대어라든지 하는 일도 없어 더더욱 소소한 잡담 위주였다. 그런 글들을 몇 개 읽다 이내 넘기던 A씨는 곧 어느 하나의 글에 댓글이 제법 달린 것을 보고 그 글을 클릭했다.

 

아, 시발 또.

A씨는 불쑥 욕지거리를 뱉으며 자신의 침대를 퍽퍽 내리쳤다. 그러더니 곧 휴대폰을 양손으로 잡고 전투적으로 액정을 두들겼다. 손끝의 움직임은 곧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었다.

ㅅㅂ 이런다고 머만권 안 파요 꺼져라 진짜

A씨가 쓴 댓글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았다. 댓글 끝의 하트에 숫자가 하나둘 차오르는 걸 보며 A씨는 조금 전 치밀었던 짜증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럼그럼. 암 그렇지. 응당 정대만의 진정한 팬이라면 머만권 같은 망상질에 미쳐있을 수 없지. 차라리 정대만 드림을 파라! 어떻게 멀쩡한 친구 사이를 두고 이런 짓을?! 아니 설령 머만권이 진짜라고 치더라도 씹다 뱉고 갈기갈기 찢어발겨 불에 태워도 시원찮을 어그로 새끼들이 머만권으로 긁고 다닌 게 있는데 어떻게 감히 “진짜 정대만 팬”이 머만권 따위에 미치냔 말이다! ...가라앉히는 줄 알았는데 되새기다보니 다시 또 열이 오르는 A씨였다.

무료하던 A씨를 이렇게나 분노로 벌떡 몸을 일으키게 만든 ‘머만권’이란, 정대만 선수와 그의 친구인 권준호를 엮는 표현이었다. 그냥 뭐 브로맨스 이런 게 아니라 모 결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보는 일부 팬들처럼 두 사람이 진짜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이미 결혼했다 등등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 둘을 부를 때 쓰는 표현이었다. 가령 머만권이 안 사귈 리 없다 그게 아니고서야 서른넷씩 먹은 남자 둘이 계속 같이 살 리가 없음, 이라든지 혹은 머만권 서사 생각할수록 찐이란 생각에 미칠 것 같다 미친게이들아... 같은 식으로 쓰이는 것이다. 멀쩡한 이름 두고 괴상한 ‘머만권’이 된 것은 당연 당사자들이 검색해서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A씨는 그런 점에서 삐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찐이라더니 당사자들이 보는 건 안된단 게 말이 돼? 본인들도 내심 구라인 거 아는 거 아니냐고! 사실 생각만 한 건 아니고 트위터로 비슷한 말을 수차례 떠들기도 했다. 근데 이 미친 인간들이 팔로워 0인 자신의 계정을 어떻게 알고 찾아와선 온갖 멘션을 달아놨다. 거진 대부분은 비아냥이었지만 그나마 정보값이 존재하는 것도 있었는데, 대충 대만이보다도 권준호는 일반인이라 감싸줘야 해서 그렇다 같은 내용이었다. 일리 있네… 라고 생각했지만 A씨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권준호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핑계 쩌네.

하지만 사실 권준호를 모르는 사람은 무척 많았다. 하물며 정대만의 팬인 사람들 중에도 라이트한 쪽은 권준호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권준호 아는 사람, 하고 물었을 때 손을 더 많이 들을 법한 쪽은 타이탄즈의 팬이 아닌 워리어스의 팬이었다. 일단 그가 워리어스의 프런트 스태프라는 점에서 그렇지만, 워리어스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윤대협에 대한 컨텐츠가 그의 손에서 나온 덕이 컸다. 워리어스 팬들 사이에서는 반 농담으로 어미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심지어 어떤 윤대협 선수의 팬은 윤대협의 이적이 확정되고 난 뒤에 그쪽엔 우리 엄마 같은 분 계시냐? 없으면 너무 그리울 거 같은데... 라며 권준호를 엄마라 부르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만큼 권준호는 일반인이면서도 마냥 일반인은 아닌 셈이었다. 워리어스의 프런트 스태프이면서 타이탄즈 정대만의 절친이자 동거인. 농구팬이 아니라면 모를까 농구팬들에게는 일반인이라 하기에 확실히 어려웠다.

A씨는 다시 게시판 목록으로 돌아가 마저 글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A씨의 손가락이 클릭한 것은 “농놀방 꾸준 어그로” 라는 제목이었다. 뻔하지. 정대만 얘기잖아. A씨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실제로 글 내용도 그 내용이었다.

내 남친이라니. 이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A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지만 곧 생각을 달리했다. 그래도 머만권 파는 것도 아니고 이게 훨씬 낫지. A씨는 이제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하지만 손가락은 반대의 의미로 문장을 구성했다.

머만이 열심히 살았다....... 꽃길까진 못 깔아줘도 가시밭길은 깔지 말자

실은 내 남친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A씨는 스스로 양심을 챙기는 편이라 자부하기에 그렇게까지만 쓰고 엔터키를 눌렀다. 댓글창이 갱신되면서 새로 달린 댓글을 몇 개 더 확인한 A씨는 다시 글목록으로 돌아가 다른 글들을 읽었다. 실은 다른 글이라고 해봤자 정대만 선수와 관련한 글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선수에 대한 글보다 권준호에 대한 글에 가까워서였다. 권준호가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북산 출신들이랑 같이 뛰었던 식스맨이었다느니, 워리어스에서의 별명이라든지, 농놀방을 비롯 정대만 선수 팬들 사이에서 권준호가 권선배라고 불린다는 등등 A씨 기준 영양가 없는 내용들이었던 것이다.(그나마 북산 고등학교 출신이 올렸다는, 못 보던 정대만 사진 하나를 발견한 것이 수확이었다.) 컨텐츠가 없네, 컨텐츠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A씨는 커뮤니티를 끄지 않고 연신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물론 화면을 끄고 A씨의 삶을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야 아침밥을 먹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러나 미처 그러지 못하는 것은, 이 플로우가 결국 머만권 플로우로 흘러갈 것이란 게 보여서였다. 그러기만 해봐라 내가 다 신고하고 만다. A씨는 나름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그러나 여전히 침대 위에 누운 상태였다- 일상을 뒤로 미뤄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몇 분 지나지 않아 게시판은 슬슬 머만권 아닌 척 그러나 머만권인 것 같기도 한, 하지만 일단은 아니라고 우기는 글들이 서너개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A씨는 두 입을 앙 다물고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클릭, 신고, 신고사유 규칙 위반, 전송. 애매한 글까지 모조리 싸잡아 신고를 마친 A씨는 한숨을 돌리는데 마침 5분 전 올라온 글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아 곧장 클릭했다.

내말이222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의문임22222 그분들 제일 싫어함2223334455555 머만이 파기도 어려움2222222222222222222

A씨는 거의 모든 댓글에 대댓을 달며 공감을 표시했다. 하, 여기 이렇게 내가 많을 줄이야. 왜 수정버튼이 안 뜨죠? 그렇게 댓글까지 마지막으로 하나 남기는데 댓글창이 새로 갱신될 때마다 비슷한 댓글들이 두어개씩 새로 불어났다. 그 덕분인지 글목록 갱신은 다소 뜸해졌는데, 특히 머만권을 비롯 권준호에 대한 글들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다만 정대만에 대한 글도 올라오지 않았는데, 때마침 A씨의 폰 상단바에 파란색 노티가 떴다.

“헐”

A씨는 냅다 상단바 알림을 클릭하면서 몸을 벌떡 일으켜세웠다. 화면이 잠시 파란색으로 뒤덮였다가 곧 sns 화면을 띄우는데, 일단 눈에 들어온 것은 사진이었다. 수트 차림의 정대만 선수 사진.

바야흐로 아이돌 대포의 시대. 그런데 30대 농구선수에게도 대포가 붙는다면 믿으시겠어요? 하지만 이 선수는 합니다. A씨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정대만에게 입덕시켰던 게시글을 떠올렸다. 31살의 정대만이 경기를 끝마치고 땀에 젖은 얼굴로 팬들에게 인사하던 사진. 그 해 챔피언은 타이탄즈였고, 정대만은 그 승리의 주역 중 하나였다. 기자들은 감히 완벽히 담아내지 못하는 그 열정을 일개 개인 한 사람만은 담아냈는데, 그게 바로 지금 A씨가 보고 있는 사진을 올린 김덕후였다.

A씨는 사진을 모조리 저장하고 난 뒤에야 뒤늦게 김덕후가 피드에 남긴 글을 읽었다.

 

이제야 올리는 시상식 사진... 오빠 너무 잘생겨서 나만 볼까 했는데 올릴 때가 된 듯 해서 올려봅니다 ㅋㅋ

 

악! 아악!! 아아아아악!! A씨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러더니 곧 언제 그랬냔 듯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선 커뮤니티 창을 열었다. 보통 A씨는 게시글 목록을 갱신부터 하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건너 뛰고 곧장 글쓰기 버튼을 클릭했다. 제목란에 시상식 머만이 떴다ㅠㅠㅠㅠㅠㅠ를 쓰고, 내용엔 김덕후가 올려준 사진과 김덕후 sns 링크를 채워넣었다. 사실 A씨는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뒷북을 치는 것임을 알았다. 김덕후의 직찍이란 본래 게시 1분만에 커뮤니티에 곧장 올라오는 편이기에. 하지만 좋은 건 또 봐야지. 남이 올려도 반박자 늦게 올라온 제 글에 사람들이 두 번, 세 번 보길 바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타이밍까지 너무 좋았다. 눈치 보느라 살짝 떡정전이 올 찰나였는데 김덕후의 사진으로 분위기가 확연히 바뀔 것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게시판을 대강 훑어보니 A씨의 예상대로였다. 아, 정말이지 김덕후님은 어쩜 이렇게 센스가 좋으실까. 새삼 A씨는 김덕후에게 감탄하며 홀로 몸을 비틀었다.

A씨가 김덕후를 좋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가 기가 막히게 사진을 잘 찍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이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스포츠 팬과 선수라는 관계, 그리고 그 거리감을 절묘하게 적절하게 유지할 줄 아는데다가 결정적으로 팬덤의 분위기에 빠삭했다. 그렇다고 또 팬덤에 휘둘리는 건 아니었는데, 가령 몇몇 한심한 남성팬들이 여성팬들을 평가절하 할 때마다 김덕후는 선봉장에서 탱커 역할을 해주곤 했다. 비록 그것의 반쯤은 타의였지만 김덕후는 먼저 걸려오는 시비에 굴하지 않으며, “정대만처럼 농구하면서 정대만처럼 생기면 오빠란 소리는 호칭이 아니라 고유명사가 된다.”라는 명언까지 남겼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음에도 김덕후는 꾸준하게 정대만과 타이탄즈의 팬으로 활동했고 그 기간이 근 10년에 가까워지면서 팬덤 내에선 김덕후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권준호는 모를 수 있을지라도 김덕후는 뉴비조차 알았다. 아니, 애초에 그 뉴비를 입덕시키는데 김덕후의 사진이 공헌했을 가능성까지 충분했다. 여러모로 정대만 선수 팬덤에 기여도가 높은 존재인 셈이다. 오늘, 그 다소 어려운 커뮤니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환기까지 해줬으니-그게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도 김덕후에게 큰 은혜를 입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A씨였다. 고마워요, 덕후님. A씨는 오늘 올라온 정대만 선수의 사진을 다시 보면서 속으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2.

감사인사를 올린지 약 세시간 뒤, A씨는 처음으로 김덕후를 향한 존경심이 박살나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덕후가 자신의 sns 비공개 계정과 공개 계정을 착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뭔가 엄청나게 안 좋은 소리를 실수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지도 않았다. A씨에겐 나름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김덕후가 계정을 착각하며 올린 타래의 첫 내용은 이랬다.

 

정대만 걍 권준호랑 결혼했다고 말해주면 안됨? 매번 이걸로 고민하는 내가 너무 싫다...ㅅㅂ

 

A씨는 강의를 듣던 중 노티창에 뜬 내용을 읽고 눈이 튀어나갈 뻔 했다. 미친 내가 머만권 파는 미친 인간을 팔로우 하고 있었다니! 바로 언팔이다! 그러고 냅다 어플을 켰는데... 그게 김덕후일 줄이야. A씨는 자신이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지만 A씨가 그러는 동안에도 김덕후의 트윗은 계속 되었다. 덕분에 A씨는 새로 갱신되는 내용들을 완전한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근데 솔직히 권준호라면 우리 오빠가 아깝진 않다고 생각함ㅋㅋㅋㅋㅋ 솔직히 다른 사람 아무나 옆에 두면 나 복장 뒤집히고 ㅅㅂ 우리 오빠 못 줘 이지랄나는데 권선배님이라면? 뭐약간 좀 괜찮음. 근데 ㅅㅂ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고민할 건 아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눈물을 머금고 응원해줄테니까 걍 오빠가 사실대로 말해줘 나 이딴 걸로 고민 좀 그만하게ㅠㅠㅋㅋㅋㅋㅋㅋㅋ 물론 현실적으로 오빠가 그럴리 없겠지만 그래도 그냥 나한테만은 알려주면 안됨? 오빠랑 결혼하기 상상 nn번 하다가도 오빠가 권준호랑 결혼한 거 같단 생각이 내 뒤통수를 쎄게 때리고 지나가는 걸 mm번 하니까 내가 너무 괴로워서 그래ㅠㅠㅠ

 

이 무슨...... A씨는 혼란스러움에 저도 모르게 이마를 팍팍 쳐댔다.(거기 학생 무슨 문제 있나? 하고 교수가 말했으나 A씨는 건성건성 아닙니다 하고 답할 뿐이었다.) A씨는 정대만 선수 입덕 이후로 줄곧 정대만에 대한 최고 순애팬을 꼽으라면 역시 김덕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왔다. 그 누가 뭐라해도 오로지 정대만만 보고 간다며 꾸준히 지속한 덕질이며 팬덤 내에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에도 전혀 그러지 않는 것이며, 철저히 팬으로서의 자신과 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구분하는 등 그런 김덕후를 보며 A씨는 김덕후야 말로 팬질의 이데아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김덕후가 알고보니 머만권러? A씨는 내 김덕후는 이렇지 않아! 이건 캐붕이라고! 하며 소리치고 싶었다. 물론 다시 읽어보면 A씨를 두고 머만권러라고 하긴 다소 어려운 지점이 보였다. 따지자면 오빠와 진심으로 결혼을 꿈꾸는 수니가 정확하지 않을까. 기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캐붕인데 더 한 것을 보고야 만 탓에 A씨는 이성적인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의 세계가 뒤집힌 셈이었던 것이다. 그런 A씨를 아는지 모르는지-물론 모른다- 김덕후의 계정실수 증거물은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A씨의 화면에 떠있었다.

불현 듯 A씨는 정신이 들었다. 김덕후의 이 트윗을 본 게 저뿐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오늘 오전, 김덕후가 올린 정대만 사진이 얼마나 빠르게 다른 커뮤니티에 퍼졌던가 생각하면 이 트윗도 그만큼의 속도로 퍼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A씨의 타임라인에도 그런 짐작이 가능한 내용들이 보였다. 아이고 계실하셨나보네. 어떡하냐. ㅠㅠㅠㅠㅠㅠ 등등 콕 집어 김덕후라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다 같은 것을 두고 얘기하는 중임을 알았다. 심지어 김덕후의 가장 최근 피드에 눈에 가시같던 머만권러 하나가 멘션까지 남겼다.

 

덕후님, 이 계정으로 원래 멘션 안 드리는데 디엠도 안 되고 너무 큰일이어서요. 꼭 이거 삭제하세요... 우리 덕후님 지켜...ㅠ

 

sns에서 이만큼이나 이 얘길 하니 커뮤니티에서도 분명 얘기가 나와있지 않을까. A씨는 이제 손이 달달 떨릴 지경이었으나 차분히 손끝을 움직여 오전 시간 내리 눈팅한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두 눈을 뜨고 못 볼 지경이면 어쩌지? A씨는 페이지가 로딩되는 짧은 순간에도 김덕후와 머만권 얘기로 도배되었을 화면을 떠올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어라?”

하지만 A씨의 예상과 달랐다. 정작 커뮤니티 게시판은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역시 알페스 금지라서? 그런 생각을 하며 찬찬히 게시글을 살펴보는데 몇 가지 눈에 띄는 글들이 있긴 했다. 조금 전 A씨의 sns 타임라인과 흡사한 유형의 글들.

누가 봐도 댓글의 ‘그분’은 김덕후였다. A씨는 글쓴이의 마음에 십분 동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심정이라 말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계정을 해킹해서라도 김덕후의 그 계정실수를 지워주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그 머만권러 하나도 그래서 멘션을 보냈던 것일까. 아무리 미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곤 해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리고 정대만 선수의 팬으로서의 의리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커뮤니티 글을 순회한 A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덕후의 트윗을 언급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름의 의리란 것도. 역시 정대만 팬들. 팬도 선수를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정도 뿌듯해지는 지점도 있었으나 하지만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A씨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마음은 뒤숭숭했다. 그리고 김덕후의 실수는 여전히 계속 남아있었다.

 

 

3.

A씨가 나름 멘탈을 회복한 것은 밤 10시가 지나서였다. 휴대폰을 멀리하고 현실을 살다온 A씨의 양 팔에는 과자 한보따리와 캔맥주가 들려있었다. 이렇게 된 거 오늘 영화나 실컷 본다. 마침 또 내일 공강이잖아? 늦게까지 달려보자고. 그렇게 자리에 앉았으나 정작 A씨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다시 또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먼저 눈에 띈 제목은 아주 짧았다. 그거 삭제 되었네?

주어가 없는 수준의 글이었으나 뭘 말하는지 분명했다. 그럼에도 A씨는 확인차 자신의 sns 어플을 실행했다. 글의 내용대로 김덕후의 가장 최근 피드는 오전에 올렸던 시상식 사진으로 그 이후에 올라왔던 건 모조리 삭제된 상황이었다. 다행이다... 일하시느라 못 보셨던 거구나. A씨는 어쩐지 한시름이 놓이면서 빳빳하게 올라있던 긴장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영화를 보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A씨는 그대로 커뮤니티 눈팅에 안착했다. 기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면 한창 커뮤니티 글이 재미있을 때이다. 게다가 다음날은 금요일이니, 주말까지 하루만 남겨뒀다는 생각에 미리미리 잠을 뒤로 하고 커뮤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순간들을 A씨가 즐기지 않을 리 없었고, 그간의 생활 패턴을 고려했을 때 지금 커뮤에 집중하는 건 평소대로 하는 것에 가까웠다.

으레 커뮤니티 눈팅이 그러하듯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언제 11시가 됐냐, 하는 제목의 글을 조금 전 본 거 같은데 그 다음엔 벌써 12시다, 하는 제목의 글을 봤고 곧 이어 정신이 들었을 때엔 한 시가 지났는데 아직도 안 자냐? 라는 글을 보았을 때였다. A씨는 화면 끝에 떠있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한 시를 훌쩍 지나 거의 두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니 언제 이렇게 됐냐. A씨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쭈욱 폈다. 그런 그의 앞에는 빈 과자봉지 두 개가 쭉쭉 퍼져있었고, 캔맥주도 다 빈 채로 그 옆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A씨는 그것들을 대충 주워 담으며 자리에 일어났다. 이거 버리고 씻고 자자고. 그런 계획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발을 떼려는데 글 제목 하나가 A씨를 다급히 사로잡았다.

 

새벽이고 사람없으니 하는 말인데 솔직히 아까 김덕후 계실한 거 보고 개처웃음

 

제목이 길기도 긴데 클릭을 유도하는 키워드가 여러 개였다. 사람없으니 하는 말은 곧 평소에 할 수 없는 초한정판 특급소재라는 소리인데, 김덕후 계실이라는 오늘-이제 어제가 된- A씨를 뒤흔들었던 사건을 언급하면서 개처웃었다고까지 하다니. 안에 담긴 내용이 긍정일지 부정일지 짐작도 되지 않는데 어느 쪽으로든 확인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결국 그 자리에서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들을 내려놓고 채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글을 클릭해 열었다.

엥...?

A씨는 자기가 맥주 한 캔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졸려서 헛것을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A씨는 이 글을 보기 직전까지 김덕후를 흉보는 글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웬걸 정작 글 내용은 그 반대였으며 외려 머만권에 대한 쎄이다까지 주창하고 있었다. A씨는 스크롤을 내려 댓글창을 띄웠다.

 

에엥...?

분명 댓글에 알페스 강퇴니 하는 얘기가 나올 거라 생각했건만 그런 말은 전혀 없고 오히려 공감한단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글 자체가 다소 횡설수설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게 보여서 그런 것일까. 그게 웃겨서 다들 이러는 거지? A씨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저도 모르게 도로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커뮤 글을 미친 듯이 클릭하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A씨는 올라오는 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놀고들 있다고 생각했다. 이거 완전 신상털이 아닌가? 다들 강퇴감이구만. 같은 말도 중얼거렸다. 하지만 확고한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란 소리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확히는 진위가 궁금했다. 이 새벽에 머만권 파는 난입들이 구라치는 걸지도 모른다고 내심 추측하던 것이다. 결국 A씨는 댓글 익명이가 올려주겠다는 글만 기다리며 게시글 목록만 쳐다보았다. 거의 1초에 한번씩 f5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기다리던 글이 올라왔고 A씨는 조회수가 새로 카운트 되기도 전에 잽싸게 클릭했다.

“... 진짜 그렇게 생기긴 했네.”

화면 전반을 채운 사진을 보자마자 A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올라온 사진은 회사 워크숍 단체사진이었는데, 거의 정중앙에 선 이, 그러니까 권준호의 얼굴이 유독 선명했다. 워크숍 특유의 단체 티셔츠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안경 너머의 눈이 또렷하고 서글서글한 것도 한 몫 했다. A씨는 괜히 사진을 키워도 보고 도로 줄여서 보기도 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화면에 고정한 시선을 여전히 떼지 못했다. 마우스를 쥔 손은 평소 습관처럼 스크롤을 내려 댓글란을 띄웠다.

 

마지막 댓글을 보고 A씨는 번쩍 눈을 떴다. 그래, 맞지. 정신 차려야 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람? 저렇게 생겼지만 어? 여자한테 인기가 없을 수도 있지! 결혼 생각이 없는 걸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A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또 새로 올라온 글을 읽다보니 아,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서 꿈틀댔다.

그 중 가장 A씨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은 짧은 논박이 오간 글이었다. A씨의 마음을 읽는 것마냥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심지어 난입의 말이 A씨를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아니, 정대만이 시즌 중에도 집에 갔다고? A씨가 정대만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고3 때였으니, 다른 팬들에 비해 덕질의 역사가 짧긴 했다. 그래서 옛날 정보는 몰라도 최근 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A씨는 황급히 그 댓글에 대댓글을 달았으나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별 수 없이 A씨는 새로 글을 하나 썼다.

 

반응을 보아하니 지나가듯 본 그 댓글이 진실인 모양이었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 싶었지만 다른 답변들의 반응대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팬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듯 싶었다. 게다가 시즌 중에는 숙소에만 있는다고 했던 과거 인터뷰가 있었으니 A씨처럼 알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 이 순간 A씨가 그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단 것이었다. 안 그래도 정대만과 권준호 이 둘은 뭔가 싶던 차였는데, 합리화 할 수 있던 근거 하나가 순식간에 부실해져 버렸다. A씨는 쓰읍, 하고 길게 침을 삼켰다. 그러면서 의미없이 게시글을 누르고 나가고 다시 또 게시글을 클릭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새로운 글을 클릭했다.

사고가 정지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A씨는 더 이상 마우스를 쥐고 있을 수도 없어서 두 손을 감싸 모았다. 세상에, 하느님. 제가 공부는 안 하고 덕질만 한다고 이런 벌을 내리시는 건가요? 왜 새벽에 이런 글을 보고 세상이 뒤집히는 기분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겪게 하시는 건가요. 물론 A씨는 그 정체불명의 하느님이 제게 “네가 자초한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 보였지만 그래도 그 어딘가에 붙들고 원망하고 싶었다. 아니 정말... 이게 진짜라고? A씨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쩐지 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고는 싶어서, 글의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새로운 창을 열고 북마크 해둔 페이지에 들어갔다. 그것은 전에 봤던 과거 인터하이 북산고 엔트리 기사였다. 최상단에서 두 번째. 5번 권준호. 7월 12일 생. 진짜로 7월이 생일이었다. A씨는 이젠 머리를 세게 벽에 박고 싶었다. 그럼 이게 모조리 다 꿈이었습니다~ 하고 깨어나 현실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이니까.

A씨는 다시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돌아갔다. 습관처럼 글 목록을 새로고침하니 조금 전의 그 글의 여파가 확연히 보였다. 저처럼 엔트리 기사 보고 온 사람이 있고, 북산고 sns 계정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한 쪽에선 이미 머만권이 인정받은 게시판입니다 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고 있었다. A씨는 이제 더 이상 그 글을 다 읽을 기력이 남지 않았다. 마침 시간도 어느덧 다섯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 자자. 이제 자야 할 때다.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뭘 생각한단 건지 A씨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자야한단 것만은 확실했다. A씨는 분명 몇 시간 전 버리려고 했던 것을 내버려둔 채 곧장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쉽게 눈을 감을 순 없었다. 이미 머리 한가득 온갖 정보들이 가득했던 탓이다. 특히나 그 사진. 정갈한 분위기의 안경남. 오늘, 아니 이제 어제가 된 낮에 김덕후가 올려줬던 정대만의 사진이 자연스럽게 그 안경남 사진 옆에 떠올랐다. ...잘... 어울리나...? A씨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이불을 퍽하고 발로 찼다. 그만 생각하고 자라! 그렇게 스스로에게 일갈을 해보지만 A씨가 잠드는 것은 그러고도 한참 지나고서였다.

 

 

4.

다음날은 느즈막히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만 늦었을 뿐 패턴은 동일했다. A씨는 눈을 뜨고 sns 계정에 들어가 쌓인 피드를 확인했다. 어쩐지 오늘 피드는 매우 짧았다. 다들 밤에 트위터를 안 한 모양이지. 그렇게 빠르게 복습을 마친 A씨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었다. 점심 때를 맞아 왁자지껄한데 어제에 비해 정대만 선수에 대한 글 비중이 매우 적었다. 특별히 대단한 이슈가 나온 게 아님에도. 덕분에 오전 내 쌓인 글을 확인하는 것이 쉬웠다. 그리고 A씨는 대강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진압’ 당한 상태였다.

A씨가 침대로 가 누웠을 때부터 게시판은 제법 소강상태에 들어섰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출근 시간대에 가까워지면서 하나둘 새벽을 커뮤니티에서 보내지 않은 유저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보기에 새벽반의 행각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자명했다. 흡사 환각파티를 벌인 약쟁이 소굴 같지 않았을까.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였다. 그것도 떼로 제정신이 아닌.

그들은 그 제정신 아닌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치우기로 무언의 결의를 다진 듯 했다. 냅다 이게 다 뭔짓들이냐? 라는 글을 시작으로 그들은 하나둘 새벽의 글들을 신고하고 저격하며 ‘어그로’라고 단언했다. 점점 동이 터올수록 그들에게 합세하는 유저들이 늘어났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 날 새벽은 ‘어그로의 폭동’으로 명명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A씨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 자신도 그 글들을 보면서 미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물론 끝에 가서 매우 마음이 어려워졌지만 어쨌든 죄다 신고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쩌면 자러 가야 한다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일어나보면 이 ‘정상인’들이 나와 진압했을 것이기에. 그러고보니 나도 글 하나 썼는데? A씨는 뒤늦게 자신이 썼던 글이 생각나 마이페이지 항목을 살폈다. 다행히 글은 살아있었다. 어휴, 하마터면 휩쓸려서 계정 밴당할 뻔. A씨는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그 새벽에 휩쓸리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렇지. 역시 그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었지. 무슨 정대만이랑 권준호가 결혼을 해. 참내... 다들 미쳤던 거야, 정말. A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sns도 커뮤니티도 복습을 마쳤겠다 A씨는 아점을 먹을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먹지, 하고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불현 듯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맑고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안경남. 그 안경남에게 거의 매일 같이 사진으로 보는 잘생긴 얼굴이 다가서선 꼬옥 끌어안는다. 잘 잤어, 준호야? 매일 같이 돌려본 인터뷰 덕분에 잘 아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는데 어디선가 낯설고 다정한 목소리도 마저 들려온다. 응, 잘잤어. 대만이 넌? 나도 잘 잤지. 역시 너랑 결혼하기 잘한 거 같다, 준호야.

A씨는 냉장고 문을 닫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거 뭐야? 이거 뭔데? 이거 뭔데 내 머리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건데? A씨는 다시금 찾아오는 혼란스러움에 두 손을 모아 제 입을 가렸다. 게시판은 분명 정리되었다. sns에도 김덕후가 실수한 글을 지운 뒤로 비슷한 얘기가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어제 하루를 꼬박 경험한 A씨의 정신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A씨는 이제 완전히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일어날 힘은 솟지 않는데 머리 속의 두 인영은 여전히 지들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 행복한 신혼부부의 모습을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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