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보내지 않을 편지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이 편지는 당연히 보내지 않을 것이지만 우습게도 당신에게 닿길 바랍니다.

눈이 내리는 날

당신을 처음 만난 날도 눈이 왔었지요.

우리는 그 날 처음만나 좋아하는 것을 함께 했는데 왜 지금은 없으신가요

당신의 재능과 노력과 빛남을 사랑했지만 그것이 당신을 내게서 앗아갈줄은 몰랐는데

당신을 그것들에게 빼앗기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밉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놓지 못하는 건 그 모든게 있어야만 온전한 당신이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조금 더 늦게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신을 아예 만나지 못한다는 건 내게 크나큰 벌과 같아서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게

떨어져 있더라도 좀 더 적게 떨어져 있을 수 있길 바랄 뿐인데 아주 어려운 일이겠죠.

멀리 있는 몸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우리가 나눈 감정이, 마음이 그 빛을 잃을까 염려되어 불안하고 또 무섭지만 그것마저 사랑할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지.

항상 내게 애정표현이 적다며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며 내게 투정 부리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나는 이제 어딜 가야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표현하면 익숙해질까 익숙해지면 퇴색될까 전전긍긍하던 내 마음을 어찌 그리도 알아주지 않았는지 나는 왜 그것들이 두려워 당신에게 살가운 말 한 마디를 하지 못하고 그 모든 감정들을 깊이 잠들게만 했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사계절이 너무나 선명해서, 당신이 없을 사계절이 회색빛이라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당신에게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다시 색을 불어 넣어주고 내게 숨을 불어 넣어줘요.

당신이 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내가 나로 존재하길 바라는 당신은 얼마나 제멋대로에 잔인한 사람인지, 그런 사람인 것을 알고도 사랑했지만 아주 가끔은 내게만 그러는 것이 조금은 밉게 느껴지다가도 내가 바라던 일이기에 묵묵히 하던대로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에 숨이 멎기 전에 당신이 와주면 좋을텐데...

우리의 사랑이 언제나 이와 같이 불안하고 애틋하며 간절하길 바라며

이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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