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망량(魑魅魍魎)

이매망량 (魑魅魍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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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조선 한양

반정으로 인한 혼란이 가라앉기도 전, 도성에 출몰한 도깨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다.

그저 쉬쉬하며 허무맹랑한 소문으로만 치부되던 것이 당사자의 입을 건너고 건너 온 마을을 뛰어넘고, 그것이 팔도가 되었을 때쯤. 한 번 발걸음 하기도 어렵다는 도성은 어느덧 인생을 뒤바꾸어 줄 금 동아줄로 변모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대가가 제 목숨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는 듯, 마치 여우 요괴에게 홀린 것 처럼 소문의 진상 지인 여청산(侶請山)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저잣거리 소문에 불과한 것이 조정에 까지 흘러 들어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 전하, 삿된 것이 도성에까지 들어와 백성들을 현혹하고 있다 하옵니다.

- 어허, 대제학(大提學)께서 어찌 허황된 저잣거리 소문에 불과한 것을 조정에까지 가지고 온단 말입니까.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다는 듯 기함하자, 대제학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심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 그저 허황된 소문에 그쳤다면 전하께 이리 고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 그게 무슨,

-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삿된 것이 벌건 대낮에, 그것도 저잣거리 한복판에 나타나 활개를 치고 사라졌습니다. 이제껏 없던 일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 벌어지고 말았으니, 백성들은 이 모든 게 조정의 부덕함 때문이라 입에 올리고 있다 합니다.

- 입에 올리기 참담한 말씀입니다!

- 그러니 전하, 진실을 밝히시어 불온한 잔당들이 허황된 소문에 숨지 못하게 해주시옵서서. 이대로 둔다면 나라를 바로 세우시려던 전하의 성심이 곡해 될까, 소신 두렵나이다.

-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서서.

대제학의 말을 따라 상참(常參)에 참석한 관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자 일월 오봉도를 뒤로 하고 어좌에 앉은 수척한 모습의 임금이 침음을 삼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병조판서(兵曹判書)에게 물었다.

- 병조판서는 어찌 생각하는 가.

병조 판서 김의윤(金義侖)이 임금의 부름에 담담히 입을 열었다.

- 귀양에 처했던 이(李)가의 아들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사료되옵니다.

김의윤의 말에 사정전(思政殿)이 소란스러워졌다.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소란에 한숨을 내쉰 임금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더니 남은 한 손으로는 서안을 내리쳤다.

- 다들 조용히 하라!

임금의 일갈에 조용해진 사정전에는 침묵만이 맴돌았고 그제야 임금은 김의윤을 향해 다시금 물었다.

- 그자는 죄인이 아닌가. 죄가 인정되어 벌을 받고 있는 자에게 어찌, 조정의 일을 맡기려 하는가?

-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일에 그자를 쓰셔야 합니다.

한 쪽 눈썹을 들어 올린 임금은 더 해보라는 듯, 김의윤이 서 있는 방향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 삿된 것을 잡기 위해 이미 군관들을 보냈으나 소식이 끊겼다지요. 지금은 비록 역도가 되었다 하나, 전 도총관(都摠管)의 가문은 대대로 훌륭한 무관들을 배출해 냈으니 그의 아들도 재능이 없다 말 할 순 없을 것입니다.

- 그러니 그 아들을 보내 삿된 것을 잡자는 말이오? 반정의 혼란스러움이 아직 짙게 깔려 있음인데, 경은 역도를 쓰자 하는군. 짐은 더 이상의 혼란은 바라지 않네.

- 허나, 군관들이 사라진 이후 처자들을 보내도 봤지만 죄다 소용이 없지 않았사옵니까. 회유가 안된다면 일찍이 뿌리를 뽑아야, 나중에 닥칠 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김의윤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임금이 입을 열었다.

- 흐음... 좋네. 그대의 말대로 이(李)가의 아들을 보내도록 하지. 여봐라! 유배지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상참은 여기까지 하겠네.

- 예. 전하.

임금의 명이 떨어지자 사정전에 모여 있던 관료들이 임금께 예를 다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김의윤이 임금께 예를 다하고 나가려는 찰나 김의윤만 들릴,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 도총관이라 하면 한때, 그대의 벗이었던 자가 아닌가. 아주 막역했다지? 벗의 아들에게 참으로 무도하도다.

숙였던 허리를 들어 올린 김의윤이 임금을 바라보았으나, 임금은 김의윤에게 시선 한 자락 주지 않은 채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임금에게서 시선을 돌린 김의윤은 아주 작은 소리를 내어 답하곤 그대로 사정전을 빠져나갔다.

- 벗, 이었지요. 지금은 그저 역도일 뿐입니다. 

모든 관료가 벗어나 고요해진 사정전 안, 홀로 남은 임금이 중얼거렸다.

- 상선, 그대가 보기에 어떠한가. 마지막까지 조카님의 곁을 지켰던 도총관이 역도인가, 아니면 저자가 역도인 것 같은가.

- 어, 어찌 그런 당연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전하께선 마땅히 하셔야 할 일을 하셨으니...

- 마땅한 일이라... 내가 죽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조카를 죽인 것이 마땅한 일이라 평가 되는 일은 없을 걸세.

- 전하..! 

상선(尙膳)이 엎드리며 비탄하자, 임금이 손을 휘저으며 일어났다.

- 지겨우니 그만두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오늘따라 피곤하니 남은 집무는 강녕전에서 보도록 하지.

임금의 말에 서둘러 일어선 상선이 임금의 뒤를 따라 사정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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