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준호] 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8
-태웅이랑 준호가 육아(?)하고 썸도 타는 이야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에도 세준은 바쁘게 부원들 사이를 오갔다. 붙임성 좋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를 부원들은 모두 살갑게 대했다.
"고릴 형아, 덩크하는 거 보여주세요! 이렇게 쾅! 하고 하는 거!"
여기저기 말을 걸고 다니던 세준의 다음 상대는 다름 아닌 치수였다. 고릴 형아 라고 말을 붙여오는 세준때문에 순간 치수가 화내는 거 아닌가 하는 후배들의 예상과 달리 치수는 팔짱을 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형아 시합할 때 덩크하는 거 봤어여! 엄청 멋있었어!"
시합 때 모습을 재현하는 듯 두 손으로 덩크하는 시늉을 하는 세준을 힐끗 보고 치수는 헛기침을 했다. 그모습을 지켜보던 준호는 조용히 웃었다. 세준이 대하기가 어색한 모양이네. 티는 잘 안났지만 제 허리 정도 밖에 안 오는 세준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시선이 허공을 헤매는 치수였다. 준호는 그런 치수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그래, 세준이한테 한 번 보여줘. 북산 주장의 실력이 어떤지. 내가 패스해줄게"
"응응! 보여주세요! 주장의 실력!"
"맞아, 쩨쩨하게 굴지말고 좀 보여줘 고릴!"
"..시끄러 강백호."
옆에서 부채질하듯이 한마디 거드는 백호를 향해 한 마디 해주고 치수는 골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덩크슛을 위해 자리를 잡는 치수를 보고 준호는 가볍게 공을 튕겼다. 준호의 옆에서 세준은 기대감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준호는 간다 하고 외치곤 치수에게 공을 패스해줬다. 림을 향해 날아간 공을 치수는 허공에서 잡아 그대로 내려꽂듯이 골대 안으로 통과시켰다. 골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공은 골대를 빠져나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우와!!!! 완전 멋있어!!!"
세준은 림에서 내려온 치수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방금 엄청 머쪄써! 형아 대단해여!!! 최고로 멋진 고릴이야!!"
한껏 상기된 얼굴로 좋아하는 세준의 표정을 보며 치수는 크흠 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맙다. 세준에게 들릴까말까한 목소리로 답한 게 치수의 최선이었다. 데구르르 굴러간 농구공을 잡은 대만은 못 볼 꼴 봤다는 표정을 짓더니 세준에게 다가왔다.
"세준아, 저 고릴라 형이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멋있는 거 보여줄게. 잘 봐"
대만은 3점슛 라인 밖에 서더니 공을 잠시 만지더니 그대로 3점슛을 던졌다.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공은 림을 향해 날아갔다. 림을 통과한 공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깔끔한 클린슛이었다. 어때? 라며 우쭐해하는 대만을 보며 세준은 아까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엄청 머시써!!!"
"훗... 그치? 한번 더 보여줄까?"
잔뜩 우쭐해진 얼굴로 묻는 대만에게 세준은 고개를 마구 끄덕이더니 농구공을 들고 달려와 그에게 내밀었다. 대만은 공을 넘겨받아 한 번 더 슛을 날렸다. 공은 방금 전처럼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다가 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우와!! 굉장해!! 세준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관객의 뜨거운 반응 때문일까 대만은 한 번 더 보여주겠다면서 공을 가져왔다. 슛을 던지려고 폼을 잡는 그에게서 공을 뺏은 건 백호였다. 우쭐대는 대만이 꼴보기 싫었던건지 백호는 눈을 흘기며 그를 쳐다봤다.
"애 앞에서 잘난 척하긴..."
"뭐???"
백호의 말에 대만은 욱했지만 옆에 서 있는 어린애를 보고 참았다. 너 나중에 보자. 라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대만에게 백호는 흥! 하더니 세준을 쳐다봤다.
"저런 거 말고 이 천재형아가 더 멋진 걸 보여줄게!"
멋진 거라는 말에 세준은 다시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향한 그 눈빛이 백호는 썩 맘에 드는지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치수는 똑같은 녀석들이라고 중얼댔다. 백호는 제자리에서 공을 두어번 튀기더니 림을 노려봤다. 그리곤 3점슛 라인에서부터 드리블을 하며 달려갔다.
"이대로 덩ㅋ..켁!"
골대 아래쯤 왔을 때 백호는 점프를 하며 그대로 덩크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시선을 너무 의식한 탓이었을까. 높이 조절에 실패한 백호는 공을 넣지도 못하고 그대로 백보드에 박치기를 했다. 쿵! 하고 백보드에 부딪히는 소리에 이어 한 번 더 쿵 소리가 체육관에 울렸다.
"백호야!"
"강백호!"
"천재 형아!"
보드에 부딪힌 백호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부원들은 다들 놀라서 다가왔다. 지켜보던 세준 역시 쪼르르 달려와 백호의 상태를 살폈다. 이마를 부여잡던 백호는 형아 괜찮아여? 라고 묻는 세준을 보고 자세를 고쳤다.
"다,당연하지! 이 형은 천재라서 이런 것 하나도 안 아파!"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허세를 부렸지만 보드와 부딪힌 이마 정중앙은 이미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결국 백호는 한나의 손에 이끌려 보건실로 향했다. 태웅은 그런 백호의 모습에 나지막하게 멍청이 라고 중얼거렸다.
"정말 재밌는 친구네."
"..그냥 바보인거야."
"말이 심하네. 너 그러다가 저기 있는 선배한테 미움받는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일련의 소란을 지켜보고 있던 태희는 턱짓으로 치수 옆에 있는 준호를 가리켰다. 태웅은 누나의 짖궃은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이미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잘근잘근 씹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는 그런 걸로 누굴 미워하는 사람이 아냐."
변명같은 말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왠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았다. 누나가 흐뭇해보이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태웅은 고개를 돌린 채 막대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잠시 뒤, 보건실에서 치료를 받고 백호가 돌아왔다. 이마에 커다란 밴드를 붙인 채로. 백호가 돌아오자 치수는 박수를 치며 부원들을 불러모았다.
"자, 휴식시간은 끝이다. 다시 훈련시작한다."
훈련 재개를 알리는 치수의 말에 부원들은 제 할 일을 마치고 다시 훈련할 준비에 들어갔다. 세준에게 드리블을 가르쳐주던 태섭은 여기까지 라면서 세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앞으로 드리블할 때는 자세를 좀 더 낮춰서 하는 거야. 알겠지?"
태섭의 말에 세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이 자리로 돌아가자 안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태희가 세준에게로 다가왔다.
"세준아, 이제 그만 가야지."
"에...벌써 가? 나 더 있으면 안돼?"
"더 이상 방해하면 안돼. 삼촌이랑 형들 연습해야지."
부드럽게 타이르는 태희의 말에도 세준은 입술을 삐죽였다. 가기 싫어. 라고 얼굴에 써져 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태희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30분이나 세준과 어울려준 부원들에게 태희는 이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더 폐를 끼쳤다간 자신이 아니라 태웅이가 곤란해진다는 걸 그녀는 잘 알았다. 하지만 아직 세준은 그런 것보다는 형들과 농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조금만 더 구경할래요. 네? 조금만 더~"
"안 돼. 형들하고 놀만큼 놀았잖아. 이젠 정말 집에 가야 돼."
"힝....."
단호한 엄마의 말에 세준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고였다. 금방이라도 울 기세인 세준을 보고 태희는 아무렇지 않아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세준의 눈물에 당황한 건 부원들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서로 눈빛만 주고 받는 사이에 준호가 치수에게 말을 걸었다.
"참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치수야?"
"으음..."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냥 보내는 것도 그렇잖아. 이어진 준호의 말에 치수의 미간에 한 번 더 주름이 졌다. 평소 엄격한 치수의 성격을 생각하면 준호가 저렇게 말해도 안된다는 말이 나와야 했지만 그러지 않은 건 역시 치수도 세준이가 신경쓰인다는 증거였다. 세준은 울먹이다가 준호의 말을 들었는지 치수에게 다가와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주자아앙~ 나 얌전히 구경할게요오 네? 나 형아들 농구하는 거 더 구경하고 싶어요"
자기 다리를 붙잡고 한껏 애교를 부리는 세준의 행동에 치수의 눈이 흔들렸다. 애교 부리는 아이는 귀여웠지만 전국대회를 눈앞에 둔 북산에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세준을 보자 세준 역시 치수를 올려다봤다. 울망이는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도저히 안된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루 얌전히 구경하께여! 네?"
"....선생님"
세준의 애교에 당해낼 재간이 없는지 치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안선생님을 쳐다봤다. 안선생님은 허허 하고 웃더니 오늘만 특별히 허락하도록 할까요 라고 말했다.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 애때문에"
"괜찮습니다. 오히려 관중이 있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안선생님은 난처해하는 태희를 보며 사람 좋게 웃었다. 세준은 치수의 다리를 놓고 이번엔 안선생님 앞으로 다가오더니 두 팔을 뻗어 선생님을 끌어안았다.
"선생님 고마워여!"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자, 제대로 서서 손 모으고."
"아... 감사합니다!"
엄마의 말에 세준은 안았던 팔을 풀고 두 손을 곱게 모으더니 90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대신 형들의 연습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면 안됩니다. 알겠죠? 안선생님의 말에 세준은 네! 라고 대답했다. 어느 새 눈물은 쏙 들어가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들을 보며 태희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누굴 닮아 저렇게 고집불통인지 몰라. 라고 중얼거리는 누나를 향해 태웅은 누나 닮아서 라고 말할 뻔 했다. 다행히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내었다면 후에 무슨 일을 겪었을지 몰랐다.
"태웅아"
"응"
"이따가 끝나면 연락해. 세준이 데리러 올게. 혹시 내가 전화 안 받으면 그냥 집으로 데려가. 사실 오후에 일이 있었는데 세준이가 하도 보채서 온 거라."
"알았어."
부탁 좀 할게. 태희는 태웅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안선생님과 부원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태희는 체육관 밖으로 향했다.
"세준이 잘 부탁할게요. 태웅이도요."
완전히 밖으로 나가기 전, 태희는 준호를 보며 말했다. 태웅이도요 라는 말을 덧붙이며 동생을 쳐다본 건 누나의 작은 놀림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태웅이만 뚱한 표정을 지으며 제 누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태희는 그런 동생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곤 사라졌다. 태희가 배웅하고 나니 세준은 농구공을 안고서 안선생님 옆에 앉아있었다. 한나가 의자를 챙겨준 모양이었다. 준호는 세준의 앞으로 다가갔다.
"형들 잘 하라고 세준이가 열심히 응원해줘. 알겠지?"
준호의 말에 세준은 옆에 있는 안선생님을 쳐다봤다. 안선생님은 세준의 시선을 느끼고 이번에도 허허 하고 웃었다. 응원은 해도 괜찮답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자 세준은 다시 준호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워. 준호는 그런 마음으로 세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쳇, 이 농구 천재의 멋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를...!"
"백보드에 이마 박은 사람은 얌전히 기본기 연습이나 하세요~"
팀을 나눠 연습 시합을 하는 다른 부원들과 달리 혼자 슛연습을 하는-그것도 기본기에 가까운- 것이 못마땅한 백호였지만 한나의 지적에 금방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건 쪽팔린 일이긴 했다. 반드시 다음엔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백호는 연습에 집중했다. 백호가 개인 연습에 집중하는 동안 다른 부원들은 연습 시합을 시작했다. 제비뽑기로 나눈 팀을 나눈 결과 준호와 태웅은 같은 팀이 되었다. 세준이가 어느 쪽을 응원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삼촌~! 힘내라~!!"
아이의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려퍼졌다. 태웅은 슛에 성공하고 나면 세준이 앉아있는 쪽을 힐끗 쳐다봤다. 세준은 태웅의 슛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세준과 눈을 마주치고 나면 태웅은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준호를 쳐다봤다. 준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웅에게 웃으며 잘했어.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오늘은 둘이나 있는 오늘, 태웅은 연습 시합에서 득점율 1위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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