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걸어다니는 2천만 달러의 남자입니다.》

우신혼 게스트북 게재. 결혼하면서 강백호에게 돈을 쓰고 싶어 안달난 서태웅.

flow-er by 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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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가 걸어다니는 2천만 달러의 남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는 강백호의 연봉은 자그마치 3천2백만 달러에 달했으며, 이미 은행에 든 예금으로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고, 다음 계약 시 연봉이 최소 두 배가 오르는 건 분명했다. 2천만 달러는 강백호의 연봉이 아니라 그냥… 강백호가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을 말했다.

그래, 목줄을 빙자한 결혼반지, 피어싱 같은 것 말이다.

 

*

 

날 때부터 어그로를 타고난 듯한 강백호에게는 당연히 NBA 데뷔와 함께 무수히 많은 별명이 따라붙었다. 개중에는 NCAA 시절부터 꾸준히 불리는 것도 있었다. 코트 위의 악동, 악동이라니 그런 귀여운 것일 리가 있느냐 코트 위의 악당, 문제아, 트러블 메이커, 진저보다 레드가 좋아, 레드 호크, 레드 타이거, 이름은 흰색 아니냐 그럼 화이트 타이거도 있어야지, BEKOSAURUS(어린이팬 사이에서 절찬 인기 별명), 자이언트 토마토, 토마토 리퍼블릭, 더블 더블의 신, 큐티프리티강키티(과연 여기까지 오면 강백호 씹타쿠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수. 한국까지 오면 출전 못한 날은 강영호, 못하는 날은 강일호, 평타 치면 강백호, 찢었다 싶은 날은 강천호다 아니다 강만호다 토론까지, 하여튼 끝이 없었다. 별명이라곤 블랙 재규어, 미스터 그리즐리, 슬리핑 뷰티가 끝인 제 남친과는 천지차이였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별명은 따로 있었다.

강백호는 불과 얼마 전까지 기부왕으로 자주 헤드라인으로 올랐다. 젊음과 재능과 노력으로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기부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떠오르는 NBA 슈퍼 루키 중 하나이고 버는 금액이 큰 걸 감안해도 0의 개수가 너무 많아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근데 또 기부하고 한 말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자기처럼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말고 날개를 활짝 펴길 바란다고 말한 인터뷰는 본인의 눈부신 활약과 까빠를 미치게 하는 스타성, 눈물 없이 못 보는 가정사와 맞물려 국민적 아이콘이 될 정도의 인기를 주었다. 농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강백호 이름을 알 정도면 말 다했다.

강백호는 코트 위의 악동이자 코트 밖의 천사다…!

이 별명이 퍼지고 난 후 모처럼 귀국한 강백호를 대차게 놀렸던 구 북산 멤버들과 백호 군단은 머리에 혹을 하나씩 얻어가긴 했지만, 아무튼 대다수 사람이 '강백호'하면 떠올리는 제일 유명한 별명이었다.

그래, 서태웅과의 결혼 전까지는.

 

*

 

NBA 5년 차가 되던 해 서태웅은 강백호에게 프러포즈했다. 번쩍거리는 그것은 보석의 보 자도 모르는 강백호에게도 무척이나 비싸 보였다. 번쩍거리는 게 예쁘기도 했지만 그 크기는 끼고 다니는 용도가 아니라 인종차별자의 강냉이를 터는 용도로 더 적절하다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환호성이 아니라 경악에 찬 군중들의 함성. 강백호는 무언가 단단히 좆됨을 느꼈지만, 20대가 된 지금도 순정로맨틱뽀이에게 사랑해 마지않는 ♡8년 차 남자친구♡가 하는 프러포즈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땀범벅이 된 채 반지를 끼고 이제는 예비 신랑이 된 남자친구를 끌어안고 키스하는 일련의 동작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못한 속보가 떴다.

 

<서태웅, 강백호에게 청혼하다. 천만 달러짜리 반지와 함께.>

 

부제는 이랬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결혼반지 1위를 갈아치우다.>

 

서태웅은 그걸 보고 뿌듯해했고, 강백호는 당장 제 손가락을 통째로 금고에 보관하고 싶은 기분을 니킥에 담아 날렸다.

평생 농구와 강백호만 바라보고 산 서태웅에게 보석을 보는 안목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제 인생 최고의 유잼 콘텐츠, 종생의 라이벌, 처음이자 마지막일 파트너에게 최고의 반지를 주고 싶다는 욕망에 꽉 차 있던 서태웅은 가족부터 시작해서 구 북산 매니저 선배, 에이전시 전담 직원, 팀메이트의 아내까지 안 물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그러나 보석? 보석? 이름이 뭐고 세공이 어떻고 휘도는 어떻고 백 번 봐도 천 번 just 빛나는 돌일 뿐.

그래서 서태웅은 결심한 것이다.

가장 예쁜 걸 주지 못할 바엔 가장 비싼 걸 주자.

다정하신 서태웅의 부모님도 들었으면 등짝을 내리치셨겠지만, 다행히 그의 각오는 에이전시를 경악하게 하는 데서 그쳤다.

그렇게 해서 강백호는 천만 달러를 몸에 지니고 다니게 되었다. 그게 시작인 줄은 본인도 몰랐지만.

어쨌든 인생이 농구와 강백호로 이루어져 있는 그 바보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떨떠름한 것보다 대견함이 이겨서 강백호는 그걸 또 기꺼이 끼고 다녔다. 농구선수의 커다란 손에 걸맞게 더 크고 더 많은 다이아가 들어간 반지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그로 인해 한동안 강백호에게 반지 화보 얘기가 들어왔고 그중 하나는 헐벗었으며 그게 세상에 나온 날 서태웅에게 호되게 침실에서 혼났다는 건 일단 생략하고, 서태웅의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번 제가 선물한 걸 강백호가 차고 다닌다는 좋게 말하면 기쁨,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독점욕과 포만감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피어싱을 노렸다.

송태섭이 주장을 물려주며 뚫어준 피어싱. 의미 있는 것도 소중한 것도 이해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솔직히 제 배우자면 외간 남자가 준 것보다 자기가 준 걸 끼워야 맞는 거 아닌가? 거기다 반지는 손을 들어야 보이지만 피어싱은 경기 중을 제외하면 서태웅의 눈높이에서 항상 보이는 것이다. 그게 자기가 준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

서태웅은 무작정 구글에 '반지'를 검색하다 본 빨간 보석을 떠올렸다. 강백호에게 아주 딱이라 생각했지만 누가 결혼반지로 빨간색을 하냐며 귀에 피나도록 잔소리를 들었었지. 결혼도 마친 지금 단순 피어싱이라면 문제없을 것이다.

그렇게 또 서태웅은 통장을 열었다.

몇 주 후, 강백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태웅이 제게 내미는 작은 상자를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크기가 너무 반지 상자 같았다. 설마 또 반지를? 또 농구가 아닌 걸로 세계 1위 어쩌고 기사가 뜨는 물건은 아닐까…! 바들바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붉은색 작디작은 피어싱이었다. 객관적으로 피어싱이라기엔 알이 좀 크긴 했지만, 6' 9"의 강백호에겐 알맞은 크기였다. 여전히 강백호는 보석의 보 자도 몰랐지만 적어도 다이아보다 비싼 건 없다는 상식 정도는 있었다. 게다가 이 피어싱은 크기도 아주 귀엽지 않은가! 자세히 보니 이 조그마한 보석에 벚꽃 모양까지 보였다. 이 농구‧강백호밖에 모르는 바보가 여기까지 생각이란 걸 하다니…!

누가 봐도 저를 위해 존재하는 선물에 강백호는 감격하며 바로 귀에 꼈고, 애인, 아차차, 남편에게 이 천재에게 어울리지? 하며 진하게 키스했고, 그 길로 침대로 가 몹시 예쁨받았다.

강백호는 희희낙락하며 그다음 날 팀메이트들에게도 자랑했다. 천만 달러짜리 반지엔 벌벌 떨었으면서 그보다 한참은 저렴할 피어싱 자랑에 팀메이트들은 껄껄 웃으며 멋지다 잘 어울린다 맞장구쳐주었다. 벚꽃 컷팅을 봤을 땐 나이키광인에게 이런 미적 센스가 있다니…! 하고 감탄도 했다. 마침 훈련장에 방문했던 팀메이트의 아내 중 하나가 그걸 보고 멈칫하기 전까지는.

"왜 그러세요?"

"Holyshit."

입틀막. 경악에 커진 눈. 제 귀를 뚫어져라 보는 시선. 강백호는 잊고 있던 불안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그거 레드 다이아몬드 아녜요?"

"…다이아?요? 빨간데?"

"다이아 중에서도 제일 비싼 다이아죠."

강백호가 간신히 정신을 붙들어놓고 있을 때, 한 팀메이트가 애도의 표정을 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피어싱을 뽐내는 강백호, 보석감정사 '적어도 8백만 달러'>

 

.

?

그니까 이 조그만 게, 결혼반지와 비슷한 놈이다?

 

그리하여 1천8백만 달러를 몸에 두른 사나이는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 처음으로 기절하기를 택했다.

 

*

 

그날 강백호는 집에 귀환하자마자 선물해주는 건 너무너무 기쁜데 제발 적당하게 하라고 애원했다. 멱살 잡고 한 거라 그닥 애원 같진 않았지만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서태웅은

"적당하잖아. 우리 연봉에."

림에 스치지도 않고 들어간 쓰리만큼 완벽한 논리를 펼쳤다.

도무지 반박할 구석이 없었다.

연봉만 3천5백만 달러인 놈이 결혼 상대에게 주는 8백만 달러짜리 선물? 그럴 수 있지. 그럼 그럼. 게다가 이번 해에만 또 천만 달러를 기부한 자기가 남 말할 처지는 아녔다. 근데도 묘하게 드는 억울함은 해결할 방도가 없다.

말빨이 딸리는 강백호는 입을 다문 채 비명만 질렀다. 서태웅은 거기에 또 키스하며 강백호를 안아 들고는 침실로 향했다. 그러며 생각했다.

다음엔 뭘 주지.

그건 비단 이제 서태웅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태웅이 거기서 그치지 않을 걸 잘 알았다. 고작 4년 차에 작년 MVP를 획득한 남자는 결혼과 함께 저를 싫어한다는 놈을 무식하게 돌진해 얻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라 불도저라는 새 별명도 생겼다. 이런 남자가 선물 공세를 고작 한 번으로 끝날 리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파파라치가 엄청나게 붙었다. 특히 강백호가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귀를 만지작거릴 때, 피어싱과 반지가 동시에 번쩍거리는 사진이 찍히는 날엔 짭짤한 수익을 벌었다. 원래도 코트 위의 악동, 코트 밖의 천사로 유명한 강백호인데 비싼 몸—물리적—이기까지 하다? 극상의 먹잇감이 따로 없다.

심지어 그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어싱을 서핑하다가 잃어버리기까지 해준다.

당신은 정말 최고예요!

파파라치는 신나게 찍고, 기자는 신나서 쓰고, 그 일대의 강백호와 서태웅 팬들은 우리 짐승최컾 선물 되찾아준다고 모이고, 또 내가 꿀꺽해야지 하는 누가 봐도 농구팬 아닌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그 해변과 바다를 돋보기와 삽을 들고 세밀하게도 뒤엎는 이벤트까지 벌어졌다. 그 틈에 과일주스를 5년 치 팔아 재낀 장사치들, 시청에 급히 구인된 청소부들과 환경자원봉사자들까지 얽혀 그야말로 난장판.

그 모든 광경을 강백호는 집 나간 멘탈을 간신히 붙잡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하, 이런 미친…….

*

피어싱은 결국 찾지 못했다. 아니, 품에 돌아오긴 했는데 이게…….

피어싱은 어느 경매장에 출품되었다. 결국 내가 꿀꺽해야지 했던 놈 중 하나가 찾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피어싱은 구매가보다 높은 111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거기까지였으면 강백호가 그냥 미안하다 날 죽여라 하고 서태웅에게 머리를 박고, 서태웅이 침대에서 죽여주는 걸로 끝났을 텐데.

시합이 있던 날, 출근길에 어떤 팬이 수줍게 그 피어싱을 내밀었다.

" ? ? ? "

"두 분 사랑의 증표 돌려드리고 싶어서 제가 낙찰했어요. 늘 예쁜 사랑하시고, 올해도 좋은 성적 기대할게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피어싱을 받아든 강백호가 그날 시합은 물론 그토록 바라던 그해 NBA Awards MVP까지 가져갔다는 사실은 일단 미뤄두자. 강백호는 그날 이후로 한동안 거울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사랑하는 남편이 주고 제 팬이 낙찰해서 돌려준 피어싱을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어서, 팬이 선물해준 귀여운 토마토가 그려진 거울로 틈날 때마다 제 귀를 확인했다.

시합이 있을 땐 라커룸에 넣어두기 불안해서 감독에게 맡겼다. 결혼반지까지 같이. 감독은 나? 진짜? me? 몇 번이나 되묻다가 시합 시작 시각이 닥치자 마지못해 받아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유독 팔짱을 끼는 횟수가 늘어난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며칠 뒤 서태웅이 수훈선수 인터뷰를 한 날, 인터뷰어가 짓궂게 말했다.

"피어싱이 돌아와서 망정이지, 강백호 선수가 잃어버렸을 땐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모두가 궁금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발언. 인터뷰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과 관객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그 모두의 예상을 제치고 서태웅이 한 발언은

"좋았습니다. 못 찾길 바랐는데."

였다.

네?

"…Pardon?"

"또 사줄 수 있으니까."

일동경악.

대서특필.

 

<서태웅, '강백호가 선물을 또 잃어버렸으면 좋겠다'>

 

지구 반대편에서 모처럼 중계를 다같이 보고 있던 구 북산 멤버들의 테이블은 처참했다. 채치수는 머리만 움켜쥐었고 정대만은 먹던 술을 뱉었다. 흩날리는 소주 방울인지 침인지에 권준호는 하하 웃으면서 종업원을 불렀다.

딱히 북산 멤버가 아니어도 익히 그 둘을 알고 지내던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온몸에 돋은 소름을 벅벅 긁거나, 미친놈들! 하고 비명 지르거나. 물론 몇몇 비범한 이들은 호오, 하고 감탄하기도 했지만. 서태웅의 부모님은 미안하다, 새아가. 흐린 눈으로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비싼 선물은 이제 자제하겠지 하던 사람들은 그날부로 주식을 끊었다. 서태웅의 반응이 어떨지 오가던 돈은 강백호에게 소소한 애도를 표하고자 강백호가 매해 기부하는 어린이농구지원재단에 기부되었다.

강백호의 폰으로 연락이 쏟아졌다. 네 남편이라 미안하지만 솔직히 진짜 또라이 같았다느니, 저런 남편 두어서 좋겠지만 솔직히 소름 돋는다느니, 그래도 부럽다느니, 납치당하지 않게 조심하라느니, 경호원은 얼마나 늘려주길 바라느니, 다음 선물은 뭘 거 같냐느니……. 강백호는 상큼하게 웃으며 폰을 껐다. 망할 남편아♥

그 후에도 강백호의 농구 몸값은 물론, 물리적 몸값도 날로 높아져 갔지만 분량상 여기까지 해야겠다. 아무튼 둘은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좀 지나치게, 많은 이들이 신물이 날 정도로.

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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