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협태웅] 합사 가능한가요?
여어… 사냥 놀이 하자.
수인au
서태웅은 인간이다. 아니, 구시대적 발언이었다. 수인이 아닌 사람을 인간이라 칭하는 건 수인과 인간을 구분 짓고 차별을 종용하게 된다는 말이 나오며 대체 단어가 제시되었다. 정정하자면, 서태웅은 비발현인이다. 세상엔 수인, 그러니까 발현인의 수가 비발현인보다 현저히 적었고, 아직 사회에 깊게 찌들어있는 발현인을 향한 차별적 시선 때문에 그들은 굳이 자신의 발현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태웅은 자신이 비발현이든 말든 애초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발현인이어도 딱히 어디 가서 말할 일 없었을 테니까. 어머니 쪽 저 윗세대 중 누군가가 발현인이라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서태웅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보통 고등학생이 발현하는 경우는 잘 없다. 중학생도 늦은 편이니.
그런 서태웅이 딱 한 번, 발현인에 대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혼현이 발현되어 조절이 능숙해지면, 그 모습이 더 편해져 집에서는 동물의 모습으로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때 잠시, 서태웅은 상상이라는 걸 해봤다. 누군가랑 같이 살게 된다면, 고양이 혼현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고양이... 귀여우니까. 그렇게 작은 소망을 품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의 끝 무렵. 그 소망이 이루어지긴 했다. 대충은....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서너 번까지. 서태웅은 원온원을 위해 윤대협을 찾아갔다. 그들이 늘 만나는 농구코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엔 작은 공원이 있었다. 서태웅은 코트로 가기 전에 공원 앞에서 자전거를 잠시 멈추곤 했다. 인적이 드물고 관리가 잘 안된 공원이었기에 화단의 잔디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다. 낮은 수풀 사이, 서태웅의 시선을 끄는 작은 생명체가 보인다.
끼이익. 서태웅은 자전거를 세우고 화단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작고 까만 털 덩어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는 주섬주섬 준비해온 츄르를 꺼내 들었다. 처음 봤을 때보단 조금 커져서, 이제 제법 고양이 태가 났다. 까만 고양이는 츄르를 뜯는 서태웅의 다리에 제 머리를 콩 기댔다.
"야옹아, 잠시만."
서태웅이 조심스레 스틱을 아래로 내렸다. 작은 혀가 열심히 할짝댄다. 천천히 짜는 속도를 맞춰주었다. 애옹. 애옹. 금세 동나버린 간식이 아쉽다는 듯 고양이가 울며 보챘다. 서태웅은 말라버린 그릇에 생수를 채워주곤 일어섰다.
"미안. 가봐야 해. 또 올게."
서태웅의 시선이 아쉬운 듯 고양이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자꾸 고개 돌려 내려다본다. 다음엔 밥도 챙겨와야겠다. 좀 컸으니까 사료도 먹을 수 있으려나. 아기고양이용 사료가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고양이 사료는 편의점에 파나. 다시 코트로 향하는 길, 서태웅의 뇌는 원온원 대신 고양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윤대협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익숙한 인영이 나무 그늘이 내린 벤치에서 긴 다리를 늘어트리고 앉아있는 게 보였다. 서태웅이 천천히 다가갔다. 무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윤대협이 서태웅을 보며 활짝 피었다. 여어. 그는 한손을 들어 올리며 서태웅을 맞이했다.
"오는 데 안 더웠어?"
"조금. 근데 괜찮아."
"잠시 앉아."
서태웅이 윤대협 곁에 털썩 앉았다. 그의 볼에 차가운 캔이 닿는다.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이자 윤대협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시원하지?"
"차가워...."
서태웅이 고개를 돌렸다. 윤대협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서로의 얼굴이 캔 하나 정도의 거리에서 맞닿아있었다. 서태웅은 내뺄 생각도 못 하고 눈만 깜박거렸다. 윤대협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진다. 곧 눈썹을 까닥이며 킁킁거렸다.
"뭐야."
윤대협의 얼굴이 서태웅의 목덜미 부근으로 다가왔다. 잠시 참아준 서태웅이 곧 그를 밀어냈다.
"태웅아...."
"뭔데."
"너 고양이야?"
윤대협이 뜬금없이 헛소리를 해대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응? 아니야?"
"뭐라는 거야..."
"음. 착각인가?"
서태웅은 제 원온원 상대의 의중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아, 혹시 고양이를 좋아하나?
"고양이 좋아해?"
"으음..."
"볼래?"
"아. 보여주려고?"
"응. 가자."
윤대협이 싱글벙글 웃는다. 태웅이가 보여주면 나도 보여줄게. 그런 말을 붙이며 서태웅을 따라간다. 윤대협도 아는 고양이가 있나? 서태웅은 조금 설렜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저기, 공원."
사람 없는 게 뭔 상관일까. 아, 하긴. 사람 없어야 고양이가 잘 다가오니까. 서태웅은 혼자 납득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 귀여운 생명체를 윤대협에게 보여줄 생각에 마음에 들떴다.
"여기야."
"응?"
"야옹이."
서태웅의 손 끝이 작고 까만 아기고양이를 가리켰다. 서태웅이 채워준 물을 열심히 챱챱거리며 마시는 뒷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 아기야."
"아하...."
서태웅이 쭈그려 앉자 고양이가 다가온다. 애앵 거리며 작은 얼굴을 다리에 비볐다.
"사람을 잘 따라. 윤대협, 너도..."
서태웅이 멈칫했다. 고양이에게 열중한 사이, 윤대협이 몇발짝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서태웅이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윤대협이 곤란한 듯 하하, 웃음을 내뱉는다.
"도망 안 가. 와도 돼."
"하하... 그게 좀..."
"...고양이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싫어하는 건 아닌데."
"아. 알레르기?"
서태웅의 눈썹이 미묘하게 누그러졌다. 불쌍해라. 고양이를 만지지 못한다니.
"알레르기는 아닌데... 그냥 고양이가 날 싫어해."
"왜?"
"글쎄. 하하."
"얘는 사람 좋아해서 괜찮아."
"아닐걸...."
윤대협은 저를 쳐다보는 눈빛에 못 이겨 서태웅에게로 다가갔다. 자연히, 고양이와의 거리도 좁혀졌다. 얌전히 서태웅에게 예쁨받던 고양이가 윤대협이 다가오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캬악. 꼬리를 펑 터트리며 풀숲 구석에 숨어 윤대협을 노려본다. 윤대협은 다시 몇발짝 뒤로 물러섰다.
"봤지?"
"왜지..."
착한 야옹이인데. 서태웅이 다시 슬금슬금 다가오는 고양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일어섰다.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고양이한테 미움받는다니. 윤대협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가자. 어디야?"
"으응?"
"너도 보여준다며, 고양이."
윤대협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
"응."
"다음에. 다음에 보여줄게."
분명 무표정이었는데도, 윤대협은 서태웅의 얼굴에서 미약한 실망감을 느꼈다. 이런. 그는 서둘러 당근을 내밀었다.
"원온원 해야지. 해질 때까지 하자."
"응."
서태웅이 앞서 나갔다. 붕붕 뜨는 머리칼이 걸음에 맞춰 살랑인다. 윤대협은 그 뒤통수를 바라보며 다시 코를 킁킁댔다. 역시, 이 새끼고양이의 냄새가 아니다. 윤대협은 합리적 의심을 했다. 서태웅은 혹시... 본인이 고양이 혼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나?
해질때까지 원온원을 하는 날이면 윤대협은 꼭 서태웅을 제집에 불러들여 저녁을 챙겨 먹였다. 집 가서 먹겠다는 태웅의 고집은 쉽게 꺾였다.
'지금 가서 저녁 먹으면 너무 늦잖아. 제때 밥 안 챙겨 먹으면 키 안 커.'
키 운운하는 윤대협의 말이 단방에 먹혔다. 서태웅은 오늘도 순순히 윤대협의 자취방으로 따라갔다.
"먼저 씻고 있어."
윤대협이 수건을 건네며 욕실을 가리켰다. 보통 서태웅은 윤대협의 집에서 샤워까지는 하지 않았다.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고, 어차피 집 갈 때 자전거 타고 가다 보면 다시 땀이 나니 굳이 미리 씻을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끈적함만 없애려 손, 발, 그리고 세수 정도. 그게 다였다.
서태웅은 옷을 벗어 차곡차곡 개키며 처음으로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옷에 음료를 흘러버려서 씻을 수 밖에 없었다. 부스 안 구석의 선반에는 헤어와 바다 제품들이 정렬되어있었다. 도브 비누 하나로 뚝딱 끝내버리는 서태웅과 달리 뭔가 많았다. 서태웅은 필요한 제품들을 찾기 위해 용기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샴푸, 트리트먼트, 바디 워시, 클렌징폼, 면도 크림....
"펫 샴푸?"
서태웅이 하단부 구석에 있는 용기를 집어 들었다. 한글로 '펫 샴푸'라고 적힌 아이보리색 용기였다. 하단부에는 행복하게 웃으며 혀를 내빼고 있는 리트리버 사진이 박혀있었다. For Dog. 펫 샴푸라는 글자 아래의 영어단어를 더듬더듬 읽었다. 저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서태웅은 그게 강아지 용 샴푸라는 사실을 빠르게 파악했다.
이게 왜 있지. 서태웅은 의문을 품으며 용기를 제자리에 두었다. 윤대협이 개를 키운다는 말은 없었는데. 아. 이웃집 개가 놀러 오나 봐. 이번에도 서태웅은 스스로 의문을 해결해버렸다. 솨아아. 수도꼭지를 올리자 하늘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차가워...."
해바라기형 샤워기에서 찬물이 쉴 새 없이 내린다. 황급히 따뜻한 물 쪽으로 돌렸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에서 서태웅은 만족스러운 샤워를 마쳤다.
능남 티셔츠는 서태웅에게 조금 컸다. 윤대협과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덩치까지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저녁을 먹고 잠시 윤대협의 침대에 나란히 앉아 헛소리에 맞장구쳐주다가 밤이 더 늦기 전에 집을 나섰다. 서태웅은 자전거에 오르기 전, 티셔츠 목 부근을 잡아 올려 킁킁, 냄새를 맡았다. 윤대협의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났다. 윤대협의 자취방은 이전에도 자주 갔었는데, 오늘따라 그의 방에서 나는 진하고 무거운 향이 서태웅의 코를 거슬리게 했다.
'윤대협. 향기 나는 막대기... 그거 한 거야?'
'디퓨저?'
'응. 그거.'
'아니. 그런 거 없는데?'
'... 네 방에서 냄새 나.'
'...그렇구나. 그래서, 별로야?'
'아니. 그건 아니고.'
'다행이네.'
'뭐가?'
'그런 게 있어.'
그냥 그렇게 넘어갔는데, 입고 나온 티셔츠에서도 그 향기가 진하게 나니 새삼 생각해버렸다. 윤대협의 냄새. 이 무겁고 진한 향이 뇌에 박히자 윤대협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돌아가는 길에 야옹이 한 번 더 보고 가야지. 서태웅은 아른거리는 윤대협을 떨쳐내려 의식적으로 사고를 돌렸다.
서태웅은 심기가 불편했다. 강백호가 서태웅을 보고 '끄아악! 저 배신자 녀석!'하고 삿대질을 해대서가 아니었다. 그 옆에서 정대만이 표정을 찌푸리며 '서태웅, 그 간악한 능남티는 대체 어디서 난 거냐?' 하고 다그쳐서도 아니었다. 그의 심기는 어젯밤부터 불편했고, 지금이 되어서는 정도가 심해졌다.
"왜 그래..."
서태웅이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낙담한다. 늘 제게 와 재롱을 부리던 아기 고양이가 지금은 저를 보고 캬악댄다. 어젯밤부터였다. 윤대협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잠시 얼굴을 비췄더니 고양이가 평소와는 달리 벌벌 떨며 서태웅을 피했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서태웅은 그게 마음에 걸려 부 활동이 끝나자마자 공원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원온원 약속이 없는데도.
"자. 이것도 가져왔어."
서태웅이 작은 캔을 따서 내밀었다. 뒤로 물러나 서태웅을 경계하던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여전히 서태웅을 향한 경계를 풀지는 않는다. 서태웅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옹이의 식사를 방해할 수는 없다. 뭐가 문제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농구코트로 향한 건 거의 습관적인 행위였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리고 고양이 생각에 기분도 별로니, 서태웅은 자연히 가방에서 농구공을 꺼내 퉁퉁 튕겼다. 포물선을 그린 공이 림에 빗맞고 튕기어 나왔다. 오늘따라 슛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이마에서 주륵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잠시 벤치에 앉았다. 그가 입고 온 윤대협의 티셔츠가 땀으로 흥건했다. 진하던 윤대협의 향 위로 서태웅의 냄새가 뒤섞였다. 그는 전날처럼, 티셔츠를 당겨 올려 냄새를 맡았다. 윤대협의 냄새가 한결 연해졌다. 티셔츠를 내리는 순간, 갑자기 아주 진한 냄새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윤대협?"
서태웅이 빠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멀리서 윤대협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 우리 오늘 만나기로 했던가?"
윤대협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서태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왜 왔어?"
"고양이가..."
서태웅이 서러움을 토로했다. 어젯밤에도, 오늘도, 고양이가 자기를 피한다고.
"아이고."
윤대협이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왜 그런지 알 것 같은데..."
"알아?"
"응. 알고 싶어, 태웅아?"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윤대협이 시선을 내린다. 서태웅이 걸친 능남 티셔츠가 땀에 달라붙어 몸의 윤곽을 드러낸다. 끝이 말려 올라가 배가 조금 드러나 있다. 윤대협은 서태웅 앞에 쪼그려 앉아, 그 끝을 내려 정리해주었다. 판판한 배가 완전히 가려졌다.
"알려줘."
서태웅이 재촉한다. 윤대협이 고개를 들어 서태웅을 쳐다보았다.
"나 수인이야."
서태웅이 당황한 듯 눈을 여러 번 깜박인다. 대답을 고민하며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 수인 말고 발현인."
"아하하. 당사자성 발언이라 괜찮아."
윤대협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 거 함부로 알려주면 안돼."
"너한텐 말해도 돼."
"어디 가서 말하지 마."
"그래."
서태웅이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히 주위엔 아무도 없다.
"비밀 지켜줄게."
서태웅이 결연한 표정으로 윤대협에게 말했다. 윤대협은 이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고마워 태웅아."
"응."
"근데, 무슨 혼현인지는 안 물어봐?"
서태웅이 표정을 굳힌다.
"그런 거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했어."
윤대협이 고개를 푹 숙인다. 서태웅의 무릎에 이마를 비비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예의 바른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다.
"개야."
"...강아지?"
"응. 볼래?"
푱. 윤대협의 머리칼 사이로 쫑긋, 하고 까만 귀가 생겨났다. 서태웅은 깜짝 놀라 손을 뻗었다. 삐죽한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양손으로 귀를 감쌌다.
"누가 보면 어떡해!"
보드라운 털이 서태웅의 손바닥을 간질였다. 윤대협은 부러 귀를 쫑긋이며 짓궂게 웃었다. 그러다 곧 웃음을 거두곤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말이야, 태웅아..."
윤대협이 일어섰다. 그의 등 뒤로 낮게 뜬 해가 쨍하니 비쳤다. 기다란 그림자가 서태웅을 뒤덮었다. 서태웅은 자연히 고개를 올려 제 앞에 선 윤대협을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어떡해."
윤대협의 양손이 서태웅의 머리로 향한다. 쫑긋거리는 까만 귀가 그의 손에 덮인다. 발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절이 미숙할 때는, 격한 감정에 이렇게 혼현이 드러나기도 한다. 아마 방금 윤대협의 귀를 보고 놀랐을 때였을 것이다. 지금이 처음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 이 귀를 본 적이 있을까. 새까만 머리털 위로 불쑥 솟아있는 까만 귀는 마치 처음부터 나 있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이게... 뭐야?"
윤대협의 손이 닿자, 서태웅도 그제야 귀의 존재를 인식했다. 귀를 감싸는 윤대협의 따뜻한 체온이 생생히 느껴졌다.
"내가 개 혼현이라. 고양이들이 날 싫어하더라고."
윤대협이 귀를 살살 쓸었다. 으응. 서태웅이 귀를 납작하게 눕히며 손길을 받아들였다.
"태웅아, 너 고양이잖아."
"... 나 고양이야?"
서태웅이 되묻는다. 귀가 생긴 것도 처음인데, 거울을 보지도 않았으니. 서태웅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응. 그래서 걱정이네."
"... 왜?"
"나 싫어할까 봐."
서태웅이 얼굴을 와락 찌푸린다. 스르륵. 그의 감정에 반응하여 새까만 꼬리가 솟아난다.
"안 싫어해."
꼬리가 벤치를 탁탁 때리며 불만을 표출한다. 윤대협이 급히 꼬리를 잡아챈다. 능남 티를 들치고 등 뒤로 꼬리를 쑤셔 넣었다.
"그래. 미안, 미안. 일단 가자."
눈앞의 미숙한 고양이 때문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서둘러 그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주변에 발현인이 없던 것 같으니, 직접 가르쳐줘야겠다는 착실한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길래...
사실 뒷내용이 더 있는데 길어지길래 잘라버렸어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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