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

슬램덩크 / BL / 창작 샘플

포말 by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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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열 X 강백호 기반의 호열 독백

*타계정 업로드 작품이며 샘플용으로 해당 계정에 아카이빙합니다.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가 억셌다.

든 게 없어 납작한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공중전화 박스로 몸을 숨긴 호열은 젖은 몸을 털어낼 생각도 않은 채 숨을 골랐다. 빗소리와 오가는 자동차 소리를 벗 삼은 그가 주머니를 뒤적이자 동전 세 개가 굴러 나왔다.

가난하다, 가난해.

함께 왁자하게 웃어줄 친구가 없으니 그는 버릇처럼 피식 웃고 말았다. 동전 세 개를 손안에서 굴리자 자그락자그락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졌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우산을 가져다 달라 부탁할 수도 있었겠지만, 호열은 구태여 비를 가릴 지붕이 필요하지 않았다.

호열의 젖은 손이 수화기를 쥔 채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동전 세 개를 거침없이 공중전화 안으로 밀어 넣었다.

힘든 재활치료를 마치고 실로 오랜만에 농구부에 복귀한 제 오랜 친구가 합숙 훈련을 떠났다. 그의 여름은 온전히 제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둥그런 가죽 공에 빼앗겼다. 고작해야 620g의 공말이다. 우리의 청춘이 그보다 가벼울 리 없었다.

그럼에도 호열은 그 미워야만 할 게 분명한 농구공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버렸다. 그 붉은 머리가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는 게 어느새 제 즐거움이 된 덕이었다.

백호가 훈련을 떠나기 전 제게 알려준 숙소의 번호는 이미 몽땅 외운 지 오래였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그 손은 빠르게 번호를 찍어눌렀다. 귀에 댄 수화기에서 볼품없는 착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는 이는 없었다.

필히 훈련 중이리라.

평소라면 아쉬운 맘 없이 끊어버렸을 전화를, 호열은 미련하게 들고 기다렸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비가 야속한 탓이었다.

그도 아니면 같이 가방을 뒤집어쓰고 달려줄 백호가 없는 탓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 이후…

호열의 입술이 달싹였다. 공중전화에 팔을 기대고 선 그는 비에 젖어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숨을 골랐다.

백호야, 훈련 중인가 보네. 아니면 일찍 자고 있나? 난 이제 알바가 끝났어. 연습 시합이라고는 해도 네 복귀전인데 보러 가려면 아무래도 돈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네가 꿈을 좇는 게 이제 내 꿈이 됐다니, 이런 말 쑥스러워서 평소엔 못하니까. 백호야,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네가 농구할 때 얼마나 빛나는지. 네가 무언가를 사랑할 때 얼마나 빛나는지. 사람들은 그걸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 같더라. 네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가끔 나도 농구를 했으면 어떨까 싶어. 하하. 너희 그 주전 멤버들에 비할 바가 못 됐겠지만 말이야. 가끔은… 아주 가끔은 질투도 난다.

그래도 내색하진 않을 거야. 날개는 못 달아주더라도 네 발목은 잡을 수 없으니까. 농구하는 널 지켜보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게 됐으니까.

호열이 목을 가다듬었다.

“모레 연습시합, 보러 갈게.”

동전이 덜컥 떨어졌다. 이제 곧 끊긴다는 신호로 점멸하는 빨간 불빛을 보면서 호열이 작게 웃었다.

“다치지 마.”

전하지 못한 말들은 모두 비에 쓸려 보낸 그가 수화기를 내려놨다. 동전 세 개에 실어 보낸 마음이 그에게 용기를 주길 바라며, 호열은 공중전화 박스의 문을 열어젖혔다.

들이치는 비바람에 그가 옷을 단단히 여몄다. 겨우 말랐던 머리와 옷이 도로 비에 젖어들어 갔다. 빗속으로 달려나가는 남자의 그림자가 옅은 가로등불에 길게 늘어졌다가 이내 어둠 속에 사라졌다.

전하지 못한 마음은 그날의 공중전화 박스가 기억하리라. 언젠가 그 공중전화 박스마저 사라진다면 함께 비를 맞고 서 있던 가로등이. 가로등마저 사라진다면 남자의 기억만이.

못난 질투와 경외, 우정보다는 애정을. 그보다는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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