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12/28 우성명헌 배포전 행사 신간 안내 (현판 only)
우성명헌... SF에 도전해보았습니다... (절찬리 마감 중...)
2024년 12월 28일 우성명헌 배포전 신간 샘플 및 사양 안내
부스 위치: 롱5
사양: A5 떡제본 (페이지 미정)(마감 중이니까…)
가격: 미정 (마감 중이니까22)
구매 방식: 현장 판매 only
웹발행 여부: O (행사 끝난 후 50%의 가격으로 웹으로 발행합니다)
통판 여부: X
제목: 99의 인격
장르: SF (성인본)
비고: 우성x명헌 맞습니다 진짜임
(이하 샘플)(현재 편집 중)
사와키타 에이지는 한국을 방문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인이 의뢰인인 경우도 있었고 직업상 온갖 곳을 돌아다녔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밀입국을 밥 먹듯이 할 때도 인천이나 부산은 거친 적이 없었다. 인연이 없었던 거다. 이번 의뢰도 일정이 맞지 않아 거절했었으나 의뢰인이 보수를 두 배로 부르며 사와키타 에이지를 지목했다. 왜 날 찾지? 야쿠자를 적으로 돌렸대요? 사와키타는 글로벌 경호 업체의 매니저―업계 용어로 PMC 중개인이라 칭하고 사적으로는 삼촌이라 부르는 남자에게 빈정거렸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사와키타는 불만을 갈무리하고 빠르게 순응했다. 눈먼 돈을 쓰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긴 비행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끔하게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와키타는 젊은 일본인 사업가처럼 보였다. 2미터에 가까운 신장임에도 근육으로 체격을 부풀리지 않았고, 얼굴은 앳되었으며, 말투는 예의 발랐다. 그래서 공항 직원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도 의심받는 일은 없었다. 하긴, 서툰 한국어로 감사 인사를 하는 잘생긴 외국인이 당장이라도 전쟁터에 뛰어들 수 있는 현직 용병인데다 위조 여권으로 입국한 범법자임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면 공항이 아니라 인터폴에서 활약하고 있어야 했다.
택시 정류장에는 사와키타가 타야 하는 개인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을 중개하는 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즈음이면 택시나 택배 차량을 끌고 나타난 업체 관계자가 의뢰인의 정보를 건네줬다. 웃돈을 얹어주면 ‘차량’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괜히 돈 쓰는 게 내키지 않기도 했고 편견을 가진 채 현장에 투입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의뢰인의 거처는 서울 동부였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용병을 고용할 정도면 호텔이나 임시 숙소로 피난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의뢰인의 이름은 이명헌. 리(LEE)라는 이름으로 24시간 밀착 경호를 의뢰했다. 나이는 서른다섯. 미국 프로농구 2부 리그에서 활동하다 작년에 은퇴한 운동선수였다. 포지션은 가드라 했는데, 농구에 관심이 없는지라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가드(Guard). 방어전에 능하다는 걸까?
왜 의뢰하였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세상은 폭력적이다. 살의로 가득 찬 인간들은 너무나도 많고, 그 살의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널려 있었다. 돈. 명예. 사랑. 누군가의 파멸을 바라게 되는 계기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의뢰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일 터다. 누군가를 죽이려 했거나 누군가가 그가 죽기를 원하거나. 24시간 시간제한을 둔 것은 조금 특이했지만, 사와키타는 본인의 몸값이 제법 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루 남짓이 의뢰인이 지급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인 듯했다.
사와키타는 택시 운전자에게서 서류 봉투를 받아든 지 1시간 20여 분 만에 의뢰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의뢰인의 거처는 9층에 있었고 한 층에 2세대가 살았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와키타는 지상의 주차장과 쓰레기장을 한 바퀴 돌며 CCTV의 위치를 확인했다. 근린시설 입구마다 CCTV가 배치되어 있기는 했으나 일부는 알록달록하게 흐드러진 가을 나뭇잎에 카메라가 가려져 있었다.
‘저기가 취약 지점이겠군.’
경호와 암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았다. 누군가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면 당연히, 의뢰 대상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지를 알고 있어야 했다. 사와키타는 몇몇 경로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아파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2층. 엘리베이터는 작고 느렸다.
3층. 사와키타는 무표정하게 디지털 숫자가 바뀌는 걸 지켜보았다.
4층. 새빨간 숫자가 깜빡이다 사라졌다. 숫자 4를 꺼리는 아파트다. 한자 문화권의 특징이었다.
5층. 앞으로 4층.
6층. 곧.
7층. 사와키타는 미리 외워 둔 상세주소를 되뇌었다. 내리면 오른쪽으로 돌아야 했다.
8층. 이제 다음 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 멈췄을 때 사와키타는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통로를 누군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아니, 방금 사진을 봤으니 누구인지는 알았다. 그가 놀란 건 상대와 눈을 마주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의뢰인, 리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사와키타 에이지?”
막상 마주한 의뢰인은 사진처럼 무뚝뚝해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했다. 반면에, 사와키타를 응시하는 눈은 잡음 없이 까맸다. 누군가를 죽일 마음을 먹었거나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표정이 이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일부러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언제 봤다고? 예전에 마주친 적이 있나?’
중개인이 사와키타의 인상착의를 귀띔해주었다고 해도 대략적인 것만 들었을 터였다. 아시안 남자, 짧은 머리, 정장 차림. 첫 만남에 오해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끔 말이다. 그가 미국에서 자랐고 영어가 모국어이며 아버지의 권유로 용병 일을 시작했다는 건 고작 하루 경호할 사람에게 제공되어서는 안 되는 정보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을 ‘기분 탓’으로 넘기면 용병으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물증이 없는데 다짜고짜 지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와키타는 대꾸하는 대신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휠체어에 앉은 리가 그의 손을 잡았다.
“사와키타라 불러요.”
“그래요. 사와키타.”
“외출하는 중이었나 보죠?”
“주차장에 다녀오려 했는데.”
은밀하게 용병을 불러온 것치고는 태평한 태도였다. 의문 섞인 시선을 느낀 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급한 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죠.”
“대신 가져다드릴까요?”
사와키타는 나서서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저 의뢰인이 무엇을 감추고 있을지 궁금해 일부러 자극을 주기로 했다. 숨기는 게 많은 사람이라면 선을 그을 것이고, 의외로 사교성 좋고 남을 잘 믿는 성격이라면 도움의 손길을 흔쾌히 받아들일 터였다.
리는 둘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말고, 나중에요.”
짧게 대꾸한 리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사와키타는 리를 곁눈질로 관찰했다. 휠체어에 앉은 자세로 능숙하게 현관을 개방한 리가 문턱에 휠체어를 세우고 상체를 세웠다. 문턱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휠체어로 갈아타기 위해서였다.
“도와줄까요?”
사와키타의 친절은 이번에도 무시당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리는 넘어지는 일 없이 실내용 휠체어로 갈아타 사와키타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집 안에 있는 건 아무렇게나 써도 돼요. 하지만 침실은 들어가지 말았으면 합니다.”
침실에 금고라도 있나?
“알겠습니다.”
“침실에 금고 같은 건 없는데, 궁금하면 살펴봐도 좋습니다.”
“…….”
사와키타가 말을 돌렸다.
“뉴욕식 영어를 쓰네요. 미국 동부에 있었습니까?”
“뉴욕 구단의 운동선수였죠. 지금은 은퇴했고요.”
리가 자기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왼쪽 무릎, 왼쪽 빗장뼈, 오른쪽 발목, 차례대로 다쳤고 재활했어요. 하지만 부상 때문에 은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어느 날 눈 뜨고 일어났는데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은퇴와 관련해서 원한을 산 일이 있나요?”
“그럴지도요.”
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전시야 조금 더 해보라고 설득했죠. 그래도 뭐, 1부 리그 소속이면 모를까 2부 선수에게 매달려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계약 해지는 잘 마무리했어요.”
“대인 관계는요?”
“치정 문제를 말하는 거라면, 난 평생 독신이었어요.”
“그러면…….”
“누가 날 죽이려는지는 모릅니다.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도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요.”
“직접적으로 협박받은 적은 없다고요.”
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을 하루만 고용하기로 한 거고요.”
“추가로 의뢰하려고요? 난 의뢰 대상과 직접 계약하지 않는데요.”
“그러면 날 예외로 만들어줘야죠.”
픽 웃은 사와키타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도청기 탐지기를 꺼냈다. 대게 살의는 사적이다. 사와키타보다 몇 배는 뛰어난 경호원이 주변을 감시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죽음의 화살을 쏘아 보내는지는 과녁이 되는 장본인이 잘 아는 법이었다. 그러니, 사와키타에게는 리의 말이 ‘이건 전부 거짓말이며 진실을 밝혀내는 건 네 몫이다’라는 도전장으로 들렸다.
집에는 가구가 적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을 올려놓는 장식장과 일인용 소파가 전부였고, 바깥이 비춰 보이는 얇은 흰색 천이 커튼을 대신하고 있었다. 휠체어 생활을 시작하여 가구를 정리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치고는 별다른 장식물이 보이지 않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휴식처가 되어야 할 집을 삭막한 상태로 방치한다는 건 집주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유별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한다거나.
실내에는 세 개의 방과 두 개의 욕실이 있었는데, 거실에 딸린 욕실을 포함하여 다른 두 개의 방도 마찬가지로 휑했다. 도청기든 카메라든 가구가 있어야 설치할 텐데. 혹시 싶은 마음에 번쩍 팔을 들어 천장에 감지기를 대어 보기도 했다. 기계는 잠잠했다. 사와키타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마지막 남은 곳은…….”
홀로 중얼거린 사와키타가 리를 흘끔 돌아보았다. 침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 것치고는 관심 없어 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들어가 보라는 듯 손짓하기까지 했다.
침실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고리를 돌린 사와키타가 안으로 들어갔다. 매트리스 하나와 붙박이장, 전신 거울 하나를 제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쪽문은 드레스룸 겸 욕실로 이어지는 공간일 텐데, 거기서 갑자기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와키타는 직감했다. 저쪽으로 가면 X된다.
“우성, 뿅! 우성, 뿅!”
그의 팔뚝만 한 하얀 앵무새가 사와키타를 보자마자 횟대에서 큰 날개를 퍼덕이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생긴 것도 기이했다. 몸통은 눈처럼 하얀데 머리 깃은 지나치게 새빨개서 까맣게 멍이 든 것 같았다. 사와키타는 야단법석을 떠는 새를 피해 감지기를 휘젓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문가에서 구경 중인 리를 찾았다.
“이 미친 새가 당신 겁니까?”
“아뇨, 맡아 기르는 중인데요.”
잠깐 뜸을 들인 리가 덧붙였다.
“한 5년쯤.”
“그럼 그냥 한식구잖아요! 원래 이 방에 가둬놓고 길러요?”
“우성, 뿅!”
“저건 대체 무슨 소리예요?”
“몰라요. 예전 주인에게 배웠겠죠.”
앵무새가 사와키타의 어깨로 날아올라 앉았다. 계속 쫓아다니며 시끄럽게 굴면 주인이 보고 있건 말건 어깨를 털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영악한 새는 살아있는 횟대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챘는지 날개를 접은 채 침묵했다.
‘정말 피곤한 의뢰를 맡았어.’
사와키타는 24시간이 지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리라 다짐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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