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혼] 《killing me slowly》 수요조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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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주의
S#1
Some Like It Hot
따갑다.
사실은 따가운 게 햇볕인지 그 녀석의 얼굴인지, 태웅은 잘 알지 못했다.
태웅은 매일 같은 시간 달리는 해변을 달렸다.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밀어내고 달리는 것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체육관이었으면 아직 달릴만했을텐데. 태웅은 숨을 헉헉대면서도 달리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저멀리 빨갛고 동그란 게 보였다. 농구공… 아니, 네 바퀴째가 되어서야 나타난 머리통.
"늦어."
"약속했냐!!"
타박에 바로 돌아온 답. 시끄러워. 그러나 나쁘지 않다. 감상은 그 정도였다.
태웅은 제가 왜 여기 있는지 몰랐다.
체력 증진을 위해서? 체육관에서 한 시간 넘게 와서 굳이? …뭐 그럴 수 있지. 그러나 네 번째가 되던 만남에 태웅은 백호의 병실까지 같이 갔다. 이건 농구와 하등 관계가 없는 행동이었다. 저 녀석은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체육관으로 돌아올 텐데 굳이 병문안 같은 행동을. 심지어 데리고 온 주제에 저를 불청객 취급했다. 태웅은 혀를 찼다. 어딘가 신경질이 났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했던 질문을 반복하고 있지만 어쩐지 쉽게 발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런 태웅에게 백호는 이거나 먹어라 하면서 사과를 던져줬다. 꼭 지같은 빨간색.
모래바람 묻은 소매로 슥슥 닦고는 한 입 먹었다. 달, 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얻어맞았다. 미친놈 손 씻어! 그리고 왜 안 깎아 먹냐!
"깎을 줄 몰라."
"켁."
백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했다. 그러나 농담이었다는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손님에게 사과를 깎아주었다. 끌어당기는 대로 옆에 앉아있던 태웅은 멍청이가 사과를 깎을 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곤 포크에 찍어 내민 사과를 보았다. 손잡이를 넘겨주는 대신 입가에 내밀어진 사과. 새빨간 껍질이 예쁘게 벗겨진 사과는 먹음직스러웠는데도 태웅은 괜히 사과를 노려봤다. 멍청이…. 몸도 안 좋으면서 계속 이래왔던 건 아니겠지.
"안 먹냐?"
"먹어."
무던하게 살아온 태웅은 제가 왜 짜증났는지 몰랐으면서도 그걸 또 받아먹었다. 맛있다. 결국 사과의 주인보다 많이 먹어서 타박을 받았다. 위아래도 없는 놈. 그 말을 네놈한테 듣다니 어이가 없군. 뭐 임마! 환자 사과를 환자보다 더 먹는 놈은 너밖에 없어! 흠. 무시하면 다냐 여우? 내일은 네가 뭘 가져오든가.
내일? 접수.
그렇게 해서 태웅은 백호의 병실에 정식으로 초대받았다. 뭔가를 달성한 것마냥 뿌듯했다.
다음날 태웅이 훈련을 끝냈을 땐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햇빛이 덜 따가웠다. 해변을 달리는 대신 마트에서 멜론을 사 갔다.
"뭐야, 오늘은 안 온다 싶더니… …!! 너 그거! 설마 멜…멜론이냐?"
멍청이가 멍청이답게 시끄럽게 굴어서 태웅은 배부른 기분이 들었다.
? 아직 멜론은 먹지도 않았는데.
태웅은 어느새 제 자리가 된 곳에 앉아 멍청이가 멜론을 깎는 걸 지켜보았다. 사과보다 훨씬 공들여 깎고 있다. 얼마나 집중하는지 농구할 때나 그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뭐, 농구할 때도 제법 집중하긴 하지. 멍청이는 듣지 못했고 대신 크고 예쁘게 깎은 멜론을 내밀었다. 예쁘게… 깎았는데 이미 자기가 한 입 먹고 우물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진짜 맛있다. 얼른 먹어봐라. 멍청이는 또 손잡이가 아니라 과일 쪽을 내밀었고, 거기엔
멍청이답잖게 가지런한 잇자국.
곱게 자란 태웅은 남이 먹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 그리고 오늘은 그 최초가 된 날. 부드러운 과육 사이로 달큰한 과즙이 마른 목을 적셨다. 아무거나 집어 온 것치곤 제법 맛있었다.
다음에 만난 건 해변에서였다. 햇빛을 반사하는 빨강이 눈에 부셨다. 태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이 따가웠지만 그쪽을 향해 똑바로 뛰어간다.
“어이, 멍청이.”
백호는 태웅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멍청이는 가끔 기죽어 있을 때가 있었다. 체감상 열 번에 한 번. 아니, 다섯 번에 한 번꼴로. 태웅은 말없이 백호의 옆에 풀썩 앉았다. 옷 안 가득 밴 땀은 식으며 열을 뺏었다. 그럴수록 열이 많은 멍청이의 체온이 잘 느껴져야 하는데 오늘은 그게 안 느껴져 태웅은 괜히 짜증이 났다. 팔을 뻗고, 멍청이를 잡아당긴다. 제 어깨에 기댄 멍청이의 체온이 느껴져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는 꼬맹이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태웅은 조용히 입술에 손가락을 얹었다.
멍청이가 기운 차린 건 몇 분 후였는지, 혹은 몇십 분이 지나고였는지.
“네 어깨 딱딱해서 별로다.”
“네 키를 생각해라, 멍청이. 평생 이 어깨만 베게 될걸.”
“으윽, 그건 싫은데.”
햇빛이 모처럼 멍청이의 얼굴에 앉았다. 역시 이쪽이 어울린다.
그런 식으로 태웅은 훈련이 끝나고 매번 해변을, 또는 병실을 찾아왔다. 과일, 음료, 가끔 아이스크림 같은 먹을 것을 사 들고 가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냐. 태웅이 웃는 걸 백호는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안 깎아준다? 하고 협박했다. 내가 사 온 건데. 그래도 태웅은 얌전히 입꼬리를 내렸다.
먹을 것 외를 가져갈 때도 있었다. 월간농구가 나오는 날 새 잡지라거나, 경기를 녹화한 비디오라거나. 아무것도 손에 안 들고 간 날은 대놓고 실망하는 강백호가 웃겼지만 대신 새 MD를 꽂은 이어폰 한 짝을 내어주었다. 음악만 듣고 있으면 심심하다며 해변으로 가자는 강백호에 시무룩.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꽤 좋았다. 후덥지근한 날씨, 땀이 밴 옷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 뚫린 귀로 들려오는 멍청이의 흥얼거림, 햇빛에 반짝거리는 빨간 머리. 이따금 노래 좋은데? 이거 제목 뭐냐 여우? 씩 웃으며 저를 돌아보는 백호에 태웅은 괜히 눈을 깜박였다. 햇살이 너무나 눈부시고 따가웠다. 근데 왠지 돌아가기는 싫었다.
그런 식으로 태웅은 훈련이 끝나고 매번 해변을, 또는 병실을 찾아왔다. 약속했냐! 외치던 놈은 이제 유독 늦게 가게 되는 날이면 서운한 티를 냈다.
“천재 심심해서 뒤지는 줄? 나 빼고 농구하니 그렇게 좋냐?”
…말은 쥐뿔도 이쁘게 하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예쁘게 말하는 게 더 소름 돋을 게 뻔했으므로 태웅은 타박을 가장한 환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태웅은 가슴이 간질거렸다. 최근 들어 이런 증세가 늘었는데 농구 할 때도 이러면 곤란하니 조만간 병원이라도 가야 하나 싶었다.
늦게 온 만큼 그날은 좀 더 늦게 가고 싶었다. 백호는 시계를 보다가 떠나지 않는 태웅에 내색하지 않아도 기쁜 티를 냈다. 그래서인지 말이 더 많았다. 마른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태웅은 끔벅끔벅 졸았다.
"의사 선생님이 곧 퇴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댔어."
"곧이 언제야."
"곧은 곧이야!"
"내가 미국 간 후에도 곧이라고 하지 그래."
"내가 먼저 갈 거라고!"
그날 같이 보던 비행운이 생각났다. 농구하는 시간을 쪼개서, 자는 시간을 줄여서 여기까지 왔다가 가는 이유. 태웅은 곧 기분 좋은 수마에 빠질 것 같았다. 여기서 잘까. 응, 그것도 나쁘지 않다. 멍청일 옆으로 밀고서… 좁긴 하지만 멍청이는 체온도 높으니까 기분 좋을 것이다…….
"근데,"
만약에 말이야,
소, 소연이랑 결혼하게 되면…
역시 미국은 좀 그럴까?
"…하?"
태웅은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긴 속눈썹 아래 눈동자가 드러날 때마다 점차 짙어졌다.
수줍게 시선을 내리고 있는 강백호.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강백호. 태웅의 앞에서 처음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게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이 화가 났다. 감히 비교할 가치도 없는 것 때문에 미국에 오지 않을 거라고? 내 시야에서 사라질 거라고? 지극히 정당한 분노가 심장을 차갑게 만들었다.
아, 그래. 이 멍청이는 언제나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다. 신경쓰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들고, 몇 번이나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고!
“만약이라는 거지 만, 윽!”
갑작스런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던 백호는 눈을 떴다.
섬짓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천장과 함께 태웅이 보였다. 어둠 속에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눈만은, 희번덕하게 뜬 눈만은 무섭고 징그러웠다. 양아치, 깡패, 그런 인간들을 숱하게 상대한 백호에게도 그런 눈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입술이 물어뜯겼다.
물어뜯겨?
놀라기도 전에 제 손목을 누르고 옷을 벗기는 손길에 백호는 버둥거렸다. 버둥거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명백한 욕구에 백호는 긴 팔다리를 고작 움찔대는 것밖에 못 했다.
때리는 건 맞받아치면 된다. 차면 되갚아주면 된다.
그러나 강간하려는 상대에겐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기억 속에 농구공을 만졌던 손이, 제 옷을 벗겼다. 헐렁한 환자복은 너무나도 쉽게 강백호의 하체를 강간범에게 드러냈다. 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엉덩이 사이로 들어왔다.
“잠, 잠깐…! 더럽,”
태웅은 망설임 없이 혀를 갖다 댔다. 백호는 경악했다. 아무리 아까 씻었다고 한들 거긴, 욱, 토기가 올라왔다. 잘게 떨릴 뿐 반항 없는 다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백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뭐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꿈이라면 제발,
찰그락.
버클 푸는 소리.
손가락 따위로 착각할 수 없는 굵고 뭉툭한 것.
축축하고 뜨거운.
무엇인지 채 깨닫기도 전에 다리 사이부터 몸이 쪼개지는 고통이 내리쳤다. 눈물은 맺히지도 못하고 쉴 새 없이 흘렀다. 다친 등보다도 더 아픈 건 없을 줄 알았다. 강백호는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서, 빨리, 제발.
입원했어도 튼튼한 몸은 주인을 기절케도 해주지 않았다. 감독의 배려로 받은 일인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도 없었다. 강백호는 그저 입술을 깨물고 이 고통이 얼른 끝나기를 바랐다.
피 냄새, 물소리, 철벅이는 마찰음, 제 것인지 서태웅 것인지 모를 숨소리, 아픔, 고통, 왜? 어째서. 긴 밤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창가로 어렴풋이 햇빛이 들어왔을 때, 병실에는 축축한 침묵만이 차올랐다.
태웅은 이윽고 긴 숨과 함께 제 것을 끄집어냈다. 피와 정액이 섞여 질척한 분홍색이 뚝뚝 떨어졌다.
누워있는 강백호를 내려다본다. 하반신을 드러내고 눈물이며 피며 온갖 액체를 흘리고 있는 꼴은 빈말로도 예쁘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태웅은 괜찮은 기분이었다. 진작 이럴걸.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은 섹스라고도 할 수 없는 행위 하나로 가뿐하게 정리되었다.
태웅은 산뜻한 기분으로, 길고양이에게 인사하듯 물었다.
"남자한테 안긴 몸으로도 여전히 여자와 결혼하고 싶나?"
*
강백호는 잠에서 깼다.
"아, …… 망할."
끔찍했던 첫 기억은 언제까지나 백호의 머릿속을 차지해 이따금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에 두근거렸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곧 도착한다.
미국에.
그 녀석이 있는 곳에.
《안녕하세요, 걸어다니는 2천만 달러의 남자입니다.》
우신혼 게스트북 게재. 결혼하면서 강백호에게 돈을 쓰고 싶어 안달난 서태웅.
[우신혼/백5] 《killing me slowly》 선입금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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