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곱게 쓰여진 편지

늦었지만 마음을 담아 당신께 보냅니다.

글자로만 표현 될 마음이지만 당신이라면 알아줄 거라 믿고 오랜 기간 보여준 당신의 마음에 이렇게 용기를 내 편지를 부쳐봅니다.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는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하나도 빠짐 없이 읽었고, 지금은 제 서랍에 당신과 내가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이나 차곡히 쌓여 있지요.

처음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쓰여진 당신의 이름을 손끝으로 얼마나 오래 쓸었는지는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당신이 그리운 만큼 쓸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는 편지지보다 편지지 겉면이 더욱 바래져 있습니다.

가끔 바래진 봉투를 바라보자면 내 마음이 드러난 것만 같아 쑥스러워 곧장 서랍으로 숨기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신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맞닿아 있는 것 같아 다시금 꺼내 바라보곤 합니다.

그때마다 붉어지는 내 얼굴을 보면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지금 이리 편지를 쓰는 도중에도 웃음이 나와, 나는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당신을 사랑하겠구나 하는

조금은 제멋대로인 생각을 하며 당신을 향한 마음의 무게에 조금 더 기대보곤 합니다.

전에는 당신이 그리워지면 당신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거냐며 투정을 부렸던 것도 같은데

지금 보니 나는 편지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당신에게서 나를 앗아갔더군요.

그런 내가 밉지도 않은 것인지 당신은 묵묵히 편지를 보내며 나를 기다려 주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에서야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당신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내가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또 너무 답답하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지만 당신은 언제나 이런 나의 고민을 속상해하셨기에

이것만은 접어두겠습니다.

오랜만에 보내는 편지에 당신을 걱정하게 만들만한 일을 적고 싶지 않으니까요.

매번 용기가 없어 편지를 써도 당신에게 보내지 못하는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도착한 편지에는 내가 궁금했을 법한 이야기들과

나를 궁금해하는 당신의 아주 작은 궁금증이 적혀 있곤 했는데 당시에 일어났었던 일들을 당신과 나누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모든 순간을 후회할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피하기만 했었던 것인지..

조금은 과거의 내가 미워져요.

과거의 나는 멀리 있는 몸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눈 감정이, 마음이 그 빛을 잃을까 염려되어 전전긍긍 했었지만

이렇게 당신의 마음이 끝없이 내게로 흘러 들어와 이제는 우리의 추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내 전부라고 생각 될 만큼 거대했던 불안의 감정이 이리 쉽게 녹아 없어 질 것을 누가 알았을까요.

이제서야 말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빛나게 하는 모든 것이 밉지 않습니다.

덕분에 나는 당신과 몸이 멀어졌으나 마음은 더 가까워졌고, 당신의 편지로 인해 내 자신과도 더욱 가까워졌으니까요.

당신이 없는 기다림이라 했던 내 말은 전부다 틀렸음을, 당신이라면 내가 그 무엇으로 변하더라도 나를 사랑할 것을 알게 되어

오히려 햇빛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당신도 그러한가요, 내가 그늘이 아닌 햇빛처럼 따스하고 안온한가요.

부디 여전히 당신에게 나는 빛 나는 존재이길, 갈망하는 존재이길 바라며

또 편지하겠습니다.

이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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