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준호] 정대만은 권준호를 좋아한다
정대만은 권준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후
현대AU 대학 동댐뿅 기반
우성명헌, 동오낙수 포함
정대만은 권준호를 좋아하지 않는다(https://posty.pe/6areqx) 뒷 이야기입니다 :)
제 어젯밤에 팩하고 자지 않았나? 염병 삐뇽. 아침 일찍부터 목욕재계를 하고 로션과 스킨까지 야무지게 바르고 동기 여자애에게 추천받은 비비크림까지 꼼꼼하게 바른 정대만은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최대한 무시했다. 거울 보며 열심히 제 얼굴을 꾸민 대만은 벙커 침대 위에 늘어놓은 옷들을 바라보았다. 사시사철 과잠에 츄리닝만 입던 녀석이 저런 옷은 어디에다 둔거야? 동오가 어이없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대만은 뒤에서 들리는 사설 방송에 신경쓰지 않고 자켓과 와이셔츠를 맞춰보며 최대한 멋있어 보이는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흰 티셔츠 말고 연한 파란 색 셔츠가 이 자켓에 어울리려나? 아님 캐주얼하게 카디건? 미간을 찌푸려가면서 진지하게 옷을 고르는 대만 뒤로 수상쩍은 움직임이 오고 갔다.
"손만 잡는다 만원. 삐뇽."
"포옹까지 한다에 만오천원."
동오 너무 소심 삐뇽. 적어도 뽀뽀까진 걸어 삐뇽. 손만 잡는다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다정하게 동기를 내기 주제로 건 둘의 대화에 그 내기상대가 주먹을 올리며 을러대었다.
"조용히 해라, 이것들아."
아이구, 무서워라. 전혀 겁먹지 않은 얼굴로 무섭다고 찡얼거리는 둘을 한숨을 내뱉으며 무시했다. 저 녀석들을 신경쓸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탁상달력에 요란하게 표시된 날짜를 보며 대만은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쓸데없이 오지랖 넓고 할 일 없는 동기 둘이 등을 밀어줘서 준호와 사귀게 된 대만의 첫 데이트 날이었다.
"대만아."
카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저를 향해 다가오며 반가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카페에 죽치고 앉아 출발한다는 준호 카톡 내용이나 주구장창 보고 있던 대만은 역시 30분 일찍 도착한 준호를 보자마자 미어캣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찍 나왔네."
옆에서 키득대며 놀리는 녀석들 때문도 있었지만 긴장한 탓에 1시간 일찍 약속시간에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기엔 가오가 안 살기에 대만은 대충 얼버무렸다.
"어, 일찍 일어나서."
"그래? 나도 그랬어."
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말갛게 웃었다. 그 미소에 대만이 괜스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커피 마실래? 내가 주문할까? 간질간질한 심장을 진정시키며 내심 태연하게 질문을 던졌다. 괜찮아. 내가 주문하고 올께. 준호는 가방을 두고 카운터로 갔다. 팔락팔락 걸어가는 뒷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 보송보송 부드럽게 뜨던 머리가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 권준호. 머리에 힘줬네. 사소한 사실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쟤도 신경쓰고 왔구나. 심장 부근이 간질간질했다. 입술이 제멋대로 꿈틀대서 어색하게 입가를 매만졌다. 주문을 하고 온 준호는 묘한 얼굴로 비실비실 웃는 대만을 보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평소보다 신경 쓴 차림새와 저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둘 다 머쓱하게 웃다가 테이블에 앉았다. 저기-. 어-. 앉자마자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해. 아니, 너 먼저 말해. 대만이 사양하자 준호가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별건 아니고- 점심, 뭐 먹을래?"
"어, 이 근처에 이 집이 맛있다는데-."
대만이 황급히 핸드폰을 들어서 지도에 미리 찍어놓은 곳을 보여주었다. 여긴 중식집인데 탕수육이 맛있고. 어, 여긴 양식집. 동기들이 싸고 맛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여기는 최근에 생긴 곳인데 라멘이 맛있다고- 지도에 빽빽이 꽃힌 마크와 메모가 대만이 얼마나 신경쓰고 왔는지 알려주는 표시였다.
준호는 화면을 보여주느라 가까이 다가온 어깨에 슬쩍 제 어깨를 대었다. 맞닿은 어깨가 튀었다. 응? 그리고? 태연하게 말을 걸자 대만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 그리고 여기도 맛있다고 하더라. 말하는 이와 닿은 어깨가 긴장으로 떨렸다. 그래? 여기? 준호는 대만이 켜놓은 화면을 건드렸다. 어, 어, 여기. 대만이 황급히 대답하면서 움직이다가 손이 닿았다.
짧은 외침이 흘러나왔다. 화들짝 맞닿았던 손 끝이 떨어졌다. 놀라 떨어졌던 손 끝이 슬그머니 다시 맞닿았다. 손가락이 살짝 얽히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탁자에 올려 놓은 진동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닿았던 손가락이 화들짝 떨어졌다. 내가 가져올께. 대만이 황급히 진동벨을 들고 일어났다. 자리에 남은 준호는 어색하게 아까 닿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손을 언제 잡냐 삐뇽."
"조용히 해."
방금 분위기 좋았 삐뇽. 야, 그 전에 너 들키겠다. 대만과 준호가 앉아 있는 테이블 뒤 쪽, 몇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180대의 남성 둘이 작은 의자에 몸을 구겨넣고 앉아서 큰 어깨를 최대한 웅크리고 서로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한 명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한 명은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눈에 안 뜨일레야 안 뜨일 수 없는 차림새였다. 휴식을 위해 카페에 찾아온 몇몇 이들이 수상쩍고 시커먼 남정네 둘을 보고 슬슬 피하는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한 껏 눈에 띄고 수상쩍게 동기를 염탐하고 있었다. 너 말투 티 나. 조용히 말하면 된다 삐뇽. 이미 존재 자체가 들통 나고 있다는 사실은 본인 둘은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해야 되냐?"
남의 데이트에 이렇게 훔쳐보지 말고. 내기 결과 정도는 대만이 돌아오면 물어보면 되잖아? 삼인조의 상식인 최동오가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명헌에게 휘말려서 정대만의 데이트를 염탐하는 시점에서 이미 아웃이라는 것은 인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헌은 선글라스 너머로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흘끗 거리는 동오를 보았다.
"이건 확인이다 삐뇽."
확인? 쓸데없이 진중하게 입을 연 명헌은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핑크핑크한 딸기 라떼를 휘휘 휘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정대만과 권준호는 우리가 엮어 준 거나 다름 없다 삐뇽. 그러니 잘 되는 지 확인해야 하는 거다 삐뇽."
당사자가 들었으면 뭔 개소리야!를 외쳤을 발언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듣지 못하고 있었기에 진지한 궤변을 듣고 있는 동오만 의문스럽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직 넘어오지 않은 동오에게 명헌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정대만 성격 상 제대로 사실을 말하지 않을 거다 삐뇽. 그러니 정당한 내기 결과를 알고 우리의 용돈을 아끼기 위해선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 삐뇽."
"……그렇긴 하지."
완벽하게 이명헌의 논리에 말려든 최동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당사자인 둘은 음료를 두고 서로 대화하는데 정신이 팔려 수상쩍은 움직임 따윈 전혀 알지 못했다.
점심 먹을 곳은 생각보다 금방 정해졌다. 카페에 있던 어떤 이들이 황급히 남은 음료를 마시느라 허겁지겁 쫓아가는 일이 있었지만 눈치 채지 못한 둘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고른 곳은 깔끔하고 세련된 양식 디자인을 가진 가게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친절하게 창가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준호는 창문가로 기울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메뉴판을 팔랑팔랑 넘겼다. 대만도 옆에서 메뉴판을 펼쳤다. 커플세트. 평소같으면 대충 넘겼을 단어가 눈에 걸렸다. 첫 데이트에 이거 시키면 그러려나? 아니, 그런데 예전에 커플세트 시킨 적 있지 않나? 아무 생각 없이 두 사람 세트니까, 하며 시켰던 과거의 둔한 자신이 생각나 속으로 괴로워 하고 있을 때였다.
“주문하시겠어요?”
물을 가져온 직원이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메뉴판을 보고 있던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난 이거. 대만이 너는? 준호가 메뉴판을 가리켰다. 무난한 파스타 메뉴였다. 대만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스테이크에다가 그, 커플세트요.”
대만의 주문에 직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 커플세트에 스테이크 포함이 되어 있는데 추가하실 건가요?”
직원의 말에 다시 메뉴판을 보았다. 커플세트 밑에 당연히 세트 구성이 적혀 있었고 거기에는 스테이크가 들어가 있었다. 아니, 추가 아니고 그냥 커플세트 주세요. 대만은 황급히 주문을 수정했다. 민망함에 목덜미가 벌게졌다. 그 모습에 준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더 추가해도 괜찮아. 아니, 이 정도면 돼. 그렇게 말하고 직원 가져온 물은 물컵에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주변을 흘끗 돌아보니 대만과 준호처럼 데이트 온 것 같은 커플이 여기 저기 보였다.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에 구석 자리에 있던 둘이 황급히 몸을 숙였지만 생각에 잠긴 대만의 시야엔 잡히지 않았다.
이 곳은 동기 녀석이 추천해 준 곳이었다. 준호랑 데이트라고 하니 한 십 분 동안 바닥을 구를 기세로 웃어대더니 알려 준 것이었다. 아이고, 애타에 그 난리를 떨더니. 결국 그렇게 됐구나. 그렇게 쳐 웃으며 알려준 곳은 봉인도 데이트 할 때 간 곳이라는 분위기 좋은 양식집이었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음식도 맛있거든. 그렇게 말하곤 동기 녀석은 음흉하게 씩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잘 해봐라, 엉? 분위기 좋아서 진도 잘 나가면 이 형님에게 한 턱 쏘고. 알지? 뭘 아냐고 쏘아붙이며 어깨에 올라온 손을 내쳤었다. 그 때는 데이트 준비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진도라니. 첫 데이트에 진도가 나가면 어디 까지 나가는 거지?
그렇게 대만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음식이 나왔다.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한박자 늦게 대만이 나이프를 집어 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준호가 스테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내가 해 줄게.”
“누가 해도 상관없잖아. 그리고 난 대만이 먹는거 보는게 좋아.”
그렇게 말하고는 준호는 고집스럽게 스테이크를 다 썰어서 대만 앞에 밀어주었다. 대만은 포크로 잘 썰린 고기를 쿡 찍어 제 입으로 가져가는 대신 준호에게 내밀었다. 자, 아. 들이밀어진 고기에 준호가 눈을 깜박였다.
“나도 네가 먹는거 보기 좋아.”
그러니까 얼른 먹어. 팔 아프단 말이야. 조금 퉁명스러운 재촉에 준호는 슬몃 웃으며 고기를 받아먹었다. 다른 음식이 나오자 준호가 냉큼 대만 앞접시에 나눠 담았다. 별거 아닌 행동에 웃음이 세었다. 서로 장난 치는 어린애처럼 키득거리며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음식은 나눠 먹는 모습을 한 쪽에서 시커먼 남정네 둘이 지켜보고 있었다.
"전형적 삐뇽."
참신함이 없어 삐뇽. 여전히 선글라스를 낀 수상쩍은 남정네가 스테이크를 야무지게 썰면서 말했다.
"먹을 땐 선글라스 벗어. 명헌아."
보이긴 해? 여전히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는 이가 리조또를 한 스푼 가득 뜨면서 말했다.
서빙하는 직원 입장에선 둘 다 앞이나 보일까 싶었다. 그러나 절대 티내지 않고 추가로 주문한 파스타와 뇨끼, 샐러드를 빈자리에 내려놓았다. 한껏 구부리고 있는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숟가락질과 포크질 몇 번에 내려놓은 음식이 증발하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빈 그릇 치워드릴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두 사람 다 과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 직원은 최대한 빠르게 그릇을 치우고 180대 근육남성에게서 침착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점심을 먹고 그 다음은 영화관이었다. 준호는 영화관에 들어서자 즐거운 낯빛으로 전광판에 표시된 상영중인 영화 하나 하나를 가리키며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영화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던 대만은 눈을 껌벅이며 준호의 설명을 들었다. 준호는 이 감독은 어쩌고 전작은 어떻고 등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어느 영화 제목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이거야. 오늘 보고 싶었던 영화.
"이거 성지가 추천해준 영화야. 꽤 재미있다고 알려줬거든."
낯설면서 낯익은 이름에 눈썹이 삐툴게 치솟았다. 성지? 설마 그 지학의 별 마성지야? 은근히 가시돋힌 말투에 준호는 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성지. 학기 초에 만나서 같이 교양 들으면서 친해졌어. 말 수는 적지만 착하고 다정하고 좋은 애야. 성지를 칭찬하는 준호의 말에 대만은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이 자식은 학과도 다르면서 어쩌다가 영화 추천 받을 정도로 친해진거야? K대 학생이 Y대 캠퍼스에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는 동안 준호는 팜플렛을 집어들고 있었다. 아, 이것도 좋다고 했지. 신난 얼굴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말하는 얼굴이 천진난만하게 밝았다. 대만은 머릿 속에서 잡고 있던 계획을 접었다. 지금은 준호랑 데이트 중이니까.
앞에서 즐겁게 영화를 고르던 커플이 표를 예매하고 팝콘을 고른다며 신나가 사라졌다. 일하면서 늘상 보는 모습이라 표를 끊어주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선글라스를 낀 빡빡머리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문짝만한 남정네 둘이 매우 수상쩍은 움직임으로 카운터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어, 시X 깜짝이야. 직원은 목 구멍까지 나오려던 비속어를 오래된 짬으로 삼켰다. 어떤 영화 관람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드가 들이밀어졌다.
"앞에 두 사람이 끊은 걸로 두 장 주세요."
"삐뇽."
앞에? 눈을 껌벅이자 선글라스를 낀 남정네가 은근슬쩍 뒤 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방금 티켓을 끊은 두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뭐지? 당황스러워 가만히 있자 모자쓰고 있던 이가 깊게 눌러쓴 모자를 슬쩍 들어올렸다. 업무에 지친 눈을 정화시킬만한 멀끔한 미남이 난처한 얼굴로 속삭였다. 저희는 저 두 사람 친구인데. 좀, 사정이 있어서요. 부탁드립니다. 직원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미남은 다시금 눈가를 휘며 곤란한 표정으로 웃었다. 안 되나요? 그 시점에서 직원은 물리적인 납득을 하고 말았다. 아, 사정이 있다는데 들어드려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홀린듯이 앞 사람이 발권한 영화를 바로 선택해주었다.
"그럼 1시 45분 차 영화, 좌석 골라주시겠습니까."
참고로 저 두 분은 이 좌석을 선택하셨습니다. 작게 말을 덧붙이자 둘은 바로 그 뒤의 좌석을 골랐다. 단정하게 생긴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감사는 무슨 제가 감사죠.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려는 말을 미소를 지으며 붙잡았다. 일 끝나면 친구에게 연예인 뺨치는 남자 봤다고 자랑해야지.
자본주의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우러나는 미소를 보며 이명헌은 속으로 혀를 찼다. 죄 많은 남자 삐뇽. 우성이는 자각이라도 있지 삐뇽.
"최동오, 얼굴 함부로 쓴다 삐뇽."
"어? 무슨 말이야?"
낙수한테 일러야지 삐뇽.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낙수한테 뭘 이른다는 거야? 동오는 핸드폰을 꺼내드는 명헌을 막느라 영화관 한 가운데에서 난데없는 원온원을 하게되었다. 180 남정네 둘의 끈적한 몸싸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만과 준호는 둘이서 팝콘과 음료를 고르느라 두 사람이 그러는 것을 보지 못했다.
팝콘과 음료를 들고 상영관으로 향했다. 길게 나오는 광고를 보며 팝콘과 음료를 우물거렸다. 광고가 끝나고 대피 안내문이 나올 때 쯤에서야 뒷 자석에 사람이 앉은 기척이 느껴졌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로고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시작하기 전 작은 목소리로 재잘거리던 준호는 진지한 얼굴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대만은 시야가 어두워지자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의 움직임과 체온이 잘 느껴졌다. 대만은 어색하게 사이에 놓은 팝콘통에서 팝콘 하나를 느리게 꺼내 먹었다.
정대만도 민망하긴 했다. 어제까진 친구라고 막 손도 잡고 어깨동무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껴안고 다녔는데. 사귀는 사이라는 딱지가 붙으니 동작 하나 하나가 신경쓰였다. 손 잡아도 되나? 그런데 막 잡아도 괜찮은 건가? 영화 같은데서 보면 막 자연스럽게 손이 맞닿고 그러던데. 화면에 아지트에 모여든 학생들이 낡은 TV에서 옛날 시대극을 보고 있는 장면이 흘러가고 있었다. 대만은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준호를 흘낏 바라보았다.
손, 잡을까?
그 때였다. 주인공이 도망가는 이를 잡기 위해 다리에 뛰어들었다. 준호가 깜짝 놀라며 손을 마주 잡았다. 팔걸이에 얌전히 놓여있던 손을 노리던 대만의 손은 빈 팔걸이만 만지작 거리게 되었다. 뒷 좌석에서 작은 한숨이 세어나왔다. 대만은 준호를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뜬 눈에 화면이 비치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도 눈치 못 채고 완전히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씨, 귀여워.
넘치는 감정에 대만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 진짜 너무 귀여워. 권준호 왜 이렇게 귀엽지? 애인의 귀여움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손을 꽉 움켜쥐었다. 뒤에서 염병이라는 작은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감격에 가득 찬 대만에 귓가에 닿지 않았다.
"대만아?"
작게 이름을 부르고 팝콘통이 자신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왜 그래? 팝콘 먹으려고? 그 말에 우물쭈물 팝콘을 몇 개 집었다. 어색하게 팝콘을 입에 넣는 대만은 보고 준호는 작게 웃었다.
"너랑 영화 보니까 좋다."
화면 가득 여름 날 영화 찍기 위해 뛰어다니는 학생들 분주함이 넘쳐흘렀다.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당당한 대사 사이로 들려오는 속삭임이 간지러웠다.
"…… 나도."
좋아. 뒷 말은 팝콘과 함께 삼켰다. 그냥 기본 팝콘인데 왠지 카라멜 팝콘처럼 달콤한 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준호는 어둑한 불빛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귀를 잠시 응시하다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뒤로는 둘 다 영화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정말 멋진 영화였어, 삐뇨오옹……."
"명헌아?"
감동 삐뇽. 권준호 안목 최고 삐뇽. 어째 중간부터 조용하더니 영화에 빠진거였어? 동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립박수를 칠 기세인 명헌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놓치며 어쩌려고 그래! 다행히 두 사람은 아직 영화관을 나가지 않았다. 팜플렛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명헌의 뒷덜미를 잡고 두 사람을 따라 나섰다. 아까 싸우던 사람들이다. 누군가 손가락질 했지만 바쁜 동오는 신경쓰지 못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 마성지가 추천해준 거라고 해서 삐딱하게 보고 있었지만 중간부터는 그런 생각 안 들 정도로 푹 빠져서 영화를 보았다. 끝에선 감동해서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었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렇게 재미 있게 영화를 보고 나오니 3시 반쯤 되어 있었다.
카운터에서 영화 티켓을 들고 관람 특전을 수령하는 준호를 기다리며 대만은 핸드폰에 있는 장소를 흘끗 확인했다. 유명 캐릭터 콜라보 카페였다. 물론 준호가 좋아하는 캐릭터 카페였다. 대만이 준호 몰래 잡은 계획이었다. 준호에게는 근처를 산책하자고 했지만 실제론 산책하는 척 하면서 이 곳에 와서 준호를 놀래킬 생각이었다.
"가자, 대만아."
포스터와 특전을 받아온 준호가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대만은 황급히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만은 준호와 함께 영화관을 나섰다. 그 뒤로 팜플렛을 든 문짝만한 남자 둘이 뛰쳐나왔지만 둘은 보지 못했다.
아까 본 영화를 대화하면서 카페 쪽으로 향했다. 활짝 열린 입구에서 부터 캐릭터 등신대가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어, 준호야. 저거 너 좋아하는 거 아냐? 대만이 어색하게 등신대를 가리켰다. 등신대를 본 준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만족스러운 반응에 대만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역시 준호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대만은 당당한 표정으로 카페 입구로 향했다. 마침 입구에 직원이 서 있었다. 저기- 대만이 입을 열기 전 직원이 빠르게 대답했다.
"오늘 카페 입장 마감되었습니다."
"…에?"
"오늘은 예약과 현장입장이 끝나서 카페에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1층 상점은 자유롭게 이용가능하십니다. 그런 말은 대만에게 들리지 않았다. 아니, 카페를 예약까지 해서 오는 거야? 그렇게 인기 많은 거야? 그 하얗고 몽글몽글한 캐릭터랑 강아지 같이 생긴 애랑 준호 같이 사진 찍어주려고 했는데! 정보 부족으로 인해 잘 세워 놓았던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멍하니 있는 대만의 손을 끌고 1층에 위치한 상점에 들어갔다. 멍하니 있던 탓에 준호가 핑크핑크한 캐릭터가 잔뜩 그려진 잠옷과 캐릭터 세안밴드 등을 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것에 대해 나중에 좀 후회하게 되지만 그 건 정말 나중의 일이었다. 대만이 정신 차렸을 때는 준호는 유리컵과 머그컵을 들고 어떤 걸 살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대만의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인 컵을 진지하게 비교하던 준호는 결국 귀가 까만 강아지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을 골랐다. 그리고 그 머그컵과 같은 캐릭터 인형과 안경 쓴 강아지 티셔츠를 하나 집어들고 난 후 쇼핑이 끝났다. 신난 준호가 대만에게 주려고 몰래 티셔츠를 고른 것도 대만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귀여운 캐릭터가 잔뜩 그려진 쇼핑백을 들고 나왔다. 들어간지 대략 30여분 후의 일이었다. 대만은 여전이 멍한 얼굴로 준호 대신 쇼핑백을 들게 되었다. 준호는 거기서 데려온 강아지 인형을 꼭 끌어안고 행복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핑크핑크한 곳에 시커먼 남정네 둘이 들어가기엔 너무나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근처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던 이들은 행복하게 나온 둘은 보고 황급히 근처 가게를 보는 척 하며 쇼윈도에 바짝 붙었다. 그 가게 있던 손님과 주인은 창문가에 붙은 남정네에 잠시 얼어붙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대만과 준호는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길을 걷고 있었다.
“준호야.”
“응?”
준호는 여전히 행복한 얼굴로 강아지 인형을 껴안은 체 대만을 돌아보았다. 대만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 미안 카페 데려가고 싶었는데.”
"괜찮아. 여기 방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예전에 들었어."
그래도 맘에 드는 것 잔뜩 샀는 걸. 신난 준호와 달리 일정이 예정과 다르게 끝나서 애매하게 남은 시간에 대만은 당황스러웠다. 저녁 먹기에는 아직 남은 시간. 농구 할 수 있으면 금방 시간 갈 텐데. 농구바보가 생각했다. 데이트를 해 봤어야지. 대만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뭐 하지? 카페 가야 되나? 갔잖아? 동기 녀석은 쇼핑한다고 했었지? 운동화라도 보러갈까? 그럼 무드 없나? 그래도 첫 데이트인데 뭐가 좋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대만의 얼굴을 응시하던 준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적당한 가게가 근처에 있었다.
"대만아."
준호가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갈래?"
"저럴 줄 알았다. 삐뇽."
"권준호도 농구부였지."
50콤보! 북모양 마스코트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은 화면에 흘러가는 표시에 맞춰 신명나게 북채를 휘두르면서 둘은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태X의 달인을 하는 모습에 오락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감탄했다. 저거 봐! 저 차림으로 사쿠란보를 실수 없이 하고 있어! 몇몇이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저런 은둔 고수가 어디서 나온거지? 감탄어린 말을 뒤로 하고 둘은 모자챙과 선글라스 너머로 농구 게임을 하고 있는 둘을 훔쳐 보고 있었다.
둘은 오락실 농구게임기 앞에서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며 다정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다. 설렁설렁 던지는 것 같았지만 날아가는 공은 꽤나 빠르고 정확했다. 제한 시간이 끝나고 점수는 비등했지만 대만 쪽이 더 높았다. 당연한 듯 뻐기는 대만과 아쉬워하면서 감탄하는 준호를 보며 명헌과 동오의 얼굴은 떪은 감을 씹은 것 마냥 변했다. …눈꼴 시어 죽겠네. 커플 타도 삐뇽. 장거리 연애 중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내뱉는 동안에도 북채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한참 농구게임에서 놀던 둘은 다른 놀이기구로 이동했다. 커다란 덩치를 두고 게임기 앞에 딱 달라붙어 앉아 버블버블을 하고 레이싱 게임에 앉아서 열심히 핸들을 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장정만한 둘도 열심히 철X 게임기 앞에서 서로 주먹과 발길질을 주고 받으며 게임에 몰두 중인 커플을 훔쳐보았다. 그러나 둘도 종국엔 오락실 게임에 빠져서 대만과 준호가 인형뽑기 앞에서 이상한 캐릭터 인형 뽑는데 열중하는 동안 코인노래방에서 누가 누가 노래점수 많이 나오는가 대결에 심취하고 말았다.
준호가 결국 이상한 캐릭터 인형을 뽑았을 무렵에 명헌과 동오가 본래의 목적을 깨달았다. 그만 삐뇽. 명헌은 동전을 더 바꾸려는 동오를 붙잡고 화기애애 오락실을 나가는 둘을 쫒아갔다.
실컷 놀고 나서 저녁은 분식이었다. 왠지 고등학교 때 생각나네. 늦게 까지 연습하고 열려있는 가게가 학교 앞 분식집이라서 거기서 많이 먹었잖아. 준호가 그리운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 아주머니 진짜 좋으신 분이었지. 남는 거라고 덤으로 이것저것 주시고. 대만이 떡볶이를 꿀떡 삼키고 말했다. 태섭이랑 다른 애들 연습 봐주러 갈 때 한 번 방문할까. 그렇게 추억어린 말을 주고 받고 있을 때, 그 분식집에서 몇 테이블 떨어진 곳에서 라면과 김밥을 야무지게 조지고 있는 남정네 둘은 서로 싸우고 있었다. 네 점수가 1점 낮음 삐뇽. 그 전 노래에는 너 나보다 10점 낮았어. 발라드는 반칙 삐뇽. 마지막 점수가 낮으니 네가 계산하라 네 점수 총합이 낮으니 네가 계산하라 투닥거리는 사이 먼저 들어온 대만과 준호 쪽이 먼저 식사가 끝났다.
길던 여름 해도 건물 뒤로 사라지고 있는 시간. 둘은 대만의 기숙사로 둘이 향했다. 대만은 자취하는 준호를 배웅해주고 싶었지만 준호가 예전에 자신을 배웅한 적 있으니 이번엔 자신이 대만을 배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걸 이기지 못했다. 너 자취방 가는 길 위험해 보인단 말이야. 삐죽이며 하는 말에 준호는 시원하게 웃었다. 나중에 네가 하면 되잖아. 그렇게 뒤 따라오는 누구 누구가 달아서 고통받을 정도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학교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올 때는 그렇게 오래 걸리더니 돌아올 때는 순식간이었다. 아쉬울 정도로 가까워진 기숙사에 대만은 아쉬움을 삼켰다. 두 사람의 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뒤쫒는 둘이 느려지는 발걸음에 초조해 할 때 쯤 두 사람은 멈춰섰다. 이제 가야겠네.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해가 지면서 선선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준호가 시원하게 웃었다. 마지막에 편하게 즐긴 대만도 준호를 보며 마주웃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희게 드러난 팔과 손이 눈에 잡혔다. 손만 잡는다 만원. 삐뇽. 얄미운 룸메이트의 목소리 떠올랐다. 오늘 첫 데이트라고 해놓고 겨우 손가락만 스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손 잡을까? 그런 생각에 빠진 대만이 준호의 손만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대만아-.”
응? 고개를 들자 손이 얼굴을 가볍게 감쌌다. 어느새 성큼 다가와 가까워진 준호의 안경알 너머 눈동자에 멍하니 있는 제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뺨을 감싼 손이 부드럽게 자신을 끌어당겼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잠시 맞닿았다 떨어졌다. 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뒤에 쫒아오던 둘은 예상 외의 상황에 선글라스와 모자를 떨구었다. 이내 떨어진 준호는 멀거니 서 있는 대만을 보고 웃었다.
“…다음 주에 보자.”
그럼 안녕. 그렇게 말하고 뛰어가는 이의 귓볼이 길게 남은 노을 빛이 물든 것처럼 붉었다. 멍하니 서 있던 대만은 손을 들어 입술을 더듬었다. 방금 전에 닿은 온기가 아직도 입술 위에 남아있었다.
명헌아, 인정해. 내가 이겼어. 뽀뽀는 키스랑 다르다 삐뇽 어쨌든 내가 가장 비슷한 범위에 맞췄잖아. 두 룸메이트가 서로의 지갑을 두고 싸우는 것은 애인과 첫 키스를 하게 된 대만에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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