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대만 선배, 이거 팬이 전해 달래요. 집 가서 꼭 읽어 보세요!

꿈조각 by 곽두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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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만 선배께.

안녕하세요 선배. 집 가시기 전, 당황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어지간하면 거짓말도 안 하고 솔직하게 건내며 이런 일 없으시도록 하고 싶었는데... 
맘이 그걸 참기 힘들었어요. 이기적인 후배 이번 한번만 봐주시면 안 되나요?
이젠 웅크리지도 못 할 것 같아요.
저는요, 당신이 참 편해요. 준호 선배의 다정함과는 다른 다정함 말이죠.
후배들이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도 크게 다잡지 않으시기도 하고... ...
그래서인지 다른 선배들에 비해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었어요. 농구부에 들어오신 후 말예요.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가가지 말걸, 하는 생각도 어처구니 없이 들어요. 모순적이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제가 선배를 보는 시선이 조금 더... 그러니까 반대로 흘러갔을 지도 모르니.
어느 순간이 스타트 지점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선배는 아무런 변화 없이 저를 대하셨는데 저 혼자 심장이 농구공마냥 림을 깨끗하게 통과해버렸어요.
이게 무슨 글인지 이제 아시겠나요?
저는요. 무척이나 당신을 흠모하고 있어요. 허다한 여느 글의 좋아해요. 와는 무게가 다릅니다.
너무, 너무 이 마음이 깊어서 어쩔 도리를 못 하겠어요.
지금 편지를 쓰는 지금도 수십번을 고치고 고치며 가슴께를 두드려가며 써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고백 대신 눈물이 훌쩍 선배에게 닿을 것 같아서.

위에서 스타트 지점이 어디인지를 도통 모르겠다고 말씀 드렸죠?
그래도 알게 된 순간은 찬란하던 덕에 아직도 눈 앞에 선해요. 선배는 어떠실 지 모르겠네요.
제가 금일 일지를 다 쓰고 안선생님께 보여드리며 넘기고 있었는데 종이를 넘기는 검지의 볼록한 손 끝이 베였었어요. 그 순간 저는 아픔보다 핏방울 맺히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입을 다물지도 못 하고 멍하니 바라봤어요. 주위에서 감독님도 놀라시고 선수들과 한나가 부산스럽게 움직일 때 혼자 제 앞에 격 없이 앉으시고 쓰지 않은 수건의 가장자리를 제 검지에 감아 꾹 누르며 절 올려다 보셨는데, 모르시죠? 땀이 폭포수만큼 흐르고 있는 상황에 손으로 수건을 감싸 지혈시키면서, 선배가 너무 힘드신 게 보이는데 활짝 미소 지으시며 조금만 이러고 있자, 곧 멈출 거다. 
말하셨어요. 그 순간 너무 안심 되더라구요. 이게 선배께서 가진 힘이구나 생각도 했어요.
근데 이 직후 심장의 고동이 너무 빨라지는 거 있죠?
선배는 그냥 같은 동아리 후배에게 먼저 나서 도와주고 한 마디 던져준 게 다인데.
저는 그 말로 이어지는 선배의 모습이 너무 눈부시더라구요.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그 당일 저는 많은 부정을 시작해야 했어요.
긍정하게 되어 버리면 많은 것들이 엉켜 버리잖아요. 안정적이고 가볍다 생각하던 우리도요.
그 날을 기점으로 근 일주일 정도는 온갖 부정적인 선배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더 힘들더군요. 제가 아무리 나쁘게 속으로 매도해도 결국 선배는 선배인 걸.
본질이 변하지 않고 꿋꿋해 왜곡하지도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제가 포기했죠. 선배를 담은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어요.
불편한 마음 하나 포기하니 숨통이 트이더군요. 하지만 선배란 사람은 생각보다 더 저를 편하게 생각하셨는지 스스럼 없이 거리를 좁혀오시고 눈을 맞추며 감정의 불씨를 키우셨어요.
그 모든 행각을 받으니 이 지경이 된 것 같기는 합니다. 허나 후회는 않습니다.
더 마음을 가리고 누르게 되어 버린다면 저는 정말 선배 앞에서 토해내듯 감정을 고백하고 도망갈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며칠 동안은 부활동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죠. 벌써 불편하시죠?

대만 선배. 당신의 팬이자 매니저인 자리에서 항시 선배를 올려다 보며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응원이 더이상 순수하게 스포츠인을 동경하는 마음은 아니게 되었지만.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선배를 좋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래요?
기왕이면은 선배도 저를 좋아해 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PS. 혼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저는 이 편지를 받으시고 다음 날이면 집을 비웁니다.
      그러니 제가 묵는 숙소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릴게요. 밤에는 못 나가시잖아요.
      어떤 대답이든 후련해질 것 같아요. 모쪼록 선배의 솔직함을 길잡이 잡으시길...
[033-xxxx-xxxx]


이 편지가 누구를 뜻 하는지 이름 같은 것 적히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

너였구나.

쫓기듯 내 시야에서 벗어난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머리가 지끈거림과 함께 한구석 막막하던 머리 속이 뻥 뚫린다. 이제 발걸음을 조절 할 필요가 없었다.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며 향수라도 뿌린 것인지 시원한 향의 종이를 제 안면 위에 구길 듯 말 듯 눌러 얹는다. 짧은 머리 탓에 채 감추지 못한 불긋불긋 핀 뒷목의 수줍은 색이 그의 마음을 뭉게뭉게 띄우고 있었다. 우리 그냥 겁쟁이였구나... 나지막한 웅얼거림은 피식 튀어 나오는 웃음기 아래 얹어 보낸다.
대답 그까짓 거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데. 이런 날이 빨리 올 줄 알았으면 진작 네 집전화 번호를 받아둘 걸. 나중에 자연스러운 대화로 받으려 고민하고 있지 않았어야 했는데.

너는 이미 잠에 들었을까.

잠이 올까?

나 같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잠이 올까?

*

@ 안녕하세요, 선혜랑 같은 농구부인 정대만입니다..! 혹시 선혜 지금 자고 있나요?

- ...

@ ... 여보세요?

- 큼, 선혜 지금 자고 있어서요. 중요한 일인가요?

@ ... 아아, 역시 자고 있구나. 네에. ... 괜찮으시면 혹시 내일 일어났을 때 그대로 전해주시겠어요?

- 어떤 것을요?

@ 글을 닳도록 읽지 않아도 길이 쉽게 보였습니다.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도 답이 보이더라구요.
    남자가 되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눈치가 없어 그저 대답으로 내 마음을 보일 수 밖에 없음에 말이죠.
    사랑하고 있습니다. 무게를 함부러 가늠할 수가, ... ...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괜히 불안한 마음 가방에 이고 기차타지 않길 바랍니다.
    재미있게 놀고 거기서 있던 일 말해줘요.
    그리고 다음에 보면 제 편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

" - 제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만나기 시작하셨고 결혼도 하셔서 저를 낳아주셨습니다! "

*

" ... 아들 자? ... ... 애가 저 이야기를 어떻게 알아? "

" 저번주인가? 당신 프로리그 때문에 집 비웠을 때. 대현이 발표 때문에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구. "

" 아 그래..? 근데 당신은 그걸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해? "

" 어떻게 잊어요~ 다른 놈도 아니고 말한 사람이 정대만인데. "

" 참나... 그렇게 말해도 오늘 분리수거 안 바꿔준다. "

" 아 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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