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태웅준호] 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9

-태웅이랑 준호가 육아(?)하고 썸도 타는 이야기-

태웅이 득점률 1위를 한 것 외에도 세준이 가져온 응원의 효과는 굉장했다. 사실 연습을 구경하는 이들이라면 전부터 있었지만 대부분 체육관 밖에서 지켜보는 편이었다. 거기다가 지켜보는 이들 태반이 한 사람을 노리고 오는 편이었으니 누가 보러 온다고 한들 그것이 부원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세준은 달랐다. 물론 삼촌인 태웅을 가장 열심히 응원하긴 했지만 세준은 골을 넣는 모든 부원들에게 박수를 쳐줬다. 

"우와!! 멋지다!!"

아이의 한 마디에 부원들은 평소보다 경기에 한껏 집중했다. 덕분에 연습시합에선 잘 나오지 않는 파울까지 연이어 나올 정도였다. 덕분에 혼자 개인연습을 하던 백호가 더 뚱한 표정이 되었다. 나도 활약할 수 있는데. 라며 이를 가는 백호에게 한나는 진정하라며 딱밤을 날렸다. 세준의 함성이 커질수록 체육관의 열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경기 쉬는 시간 부원들에게 음료를 나눠주는 한나를 따라다니며 세준은 부원들에게 스포츠타월을 건넸다.

"똑부러지는 매니저가 하나 더 생겼네."

준호는 한나 옆에 선 세준을 보며 흐뭇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의 옆에서 포카리를 마시던 대만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준호를 바라봤다. 누가 보면 아주 네 앤 줄 알겠다. 라는 대만의 말에 준호는 농담하지 말라며 웃었다. 태웅은 두 사람의 대화를 가까운 거리에서 듣고 있었다. 세준을 챙겨주는 준호의 태도가 꼭 아빠같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겠지만 태웅은 괜히 대만의 말을 한 번 더 곱씹었다. 아주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아이의 아빠가 된 준호를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세준이 정도 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을 가는 좋은 아빠 권준호. 언젠가 준호가 맞이할 당연한 미래였지만 이상하게도 태웅은 그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의 기분을 대변하는 듯 무표정했던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촌! 삼촌!!"

태웅이 정신을 차린 건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드는 세준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세준은 눈을 깜박이며 태웅을 올려다봤다. 

"삼촌, 이거 마셔!"

세준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손에 들린 포카리 캔을 건넸다. 태웅은 말없이 캔을 받아들었다. 

"삼촌, 어디 아파?"

"..아니"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삼촌 표정 지금 이래."

세준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얼굴을 하곤 태웅을 쳐다봤다. 아이가 인상을 찌푸려봤자 위협적인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인상을 하고 있었다는 건 좀 의외였다. 그냥 아빠가 된 선배를 상상했을 뿐인데 왜 그런 얼굴을 했지? 태웅은 한 번 더 준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웃는 준호의 얼굴. 준호의 손에 잡힌 손은 분명 아이의 손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그 손은 준호와 같은 어른, 남자의 손으로 변했다. 그 손의 주인은 놀랍게도 자신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랐는지 태웅은 몸을 잘게 떨었다.

"삼촌?"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스레 쳐다보는 세준에게 태웅은 표정을 펴곤 괜찮다는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아이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북산의 당근인 부주장은 그런 말에 넘어가주지 않았다.

"태웅아, 너는 이번 타임은 잠깐 쉬어."
"괜찮아요."

"아니, 너 하나도 안 괜찮아. 표정이 아직도 굳어있잖아."

준호는 검지손가락으로 태웅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린 건데도 닿은 부분이 불타는 것 마냥 화끈거렸다. 움찔한 태웅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준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세준이가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지 힘이 너무 들어간 것 같은데? 다른 애들이랑 잠깐 쉬어."

준호는 체육관 한 쪽에서 아직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부원들을 보며 말했다. 평소보다 오버페이스로 뛰어버린 부원들을 향해 한나가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다가 한나한테 혼난다? 준호는 태웅의 어깨를 토닥여주곤 다시 코트 위로 돌아갔다. 그의 말대로 얌전히 코트에서 물러나 체육관 한 쪽에 주저 앉은 태웅은 제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전국진출을 확정지었던 그 날밤의 일을 떠올렸다.

'너 그 선배 좋아하지?'

'....아니야.'

'아닌 것치고는 대답이 늦었는데?'

맞은 편에 앉아있던 태희는 짖궃게 웃으며 엄마가 깎아준 사과 조각을 한 입 깨물었다. 태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가 놀리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올 때도 친위대 깃발을 봤다면서 놀려댔으니 이번에도 그런 놀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자각이 늦는 건가.'

'아니야.'

'아니긴.. 너 다른 선배들 얘기할 때랑 준호 얘기할 때랑 반응이 천치 차이거든?'

'..별로 다르게 한 적 없어.'

태웅의 말에 태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너는 이번 생에 연애하긴 글렀다. 이렇게 둔해서 어떻게 연애를 하냐.'

'관심 없어 그런 거.'

'정말? 준호랑 사귄다고 해도?'

'....선배랑은 그런 거 안해.'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는 태웅의 말에 흥미를 잃었는지 태희는 그 이상 준호 얘기를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넘겼었다. 태웅은 뚱한 표정으로 누나를 보다가 사과를 입에 넣었다. 그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태웅은 두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했다.

'너 그 선배 좋아하지?'

누나가 물었던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좋은 선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년 간 농구부를 떠났던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에게도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북산의 당근. 그리고 누구보다 노력하며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 그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것 같아.'

태웅은 코트 위를 달리는 준호의 모습을 바라봤다. 진지한 얼굴로 시합에 임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자니 시선을 느낀 건지 준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흠칫 놀란 태웅과 다르게 준호는 눈웃음을 지으며 제 몸 앞에 팔을 x자로 들어보였다. 이따가 교대하자. 라고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잔잔해졌던 심장박동이 다시 크게 뛰는 걸 느꼈다. 태웅은 고개를 끄덕이곤 목에 걸고 잇던 스포츠 타월로 얼굴을 가렸다. 교체해서 다시 코트에 들어갈 때까진 어떻게든 이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연습 종료를 알리는 안선생님의 말에 부원들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한나가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는 한나의 옆에는 잠들어 있는 세준의 모습이 있었다. 의자를 세 개 붙여놓고 한나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세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나는 웃었다.

"다들 기운이 좋은 건 좋지만 애가 깬다구요."

태웅은 한나에게 죄송하다면서 세준을 조심히 안아올렸다. 세준은 조금 뒤척이긴 했지만 깨진 않고 태웅의 품에 잘 안겨있었다. 태섭은 어딘가 넋나간 얼굴로 한나의 무릎베개.. 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내 부원들의 정리하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수고했어, 태웅아."

안 무겁니? 준호는 태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태웅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세준의 옆 얼굴을 슬쩍 보곤 고개를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의 대답에 준호는 그래? 라고 답하면서 그의 앞에 팔을 뻗었다.

"세준이 내가 안고 있을테니까 먼저 옷 갈아입어."

"…선배도 옷 갈아입어야 하잖아요."

"너 먼저 하고 난 후에 갈아입어도 돼. 어차피 오늘 체육관 문단속은 내가 하는 날이니까 준비 좀 늦게 해도 괜찮아."

부드럽게 웃으며 세준을 넘겨달라 손짓하는 준호의 말에 태웅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순순히 세준을 그에게 넘겼다. 세준을 넘겨주고나서도 태웅은 먼저 가기 멋쩍은 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정리 중인 동기들을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백호를 제외한 1학년들은 준호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락커룸으로 가라며 태웅을 떠밀었다. 준호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고 태웅은 동기들의 성화에 떠밀려 락커룸으로 향했다.

“세준이 때문에 이번만 봐주는 줄 알아!”

태웅의 등 뒤로 한 마디 하는 백호를 보며 준호는 싱긋 웃었다. 이런 소란에도 세준은 깨어날 줄 모르고 잠에 빠져있었다. 한편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대만은 준호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팔을 툭 쳤다.

"너 너무 오냐오냐하는 거 아니냐?"

"뭐가?"

"뭐냐니.."

대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태웅이 사라진 쪽을 쳐다봤다. 준호는 그의 시선을 따라 락커룸 쪽을 쳐다봤다가 다시 대만을 쳐다봤다.

"에이스라고 너무 오냐오냐하는 거 아니냐고."

"별로? 딱히 오냐오냐한 건 아닌데.."
"아니긴. 걔 조카를 이렇게 봐주는 것부터가 오냐오냐하고 있는 거라고."

잠든 세준의 뺨을 톡톡 건드리는 대만을 보고 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 깨우지마. 라며 세준을 고쳐 안는 걸 보고 대만은 피식 웃었다. 

"이것 봐. 누가 보면 네 앤 줄 알겠다니까."

"그니까, 그게 말이 되냐구~"

"무슨 일이냐."

준호가 대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 안선생님과 대화 중이던 치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대만은 치수를 보고 옳지 싶은 표정을 짓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치수를 향해 대만은 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한 마디 해주라고. 이 녀석 서태웅 너무 오냐오냐 한다니까?"

"음, 확실히 준호 네가 서태웅에게 무르게 구는 구석이 있다."

"그래? 난 다 똑같이 대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거든? 네가 후배들한테는 사근사근하긴 하지만 서태웅한테는 유독 심해. 방금 전에도 네가 굳이 맡아줄 필요도 없었는데 나서서 한 거 아니야."

"그거야 내가 세준이랑 아는 사이니까 그렇지."

준호가 반박하자 대만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 이거 지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네. 라는 대만의 말에 준호는 어리둥절해하며 치수를 쳐다봤지만 치수는 준호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만은 정대만 말이 맞다."

"이번만은 뭔데? 평소에는 틀리다는 거냐?"

"그런 편이지."

"야!"

대만은 욱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치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리 중이던 후배들의 시선이 대만에게 꽂혔고 대만은 머쓱한 얼굴로 신경쓰지 말라며 손을 저었다.

"너무 다 받아주진 마라. 버릇 나쁘진다."

"버릇 나빠진다니 태웅이가 애도 아닌데."

"네가 애처럼 대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맞아, 후배한테 신경쓸 시간에 동기한테도 좀 신경써주고 그래~"

"네 앞길은 네가 챙겨라 정대만. 괜히 준호 귀찮게 하지 말고."

"내가 뭘!"

치수와 대만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세준이 품에서 꼼지락거리자 준호는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괜찮아. 라고 등을 토닥여주자 세준은 준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다시 조용해졌다. 세준의 등을 토닥이며 준호는 친구들의 말을 곱씹었다. 

‘음,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런 식이면 치수도 백호를 꽤 봐주고 있고 말이지… 그냥 대만이가 놀리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준호는 세준의 등을 토닥이며 생각에 잠겼지만 역시나 친구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정리가 마무리됐고 준호는 체육관의 불을 끄고 치수의 도움을 받아 문을 잠궜다. 락커룸으로 향하니 막 옷을 갈아입은 듯한 태웅이 락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보고 준호는 태웅의 옆으로 다가왔다.

“짐은 다 챙겼어?”

“네”

“누나가 데리러 오신대?”

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한 번 보더니 그대로 트레이닝 복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준호가 안고 있던 세준을 건네 받았다.

“…아뇨, 일이 있어서 못 올 것 같대요. 그래서 집에 먼저 가 있으라고…”

“그래? 태웅이 너 오늘도 자전거 타고 왔지?”

준호의 말에 태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자신의 락커를 열고 아이를 안고 있어 축축해진 셔츠를 벗었다.

‘자전거에 잠든 세준이까지 안고 가려면 많이 힘들텐데…‘

태웅이 집까지 세준을 데리고 가는 것이 무리일 거라는 생각이 든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태웅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집까지 세준이 안고 갈까? 자고 있는 애 깨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네가 자전거랑 세준이까지 다 챙기기도 힘들잖아. 자전거 두고 가는 것도 좀…그럴테고?”

태웅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꽤 고가라며 얘기하던 후배들의 대화를 떠올리며 준호는 말했다. 학교 내부에 있으니까 누가 가져가진 않을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세준이를 데리고 돌아갈 태웅이가 걱정이었다. 첫 만남때 우는 세준이를 앞에 두고 쩔쩔매던 모습을 봤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처에서 옷을 갈아입던 대만이 으이구… 하는 얼굴로 쳐다봤고 치수 역시 준호를 힐끗 쳐다봤지만 준호는 개의치 않아했다. 태웅은 잠시 말이 없더니 락커룸에서 스포츠 백을 꺼내며 말했다.

“…선배만 괜찮으시면요.”

다른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태웅을 보고 준호는 괜시리 웃음이 났다. 과묵하고 쿨해보이지만 이럴 때는 역시 애인 티가 나는 구나 싶어 준호는 손을 뻗어 태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야 괜찮지. 금방 짐 챙길테니까 잠깐만 기다릴래?”

준호의 말에 태웅은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락커룸을 나왔다. 락커룸에서 자전거가 있는 주차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태웅은 자전거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지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사실 태웅은 태희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말지 계속 고민하던 차에 준호가 왔고 얼떨결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준호가 같이 가주냐고 말할 거라는 걸 조금은, 예상했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고 거짓말을 한 건 어릴 적 처음 농구를 배웠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선배가 알면 화내시려나…’

태웅은 애꿏은 바닥을 발로 차며 생각에 잠겼다. 몇 분이 지났을까. 태웅의 시야에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치수와 대만이랑 인사를 하고 태웅을 향해 걸어오는 준호의 모습이었다. 준호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 세준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진짜 피곤했나보네. 이렇게 깨지도 않고 자는 걸 보면”

“그런가봐요. 선배를 봐서 신나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그래? 나도 오랜만에 세준이 봐서 좋았어.”

준호는 잠든 세준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다시 아이를 넘겨받았다. 준호가 세준을 안자 태웅은 자전거 바퀴에 잠궈둔 자물쇠를 풀어 자전거를 꺼냈다.

“그럼 갈까?”

준호의 말에 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 서서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두 사람은 사소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부분은 오늘 연습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준이가 응원해줘서 그런지 다들 오늘따라 기합이 힘껏 들어갔던데. 나도 그랬지만.”

“덕분에 좀 시끄러웠어요.”

“하하, 시끄러운 게 좋지. 치수는 농구할 때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기합을 넣고 하자는 뜻에서 말이지.”

태웅의 말에 대답하던 준호는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려 태웅의 얼굴을 쳐다봤다. 준호의 시선에 태웅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전국대회 진출이 확정되고 유독 연습에 집중하는 것 같던데… 뭔가 이유라도 있어? 아니, 다른 애들도 다 열심히 하지만 말이야. 태웅인 넌 유독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태웅을 막으려고 파울까지 했던 걸 떠올리며 준호는 말했다. 오늘 부원들이 전부 집중력이 좋았던 건 세준이 때문이 맞았지만 태웅은 그 이전부터도 굉장히 훈련에 열심이었기에 한번쯤은 묻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그게… 며칠 전에 안 선생님한테 상담을 했었어요.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미국?”

“네, …근데 안 선생님이 미국을 노리기 전에 여기에서 탑이 되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태웅의 말에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농구에 자신만큼 아니 자신 이상으로 진심일 후배는 전국제패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더 넓은 곳에서 마음껏 농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삼 준호는 자신과 태웅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학까지 생각할 정도의 실력자인 그와 평범한 자신. 이렇게 같이 농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지금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네…”

칭찬으로 한 말이었지만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왜 아쉽냐고 묻는다면 쉽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후배의 플레이를 가까이서 볼 수 없게 된다는 그런 아쉬움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준호는 아직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직 멀었어요… 아직 탑이 아니니까…”

준호의 말투가 조금 달라진 거 느꼈는지 태웅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아직 이 곳에도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들이 있었다. 그 자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탑이 되어야만 하는 걸 태웅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될거에요.”

“…그래, 태웅이 너라면 분명히 할 수 있을 거야.”

우리의 에이스니까. 준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웅을 향해 웃어줬다. 세준을 안고 있는 팔을 뻗어 태웅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준 준호는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태웅은 그런 준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때까지 선배랑 같이 농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말로 표현되지 않은 문장은 태웅의 마음 속에 내려앉았다.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태웅을 알아챈 준호가 뒤를 돌아보자 태웅은 그제서야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서로 같은 듯 다른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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