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스톡홀름 2

주술회전 / HL 네임리스 드림 / 창작 샘플

포말 by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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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소우 드림

*타계정 업로드 작품이며 샘플용으로 해당 계정에 아카이빙합니다.


다시 오고 말았다.

날이 밝으면 바로 컴플레인 걸고 다른 숙소로 떠나겠다고 다짐했는데, 난 머저리가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의외로 이상한 취향이 있다던가.

“하아. 미치겠네, 정말.”

양 손 가득한 먹을거리를 쥐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앞에 서서 쉽사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였다.

어젯밤, 옆방의 남자가 날 도와준 것 같다. 가위에 눌린 것 같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려서 깜짝 놀랐다. 가위에 눌린 채로 살해당하는 결말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어서 혼자 주마등이나 돌리고 있었는데, 불청객이 머리맡으로 다가오자 순식간에 잠자리가 편해졌다. 어렴풋하게 그 불청객이 옆방의 남자란 걸 확인하고는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었다. 뭐, 눈을 떠보니까 사라져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양 손 가득 먹을 걸 바리바리 싸들고 고민하는 건 보답이라고 하는 선물이었다. 근데 막상 쵸소우가 안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어제 내 방 들어왔었죠? 고마워요!”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고민이 길어져 바로 뒤로 다가온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돌아간 게 아니었나?”

“엄마야아….”

너무 놀라 주저앉을 뻔 한 걸 쵸소우가 잡아 준 덕에 가까스로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돌아간 줄 알았는데.”

“돌아가려고 했어요. 건물도 무섭고 가위도 눌리고….”

투덜대려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쵸소우에게 우는 소리를 해버렸다.

어쩐지 민망해 쥐고 있던 쇼핑백을 떠넘기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쇼핑백을 번갈아 살폈다.

“옮겨달라고?”

“선물이거든요?”

“…선물? 나한테?”

“그래요. 어제 나 도와줬잖아요.”

내 뒷말은 들었는지 어쨌는지, 쵸소우의 눈이 이전과 달리 반짝이는 빛을 품었다.

“같이 먹도록 하자.”

“아.”

난 먹었다고 말할 셈이었는데 날 빤히 바라보는 기대에 찬 눈빛을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요.”

맛있는 것만 골라왔으니까 더 먹는 것쯤이야.

미스터 스톡홀름

그날 난 쵸소우란 남자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형제를 모두 잃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홀로 이런 폐가를 지키고 있다는 그 사정을 듣다 보니 어느새 내 눈에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였다.

“그 마음 알아요.”

코를 훌쩍이면서 말하자 쵸소우는 내 말에 흥미를 보였다.

“나도 사고로 오빠를 잃었거든요.”

이제 얼굴도 희미한 내 오빠는 차에 치일 뻔한 날 감싸고 어린 생을 마감했다. 애석하게도 못난 동생은 너무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 오빠의 숭고한 희생은 기억조차 하지 못해 부모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가 전부였다. 다만, 살아가면서 때때로 오빠가 날 지켜주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쵸소우가 반응이 없길래 재미가 없었겠구나 싶어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는데 그가 “크흡.”하고 크게 울음을 삼켰다.

“…울어요?”

“훌륭한 형제를 뒀구나.”

“그쵸? 기억은 안 나지만 멋진 오빠라고 생각해요. 지금 살아있었어도 아마 엄청 멋지게 자랐을 거예요.”

“네 오빠는 분명 네 기억에 그렇게 남아 행복할 거야.”

“그러면 좋겠다.”

맥주를 홀짝이던 난 아직도 눈물을 훔치고 있는 이 음침한 남자를 좀 더 웃게 해주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만큼 동생을 그리워하는 형이 나쁜 사람일 리 없었다. 아마도 나는 그에게서 나의 오빠를, 그는 나에게서 그의 동생을 봤을 게 뻔했다.

아마 운명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내일도 바빠요?”

쵸소우는 매일같이 어딜 쏘다니는지 밤에만 얼굴을 보였다. 혹시 바쁘다면 거절해도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는데,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줬다.

혼자 다니는 여행도 매력 있지만, 역시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여행은 더욱 즐거웠다. 그는 역시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지 보여주는 것마다 새로워했고 즐거워했다.

숙소비로 아낀 돈은 과감하게 쵸소우의 옷이며 선물을 사주는 데에 사용했다. 괜찮다는 그에게 날 지켜준 보답이라며 동생의 선물을 거절할 셈이냐는 협박을 들먹이자 그는 못이긴 척 선물을 받아줬다.

“우리 사진 찍을까요?”

“사진?”

작은 부스에 몸을 구겨 넣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쵸소우의 표정도 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풀렸다. 얼떨결에 데이트스러운 여행을 즐기긴 했지만, 이런 여행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게 이 시간은 유한하고 추억은 무한할 테니.

“그건 뭐지?”

쵸소우는 내가 골라 든 두 개의 작은 도자기 조형물에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 선물할 물건이었으니 관심을 가져주는 건 기쁜 일이었다.

“선물이에요. 방에 두고 나 보고 싶을 때마다 보라고.”

그의 큰 손바닥에 작은 도자기 인형이 앙증맞게 올라갔다.

쵸소우의 짙은 다크서클 위로 쭉 찢어진 눈매가 순식간에 건조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난 뭔가 잘못 되어가는 걸 느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행 일정이 곧 끝나거든요. 쵸소우씨랑 있는 거 즐겁고 재밌긴 했는데 돌아가야죠.”

“…돌아간다고?”

그의 작은 음성에 나는 일부러 밝은 척 했다.

“나도 이렇게 헤어지는 거 섭섭한데, 다음에 또 만나요. 이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도 교환하고 안부도 묻고 가끔 이렇게 만나서 얼굴도 보면 좋잖아요.”

아마 난 그 때 본능적으로 내게 일어날 일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

울음을 삼켜 내면서 제게 오빠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의 이야기에 쵸소우는 깊이 감명했다. 모든 걸 다 잃고 무언가를 지켜야 할 목적마저 상실한 그에게 있어 그녀의 등장은 마치 구세주와 같았다. 다시 저를 일으켜 줄 삶의 목적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떠난다고 했을 때, 쵸소우는 제 안의 무언가가 심히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없으면 누가 널 지키지? 하물며 주령이 잘 붙는 체질인 주제에 주력도 없으면서? 네가 없으면 난 또 뭘 바라보고 살아야 하지? 원하는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없으면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냐.’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원망과 미련이 그의 안에서 휘몰아쳤다. 육체를 얻고 가장 외롭고 괴로웠던 시간을 다시 기약 없이 버티라니, 그에겐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나쁜 생각이 자꾸 머리를 들이밀었다. 인간으로서 살자고 다짐했던 것들은 유혹 앞에서 쉽게도 무너졌다. 그게 인간이기에 그렇다는 것을 몰랐다.

그날은 하늘도 어두웠다. 짙은 구름에 가려진 달은 이 허름한 건물을 비추지도 못해 어둠에 집어 삼켜지는 걸 막을 힘조차 없었다.

301호의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쵸소우는 이내 며칠 전 밤처럼 그녀의 방 문을 열어 젖혔다. 제가 쫓아낸 덕에 이 방을 얼씬거리는 주령은 한 마리도 없었다. 단잠을 방해하는 무리가 사라진 그녀는 여전히 무방비한 얼굴로 얇은 이불을 끌어안은 채 얕은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뱉어냈다.

그녀의 머리맡에서 한참동안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던 쵸소우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무늬가 일렁이더니, 곧 진득한 피 한 방울이 허공을 가르고 유연하게 움직여 그녀의 벌어진 입술 새로 흘러 들어갔다. 제 혈액이 그녀의 몸 안을 유영하는 것을 느끼며 쵸소우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칠칠치 못하긴.”

이불을 끌어올려 목까지 잘 덮어준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걸 느끼고는 아차 싶어 서둘러 손을 들어 입가를 덮었다. 하지만 이 기쁜 마음은 도무지 감추기 어려웠다. 다시 제게 희망이 생겼다. 제가 지켜내야 하는 누군가가 생겼다. 그것만으로 제 존재가 다시 증명된 것 같아 기뻤다.

들어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제 방으로 돌아온 쵸소우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한 마음으로 기꺼이 잠들었다. 다음날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제 방 문을 두드렸을 때는 심장이 두근 거리기까지 했다.

“쵸, 쵸소우! 안에 있어요? 바, 밖에 이상한 게 있는데…!”

쵸소우의 혈액이지만, 그의 주력이기도 한 물질이 몸에 섞였으니 그녀의 눈에 그간 보이지 않던 온갖 징그럽고 두려운 주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없앨 힘까지는 없었다. 우는 얼굴로 제게 안겨 그것들을 한 손에 으깨버리는 제 모습에 안도하는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불쌍해 보였을지언정 쵸소우에게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녀는 겁먹고 두려울수록 제게 의지했고, 저는 그녀에게 하나뿐인 보호자가 되었다.

폐가에는 누구도 오가지 않았고 이 무너져 가는 건물은 제게 있어 견고한 울타리였다. 두려움에 질린 그녀를 어디에도 못가게끔 묶어둔 튼튼한 울타리.

“돌아가지 않아도 돼?”

비겁하게 떠보는 제 물음에 한껏 겁에 질린 눈이 창밖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쵸소우랑 있을래요. 매일 이런 걸 보고 있었어요? 안 미쳐요?”

무릎을 끌어 안고 울먹이는 그녀의 물음에 쵸소우는 그녀 곁에 꿇어앉아 바싹 마른 어깨를 감쌌다.

“아니. 나도 미쳐버렸어.”

제게 안겨 우는 그녀의 살결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바깥은 한 대학생의 실종 사고로 연일 시끄러웠고, 쵸소우는 곧 그녀를 안아 들고 좀 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숨어들었다.

누구도 제게서 다시 찾은 동생을 빼앗지 못한다는 비틀린 애정을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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