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기로 돌아와서, 정우성은 전력투구로 7번과 8번타자까지 깔끔하게 범타 처리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옴. 투구수는 12개. 잘 하면 다음 이닝까지도 해볼만함. 10회초, 산왕의 공격이 시작됨. 타순은 5번부터 시작하는 클린업 라인. 벌써 5번째 타석에 들어서는 신현철은 사이클링 히트를 코앞에 두고 있었음. 가장 어렵다는 3루타만 남겨둔 상태였으나 욕심을
겨울이 떠나가기 전, 이제 막 싹을 트려는 생명들을 시기하듯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온 나라가 연이어 벌어진 해괴한 일들로 인해 떠들썩 했으나 명헌이 있는 곳만큼은 매우 고요했다.전 당상관의 자제 인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소박한 흰 옷에 초라한 초가(草家)에 머무르고 있는 명헌은 15살임에도 불구하고 제 또래보다 야위어, 수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1460년 조선 한양 반정으로 인한 혼란이 가라앉기도 전, 도성에 출몰한 도깨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다. 그저 쉬쉬하며 허무맹랑한 소문으로만 치부되던 것이 당사자의 입을 건너고 건너 온 마을을 뛰어넘고, 그것이 팔도가 되었을 때쯤. 한 번 발걸음 하기도 어렵다는 도성은 어느덧 인생을 뒤바꾸어 줄 금 동아줄로 변모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사람들은 그
부스럭부스럭 편지를 뜯는 명헌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떨리는 마음으로 펼친 편지를 훑어보는 명헌의 눈가는 여느 때와 달리 조금은 거뭇했고 풍기는 기색은 음울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편지에서 눈을 뗀 명헌이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금 시선을 내려보면 보는 이의 간절한 마음 따위는 모르는 듯 처음과 같은 모습의 편지가 자리하고 있었
미국에 온 지 10년. 추운 겨울의 냄새가 온 거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할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무더운 여름날 헤어져 짙은 그리움보다 더 깊게 내 안에 박힌 듯한 그 사람은 차가움과 동시에 따듯함을 지녔다는 것마저 겨울을 닮아서, 춥기만 하다며 겨울을 싫어하던 나를 기어코 겨울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내 첫 동료이자 형이자 친구인 사람. 다른 이들은 더
바스락, 바스락 커다란 몸이 움직이는 대로 이불이 흐트러지며 고요한 방안을 작은 소음들로 가득 채웠다. 잠시 고요해진 방안 속 끄응, 거리는 나지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두터운 두 발이 침대 아래로 길게 쑥 뻗어 내려와 부드러워 보이는 러그 위에 안착했다. 발의 주인은 꽤나 이불을 벗어나기가 싫었는지 한참을 러그 위에서 발장난을 치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경기 중간에 교체 당했던 것? 아니면 처음부터 온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 그것도 아니라면... 그 사당에 가서 소원을 빌었던 것일까. [ 산왕 공업 고등학교 인터하이 첫 경기에서 패퇴. ] 산왕공고의 인터하이 패배는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무패 신화 최강산왕 ' 이라는 이름 아래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그들을 응원했던 것
글자로만 표현 될 마음이지만 당신이라면 알아줄 거라 믿고 오랜 기간 보여준 당신의 마음에 이렇게 용기를 내 편지를 부쳐봅니다.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는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하나도 빠짐 없이 읽었고, 지금은 제 서랍에 당신과 내가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이나 차곡히 쌓여 있지요. 처음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편지 봉투 겉면
작열하는 여름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은 뜨거운 여름과도 같았는데 나 혼자 있는 지금은 왜이리 추운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당신이 없어서겠죠. 내가 바라는 이상을 위해 잠시의 떨어짐을 선택했고 그 모든걸 감당하겠다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오만일 뿐이었는지 당신과 떨어진지 얼마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힘이 듭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나지만 아주 가끔
이 편지는 당연히 보내지 않을 것이지만 우습게도 당신에게 닿길 바랍니다. 눈이 내리는 날 당신을 처음 만난 날도 눈이 왔었지요. 우리는 그 날 처음만나 좋아하는 것을 함께 했는데 왜 지금은 없으신가요 당신의 재능과 노력과 빛남을 사랑했지만 그것이 당신을 내게서 앗아갈줄은 몰랐는데 당신을 그것들에게 빼앗기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밉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
“예 아닙니다.” 수신종료 버튼을 누르며 입속말로 새끼야, 를 덧붙였다. 명헌은 미간 사이에 빗금을 그리고 커피를 순식간에 반절 비웠다. 옆자리 동료가 얼마 전 출장 갔다가 사 왔다던 물건이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독특한 향이 나서 대부분의 직원은 마시지 않았지만,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는 점에서 명헌의 취향이었다. 원체 남들과는 다른 취향인 편이기도 했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개운하게 아침 러닝을 뛰고 찬물로 땀을 씻어냈을 때 느껴지는 상쾌함이었다. 덩크슛은 물론이고 지금이라면 림 위에 새처럼 내려앉는 것도 가능할 듯싶었다. 숨이 가쁘지도 손발이 저릿저릿하지도 않았다. 근래 이명헌을 생각하면 가슴이 벌컥거려 아플 지경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우성은 몸통이 로켓처럼 동그란 펜을 쥐고 있었다.
어느 운동부가 그러지 않겠느냐마는, 산왕공고 농구부는 특히 부지런하기로 유명했다. 공해 없이 높은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해 머리가 산등선이 너머로 겨우 고갤 내미는 시간이 되면 기숙사 건물 앞으로 삼삼오오 익숙한 낯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아직 꿈속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눈을 채 뜨지 못한 이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우성은 양팔을
시작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정류장도 도보로 15분은 걸리는 데다가, 시간당 한 대꼴인 마을버스라도 타지 않으면 변변찮은 오락기 하나 구경하지 못하는 산골짜기 고등학교에 다니다 보면 늘 똑같은 대화거리가 돌고 돌았으니까. 농구 아니면 연애 아니면 급식. 특별한 것 없는 주제를 두고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ㅍㅅ 찍먹중이라 최근에 올렸던 것만 테스트 삼아 백업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