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명헌] 러브러브 데이트 서비스-下
에이스니까.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개운하게 아침 러닝을 뛰고 찬물로 땀을 씻어냈을 때 느껴지는 상쾌함이었다. 덩크슛은 물론이고 지금이라면 림 위에 새처럼 내려앉는 것도 가능할 듯싶었다. 숨이 가쁘지도 손발이 저릿저릿하지도 않았다. 근래 이명헌을 생각하면 가슴이 벌컥거려 아플 지경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우성은 몸통이 로켓처럼 동그란 펜을 쥐고 있었다. 맨 처음 명헌을 만났을 때 그가 쥐여줬던 물건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냥 까만색이 아니었다. 푸른 기가 도는 어두운색. 미드나잇블루. 형이 요즘 사고 싶다 눈독 들이고 있는 농구화도 딱 이런 색 아니었나. 이런 색을 좋아하나 보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것 같아 입이 근질거렸다. 당장 그를 붙잡고 산왕 색도 똑같은데 역시 형이 여기에 들어오는 건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촉새처럼 떠들고 싶었다.
시선을 옮겨 반대쪽 손을 내려다보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종이 한 장을 쥐고 있었다. 이전에 봤던 계약서와 양식은 똑같았지만, 상단에 기간 연장이란 글씨가 굵게 프린트되어있었다. 아래에는 정우성 이름 석 자가 비뚤어진 글씨로 적혀있었고. 내가 여기에 사인을 했던가?
-이상한 거라도 있어, 뿅?
의아함에 멈춰 서 있던 것도 잠시, 명헌의 부름에 고개를 든 우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적게 된 경위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별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연장계약서가 의미하는 게 더 중요했다.
-형, 그럼 이제 형이랑 계속 농구 할 수 있는 거죠?
당초 계약서에는 농구의 니은자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이제 농구는 우성과 명헌 사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참이었다. 이명헌과 함께 하는 농구는 즐거웠고 늦은 밤까지 패턴을 고민해가며 새로운 루트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았다. 림에 골을 넣고 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시선을 맞추며 칭찬해줄 때면 혈관 아래로 무언가 기어가는 것처럼 온몸이 간지러워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코트 위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천천히 변해가고 있었는데 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일보다는 눈앞의 림에 골 한 번이라도 더 넣는 게 중요하다는 것처럼. 우성은 그게 마음에 들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코트 위에서 계속 함께할 수 있다면, 코트 밖에서도 함께 할 수 있으리란 것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연장계약서에 서명한 것도 그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다.
-물론이다 뿅. 나도 우성과 농구를 더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뿅.
이명헌의 눈매가 둥그스름하게 접혔다. 본래 웃음이 잦은 사람이 아닌 만큼 간간이 보이는 미소와 마주하니 기분이 들떴다. 그간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을 보내고 눈빛을 주고받는 동안 내가 했던 생각을 형도 했겠구나. 더없이 안정적인 기분에 충동적으로 형을 담쏙 끌어안았다. 형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기뻐요. 형도 기뻐요? 그렇다면 좋을 텐데.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부탁한다 뿅.
-잠깐, 한 달 동안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 31일.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품 안에서 이명헌이 빠져나가 있었다. 여태 꼭 쥐고 있던 계약서 위 깨알 같은 글씨 한 부분이 돋보기라도 가져다 댄 듯 큼지막하게 확대되어 눈앞에 들이밀어 졌다.
주변의 글씨가 어그러지고 일그러지면서 그 위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돋보기가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위 계약은 한 달마다 재연장이 필요하다. 1회 연장 시 청구되는 금액은 일, 삼, 공, 공, 공, 공, 아니 이게 몇 개야. 공, 공, 또 공. 그 뒤로 무수한 공이 줄을 서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세상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몸이 뒤집힌 모양이다. 이명헌이 딛고 있는 땅과 내가 딛고 있는 땅이 다른 것으로 보아. 우성이 아뜩해진 심정으로 물었다.
-형, 혹시 제가 이걸 다 못 갚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조금 전 기쁘다고 말했던 그 표정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얼굴을 하고 이명헌이 대답했다.
-별거 없다 뿅. 실험체로 나랑 같이 우주에 나가게 될 거다, 뿅. 요즘 같은 때 우성처럼 튼튼한 지구인 실험체가 생긴다니, 실적 1위는 따놓은 당상이다 뿅.
실험체라니, 그런 농담 재미없어요. 우리 같은 생각 하고 있던 것 아니었어요? 농구는요. 연애는요. 그때 뽀뽀는 왜 했어요. 따지고 묻고 싶은 마음에 손을 뻗으려는데 몸이 옴싹달싹을 안 했다. 아랠 내려다보자 두껍고 차가운 족쇄가 팔목과 발목을 꽉 죄여 물고 있었다.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사태에 어리벙벙한 것도 잠시,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뒤채기 시작했다. 손목과 발목이 빠듯하게 저렸다. 비명이라도 질러대고 싶었으나 족쇄가 목구멍까지 틀어막은 양 아주 희미한 신음만 흘러나왔다. 형, 어딨어요? 이거 뭐예요? 나 좀 풀어줘요. 쌕쌕대는 숨소리로 악을 쓰고 있으니 눈가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대로 죽는 건가? 미국 가는 비행기도 못 타보고, 그냥 실험대 위의 실험체가 되어서. 실험대라도 뒤집을 기세로 몸을 흔들었다.
“우성아.”
혼란과 억울함으로 꽉 찬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정우성!”
뻑, 발치에 뭐가 채이는 감각과 동시에 눈이 번쩍 띄였다. 목구멍을 죄이고 있던 족쇄도 동시에 풀린 듯 가쁜 숨이 탁 터졌다. 깊은 물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사람처럼 기침과 호흡을 섞어가며 뱉느라 온몸이 흔들렸다. 자연히 골이 지끈지끈 울렸다.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채 어지러운 시야를 붙들어 매려 애를 쓰는데 침대 아래로 허연 손이 불쑥 올라왔다. 우왁! 또 나자빠지기 전에 팔뚝을 콱 움켜쥔 손이 아니었다면 벽에 뒤통수를 거하게 받았을 게 분명했다.
“아오, 무슨 잠꼬대를 이렇게 살벌하게 해! 죽을 뻔했네. 너 괜찮아?”
입을 연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침대에서 계속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 선심 써 깨워주러 왔다가 어깨에 발차기를 먹은 룸메이트는 두어 번 더 구시렁거린 다음 정말 괜찮은 것 맞냐고 물었다. 안색이 어지간히 안 좋은 모양이지. 아닌 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자 식은땀이 축축하게 묻어나왔다. 더하여 침대 시트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오한이 밀려들었다. 깨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만 가까스로 꺼내놓은 우성이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뜨거운 샤워가 간절했다. 지독한 가위에 눌렸다 풀려났을 때처럼 힘이 죽 빠진 손으로 방문 손잡이를 쥐었다.
“왜 그러고 서 있어?”
제 손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혀 서 있던 정우성이 별 것 아니라 대꾸하며 한 박자 늦게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이명헌을 처음 만난 날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던 참이었다. 실험대에 묶인 저를 내려다보는 눈빛도. 룸메이트가 더 묻기 전에 방 밖으로 나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으니 시간이 조금 걸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가서 땀을 좀 닦아내고, 정신도 좀 차리고, 생각도 정리하고 들어갈 셈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다시 누워봤자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건 뻔할 뻔 자였으니까. 우성은 쥐 죽은 듯 조용한 복도를 걸으며 맨들맨들한 손톱을 문질렀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일어난 거스러미가 따가웠다.
그날 이후 정우성은 틈만 나면 계약연장을 해서는 안 되는 근거, 이명헌을 생각할 때마다 초조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의 변호사가 말했다. 명헌이 형은 사람이 원래 좀 이상하잖아. 주변에 원체 없는 타입이기도 하고. 나타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다른 형들이랑 죽마고우처럼 어울려 노는 것 좀 보라고. 얼마 전에 장난치다 림에 운동장 세 짝을 걸어두는 바람에 성구형만 고생했던 것 기억나지? 그리고 농구 실력도 좋고. 산왕에 농구 잘하는 사람이 형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호흡이 딱딱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지금까지 못 만나봐서 그래. 그래서 자꾸 호기심을 호감으로 착각하는 거지. 그런 상황에서 계약연장이라니, 너 미국 안 갈 거야? 막말로 진짜 실험대라도 올라가면 어쩌려고.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아? 그 형이 널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맞긴 해? 그동안의 다른 고객들이랑 네가 다를 게 뭐냐고.
숨도 안 쉬고 변호를 끝마치자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무슨 답을 원해서 이렇게 많은 변명을 준비한 거야 정우성. 네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답이 뭐길래?
그걸 알게 되면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위기 앞에서 겁먹고 움츠러드는 건 정우성답지 않은 일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재판을 취소하고 없던 일로 하고 싶었지만, 재판이 우성의 머릿속에서 열린 이상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재판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열렸다. 교실에서, 체육관에서, 기숙사 침대 위에서. 결과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만큼 언행이 수상쩍어졌다. 그야 당연하지. 종일 그 형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였다. 어떠한 문제를 두고 지진 부진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버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당장에 답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취할 태도를 확정 지을 순 있으니까.
후회할 시간이 있다면 일어나서 앞으로 달려가는 것은 우성의 타고난 장점 중 하나였다.
***
정우성에게 연애란 손톱 근처의 거스러미 같은 것이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다가 꼭 농구공을 잡을 때마다 눈에 띄는 거스러미. 잡아 뜯어야지. 그렇게 마음만 먹고 공을 하나, 둘 던지다 보면 어느새 잊고 마는 불필요한 존재.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곁에 있음을 잊는 무용지물. 손톱 정리 좀 해라. 신현철의 괜한 핀잔에 형은 뭐 그런 것까지 다 봐요? 라고 불퉁한 응답을 돌려주고 마는 가벼움. 수업 시간은 형식적으로라도 채워야 한다는 잔소리에 교실 뒤에 앉아 하품하다 보면 그제야 발견하게 되는 피부 껍데기.
이 거스러미를 발견하게 된 건 굳이 찾아 헤매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지루했기 때문이라고 우성은 생각했다. 때마침 지루했고,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햇빛은 기어코 창틀을 넘었고 제 손가락 끝을 비스듬히 채웠다. 빛이 얼마나 밝은지 제 손톱 아래로 일어난 거스러미 밑으로 붉은 피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일 오후의 성분은 아무래도 절반 정도는 수면제인 게 분명하다. 숨을 크게 들이켠 반 아이들은 저들마다 졸기 바빴다. 그 사이를 느린 남자 선생의 목소리와 판서 소리가 채웠다. 코트에서 뛰면 졸릴 일도 없는데. 진짜 재밌는데. 시시콜콜한 생각 따위를 이어 나가던 정우성은 그 낮잠 대열에 합류하려다 손톱이나 만지작거리기로 했다.
아직도 물어뜯지 못한 불필요한 존재. 쓸모는 없고, 신경만 쓰이고.
일정한 판서 소리가 교실을 메우는 동안 정우성은 제 손톱 근처의 거스러미를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잔뜩 박이면 단단하니까 뿌리내리기도 좋을 텐데 뭐가 그렇게 싫다고 밀어냈을까.
거스러미도 참 유난스럽다. 얌전하게 있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정우성은 제 검지로 엄지 근처의 거스러미를 슬쩍 긁어냈다. 그 작은 껍데기가 뭐라고 떨어져 나가지도 않고 잘도 버텼다. 필요도 없는 게 끈질기기까지 하다.
손끝이 따끔해질 정도가 되고 나서도 멈출 생각이 없던 정우성은 몇 번 손가락을 더 긁어대다 그만두기로 했다. 잊고 나면 금세 사라지겠지 싶어서였다.
정우성에게 연애란 손톱 근처의 거스러미 같았다. 그러니 이명헌과의 연애도 거스러미 같은 것이다. 농구공을 들고 골대를 바라보고, 양발을 살짝 벌리고 도약을 준비하려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위로 들어야만 보이는 거스러미. 굳이 찾아 헤매지 않고서야 발견하지 못하는 잡동사니 같은 것. 신경이 쓰이고 자꾸 손이 가도 그때뿐인 가벼움.
그러니 이 서투른 계약이 끝나고 나면 다시 찾지 않을 어떠한 사건에 몰두하지는 않겠다. 품으로 바로 꽂히던 패스도, 쏟아지던 장대비도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바쁜 일정을 더 당겨 빼곡하게 채울 필요는 없으니까.
정우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자를 더듬으며 읽어대는 학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박자에 맞춰 제 거스러미를 긁어대면서.
“우성.”
며칠 전, 아직 준비 못 한 답이 걸어와 곁에 앉았다. 점심시간과 수업 사이 붕 뜬 시간이었다. 이명헌은 쥐색 실습복에 거뭇한 기름을 묻히고 다른 손에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팥 맛과 딸기 맛. 뭘 어쩌다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턱 언저리에 까만 얼룩까지 묻히고
있었다.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의외로 허술한 면이 있다니까.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훔쳐내려다 머쓱하게 손을 내려 원래 이러려고 했다는 듯 공연히 목덜미만 문질렀다. 이런 때마다 사뭇 거리감이 가까워졌단 실감이 났다. 고작 삼 주 정도 같이 지낸 것만으로, 언제부터 이렇게 살가운 놈이었다고.
“형 입맛 진짜 아저씨 같아요.”
“우성은 일곱 살 같다 뿅.”
옆자리에 앉은 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고 태연하게 자리를 잡은 이명헌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까서 딸기 맛은 우성의 손에, 팥 맛은 제 손에 들고 맛있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근래 들어 다른 사람들도 눈치챌 만큼 태도가 이상해지고 이명헌을 찾는 빈도수가 줄었다. 우성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죄 티를 내고 다니는 제 성격을 싫어한 적 없으나 요즘 같은 때는 좀 후회스러웠다. 언제 이명헌이 불러다 요즘 왜 그러냐 추궁할지 모르는데, 그럴싸한 거짓말정돈 가뿐하게 지어낼 수 있다면 좀 나았을까 싶어서. 하지만 정작 명헌이 뭔갈 묻거나 따지고 드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조금 오래 쳐다봤다가 입을 다물었을 뿐이다.
우성은 그게 조금…서러웠다.
빡빡 깎은 머리 위로 나뭇잎 떼가 흔들리며 비 쏟아지는 소리를 냈다. 자연히 비 오던 어느 날을 떠올린 우성이 목 아래부터 차오르는 열기와 서러움을 아이스크림과 함께 꿀꺽 삼켰다.
“혹시 말이에요. 그런 거 진짜예요? 왜, 영화 보면 외계인들이 주인공들을 잡아다 실험하잖아요.”
밤중에 혼자 걷던 사람이 유에프오에 납치되고, 눈 떠보면 실험대 위에…그런 거요. 진짜 그런 거 해요? 은근한 재촉이 묻어나오는 질문에 이명헌은 아이스크림을 두 입쯤 깨물어 먹으며 뜸을 들였다. 조금 한심하다는 듯 봤던 것 같기도 한데, 중요하진 않고.
우성,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현실을 좀 살아 뿅. 아니, 진짜 그런 이야기 많다고요. 정신 차려보면 기억을 잃고 뭐 어디 난생처음 보는 곳에 버려져 있었다든가 하는 거. 그리고 외계인이 현실 운운하는 거 하나도 안 멋있거든요.
삐죽한 말투로 대꾸하면서도 대답이 궁금해 무릎이 닿도록 다가서자, 성가시다는 듯 희미하게 미간을 찡그린 이명헌이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 왼쪽 뺨 위로 조각난 햇볕이 어룽어룽했다.
“지구인을 대상으로 한 가혹한 실험행위는 없다 뿅.”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 이 당연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이 불행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썩 나쁘지 않으니까 다행으로 치자.
정우성은 제 악몽을 가볍게 부정하며 남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10년 전 정도에 금지됐다는 말은 철 지난 농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겠지, 농담. 설마. 제발.
지난 악몽이 현실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한 정우성은 스스로 신이 난 어린애처럼 웃고 있단 걸 인지하지 못한 채로 웃었다. 근 며칠간 거리를 두려 애쓴게 무색한 표정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 모양이었다. 이명헌은 그런 정우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이명헌은 조금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이상한 점을 꼽자면 평소에도 열 손가락을 거뜬히 넘어갈 수 있는 인간-아니, 외계인이라고 해야 하겠지만-이었지만 그날은 정말로 이상했다. 기계처럼 넘겨주던 공도, 늘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던 걸음도, 정해진 때가 아니면 은근히 헐렁하게 입는 교복도 어르신들이나 먹는 팥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선택도 달라진 점이 없었는데도.
그날의 이명헌은 정말로 이상했다. 무엇이 이상했느냐고 묻는다면 모든 것이 이상하다고 답하겠지만, 하나만 뽑아보라 종용한다면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라고 답하겠다. 까맣고 속을 알 수 없는 눈.
빛이라곤 한 번도 경계를 침범한 적이 없는 것 같은 그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는 그 반사광.
사람을 뭐 저렇게 봐. 파헤치듯이.
그렇게 생각한 정우성은 뒤늦게 웃음을 삼키고 시선을 돌렸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와, 오늘 날씨 진짜 좋다. 그쵸. 그런 영양가 없는 소리나 지껄여댔다.
파헤치지 않았으면 했다. 헤집어 놓지 않길 바랐다. 숨긴 적도 없는데 숨겨진 적은 있는 마음이 드러날까 싶어서였다. 아직 답 내리지 못한 답을 제멋대로 알아낼까 봐.
그래서 정우성은 한참을 벤치 아래 제 발끝이나 내려다봤다. 시시콜콜한 헛소리나 늘어놓던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명헌이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때까지. 그리고,
“계약 연장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같은 말들을 진지하게 늘어놓을 때까지.
그 말을 들은 정우성은 몇 번이나 준비한 말을 기계처럼 내뱉었다.
며칠이나 반복해서 생각했는지 쉼표 하나 틀릴 것도 없이 출력되었다. 누가 보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말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명헌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냥, 토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다. 이런 건 더 길어지기 전에, 더 깊어지기 전에 그만두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이명헌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터였다. 어차피 정우성은 열등생이었으니까.
“네, 생각해봤는데요. 역시 전 연애에 소질이 영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곧 미국에 가기도 하고, 미국에 가면 바쁘대요. 아, 그리고 미국에 가면 성의 유토피아가 펼쳐진다고, 아니 이게 아니지. 어쨌든 그렇대요. 현철이 형이 그랬어요. 제가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저는, 제 말은… 저 소질 없어요. 농구 말고는 전부 다요. 그러니까, 우리, 이거 이제”
그만 해요. 여기까지만 하고요.
정우성은 이명헌이 묻지도 않은 말을 주워들은 사람처럼 살을 붙여가며 변명했다. 묻지도 않았던 변명을 듣는 이명헌의 표정은 어땠더라. 그 해명도 당부도 아닌 말을 듣던 이명헌은 그저 그를 조금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그날의 이명헌이 가장 이상했던 점이었다. 사람을 파헤치듯 보던 눈이 제 혼란을 읽어냈을 때, 파고들지 않았다는 것. 그 익숙함과 낯섦 속에서도 서로 기댄 다리가, 닿는 시선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입술이 자꾸만 신경 쓰여서 정우성은 그만 비참해지고 말았다.
이명헌은 퍽 꼴사나운 모습의 정우성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서 이어진 건 하긴, 우성 연애에 소질은 없다. 농구는 그렇게 잘하면서. 따위의 핀잔이 전부였다. 예상했던 고문도 협박도 강요도 살해도 없었다. 악몽은 무슨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냥 그 짧은 의사의 표현이 둘 사이의 관계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때문에 정우성은 그게 다예요? 라고 다소 멍청하게 묻고 싶어졌다.
고작 짧은 거절과 수긍이 우리 관계의 정체성이냐고, 형도 똑같이 연애가 거스러미 같은 것이냐고, 굳이 찾아 헤매지 않고서야 발견하지 못하는 마음이 전부냐고.
손톱 근처의 거스러미를 만져대던 정우성은 어쩐지 그날의 이명헌에게 억울함을 느꼈다. 파헤치지 않길 바랐으면서, 숨긴 적도 없는데 숨겨진 적은 있는 마음이 드러나질 않기를, 아직 답 내리지 못한 답을 제멋대로 알아내지 못하길 바랐으면서. 애인 대행 서비스 같은 걸 하는 외계인이면 나 같은 인간이 많았겠지. 그러니까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고. 고작 거절 한 번 했다고 다 끝날 일.
정우성은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게, 정말 다예요? 묻지 못했던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그 눈. 한 번도 빛이 침범한 적 없어 보이는 그 반사광이 또 자신을 추궁하게 될까 불안해서였다. 그게 다느냐고 묻는 정우성에게 공격성이라곤 없는 것처럼 둥근 눈매와 둥근 입술을 하고, 둥글고 말랑한 혀로
너는 수많은 고객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였다. 물론 겁을 먹은 건 아니다. 정우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스스로 겁을 먹을 것은 제 미국행 비행기에 큰 문제가 생겨 계약을 제대로 따내지 못할 일이나 별안간 몸이라도 다쳐 더는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되는 일뿐이라고. 그러니 이 철 지난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은 상황이 계속되든 되지 않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계약은 무사히 연장되지 않았으니 문젯거리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다고, 아플 것도 다칠 것도 없다고. 바보스러워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악몽도, 무덤덤한 표정을 엿보며 저와 같은 기분이길 간절히 바라는 짓도 이제는 그만이라고.
사실 그날 공중전화 부스에서 끝냈어야 하는 일이었다. 아니면 방 문 앞에서, 적어도 침대에 앉아 계약서를 받아드는 그 순간이라도 휘슬을 불고 이명헌을 코트 밖으로 내보냈어야 했다.
너무 만져댄 탓일까. 정우성은 어느새 손톱 옆이 따끔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
정우성의 거스러미는 이명헌과의 계약이 하루가 남기 전까지 남아있었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우성은 거스러미를 힘을 줘 떼어내진 않았다. 시간이 왜 이렇게 느리지. 빨리 끝났으면 했던 마음은 어디로 도망쳤는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정우성은 이명헌을 생각할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곤 했으니까. 속을 게워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런 쪽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좁고 어두운 방 안에 갇힌 느낌이었고, 그 방 안에 서면 그저 누군가 자꾸만 저를 발견하라며 끝도 없이 자신을 추궁해대는 것에 가까웠다.
이명헌을 피하기 시작한 이후 정우성은 종종 행적도 용도도 알 수 없는 방 안에 서 있곤 했다. 설명이 없는 비난에 시달리는 시간은 낮도 밤도 구분이 없었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랬다. 잠이 부족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끊임없이 저를 발견하라고, 숨긴 적도 없지만 숨겨진 나를 꺼내라고, 굳이 찾아 헤매지 않고서야 발견하지 못하는 나를 내보내 달라고 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다 그 화장실의 이상한 낙서 탓이다.
아니, 미국 가기 전에 연애나 하라던 신현철과 김낙수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면 멍청하게 계약하겠다고 내뱉은 제 허술함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건 전부 이명헌 때문이다.
쉬는 시간마다 꼬박꼬박 찾아가던 방문도 그만둔 지 며칠이 되었다. 수많은 고객 중 한 사람 정도는 이래도 될 것 아닌가, 따위의 생각으로. 이 정체 모를 마음들도 내일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것만 같았다.
끝이다, 끝.
정우성은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잔뜩 큰 몸을 웅크렸다. 내일이면 끝날 거, 신경 쓰지 말자 되뇌며.
정우성은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면 조금 억울한 점이 많은 계약이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면서 한 거라곤 농구, 그것도 아니면 고작 손을 잡거나 어설픈 입맞춤을 나눴던 게 전부다. 보통의 연애란 게 이런 건가. 주변에는 데이트라든가, 선물 주고받기라든가, 절절한 연애편지 주고받기라든가. 많이들 하잖아. 미국에 가기 전에 연애라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한 계약인데도 농구나 실컷 했다. 그러니까 자신은 미국 가서도 실컷 할 농구를 미국 가기 전에도 실컷 한 얼간이가 된 셈이었다.
아니다. 그래도 이명헌과 하는 농구는 재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에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코트에 오르기 전부터 이리저리 주목받고, 남들은 자신만큼 할 수 없다는 성취감이 있던 농구보다 조금 더 즐거울 때도 있었다. 시시콜콜한 대화도, 일정한 박자의 발걸음도, 정해진 때가 아니면 은근히 헐렁하게 입는 교복도, 철 지난 아이스크림 취향까지도. 더 파고들자면 어설픈 데이트도 좋았다. 어린애 뽀뽀에 가까운 입맞춤도 그랬고, 처음 잡은 손도, 단단하고 거친 손가락도, 헐렁한 고백이나 잠든 모습을 보며 상상했던 나쁜 생각까지도 전부 좋은 쪽에 가까웠다.
그러니 제 마음 한편에 공간이 생긴 것도, 그 틈을 빼곡하게 채운 누군가의 아우성도 이유가 있다. 계약치고는 즐거워서. 그리고 다시 반복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서.
이별 앞에서 무슨 말을 준비해야 할까. 어떤 표정으로 작별해야 하나. 이명헌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별한 후에도 복도에서 스치거나, 하다못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명헌은 아득하게 먼 곳에서 왔고, 돌아가고 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터였다. 다시 만나게 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테고. 정우성은 상상도 못 할 어떤 장소와 어떤 때의 이명헌을 상상하자니 뭐라 말할 수 없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우성 있어 뿅?”
이런 생각을 하면 뭐하나. 혼자서 하는 삽질일 뿐인데. 자책하며 책상 위에 엎드린 정우성의 귓가에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런데 지금 자는 것 같은데요. 깨울까요? 라고 되물은 같은 반 친구의 소리는 중요한 게 아니다. 헷갈리려야 헷갈릴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보다 더 특징적인 말투였고. 이명헌이다. 제 요즘과 일상을 망친 이명헌. 정우성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화에 집중했다.
“아니야, 됐다. 신경 쓰지 마. 일어나면 이것만 전해줘 뿅.”
“네? 네. 그게 전부예요?”
“그래, 그게 전부야.”
일어나지 말자. 따라가지 말자. 정우성은 입술을 깨물어가며 버텼다. 지금 일어나서는 정말 그게 다느냐고, 난 형 때문에 요즘이 다 엉망이라고 소리칠까 두려워져서. 정우성은 천천히 속으로 지금까지 이명헌이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스무 개까지 세었다. 그 사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발걸음이 멀어졌으며, 빈자리를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대신해 채웠다. 추억의 통팥. 이름까지도 이상한 그 아이스크림 막대까지 세고 나서야 정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너무 열렬해 보이지는 않길 바라며 문 앞의 친구에게 다가갔다. 너무 일찍 일어난 건 아니겠지. 조금만 더 있다 일어날걸.
“아까 명헌이 형 왔었지?”
제 질문에 웬일로 말을 거냐는 시선이 오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 물음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이름도 모를 학우는 숨을 한 번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정우성은 어쩐지 그 틈이 견딜 수 없게 초조해졌다.
“명헌이 형?”
“그래, 방금 다녀간 3학년 농구부 주장 말이야.”
“지금 성구선배 말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방금 다녀간 형 말이야.”
“다녀가긴 누가 다녀가. 꿈꿨냐?”
반 친구는 퍽 이상한 농담을 한다는 듯 대꾸했다. 그 짧은 답에 정우성은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경우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이름 모를 저 친구의 기억력이 유감스럽도록 나쁘거나…
계약이 실효하였을 때는 제공자는 즉시 주변 환경 및 물품 일체를 계약 실행 이전 상태로 이용자에게 인도한다.
희미한 추궁 소리가, 날 발견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다시 커져만 갔다. 소란스럽다. 설마. 설마. 오늘은 아직 다 지나가지 않았는데. 신데렐라도 12시 정각 땡 맞췄는데, 이렇게 간다고. 벌써 끝나버렸다고.
정우성은 억울함이 턱 아래로 치미는 걸 느꼈다. 프로라고 했으면 약속된 시간을 지키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생각은 빠르게 제 머리를 채웠고 정우성은 다급하게 그 책상 위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야, 너 왜 이래? 어이가 없다는 듯한 음성이 따라붙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아까 명헌이 형이 와서 너한테 뭐 줬잖아. 다 봤어. 빨리 내놔, 장난치지 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야! 그거 비싼 거야!”
“그게 더 비싼 거야!”
“뭘 찾는 데 이래?”
“그게 내…”
속이 드러난 필통. 마구 접힌 교과서. 흐트러진 연필과 삼색 볼펜. 당혹스러움에 화가 난 친구의 얼굴. 웅성거리는 교실과 이쪽을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기분나쁜 확신.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정우성은 답했다. 그게 내 요즘이라고.
“얘 이상한 소리 하네. 평소에 말도 안 걸던 게.”
걸출한 헛소리라도 듣는다는 듯 대꾸하던 친구는 봐라, 봐. 라며 책상 서랍을 뒤적거리기까지 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져만 갔다. 정우성은 그 손이 책상 서랍의 깊은 곳까지 더듬을 때까지도 그 이상한 소리만 반복했다. 그게 내 요즘이라고. 그게 이명헌이 망친 내 요즘이라고. 네가 뭘 아느냐고.
“…이게 뭐지?”
별 이상한 소리는 여기에도 있었다.
그런 일 없었다며 호언장담하던 애는 웬 까만색 아대 하나를 꺼냈다. 운동도 안 하는데 이상하다. 혹시 네 거야? 하고 머쓱한 말과 함께 내미는 까만 아대에는 정우성의 이니셜이 수놓아져 있었다. WS, J. 나 정말 훔쳐 간 적 없어. 이게 왜 여기 있지? 변명에 살을 붙이기 시작하는 학우의 손에서 아대를 빼앗듯 잡아채고는 정우성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만이 빼곡했다. 야, 나 정말 훔친 거 아니다! 외치는 목소리는 흘려버렸다. 정우성은 그저 불안해졌다. 이게 계약 만료 기념품 같은 건 아니겠지.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여줄 수 있잖아. 프로는 약속을 지키는 거라며.
그러니까 그게 전부냐고. 내가 연애에 소질이 없다는 말이 다냐고. 거스러미 같은 건 형도 마찬가지였냐고. 따져 묻기 시작하자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정우성은 숨 막히게 달음박질을 쳤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냐?”
복도를 뛰어가며 마주친 김낙수가 묻자 정우성이 다급하게 답했다. 명헌이 형 못 봤어요? 형들이라면 알겠지 싶으면서 동시에 초조했다. 안다고 해줘요.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마요. 내 엉망이 된 요즘을, 뜯지 못한 거스러미를, 발견하지 못한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둬요. 정우성은 그렇게 애원하고 싶었다. 그게 김낙수가 되었든, 신현철이 되었든, 그것도 아니면 농구깨나 한다고 으스대던 시골 학교의 누군가가 되었든. 닥치는 대로 매달리고 싶었다.
“명헌이? 그게 누군데.”
짧은 대답이 내뱉어지자마자 지체도 없이 정우성은 달렸다. 4층 화장실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눈가가 시큰하고 갈비뼈 안쪽이 요란했다. 누군가에게 귀뺨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는데 등줄기는 또 서늘했고. 저거 또 이상한 거에 꽂혔네. 그런 뒷말은 이제 들리지도 않았다. 정우성은 계단 서너 개를 뛰어넘어가며 화장실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러브러브 데이트 서비스, 꿈만 같은 데이트, 사랑이 궁금한 사람을 위한 특가 이벤트 따위의 저렴한 설명이 가득했던 그 칸으로.
요란한 소리가 나도록 화장실의 문을 열어젖히며 연락처라도 남아있길 빌었지만, 벽은 그저 자질구레한 낙서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없었다. 그 유치한 광고문구가.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오물이 묻었는지도 모를 화장실 벽을 마구 더듬었다. 이런 게 어디 있어. 아직 오늘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계약 위반이라고, 계약을 위반하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조항들이 있었잖아. 계약서에 사인 했으면 다 아닌가. 계약을 어기는 건 없는 일이라고 설명도 하지 않았던가. 지저분한 벽을 바라보며 정우성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이만큼 분하고 억울하며, 애처로운 건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윽, 흐으, 어디갔어. 여기, 여기 있었는데.”
고작 짧은 거절과 수긍이 우리 관계의 정체성이냐고, 형도 똑같이 연애가 거스러미 같은 것이냐고, 굳이 찾아 헤매지 않고서야 발견하지 못하는 마음이 전부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거스러미 사이로 파고들어 왔다. 그 마음이 채우지 못한 틈은 비난과 추궁이 채웠다.
애써 찾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마음은 나라고. 나는 꽤 오래도록 예열되어 있었다고, 네 엉망이 된 요즘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뜯지 못한 거스러미는 이미 사라질 것이라고도 예언하면서. 원래 간절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한다던 말이 귓전에서 울렸다. 내가 모르는 것 같으면 알려줬어야죠 형. 이렇게 가버리는 게 아니라. 정우성은 뒷걸음질 쳤다. 등 뒤로 화장실 벽이 닿았다.
붙잡고 원망할 상대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이 더운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숨긴 적도 없는데 숨겨졌고, 불을 당긴 적도 없는데 불이 붙었으며, 발견하지 않았는데 발견된 이 예열 된 마음을 어디에 담아두어야 할까.
“아직 오늘이잖아요. 그 정도 시간은 줄 수 있는 거잖아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서러움이 치밀어 문고리를 부여잡고 섧게 울었다. 턱에 받힌 울음은 딸꾹질처럼 엉망진창으로 튀어나와 화장실 벽에 부딪히며 요란해졌다.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게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다. 매번 모두 이명헌의 탓이었던 어제와 오늘이 사실 자신의 탓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우성에게 연애란 손톱 근처의 거스러미 같았다. 그러니 이명헌과의 연애도 거스러미 같은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어제가 오늘을 배신했다. 모든 건 자신의 탓이다. 그러니 울음도 자신의 몫이다. 정우성은 가파르게 아파졌다. 우성? 이라고 부르는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왜 거기서 울고 있어.”
고개를 들어 올린 정우성은 거울에 비친 이명헌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이명헌은 당황스럽단 표정으로, 거울을 통해 정우성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묻어나왔다. 애정이, 적어도 그 비슷한 게 없으면 나오지 않을 표정과 마주하자 그토록 찾던 이를 찾았음에도 반가움보다 울음이 먼저 왈칵 터져 나왔다. 두 뺨이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묻고 싶은 말이, 그보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붙잡을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자 서글픔과 억울함과…사랑스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흐으, 하고 소리를 내면서 한 번에 뛰어간 것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이명헌을 끌어안은 것도 바로 그 파도 때문일 것이라고 정우성은 생각했다.
그는 누가 이명헌을 빼앗아 가기라도 한다는 듯 꽉 끌어안은 힘을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울음이 그치지 않아 절반은 숨소리였고, 나머지 절반은 애원으로 채워졌다.
“형, 어디 갔었어요. 내가 한 번 모른 척했다고 이대로 사라지려고 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끝내는 게 어딨어요. 우리 그래도 연애한 거잖아요.”
“…그래.”
“그럼, 나 형한테 특별한 사람인 거잖아요. 에이스라면서요.”
“… ….”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안 되는 거라고요.”
울음 반 목소리 반. 서럽게 울며 제 넘치는 마음을 토해내는 정우성을 제지하지 않은 채 이명헌은 오래도록 서 있었다. 울음소리가 조금 가시자 천천히 등을 토닥여주었고, 정우성은 그 감각이 버겁게 좋아 품 안의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제 몸속에 이명헌을 넣고 싶다는 양. 이명헌은 느리고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계약 연장할 생각 없었던 거 아니었어 뿅?”
“할 거예요!”
고집스러운 외침이 물음의 꼬리를 따라 들어왔다. 이명헌은 하고 싶어요, 할 거예요. 저 형이랑 연애 더 하고 싶어요. 미국 가서도 할 거예요. 계속, 그렇게 지낼 거예요. 그렇게 쏟아지는 말을 들으며 그저 등을 천천히, 아주 느리게 두드릴 뿐이었다. 그저 말을 할수록 마음이 깊어지기라도 하는 듯 끌어안은 양팔에 힘이 들어갔다.
“형 실적 제가 다 올려줄게요. 그러니까 가지 마요.”
“… ….”
“우리 같이 우승하기로 했잖아요.”
정우성은 이명헌의 대답을 기다리며 어린애처럼 울었다. 그 침묵 속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답이 있기를 가쁘게 바라며. 꾹 닫힌 이명헌의 입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리고 이 눈물만 다 그치면 따져 물을 생각까지 들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고. 사실 형은 나랑 있는 게 재미가 없냐고. 안 좋았냐고. 나는 농구보다 가끔 재밌을 때가 있었는데.
아니, 가끔 더 조금 더 자주. 자주보다 어쩌면 매번. 손을 맞잡을 때마다 우리가 같은 생각인 것만 같았다고. 내가 아니라면 농구라도 베어 문 것 같았다고. 그럼 나는 농구를 잘하니까, 그런 형을 조금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굳이 찾아 헤매지 않아도, 숨겨둔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알게 됐다고. 그러니까 이 눈물만 그치면 말이다.
“책임질 수 있어 뿅?”
이명헌의 입에서 나온 건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의아함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이명헌이 정우성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정우성은 천천히 몸을 물렸다. 엉망이 된 눈가나 얼굴은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두껍고 거친 엄지손가락이 쓰라린 눈가를 부드럽게 훔쳤다. 농구공을 자주 잡는 사람의 손. 밤마다 몰래 잡았던 그 손에 정신이 팔려 정우성은 조금 멍청한 반응을 해야 했다. 멋 하나도 없게. 하기야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정우성은 이명헌 앞에서 늘 멋 없기만 했으니까. 자꾸 서툴러지고, 유치해졌다.
모든 건 제 탓이었으나, 이것만큼은 이명헌의 탓이었다. 형이 나를 이렇게 만든다. 특별하게.
“내 실적.”
“…네?”
“우성이 올려준다면서. 말해두는데, 우리 회사 실적 1위 빡세다 뿅.”
“… ….”
“네가 책임지고 힘내야 한다고.”
“그럼, 그 말은….”
에이스잖아. 그만 울어 뿅. 이명헌이 그렇게 말 한 다음에야 제가 지금껏 울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훌쩍, 소리를 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말한 에이스는 코트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코트 밖에서도 정우성은 이명헌의 에이스라고.
그 입으로 확언받았단 사실에 바보처럼 눈을 까막였다. 흐릿하게 찰랑이던 시야가 맑아지며 턱 아래로 후두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형이 저 먼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품 안에 머물러 주는 게 기뻤고, 조금의 틈새 없이 와락 끌어안고 싶다가도 반들한 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에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손발이 저릿했고 갈비뼈 안쪽이 뻐근해지도록 울렸다. 이명헌은 마주 안고 있던 손으로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우성은 여전히 앞으로 쏠려있던 상체를 천천히 뒤로 물렸다. 뒤늦게 손아귀가 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야 깨달은바, 교실에서 받자마자 온 교사를 뛰어다니느라 집어넣을 생각조차 못 한 검은색 손목아대가 손아귀 안에서 구겨져 있었다. 작별선물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는데 이명헌이 고심해서 골랐을 거라 생각하니 애틋한 마음마저 들었다.
특별하니까. 특별해서, 이명헌도 이별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였나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코트 위에서 언제고 떠올릴 수 있도록. 그렇다고 해도 모른척 한 번 했다고 이것만 두고 쏠랑 나가버린 건 명헌의 잘못이었다. 보통 이런 건 직접 전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보통, 상식이란 단어들과 영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우주 저편에서 왔노라고 말했을 때부터 그랬다. 남들과 똑같은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어서.
아, 진짜 이명헌. 눈가로 눈물이 또 울컥 솟았다. 뻣뻣한 팔을 뻗어 물기로 흠뻑 젖은 명헌의 양손에 아대를 쥐여줬다. 선물을 돌려받는 거로 생각했는지 그 얼굴 위로 얼핏 상심이 스쳐 지나갔다.
“형이 채워줘요.”
까맣고 반들반들 빛나는 눈동자가 아대와 내민 오른 팔뚝을 번갈아 봤다. 성가시다고 생각할까 싶어 등줄기가 빳빳해졌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시위라도 하듯 남아있던 물기가 뺨을 타고 흘렀다. 나 울잖아. 나 형 때문에 우는데, 이 정도도 안 해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눈물이었다. 고집 세고 제 주장 굽히는 법 없는 이명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봐주게 만드는 건 언제나 우성의 눈물이었고, 고집이었다.
이명헌은 성가셔하는 기색 없이 아대를 받아, 손목을 쥐고 부드럽게 그 위로 끌어올렸다. 손목을 지나 팔꿈치 바로 아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이었던 죄어오는 정도도 크기도 딱 맞았다. 답 내리지 못하고 있던 답처럼 정확하게. 우성이 속삭였다. 마음에 들어요. 그저 그런 거 아니고, 완전 마음에 든다고요.
“형은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어요. 그냥 그렇게 끝내도 괜찮은 것처럼 말하니까.”
조금 전까지 숨이 꼴딱 넘어가게 운 것도 정우성이고, 서러움과 고백을 뱉어낸 것도 정우성인데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이명헌이 입을 열자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언가를 오래 삼키고 있었던 것 마냥. 평소보다 눈 밑이 불그레하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다. 이별을 앞에 두고 침울해져 있었던 사람처럼. 이전부터 느낀거지만 명헌에게는 대책없이 착각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뿅.”
이명헌은 훌륭한 포인트가드답게 정우성의 요구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연애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는 에이스와 달리.
“내가 여기 온 건 전부 네가 궁금해서였는데.”
제가 전화를 걸어놓고 안절부절못했을 때부터, 이상한 곳일까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꼬박 죄송하다 예의 바른 말을 붙였을 때부터, 책상 위에 있던 편지를 중요한 것처럼 만지작거릴 때부터 그랬다고. 경계심은 많으면서 사인하란다고 바보처럼 냉큼 하기나 하고. 공을 주면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는 기특한 표정을 지어서.
느리고 신중하게, 다정하게 이어지는 말을 듣는 내내 우성은 목 밑에서 울컥대는 울음을 애써 눌렀다. 정우성은 열등생이었으니까.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었으니까, 우느라 말을 놓치거나 마음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러니까, 형한테도 있었던 거죠. 숨긴 적도 없는데 숨겨진 적은 있는 마음이, 불을 당긴 적도 없는데 불이 붙은 게. 돌처럼 단단하고 무던한 얼굴을 하고 꽁꽁 숨기기나 하고. 정우성이 명헌의 손바닥위로 뺨을 기울였다. 열이 올라 따끈따끈하고 거친 표면이 부드럽게 감싸왔다. 우성은 그것을 사랑으로 읽었다.
울음이 그치고 희미하게 훌쩍이는 소리만 이어지고 있으면, 이명헌이 한 손으로 요령 좋게 제 품을 더듬어 뭔갈 꺼내 들었다. 우성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에이포용지 크기의 네 번 접힌 종이. 지난 악몽에서처럼 깨알 같은 글씨로 살벌한 내용이 적혀있거나 터무니없는 금액이 나와 있진 않았다. 형에게 물어보니 그건 우주상거래법위반이라고 했다. 처음 상담 전화 했을 때도 그랬지만 우성은 우리 회사를 무슨 범죄집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뿅. 그치만 정말 수상쩍은 이름이잖아요. 하필 화장실 벽에 적혀있었던 것도 그렇고. 우주상거래법이니뭐니, 그런 거 알게 뭐냐고요…. 퉁퉁 부은 눈으로 계약서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명헌이 종이 하단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서명하고 나면 계약연장 완료 뿅. 아직 불안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우성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기간은요?”
“정식 계약기준은 한 달.”
물막이 어려 축축한 눈과 파헤치는 것 같은 눈이 마주쳤다.
“우리별 기준으로. 지구인 평균수명으로는 택도 없는 기간 뿅. 중간 해약이 쉽지 않으니 잘 생각하고 사인해.”
중간 해약이라니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이명헌을 닮아 모나고 딱딱한 글자들, 이 종이 한 장으로 제 미래가 아주 많이 바뀔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정우성은 마음먹은 것에 있어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가 아니었다.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우성의 삶이었다. 몇억 광년쯤의 시간 따위로는 막을 수 없었다. 정우성의 이름이 먼저 적히고, 그 아래로 이명헌의 이름이 뒤따라 적혔다. 구질구질한 화장실 백열등 아래에서 뺨 아래로 희미한 기쁨의 기운이 감돌았다.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적힌 그 순간,
비현실이 현실로 바뀌는 소리가 들렸다.
9조
본 계약은 연인관계를 공동으로 운영함에 있어 상호 합의하에 신의와 성실에 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계약을 증명하기 위해 각각 1부씩 보관하기로 한다.
20xx년 xx월 xx일
정우성. 이명헌
본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외계인계약연애물이 어쩌다 이렇게 길어졌는지 모르겠네요.
유치뽕짝 B급 로코감성으로 쓰고싶었는데 잘 됐을까요?
사실 교류회를 준비하며 썼던 플롯은 이게 아니라 괴담판타지풍의 연작이었는데,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짧게 쓸 걸 급하게 정하다보니 이야기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기쁠거에요.
이후로는 짧은 외전이 올라옵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