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태웅] Ppo-ppo
쵹♥
뽀뽀하는 대만태웅
서태웅은 연애를 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 사랑을 나누는 방법도 안다. 입과 입을 맞댄다. 서태웅 주위의 커플들은 모두 그랬다. 엄마와 아빠도, 누나와 누나의 애인도 자주 그랬다. 그런데 왜...
"서태웅아. 끝나고 라멘?"
정대만은 제 애인의 속도 모르고 서태웅의 심란한(조금은 심통난) 마음에 부채질했다.
"어어, 씁. 나 이제 좀 알거든. 그거 뭔가 마음에 안 들 때 표정인데? 라멘 싫냐?"
"......"
"아, 원온원?"
서태웅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항력이었다. 고민은 고민이고, 원온원은 원온원이다. 일단 원온원 하고, 그리고 라멘도 먹고... 그러고 물어봐야지.
"어이구, 좋아 죽겠냐? 하여간 농구라면 다 좋지 응?"
왜 우리는 뽀뽀 안 하냐고.
끝내주는 원온원을 했다. 정대만과 서태웅 둘 다 지쳐서 너덜거릴 때까지 신나게도 했다. 라멘도 먹었다. 맛있었다. 정대만은 신기하게도 동네의 온갖 맛집을 알고 있었다. 항상 다른 곳에 데려가는데 항상 맛있다. 어둑하던 하늘이 새까매지고서야 집에 돌아왔다. 소파에 늘어져 있는 누나의 얼굴을 보니 이제야 생각났다. 오늘도 결국 뽀뽀를 못했다.
"누나."
서태웅이 누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심란해진 마음을 밤새 묵힌 채 정대만을 마주하기는 싫었다. 이게 며칠 째야.
"뽀뽀는 언제 해?"
서태웅의 누나가 눈은 동그랗게 뜨더니 곧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심통난 막내를 달래며, 막내의 첫 연애 상담이 시작되었다.
누나의 조언은 서태웅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베개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바로 잠드는 서태웅이, 가물가물한 정신으로나마 정대만 생각에 5분 가량 뒤척이기까지했다. 서태웅은 어제의 기억을 복기했다.
'손은 잡았어?'
잡았다. 수도 없이 잡았다. 요즘은 전보다 더 자주 잡는다. 원온원을 자주 하다 보니, 잡을 일이 자주 생긴다.
'그럼, 안는 거는? 포옹 말이야.'
그것도 했다. 두 번이나. 처음엔 정대만이 서태웅 위로 넘어져서, 그다음엔 서태웅이 정대만 위로 넘어져서.
'데이트는 자주 해? 같이 밥 먹는다든가.'
그건 어제도 했다. 손 잡는 거 만큼이나 많이 했다.
'뭐야, 그럼 이제 하면 되겠네. 그렇다고 멋대로 하진 말고. 그 애가 놀라거나 싫을 수 있으니까. 물어보고 하는 거야. 알았지?'
그럼 왜 정대만은 제게 물어보지 않는 거지. 뽀뽀해도 되냐고. 간밤의 심란한 마음은 아침을 맞아 명료해졌다. 서태웅은 결심했다. 오늘, 정대만과 뽀뽀해야겠다.
-야 미친 정대만 서태웅이랑 맞짱뜬대!
-나 옆 반 갔다가 봤음. 서태웅이 3학년 교실까지 찾아와서 옥상으로 불러내더라. 표정 개 살벌하던데.
-와 씨, 암만 그래도 1학년이? 둘 다 농구부 아니냐? 거기는 선배 후배 그런 거 없나?
"그렇다는데, 치수야."
점심시간 내도록 소란스럽더니, 그 원인이 농구부에 있었나보다. 권준호가 채치수의 굳은 얼굴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 정대만이 어련히 잘못했겠지."
"하하. 그런가."
송태섭 말로는 요즘 둘이서 자주 원온원한다던데. 싸우는 게 아니라... 음. 권준호는 생각을 멈췄다. 깊게 알아서 도움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큰일은 아닐 거야."
"그래. 이제 와서 또 사고 쳐서 농구 못하면 안되니까. 정대만도 생각이란 게 있으면 원만히 대화로 해결을... 정대만이 생각이란 게...."
"뭔 일 있어도 태섭이가 잘 할 거니까. 걱정 그만하고-"
"하. 걱정은 무슨. 됐다. 권준호, 너희 반 가라. 그놈들 걱정할 여유 있으면 그 시간에 단어라도 한 자 더 외우는 게 낫지. 허 참."
권준호가 웃음을 삼키며 정이 많은 옛 주장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치수야 책 거꾸로 들었어."
이런 게 행복이라는 걸까.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라는 게, 진짜 말 그대로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구나. 마음이 두둥실 떠다니며 구름 사이를 헤집고 해에 닿을 듯 높아만 간다. 정대만은 근래, 인생을 1000퍼센트 만끽하며 살고 있다. 태어나길 잘했다. 삶이 너무나도 즐거워서 감정이 주체가 안된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복도에 뛰쳐나가 소리치고 싶다.
-서태웅이! 내 애인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저는 몰라도, 서태웅을 힘들게 할 수는 없다. 정대만은 아직 어린 제 애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서태웅을 처음 알게 된 게 봄이었는데, 이제 벌써 겨울이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서태웅을 봐오며 그의 나이를 의식해본 기억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서야 새삼 깨달아버렸다. 서태웅이, 우리 예쁘고 얌전하고 가끔 앙칼진데 그거마저 귀여운 서태웅이, 저 덜자란 시뻘건 원숭이랑 동갑이었던 것이다. 질리지도 않고 매일같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중학생, 아니 솔직히 초등학생들 같았다. 어리다. 서태웅이 어리게 느껴지는 건 단순히 나이 때문만도 아니다. 그 녀석은 그 얼굴로 연애 한 번 안 해봤을 거였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여자엔 관심도 없을 녀석이다. 오로지 농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은, 그런 놈이니까.
그런 서태웅을 좋아하게 되다니. 정대만은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절망했다. 정대만은 자신을 꽤 후하게 평가하는 편이었다.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어려서부터 잘생겼다는 말도 꽤 듣고 자랐다. 농구는 말해 뭐해, 요즘엔 더 물이 올랐다. 던지는 족족 들어가 버린다. 나 정도면 괜찮지. 씁, 아니. 꽤 좋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여자애들은 다 꼬실 수 있을 그럴 스펙 아닌가.
하지만 불행히도, 서태웅은 웬만한 여자애들이 아니었다. 정대만이 어필할 수 있는 장점들은 서태웅도 죄다 갖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조금 더 빼어나기까지했다. 서태웅은 키도... 크고. 몸은, 아니 몸은 비슷하지 않나? 얼굴은. 젠장, 살면서 그 녀석보다 더 예쁜 인간을 본 적이 없다. 농구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대만이야 안 선생님을 보고 왔다지만, 그 녀석은 대체 그 실력으로 왜 북산에 들어왔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대만이 제 마음을 자각한 그날, 온종일 사연 있는 사람처럼 핼쑥한 표정으로 다녔던 건 서태웅이 남자이기 때문이라던가, 서태웅이 농구부 후배라서가 아니었다. 굳이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정대만은 남자에게 고백받은 적이 꽤 되었다. 중학생 때는 농구부 후배에게도. 그러니 그런 사소한 건 나중에 고민해도 된다. 제일 중요한 건, 여태 받아온 고백들과 다시 농구를 하며 되살아난 자존감으로 하늘을 찌르듯 높아져 있던 자신감이 서태웅 앞에서 푹 꺾여버린 것이었다. 밑천이 다 드러났다. 도저히, 그 잘난 녀석에게 견주어 어필할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서태웅을 어떻게 꼬시냐.
"네?"
송태섭이 한쪽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되물었다.
"갑자기 뭔 소리예요?"
"어엉?"
좀비같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내가 방금... 저걸 육성으로 말했던가.
"왜, 오늘 또 고백 받았대요? 그래서 백호가 저렇게 날뛰나."
"어어...."
"걔는 꼬신다고 꼬셔지는 애가 아니잖아요. 애초에 태웅이를 꼬실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하긴 해요?"
"그, 그렇지?"
정대만의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 정대만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서태웅은 원래 애인으로 삼기에 어려운 사람이었다. 연애에 있어서는 난이도가 산왕급. 하지만 정대만이 누구인가.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어차피 졸업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일단 해보자. 그래도... 나 정도면, 얼굴도 괜찮고, 농구도 잘하니까. 바닥 치던 자신감이 다시금 솟아났다.
우선 서태웅이 좋아하는 거. 떠오르는 건 농구밖에 없었다. 서태웅은 주에 두어번쯤은 꼬박꼬박 정대만에게 원온원 요청을 해왔다. 농구공을 손에 꼭 쥐고 슬며시 다가와서는 '선배. 원온원.' 하고 옹알거리는 게 참 귀여웠지. 정대만은 반대로 제가 먼저 서태웅에게 다가갔다.
"큼, 흠. 서태웅. 오늘 끝나고 원온원 할까?"
새초롬한 두 눈이 땡그랗게 커지고, 얕게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 붉은 혀가 보인다. 잠시 그렇게 굳어있더니, 곧 머리를 살랑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하네. 엄청.'
쉽다. 역시 농구면 되는구나. 저녁은 뭐 먹이지. 늘 먹던 거 말고, 맛있는 걸로. 영걸이가 맛집 잘 알던데. 물어볼까.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라도 늘려가다 보면 기회가 생기겠지. 정대만은 신중히 계획을 세웠다. 우선 더 친해지자. 천천히, 차근차근...
그리고 한 달도 채 안 되어 그의 계획이 산산이 무너졌다. 고백해버렸다. 그럴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입이 절로 움직였다. 그날따라 서태웅이 유달리 예뻤다. 저지르고서야 겁이 나, 정대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서태웅은 입을 열지 않았고, 정대만은 눈을 뜨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실제로는 길어야 1분이었겠지만, 정대만에게는 몇시간과도 같이 길게 느껴지는 침묵의 시간 끝에 정대만이 눈을 떴다. 서태웅이 정대만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표정으로 작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정대만과 눈을 마주했다.
하다못해 놀란듯해 보이지도 않는 그 표정에, 정대만의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와 진짜 망했다. 정대만이 자책을 시작함과 동시에 서태웅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를 향했다. 내리 깐 눈꺼풀이 천천히 깜박일 때마다 기다란 속눈썹이 나풀거렸다.
"네."
작은 목소리였지만, 또렷이 들렸다. 둘 만이 남아있는 체육관이다. 잘못들을 수 없었다.
"어... 뭐, 뭐라고?"
"... 좋아요."
이제야 서태웅의 얼굴에서 평소와 다른 점이 보인다. 양 뺨이 옅은 분홍빛으로 예쁘게 달아올라 있다. 땀에 젖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귀 끝은 타오르듯 발갛다. 정대만의 얼굴도 덩달아 빨개졌다.
"지, 진짜?"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적과도 같은 현실을 믿지 못한 정대만이 몇번이고 되물어도, 서태웅은 짜증도 내지 않고 그 작은 머리통을 계속 끄덕여줬다.
교실에 앉아 그날을 생각하자니, 그 꿈같던 날이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겨우 며칠 전의 일이다. 서태웅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과 비교해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똑같이 농구하고, 똑같이 저녁을 먹었다. 정대만은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서태웅과 연인다운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서태웅은 아직 어리다. 연애도 처음 해보는 어린 애다. 놀라지 않게, 조금씩 알려줘야 했다. 마침 내일이 드디어 서태웅과 사귀고 처음 맞는 주말이다. 데이트라도 해야지. 잠이 많으니까 점심에 만나자고 할까.
"대만아. 점심 먹으러 안 가냐."
어느새 오전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서태웅 생각만 하고 있어도 하루가 이렇게 금방 지나간다.
"대만아, 점심-"
"어엉..."
정대만이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심시간만 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던 정대만이었으나 갓 사귄 애인 생각에 빠져 점심 따위 뒷순위로 밀려나 버렸다. 정대만이 뒷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찰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소란스럽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3학년 교실의 뒷문을 보란 듯이 열어젖힌 건 농구부의 그 유명한 1학년, 서태웅이었다.
"선배."
서태웅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다. 차가워 보이는 얼굴도 표정 없이 착 가라앉아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실컷 자다 일어났나 보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맹한 저 표정 하며, 책상에 눌려 발개진 한쪽 볼, 뻗친 머리카락. 그 모든 게 귀여워서 애써 웃음만 감추며 갑작스레 등장한 애인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우리-"
서태웅이 하던 말을 멈추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저들끼리 소곤대던 학생들이 서태웅의 시선에 조용해진다.
"왜? 누구 찾냐?"
"가요."
서태웅이 정대만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옥상."
후배의 손에 이끌려 정대만이 저 멀리 사라졌다. 조용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야, 방금 1학년 서태웅이 정대만 옥상으로 끌고 갔어!
수험생 신분에 지친 3학년 학생들은 새로운 자극에 흥분하여 이 재미난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러 뛰쳐나갔다.
정대만도 마냥 서태웅 손에 얌전히 끌려가지는 않았다.
"근데 서태웅아, 옥상에는 왜?"
얌전히 끌려가기는 했는데, 이유는 물어볼 정도의 자아는 남아있었다.
"할 게... 할 말이 있어요."
"어어. 그래."
할 말이 있구나. 굳이 옥상까지 가서, 둘이서 할 말이...
머리가 하얘졌다. 찰나의 시간 동안 정대만은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암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려 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정대만은 곧 제게 다가올 미래를 확신했다. 차일 것이다. 서태웅에게.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모든 게 너무 쉬웠다. 얼떨결에 해버린 고백이 받아들여졌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떡하지. 매달려 봐? 하- 꼴사납게 어린 애한테 매달리는 건... 아니, 내가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인가.
"아."
서태웅이 빼꼼 열었던 옥상 문을 다시 닫고 뒷걸음질 쳤다. 추웠나 봐. 이 와중에도 저런 모습 하나하나가 귀여워 보여서 서글펐다.
"서태웅."
정대만이 나직이 그를 불렀다. 저 작은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정대만이 지금 내걸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서태웅아, 내가, 뭐든 다 해줄 테니까. 네가 원하는 만큼, 하고 싶을 때마다 다 하게 해줄 테니까... "
다른 건 몰라도, 서태웅은 정대만과의 농구를 좋아했으니까.
"그러니까, 안 헤어지면 안 되냐?"
"... 왜 헤어져요?"
어?
"안 헤어져요."
안 헤어진다고? 왜? 그럼... 옥상까지 와서 할 말이 대체...
"그런데...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해줘요?"
정대만이 서태웅 몰래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아무튼 차일 일은 없다. 서태웅이 예쁜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 다! 해줄게!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냐?"
그의 호쾌한 외침에 서태웅이 한발짝, 거리를 좁혀온다. 두 눈에 정대만을 가득 담고 속삭이듯 다시 질문한다.
"지금 해도 돼요?"
"지, 지금? 어... 점심은?"
농구 하기에 좀 빠듯하지 않나.
"하고 먹어요."
다행이다. 서태웅이 농구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애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정대만이 서태웅의 원온원 상대가 돼줄 수 있어서.
"그래, 하자. 하고 먹지 뭐...."
체육관으로 가기 위해 뒤돌아서는 정대만을, 서태웅이 붙잡았다. 어느새 서태웅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너무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쵹.
입술에 말랑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 아주 잠깐, 닿았다 떨어졌다. 정대만은 속으로 괴성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뭐, 뭔데. 뭐야, 갑자기..."
"... 하고 싶은 거 해도 된다면서요."
심장이 너무 강하게 뛰어서 가슴이 저렸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손부채질을 하며 정대만이 침착하게 되물었다.
"어어... 태웅아. 이게 하고 싶었어?"
"네."
고분고분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사귀는 사이에는 뽀뽀 하는 건데."
"......"
"우리는 안 했잖아요."
틀려먹었다.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다. 저런 말을 면전에서 듣고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는 없는 거다. 정대만은 고개를 빠르게 털었다. 정신 차리자 정대만. 선배가 되어서 고작 뽀뽀 한 번에 휘둘리지 말고.
"그래... 안 했었네."
"네."
"후... 그런데 서태웅아. 할 말은 뭐였는데?"
서태웅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다. 누가 애기 아니랄까 봐 귀엽게도 갸웃거린다.
"뽀뽀... 해도 돼요?"
"어어. 그, 그래. 해."
당혹스럽지만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쵹. 말랑한 입술이 다시금 입에 닿는다.
"그, 흠. 그래서, 아까 하려던 말이 뭔데?"
"... 뽀뽀 해도 돼요?"
또? 좋긴 한데.
"아니, 서태웅아. 안 물어봐도 되는데. 그냥 해도 돼."
서태웅이 끄덕거리더니 다시 입술을 겹쳐온다. 정대만은 연하 애인의 세 번째 뽀뽀를 받으며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뽀뽀에 홀리지 않고 대답을 들어야겠다. 정대만은 서태웅의 양 어깨를 움켜잡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제 말해주라. 할 말이 뭐였는지."
"......"
"말하기 싫냐?"
"... 뽀뽀 해도 돼요?"
아 설마.
"혹시... 할 말이 그거였냐? 해도 되냐고?"
"네. 뽀뽀는 물어보고 해야 한다고 해서. 물어보려 했어요."
"아...."
정대만이 서태웅의 어깨를 확 끌어당겼다. 품에 벅차게 들어오는 제 애인을 힘껏 끌어안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하냐 정말.
"태웅아. 뽀뽀해도 되냐?"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자, 서태웅이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찔거린다.
"네."
기다렸다는듯 정대만이 서태웅과 입술을 겹친다. 이번에는 앞선 뽀뽀들 처럼, 쵹, 하고 끝나버리지 않는다. 조용한 옥상 앞 계단참에서 둘의 호흡이 섞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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