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명헌] 상실을 분해하면 사랑을 쓸 수 있다

펜슬 TEST

자유투TEST by 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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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또다시 한 달 뒤로 미뤄졌다. 만난 기간이 길어서 그런가. 쉽게 헤어지기는 글른 것 같았다. 형도, 나도.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더 지나서야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형이 집을 나간지는 두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보낸 시간이 이제 꽤 된다. 너무 오랫동안 뜸을 들여서 그런가, 막상 헤어짐이 눈 앞에 닥치니 의외로 어렵지가 않았다. 대화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나오기까지가 어려웠지 막상 나오고 나니까 너무 쉬웠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자는 말은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는지. 지난 시즌은 잘 끝냈는지. 다음 시즌도 응원한다고.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나는 형을 향해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 미소라는 것이 좋았다. 깔끔하고, 아름답고, 고상했다. 살아온 세월의 반 가까이를 형과 함께 했고, 정식으로 연애를 시작한 것만 세어도 5년이 넘었으니.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다. 이것이 우리의 헤어짐이었다. 굳이 언어로 빚어내지 않아야 더 완벽한 순간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옷을 갈아입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두꺼운 생수 병을 꺼내 마셨다. 형이랑 같이 살던 집인데도 두 달 전에 형이 나가고 나니 이곳에 나는 혼자 오랫동안 살아온 것만 같았다. 내가 이 집에 혼자 머무른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이전에는 귀국을 해야만 이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어쩌면 이곳은 나의 집인데도 혼자 머무른 시간으로 따지면 형이 더 길지도 몰랐다.

 형과 나는 시작부터 애매한 사이였다. 첫 입맞춤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건 사고 같았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날이었다. 정신 차리니 입술을 부비고 있었고, 형이 먼저 내 허리를 잡았다. 입술이 떨어진 뒤로는 가장 먼저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입이 뱉어낸 말은 멍청했다. 편지 할게요. 그 말에 형은 안 하면 죽는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나는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그리고 그렇게 말하던 형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형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내가 귀국할 때에 우리는 종종 만났고, 형은 매번 나를 위해 휴가를 비워두었다. 정식으로 우리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은 형이 내게 집 키를 내밀었을 때였다. 그 이후에는 형이 미국으로 오기도 했다. 다음에 만날 때에는 나도 한국에 있는 집의 키를 형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우리는 키 두 개를 버리고 하나의 집 키를 갖게 되었다.

 헤어진 이유라고 하면 별 것이 없었다. 동오 형이 결혼을 했다. 현철이 형도 결혼을 했다. 그때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오래 서로를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형을 닮은 아이가 보고 싶다고. 형에게도 마땅히 평범한 삶이 필요하다고. 그러려면, 나는 형을 놓아줘야만 한다고......

 둘이 같이 살았던 집인데도 혼자 살기에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그렇게 큰 집에서도 살았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혼자서도 채울 수 있다. 허기는 지지만 입맛은 없어서 햇반을 하나 돌렸다. 간단하게 반찬이랑 대충 먹었다.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니 문득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설거지 할 당번을 정할 필요가 없으니 책임은 깔끔했다. 이대로 두어서 모든 식기가 썩어버려도 그건 나만의 책임이니까. 나를 꾸짖을 사람도, 내가 미안해 할 사람도 없다. 샤워기 아래 서서 따뜻한 물을 오랫동안 맞았다. 몸이 노곤노곤 풀리도록 씻고나니 대충 먹은 식사 때문에 다시 허기가 몰려왔다. 양념을 거의 하지 않았다던 생감자칩을 하나 집어들었다. 난방을 따뜻하게 올리니 갑작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여도 집은 따뜻했다. 그러니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운동도 하고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은 것은 얼마만인지도 몰랐다. 그냥 쉬고 싶었다. 이대로 눌러 붙어있고 싶었다.

 문득 좋은 텔레비전을 사두고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에는 일년에 겨우 두번정도 귀국했고. 내가 없는 집은 늘 형이 관리했었지만. 형은 티비를 보지 않았다. 그러니 주인만 있고 사용인은 없는 티비 다시보기에는 로그인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되는대로 채널을 돌렸다. 여섯번 정도 건너뛰었을 때 티비에서는 여행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여행지는 프랑크푸르트였다. 지글지글 소리가 들렸다. 구운 소시지를 썰어서 나눠먹고 있는 사람들. 나는 독일을 가보고 싶었다. 독일 소시지가 그렇게 맛있다며. 아무리 프랑크푸르트 이름을 달고 바다를 건너 와도 현지에서 먹는것만 못하다며. 네모난 식탁에 마주 앉아 종류별로 한가득 나오는 소시지를 먹어보고 싶었다. 와, 이 많은 소시지를 언제 다 먹어. 해보고 싶었다. 나는 베를린의 그래피티를 보고싶었고, 뮌헨의 마리엔 광장에 가보고 싶었고. 로텐부르크의 슈니발렌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니 독일은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였는데, 어쩌다보니 미뤄진 곳이었다. 여름에는 하와이가 좋았고. 겨울에는 프랑스가 예뻤다. 봄에는 형이 미국으로 왔고. 가을에는 호주가 적당했다. 독일의 자리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여행 프로그램을 오래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여행 프로그램이든 결국은 다 비슷한 곳을 돌고, 다 같은 소리를 떠든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이름에는 도전을 빼먹지 않으면서, 사실 도전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티비에 나온 식당은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온다. 그러니까 직접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영영 알 수 없는 골목들이 있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영영 모를 순간들이 있듯이. 독일만 나오면 사람들은 소시지를 떠들었다. 하나의 광장을 온갖 각도로 찍어왔다. 늘 같은 분위기의 독일을 담아냈다. 가보지도 못한 본 독일 하늘에는 항상 구름이 껴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을 못 이기지. 영국을 못 이기지. 프랑스를 못 이기지. 호주도 하와이도 이길 수가 없지. 구름이 없는 독일 하늘이 없으니까.

 우리는 미국도 갔고 영국도 갔고 프랑스도 갔고. 호주도 갔고 하와이도 갔어. 그런데 독일을 못 갔네. 내년에는 형이랑 독일에 가기로 했었지. 무진장 길었던 연애를 하고도 아직 가지 못 한 곳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충분히 함께했고. 충분히 돌아다녔어. 응. 여행은 혼자라도 떠나면 그만이니까. 나는 그냥 저 소시지가 꼭 먹어보고 싶을 뿐이었다. 형은 가공육은 먹지 않으니까,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호불호가 갈릴 여행길은 혼자 나서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독일, 독일. 혼자 가야지. 언제쯤 가면 좋을까. 저 잘 익은 소시지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형은 소시지보다 스테이크가 좋다고 했다. 뭐든 있는 그대로를 좋아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했다. 아이브제의 반짝이는 풍경이 화면에 나온다. 아이브제 호수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호수라고 했다. 형은 적당히 녹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보기보다 입이 약했다. 나는 등산은 취향이 아니니까, 그렇게라도 알프스에 발 한 번 담궈보고 싶었어. 형은 호수보다 산을 더 좋아했다. 가만히 보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독일이 좋은데. 형은 죄다 싫어하는 것들 뿐이네. 함께 가지 않기를 잘했을지도 몰라. 우리는 잘 헤어진 거지. 시야가 흐려지는 것은 몸이 오랫동안 학습해버린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물방울이 유리병 겉면을 타듯이 볼을 타고 흘렀다. 미리 깎아둔 마음은 아파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눈물이 곧바로 멈추지 않았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니었다. 양파를 까면 눈물이 나고,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는 것과 같았다. 아프지 않아도 눈물은 날 수 있다. 신체적인 반응으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그냥 눈이 관성적으로 물을 뱉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미동도 없이 울었다. 잠기지 못한 수도꼭지가 되어 시간을 흘렸다. 티비에서는 여전히 독일의 하늘을 보여주었다. 또 구름이 껴있네. 소시지가 맛있다며 감탄하는 아저씨는 수염을 안 깎은지 3년은 된 것 같았다. 문득 턱을 만져보았다. 나에게도 까끌한 수염이 나있었다. 나도 모르게 하하 웃었다.

 그러다 티비를 끄고 소파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스스로가 꽤 지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지고 있다. 눈을 감았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오랫동안 티비를 본 것 같다. 그러니 눈이 그만 고장나버린 걸지도 몰라. 내일은 병원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파라치한테 이런 얼굴을 찍히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어 그만두었다. 잠을 잤다.

 동이 텄다. 기가막히게 다시 눈물이 났다. 이제는 멈추지도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자꾸 뭐가 주룩주룩 흐르니 귀찮았다. 짠기가 끊이지 않으니 눈은 결국 알아보기 힘들게 퉁퉁 부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는 것에도 눈이 얼얼해졌다. 새삼 억울해졌다.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여전히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신체의 일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이. 오랫동안 막아뒀던 수도꼭지에 고여있던 물이 흐르듯이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나중에는 닦는 것도 귀찮아서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가끔 휴지를 돌돌 말아 찍었다. 그럼 동그란 물자국이 생긴다. 문득 갑자기 인생이 좆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목이 텁텁해 물을 마시려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벌써 생수가 떨어졌다. 대충 쿠팡으로 시킬까 고민해보았다. 그러다 어느덧 집을 나가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안 한지 얼마나 됐지. 운동이나 해볼까. 기분을 잊는 데에는 운동만큼 빠른 것이 없다. 마트까지라도 조깅이라도 다녀오면 좀 나을지도 몰라. 지갑을 챙겨들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익숙한 폴리에스테르의 질감이 몸을 감싼다. 젖은 옷을 갈아입으니 몸이 산뜻해졌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상쾌해졌다. 약간은 신나는 마음이 되어 신발장을 덜컹 당겨 열었다. 오랜만에 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떴다. 눈으로 신발장 내부를 살피며 조깅화를 찾았다. 그런데 신발장 안이 이상했다. 농구화도. 아끼는 조던도. 아식스도. 나이키도. 벨루티 구두도 다 있는데. 늘 편하게 신던 조깅용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동안 신발을 찾았다. 신지도 않은 신발이 사라졌을 리 없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윗칸을 몇번을 뒤지고 주저앉아서 아래칸을 오랫동안 눈으로 살폈다. 손으로 이리저리 신발들을 옮겼다.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슬슬 목이 심하게 말라왔다. 신발이 없다니.  조깅을 하려면 그 신발이 꼭 필요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신발이나 잃어버리고. 순식간에 기분이 완전히 가셔버렸다. 그냥 물이나 사오고 말아야지. 현관에 늘 놓인 슬리퍼라도 대충 꿰어 신고 나가려 고개를 내렸다.

 찾던 조깅화는 현관 바닥에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신발장만 살피고 눈을 내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할 수 없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항상 그것은 신발장 안에 있었는데 이게 왜 여기 놓여있을까. 이게 왜... 여기 아래...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내가 여기 벗어뒀다는 것을. 내가 엉망으로 벗어놓으면 형은 늘 내가 벗어둔 신발까지 마저 정리해 신발장에 넣고 들어왔다. 우리는 그게 당연했다. 그러니 나는 들어올 때 어떻게 벗어뒀는지는 생각도 안하고 현관 앞에 나서면 당연하게 가장 먼저 신발장 문을 열었다. 그럼 그게 그 자리에 들어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벗어두어도 늘 그 안에 있었다.

 나의 허물을 매번 고운 손으로 잡아 제자리에 놓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뻔뻔하게도 바닥에 신발을 벗어두고, 아침이 오면 신발장에서 신발을 찾았다. 그러니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이제는 아무도 넣어주지 않는 신발이 현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벗은 모양 그대로 널브러져있다. 나는 원래 신발을 이렇게 엉망으로 벗는구나. 제대로 보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 서서히 앉았다. 형은 이걸 늘 자기 손으로 잡아 들었겠지. 신발은 늘 앞코가 밖으로 보이게 들어있었다. 형은 늘 이걸 반대로 돌려서, 앞코가 보이게 가지런히 넣었던 것이다. 새삼 웃음이 났다. 쓸데없는 데에서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냥 앞코를 안쪽으로 처박아넣어도 됐는데. 아니면 이대로 현관에 뒀어도 나는 어떻게든 잘 찾아서 구겨신고 나갔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신발은 이제 집어주는 사람이 없다. 나의 중력은 시간에 져버렸다. 내 신발은 혼자 남았다. 혼자 남았다. 형은 이제 없다. 더는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지 않는다.

 이명헌이 오지 않는다.

 물기 섞인 숨소리가 거칠게 목을 긁고 흘러나갔다. 그것은 마치 토하는 것 같았는데, 다시 숨이 들이쉬어지지가 않았다. 억지로 들이마시니 폐가 아프게 조여왔다. 목에 날카로운 돌덩이가 꽂힌 것만 같았다.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숨을 억지로 조절했다.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이대로 갑자기 죽을 것 같은 통증이 들어 몇 번을 억지로 산소를 호흡해야 했다. 다리가 미친듯이 후들거렸다. 몸이 팔꿈치로 무너졌다. 손바닥으로 급하게 바닥을 짚었다. 무릎이 얼얼하게 아팠다. 바닥 위로 투두둑 방울이 흘렀다. 토할 것 같아. 이마 아래서 뜨거운 물이 왈칵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비웠는데도 아직도 남았다니. 이마를 바닥에 처박고 숨을 학학 내쉬었다. 중력에 저항하지 못한 눈물이 거꾸로 흘렀다. 기울어진 눈두덩에 물이 고이는 느낌은 참 좆같았다. 이대로 눈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숨을 삼키는 법을 또 잊어버린 멍청한 폐부가 뻐근하게 쑤셨다. 나도 모르게 크게 한 번 소리를 악질렀다. 죽지 않아. 죽지 않을 수 있어. 형이 없어도. 형이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 했다. 형이 다시 나를 찾지 않는다 해도. 이제 형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다 해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했다. 팔꿈치를 부들거리며 짚어 몸을 일으켰다. 신발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내가 엉망으로 벗어둔 그대로다. 조깅화의 앞코가 까맸다. 처음에 형이 사줬을 때만 해도 저렇지는 않았는데. 나는 이 신발을 험하게 다루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귀하게 다루어도 마모되는 것이 있었다. 차가운 바닥으로 볼이 완전히 무너진다. 얼얼한 광대에 물기가 하염없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왜 살아가야 했더라. 왜. 살아야 했더라?

 왜.

 

 아, 이렇게 아픈데...............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을 잊어버렸다. 집이 불타버린 짐승처럼 울었다. 엎어진 채로 한참을 끅끅대는 토악질을 멈추지 못해 속은 온통 뒤집어졌다. 맨 바닥에 몇 번을 더 게워냈다.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나중에는 위액만 흘러나왔다.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바닥에 카페트조차 깔지 않았던 것은 부드러운 것에 더 쉽게 미끄러지는 나를 위한 형의 처사였다. 하루종일 미친듯이 소리내어 울었다. 늘 이 자리에서, 먼저 들어간 애인의 신발을 집어들어 넣었을 형을 상상하면서.

 며칠이 지났을까. 더이상 짜낼 눈물도 없이 바싹 말라버렸을 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환상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 장면을 상상했다. 당신이 내게 돌아오는 상상. 나를 찾아오는 상상. 하지만 당신은 나를 찾지 않는다. 이렇게 상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신이 비겁한 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복수였다.

 이명헌은 아무 말 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연했다. 상상 속의 형은 나와 눈을 마주쳐주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는 며칠사이에 내가 난장판을 쳐놓은 싱크대 앞으로 걸어갔다. 빨간 고무장갑을 드득 소리나게 끼었다. 물을 틀고 천천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미동도 없이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내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말 걸면 사라져버릴 환상이다. 그러니 나는 환상이 머무르는 시간을 어떻게든 늘려야 했다. 말을 걸면 또 사라져버릴거잖아. 당신이 보고싶다고. 돌아와달라고. 애원하면 흩어져버릴 거잖아. 필사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당신의 손에 잡혔다. 나는 환상 속에서도 그게 당신 손을 긁을까 걱정되었다. 바닥에 구르는 병들과 그 아래 말라붙은 액체들. 하나둘씩 그의 손에 잡혀 분리수거통으로 들어갔다. 물기 적신 걸레로 정성스레 바닥을 닦는다. 다음으로는 내가 다 찢어발겨둔 종이 조각을 모아든다. 한 움큼으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형이 마지막으로 집어든 것은 내 신발이었다. 바닥에 놓였던 조깅화 뒤꿈치가 그의 손가락에 익숙하게 걸렸다. 앞코가 보이게 예쁘게 빙글 돌아간다. 탁. 신발장이 닫힌다. 띠리릭. 현관문이 잠겼다.

 다음 순간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히 방금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상상 속의 형에게서는 현관을 닫는 소리 같은 것이 나지 않았다. 이명헌.

 이명헌.

 이명헌이야.

 형. 명헌이 형.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팔다리가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쿵. 바닥에 찍히자마자 다시 다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릎이 쓸려서 아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숨을 쉬는 법도 잊어버리고 헐떡이며 뒤꿈치를 굴렀다. 이명헌. 명헌이 형! 형이지. 아까 그거 형 맞지. 어디있어. 더 도망가버리기 전에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를 생각이었다. 붙잡아 돌려세우고 빌어야했다. 가지 말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나빴다고. 당신 없이 살 수 있다 생각했던 건 다 내가 비겁한 병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제발 나를 한번이라도 탓해달라고. 나쁜새끼라고 욕해달라고. 헤어지자는 내 말에 당신은 나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 하지만 앞으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담담하게 돌아섰지.

 아냐, 형. 형은 후회해도 돼. 이런 비겁한 새끼를 사랑한 걸 후회 해요. 그치만 나는 후회 안 해. 못 해. 그런 거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어. 그게 가능했으면 나도 오래 전부터 했을 거라고요. 나는 틀렸고. 멍청했어요. 당신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오만이 나를 죽이고 있어.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요. 그치만 이렇게 나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지만은 말아달라고. 형에게 빌어야만 했다. 뿌리친다면 붙잡아 끌어당겨야겠다. 다리가 엉망으로 무너지더라도 질질 끌고라도 올거야. 당신이 결코 도망가지 못할 얼굴을 하고 애원할 거야. 맨발로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소리 지를 필요도 없었다. 형은 이미 현관 옆에 무너져있었다.

 엘리베이터까지 가지도 못한 다리가 엉망으로 풀려있었다. 문 옆에 주저앉은 이명헌의 얼굴이 온통 젖어 축축했다. 형이 눈도 못 뜨고 주저앉아 입을 열고 엉엉 울고 있었다. 이명헌이. 이명헌이 울고있다.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울고있다. 형은 내가 나온 것 따위는 개의치도 않고 아이같은 소리로 꺽꺽대며 울고 있었다. 나는 감히 언어를 잃고 무릎을 땅에 박았다. 엉망으로 형을 마구 끌어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이들처럼 울었다. 서로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서로에게 매달려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혼자 앓다 죽어버릴 두 명의 멍청이들이 울었다.

 꺽꺽거리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형의 목덜미를 마구 끌어안았다. 겨우 시야가 보일 때에는 형이 주저앉은 바닥이 너무 차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명헌이 형. 우리 들어가요. 들어가요. 형. 우리 들어가요. 우리집으로 가요. 가요... 들어가요. 제발... 형은 대답도 않고 계속 아이처럼 울었다. 형이 입은 티셔츠가 온통 물기로 축축했다. 형은 끝까지 아무 말도 않았다.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린 놈을 뿌리치지도 못했다. 끌어안는 팔을 내치지도 않았다. 그게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양심도 없이 당신이 불안했다. 형이 아주 영영 이대로 굳어버릴까봐. 그렇게 형이 떠나버릴까봐. 그렇게 당신을 놓쳐버릴까봐. 허락도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아 부들부들 떨며 형을 안았다. 나는 그를 훔치는 심정으로 품에 안아들었다. 금품을 안은 도둑처럼 제대로 힘을 주어 품을 조였다.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엉망진창의 박자로 발자국을 찍고, 끌어안은 그를 완전히 침대 위로 훔쳐서 들여놓을 때까지 형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서 죽을듯이 떨리고 있는 당신의 등이 느껴져서 미칠 것 같았다. 정말로 이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기만 했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훔쳐온 당신에게 감히 말을 걸 용기도 나지 않아서 떨기만 했다. 형은 탈진할 때까지 울었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죽은듯이 잠들었다. 그러다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또다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갈라진 목소리로 내가 형, 하고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우성아, 하고 나를 불러주지도 않았다. 어떤 말도 그의 동굴에 가 닿지 못하는 듯했다.

 그대로 반나절이 더 지났다. 내가 양심도 없이 당신이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동안 형은 울기만 했다. 반나절이 더 지날 즈음에는 형의 온몸이 발갛게 오르고, 열이 끓기 시작했다. 이제 형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가끔은 형이 간헐적으로 끙끙 앓는 신음을 냈다. 그럼 나는 얼른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었다. 그럼 그 감촉을 느끼고서야 형이 신음을 멈췄다. 하지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손이라도 더듬어 나의 위치를 확인해 오지도 않았다. 시발새끼야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죽은듯이 눈물만 흘렸다. 이대로 내가 당신을 두고 가면, 이 자세 그대로 아주 영영 죽어버릴 거라는 듯이.

 물수건을 짜러 가는 시간마저 불안했다. 형이 이대로 죽어버릴까봐. 사라질까봐. 혹은 나를 두고 도망갈까봐. 자격을 잃은 나의 손을 거부할까봐. 하지만 내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당신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줄 때면, 형은 도망은 커녕 팔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그게 더 불안했다. 나를 뿌리칠 힘조차 그에게 남지 않았다는 것이. 영겁같은 시간이 흘렀다.

 

 이틀이 더 흘렀다.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이대로 잠들면 형이 눈물로 녹아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아니면 바람처럼 흩어져버릴 것 같았다. 눈을 감는 찰나조차 불안했다. 죽어도 무너질 수 없었다. 이대로 무너지면, 내 아래에 놓인 당신이 이대로 죽어버릴까봐.

 사흘이 지났다. 형은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죽을 주문했다. 하지만 숟가락을 가까이 대도 형은 입도 열지 않았다. 나는 아주 유괴범이 되어버린 심정으로 떨었다. 간절하게 빌었다. 형, 제발요. 제발 한 입만요. 죽어요 이러다. 어떤 방식으로 애원해도 내 목소리는 그의 세계에 닿지 못했다. 겨우겨우 떨리는 손으로 형의 입가에 비타민을 하나 밀어넣었다. 제대로 녹았을지는 알 수 없다. 당신이 죽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우성아."

 그토록 기다리던 부름이었다. 물수건을 짜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백번을 상상하며 기다렸던 부름인데. 곧바로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말하는 방법을 아예 잊어버린 머저리였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는데도 입이 굳어버렸다. 대답해야 하는데. 형을 불러야 하는데. 이제 내가 보이냐고. 지금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이 맞냐고. 하지만 입술은 오래된 화석같이 굳어있었다. 도무지 열리지를 않는다. 형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물수건을 들고 더듬더듬 발걸음을 옮겼다. 겨우 당신에게 닿았을 때. 마침내 바스락. 그를 덮은 이불이 겨우 손 끝에 닿도록 움직였을 때.

 "불 좀 꺼. 멍청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햇빛을 와락 내려받은 차량용 흔들 인형처럼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네. 네 알겠어요 형. 웅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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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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