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준호] 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1
-태웅이와 준호가 육아(?)하고 썸도 타는 이야기-
태웅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은 휴일이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공원인데다가 공원을 중심으로 왼 편에는 축구장이, 오른 편에는 농구장이 있어 사람들이 운동하러 나오기 좋은 곳이었다. 태웅도 쉬는 날이면 이 곳에서 종종 혼자 농구연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 공원에는 다른 곳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을 위한 농구대가 있다는 점이었다.
"삼촌, 여기야 여기! 헤헤.. 여기 우리 자리~!"
농구장이 보이자 태웅의 손을 놓고 달려가는 세준은 빈 농구골대을 찜하듯이 두 팔로 끌어안았다. 뛰면 다쳐 라고 걱정하는 삼촌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세준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골대를 안고 있다가 떨어졌다. 저 들뜨고 신나는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보호자의 입장에선 조금 조심해줬으면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6살에게 과한 부탁이라는 건 알고있지만. 신나하는 세준을 두고 태웅은 농구코트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았다. 날이 선선해서 그런지 공원에는 오늘따라 유독 사람이 많았다. 세준이 찜한 코트 말고 다른 코트에는 이미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삼촌 빨리 오라니까아~"
그새를 못 참은 세준은 한 손에는 농구공을 다른 손으로 태웅의 팔을 당기며 그를 농구장 쪽으로 데려왔다. 자기 키보다 조금 낮은 골대 앞에 서 있자니 태웅은 자기가 걸리버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곳에서 농구를 몇번 했는데도 손을 뻗으면 림은 물론이고 백보드 위까지 넘어버리는 기분은 매번 어색하기만 했다. 태웅이 어색해하거나 말거나 세준은 삼촌과 농구할 생각뿐이었다.
"삼촌! 잘 봐 내가 멋지게 골 넣을 거니까!"
"응, 그래"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드리블을 하기 시작하는 세준을 보고 태웅은 디펜스를 하기 위해 몸을 낮췄다. 세준의 드리블은 태웅이 보기엔 아직 헛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지난 번에 봤을 때보단 자세가 좋아져 있었다. 연습했다는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태웅은 내심 흐뭇했다. 세준에게 드리블 하는 법을 가르친 건 태웅 자신이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도 세준이 농구에 열심이라는 것이 기뻐서 같이 농구를 할 때마다 이것저것 가르쳐줬다. 그런 태웅은 세준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고 롤모델이었다.
'세준이가 너처럼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그러더라. 삼촌처럼 에이스가 될 거야 라던가..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그런 세준의 마음가짐에 자신도 제대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태웅은 생각했다.
"안 봐줄거야."
그건 나름대로 태웅이 세준을 인정하고 배려해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태웅은 몰랐다. 아이가 진심이니 이 쪽도 진심으로 나간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
"너무해 삼촌!"
몇 번째인지 모를 블락에 결국 세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태웅에게 막힌 농구공은 데굴데굴 굴러가 농구장 밖으로 굴러갔다. 공을 쫓아가려던 태웅은 세준의 불평에 발을 멈췄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를 훔치며 태웅의 앞에 선 세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태웅의 허벅지를 주먹손으로 콩콩 때렸다.
"왜 다 막는거야! 이번엔 넣을 수 있었는데!"
"왜냐니.."
그게 당연한 거잖아. 라고 덧붙이려고 했지만 눈에 원망을 한 가득 담고 자길 올려보는 조카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지금까지 세준이 쏜 슛 중에서 빗나간 것을 제외한 건 전부 태웅이 블락해서 한 골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슛의 정확도는 나쁘지 않았다. 드리블 연습만큼이나 슛 연습도 열심히 한 게 느껴질 정도였다. 문제라면 농구골대가 태웅의 키만한다는 점과 그 점을 이용해 태웅이 세준이 쏜 슛을 전부 쳐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준이가 진심이니 자신도 진심으로 간다. 이것이 되려 독이 되었다.
"멋지게 골 넣는 거 보여주려고 했는데 왜 다 막는 거야! 삼촌 미워!!"
원망 섞인 시선에 어느 새 물기가 어리기 시작하자 태웅은 당황했다. 세준이 열심히 한 게 보여서 자신도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너무하다고 제 허벅지를 콩콩 때리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봐줬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세준의 마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했어야 했던거지? 지금은 또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생각에 태웅은 그대로 돌이 돼서 조카의 솜방망이 같은 주먹질을 받아내고 있었고 세준은 그런 삼촌 앞에서 훌쩍거리다가 이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삼촌 미워...힝... 나 진짜 열심히 연습했는데에....으앙!!"
세준이 울자 태웅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일단 세준의 앞에 몸을 숙이고 앉아서 울지 말라고 등을 토닥여줬지만 세준은 오히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태웅은 더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떻게 달래지.. 누나가 세준이를 어떻게 달랬더라...'
고장난 로봇마냥 뻣뻣한 몸짓으로 우는 세준의 얼굴을 닦아주던 태웅은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세준이 태웅의 앞에서 이렇게 크게 우는 건 처음이었다. 누나나 어머니가 있을 때는 이렇게 울기 전에 언제나 잘 타일렀는데 막상 자신이 달래야 할 입장이 되니까 난처하기만 했다. 뭐라고 말을 하며 달래야할 지 몰라서 세준의 눈물만 닦아주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웅아, 여기서 뭐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준호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세준의 농구공을 들고서.
"준호 선배.."
"이런 데서 다 보네. 근데 그 아이는...."
태웅의 앞에서 울고 있는 세준을 보며 준호가 묻자 태웅은 조카라고 얘기하며 몸을 일으켰다. 준호는 아직도 울고 있는 세준과 태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얼굴이 닮았네 특히 눈매가.. 라고 생각하며 준호는 들고 있던 공을 태웅에게 건넸다. 세상 서럽게 울던 조카는 낯선 사람에 등장에 코를 훌쩍거리며 준호를 쳐다봤다.
"누, 흑..구야?"
"삼촌 학교 선배야."
"서,으윽..선배?"
"아....음..... 삼촌보다 높은 사람이야."
구구절절 선배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기 보다는 축약해서 말하는 태웅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선배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준의 생각은 달랐다. 태웅의 말에 세준은 태웅을 한 번 보고 준호를 한 번 쳐다봤다. 순간 세준은 생각했다. 선배 -> 삼촌보다 높은 사람 -> 삼촌보다 어른 -> 삼촌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준은 눈이 마주친 준호가 안녕 하고 손을 흔들자 다시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준호의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
"흐엥!! 선배, 삼촌 혼내줘요!! 삼촌이 골 못 넣게 해써어"
"세준아, 그러면 안..."
준호의 다리를 붙들고 다시 우는 세준을 말리려는 태웅에게 그는 괜찮다고 손짓했다. 세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준호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세준은 태웅이 한 극악무도한 짓을 준호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쳤다.
"삼촌이, 흑.. 내가 슛 하는 거...다 쳐내써여...나 열씨미 연습했는데에... 삼촌이 하나도, 우으..못 넣게 해써... 삼촌 미워...혼내조..."
"정말? 삼촌이 그랬어?"
준호가 자신을 쳐다보자 태웅은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조카를 상대로도 열심히 디펜스를 한 것 뿐인데... 준호의 시선을 피하며 태웅은 변명하듯이 한 마디 내뱉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것 외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음... 그건 삼촌이 잘못했는 걸. 세준이 말대로 선배가 혼내줘야겠다."
준호는 헛기침을 하더니 허리에 손을 올리고 태웅아 하고 그를 불렀다. 목소리에서 딱히 화난 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똑바로 세웠다. 마치 정말 선배한테 혼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태웅을 향해 준호는 살짝 눈짓을 했다. 자신의 말에 맞추라는 듯이. 그리곤 화가 난 척 인상을 쓰며 말했다.
"슛을 다 막으면 안돼지. 그러면 세준이가 연습한 게 다 물거품이 되잖아. 삼촌한테 보여준다고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겠어.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네가 어른이니까 봐주면서 해야지."
"...죄송합니다."
"앞으론 그러지 마. 세준이가 얼마나 속상했겠어... 자, 얼른 세준이한테도 사과해."
"미안해, 세준아. 삼촌이 잘못했어."
태웅이 사과를 하자 준호는 몸을 낮춰 세준과 눈을 마주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세준의 뺨을 닦아주곤 아직도 훌쩍이는 세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삼촌이 사과했으니까 받아줄거지?"
"으웅..."
"그래, 우리 세준이 참 착하다. 근데 세준이는 정말로 삼촌이 미워?"
세준은 곁눈질로 태웅을 올려보곤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미워서 한 말은 아니다. 그저 속상해서 한 말일 뿐이다.
"삼촌이 미운 게 아닌데 밉다고 하면 삼촌도 슬퍼할거야. 지금 세준이처럼 엄청 속상할 거야."
"...."
"그러니까, 세준이도 삼촌한테 사과하자. 밉다고 해서 미안해. 하고"
준호의 말에 세준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태웅을 향해 몸을 돌려 그의 티셔츠 자락을 잡았다.
"미아내 삼촌...나 삼촌 안 미워해... 나 삼촌 좋아해.."
"..응, 알아."
"둘 다 서로 사과했으니까 서로 안아줘. 이걸로 화해하는 거야. 알았지?"
준호가 태웅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하자 태웅은 들고 있던 공을 내려놓고 조카를 안아들었다. 세준은 태웅의 목을 꼭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 울지 않고 얌전해진 세준을 보고 태웅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웅에게 안겨있던 세준은 어느 새 색색거리며 잠이 들어있었다. 조금 전까지 태웅과 농구하고 있었던 데가 펑펑 울기까지 했으니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준호는 태웅의 옆에 다가와 세준이 잠든 걸 보곤 안고 있으면 힘들테니 벤치로 가자고 말했다. 준호의 제안에 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로 향했다. 세준의 울음으로 둘에게 집중되었던 사람들의 시선도 언제 그랬냐는 듯 흩어졌다. 농구공을 벤치에 내려놓은 준호는 세준을 안은 채 자리에 앉은 태웅의 옆에 따라 앉았다. 준호가 자리에 앉자 태웅이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선배.. 선배 아니었으면 못 달랬을 거에요."
"감사하긴~ 산책하다가 보여서 참견한 것 뿐인데."
오랜만에 특별한 일 없이 보내는 한가한 휴일이었다. 조용히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문득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어 집 밖을 나선 것이 이런 장면을 보게 할 줄은 몰랐다.
"슈퍼루키도 조카한테는 못 당하네. 다른 애들이 봤으면 놀렸을 거야."
특히 백호가 말이지. 라고 덧붙이자 태웅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백호가 봤다면 필시 조카나 울리고 잘한다 멍청한 여우! 하면서 깔깔거렸을 게 뻔했다. 그렇게 상상하니 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에 내 천자를 만들었다. 그리곤 준호를 쳐다보곤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하하, 안 말하니까 걱정 마."
평소 과묵하고 흐트러짐이 거의 없는 태웅이가 쩔쩔매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지만 그걸로 후배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부원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백호는 말할 것도 없고 대만이나 태섭이도 이 사실을 알면 한 마디씩 거들 게 뻔했다. 준호의 대답에 태웅은 안심한 듯 잠든 세준의 등을 토닥였다.
"세준이랬지? 몇 살이야? 7살?"
"6살이요. 저랑 10살 차이 나요."
"그래? 세준이 나이가 있어보인다 싶긴 했는데 정말 나이 차가 얼마 안 나네. 누가보면 삼촌조카가 아니라 형제 사인 줄 알겠어."
"가끔 그런 소리 들어요. ...누나가 저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결혼을 일찍 했거든요."
13살 차이의 누나는 태웅이가 9살 때 고교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주변과 비교하면 이른 결혼이었기에 이래저래 말이 나왔지만 딱히 사고를 쳤다던가 해서 결혼한 건 아니었다. 양가 부모끼리 이미 아는 사이기도 했고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따라 한 결혼이었다. 그렇게 결혼한 두 사람은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허니문 베이비로 세준을 낳았다. 세준이 갓난 아기일 때 같이 나가면 준호의 말대로 형제로 오해받기도 했다. 세준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덜 했지만 지금도 가끔 그런 오해를 받곤 했다.
"그랬구나. 조카 보느라고 고생이 많네."
"...조금은요. ...선배는 아이 돌보는 걸 잘하시네요."
"나?"
준호가 되묻자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세준이를 대하는 그 모습은 태웅이 볼 때 육아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누나나 어머니가 세준이를 대하는 거랑 비교했을 때도 손색이 없었다. 살짝 존경의 눈빛을 하고 자길 바라보는 태웅에게 준호는 그렇지도 않다면서 손사레를 쳤다.
"그냥 애들을 좋아해서 그런거지. 애들이라고 강압적으로 굴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하면 다 이해하니까 별로 어려울 건 없어."
"..어렵네요."
별 거 아니라는 말투로 얘기하는 준호를 보고 태웅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마음 먹어서 되는 일이었다면 아까처럼 당황해서 쩔쩔매지 않았을 것이다. 태웅의 표정을 살핀 준호는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었으면 세준이가 그렇게 잘 따르지 않았을 거야."
"그런가요.."
"당연하지. 애들은 자길 좋아하는 사람이랑 싫어하는 사람을 금방 알아채거든. 아마 세준이한테 태웅인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삼촌일거야."
"...그러면 다행이구요."
준호의 말에 태웅은 안심했다. 아직 아이를 보는 게 어설프기만 하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조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그것만큼 기쁘고 보람찬 일은 없었다. 세준은 그런 삼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꿈나라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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