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대만/좋아하니까
동갑 호댐
둘은 고1입니다.
그 애는 농구를 좋아했다. 농구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농구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그 애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조잘거렸다.
"처음에는 하루에 백 번씩 연습했어."
"대단하네. 첫날에는 몇 개나 넣었어?"
"첫날에는 하나도 못 넣었지."
"엑, 정말?"
"처음 배울 때는 슛을 넣는 것보다 자세를 잡는 게 중요하거든. 흐트러진 자세로 던진 공이 림에 들어가봤자 아무 소용 없어. 바른 자세로 던지는 걸 계속 반복하면 그 자세가 몸에 익어. 슛은 그때부터 넣는 거야."
"넣지도 못하면서 연습하면 힘들었겠다."
"음, 별로 안 힘들었어."
"거짓말. 허세 부리는 거지?"
"아냐, 정말이야."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래?"
그 애가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좋아하니까."
호열대만/좋아하니까
목발이 땅을 짚었다. 나는 오른발을 디뎠다. 오른발이 착지했다. 나는 왼발을 디뎠다.
목발에 의지한 걸음은 느렸다. 나는 느릿느릿 나아가는 그 애를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걸었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그 애의 뒷덜미가 눈에 거슬렸다. 여름이 코앞이었다.
어제는 여름 대회 예선이 끝났다. 북산은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 애의 탓은 아니었다. 그 애는 새 학기 첫날에 무릎을 다쳐 입원했고, 예선을 일주일 앞두고 같은 곳을 다시 다쳤다. 시합장 코트를 밟아보지도 못한 사람한테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 애는 상심했다. 언제나 그 애의 자리 근처에 있던 농구공이 사라졌다. 그 애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다른 주제를 꺼냈다.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꼭 포기하는 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즈음은 그 애를 생각하면 물을 마셔도 입이 말랐다. 나는 그 애에게 물었다.
"오늘 병원 가는 날이지? 길은 이쪽이 아닐 텐데, 혹시 새로 찾은 지름길이야?
내가 생각해도 같잖은 농담이었다. 내 농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선지 그 애는 내 말을 무시했다. 나는 그 애의 이름을 길게 늘여 불렀다. 나를 돌아봐 줬으면 싶었다.
"대만아아,"
그러자 그 애가 나를 돌아봤다. 빈정거리는 말투로 내게 쏘아붙였다.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쥐어짜서 지은 듯 찌푸린 얼굴이었다. 그 표정은 곧 지워졌다. 지친 고개가 푹 떨궈졌다. 그 애가 내게 빌었다.
"먼저 가. 제발, 나 좀 두고 가주라."
지친 목소리였다. 그 애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울거나 화를 내지도 못했다. 그 애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졌다. 나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애가 말했었다. 흐트러진 자세로 던진 공이 림에 들어가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나는 그 애를 봤다. 길어진 머리카락이 썩어가는 나무를 드리운 이파리처럼 얼굴을 가렸다. 나는 손을 들어 그 애의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메마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나는 그 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너한테 다정하게 굴고 싶었다.
나는 말했다.
"병원 가자. 오늘 가야 하잖아."
그 애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웃은 거라고, 나는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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