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대협/루센] 윤대협이 자취집에서 자다 일어났는데

눈앞에 처음 뵙는 새까만 고양이가 앉아 있어서 당황하는거 보고싶다.

창문 열고 잤더니 들어온 건가. 밖에서 오래 지낸 것처럼 털은 삐죽삐죽 부숭부숭한데 근데 또 집 없던 애는 아닌거 같음. 사람한테 너무 익숙함.

일단 잠부터 깨고 뭘 하자 싶어서 푸덕푸덕 세수하고 나왔더니 침대에 늘어지게 누워있음. 그 상태로 그루밍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핥기는 하지만 그루밍이 전혀 안되는게 보여서 웃음 터질듯. 그 꼬질꼬질한 털은 이거때문인가보다..

주변에 고양이들 많아서 종종 간식 주려고 챙겨놓은거 꺼내면서 고양이한테 말 걸어봄. '이게 마지막 남은 거네...그런데너는 이 주변에서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대체 어디서 왔니?' 하는데 고개만 좀 갸우뚱하지 반응 없을듯. 그 모습 보고 있자니 자기가 아는 누군가랑 너무 닮아서 자기도 모르게 서태웅? 하고 불러볼 거 같다.

고양이는 여전히 아무 반응 없고, 윤대협은 하하 웃으면서 캔 뚜껑을 땀. 미국에 있는 애가 무슨... 내가 잠이 덜 깼나보다. 그러면서 캔에 코 박고 챱챱 먹고 있는 고양이 머리만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어줌.

그러다가 슬슬 아침운동 나가야되는 시간인거 확인하고는 고양이한테 말함. 천천히 먹어, 운동하고 올게. 그러고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조깅화를 신음. 식탁 위에서 캔 먹느라 거들떠도 안보는 고양이를 한번 보고는 밖으로 나가서 뛰기 시작함.

늘 돌던 코스를 뛰고 돌아오는 길에 대협은 조금 옆으로 빠져서 애완동물용품가게에 들렀음. 아까 깐게 마지막 캔이었으니까 조금 더 사놔야지 하면서 들어갔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고양이 털 브러쉬도 하나 삼. 지금쯤이면 다 먹고 나갔을 거 같지만.

그렇게 예상 외의 지출을 하고 손목에 봉투를 덜렁덜렁 걸고 자취집으로 향하는데, 건너편에서 더플백 같은 가방을 메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음.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은 늘 있어왔어서, 윤대협은 딱히 별 생각 없이 걷고 있었음.

그런데 조금씩 거리가 좁아질 수록, 대협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함. 반대쪽에서 헉헉거리면서 뛰어오고 있는 건, 미국에 있는 줄 알았던 서태웅이었음.

"...어."
"......"

서태웅은 턱 끝까지 찬 숨을 뱉어내며 윤대협의 앞에 섰음.

"너 미국-"
"...휴식기라 잠깐, 귀국했어."
"......"
"미안, 지금 좀 정신이 없어서."
"왜?"
"고양이가 없어졌어."
"아..."

윤대협은 고개를 끄덕임. 서태웅은 숨을 한번 고르고는 다시 뛰어가려고 자세를 가다듬었음. 그때 윤대협의 머리속에 팟 스치는 생각이 있었음.

"혹시 고양이, 검정색에 털이 막 뻗친 그런 모습이야?"
"...어...어떻게 알았어?"
"그 고양이 지금 내 집에 있는 거 같은데..."
"......???"

서태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지만, 일단 밑져야 본전인데다가 대협의 자취집이 가깝다는 소리에 가서 확인해보기로 함.

서태웅과 어색한 거리를 두고 자취집까지 도착한 대협은 열쇠로 현관문의 잠금을 풀었음. 그는 현관으로 들어가면서 고양아, 하고 불렀음. 고양이는 개가 아닌데. 부른다고 나올리가 없는데... 머쓱한 표정으로 신발을 벗고 있는데 침실 쪽에서 검은 털뭉치가 종종거리면서 걸어나왔음. 그새 잤는지 한쪽 털이 눌려서 찌그러진 상태였음.

"...조던!"
"조던?"

이름이 너무 화려한 거 아냐? 윤대협은 얼빠진 표정으로 서태웅을 바라봄. 서태웅은 고양이를 번쩍 안아올리고는 진짜 안도한 표정을 지음.

"...자, 이거 가져가."

그 모습을 보던 윤대협은 가게에서 산 빗이랑 간식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음. 서태웅은 의아함이 담긴 눈으로 윤대협을 봤음. 그 녀석 때문에 산 거니까. 대협의 말에 태웅은 비닐봉투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음.

"...고마워."
"그럼 난 이제 씻어야겠다. 조심해서 가."
"......"

부드럽지만 명백한 축객령에 서태웅은 조금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음. 그때 얌전하게 품안에 안겨있던 조던이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함. 그 소리에 서태웅도, 윤대협도 놀라서 멈칫함. 그러는 틈에 고양는 폴짝 뛰어내려서 윤대협에게 다가감.

"-조던이 네가 많이 좋은가봐."
"원래 고양이들이 날 많이 좋아하더라."
"...이거, 그냥 네가 가지고 있어."

서태웅은 고양이 빗과 간식이 담긴 봉투를 다시 윤대협에게 내밀었음.

"나 한달 정도 여기 머물 생각이야."
"......"
"가끔 조던 데리고 올게."

윤대협은 잠시 고민했음. 그는 발치에서 먘, 하고 우는 고양이를 한번 보고, 서태웅이 내민 봉투를 한번 봄. 이거 받으면 분명히 일이 복잡해질텐데. 윤대협은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음. 그는 항상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좋았으니까.

"...그래."

판단력이 좋다고 해서 그가 잘못된 선택을 내리지 않는 건 아니었음. 그 역시도 인간인지라, 그의 모든 선택이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음. 때로는 옳은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낳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 예상 못하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었음. 이번에도 후자의 경우이길 바라자. 봉투를 받아든 대협은 쪼그리고 앉아 조던의 머리를 쓰다듬어줌. 서태웅이 그 옆에 조심스럽게 같이 쪼그려앉는 것이 느껴짐.

......보고싶었어.
아직 그런 소리 할 단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런가...그래도 보고 싶었어.

뻔뻔하게 말하는 태웅에 윤대협은 그냥 허허 웃음. 그는 손바닥에 아예 머리를 기대는 고양이를 보다가 입을 열었음.

--서태웅, 우리 오랜만에 원온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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