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밴드에게 밴드를
대만준호
준호는 땀이 배인 손을 바지에 벅벅 문질러 닦았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준호 자신이 사인을 받을 차례였다. 혹시 몰라서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 줄을 서 있었던 보람이 있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공연장이 텅텅 빈 나머지 객석에서 호응하고 있는 준호가 다 민망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팬이 많아서 자칫하면 공연장에 들어도 가지 못 하고 밖을 서성이다 돌아가야 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 락밴드 ‘슬램덩크’가 얼마나 삽시간에 팬이 늘었는지에 대해 업계 사람들 모두 수군수군할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권준호는 ‘슬램덩크’가 인디 중의 인디, 다른 밴드가 정식 공연하기 전에 오프닝 정도만 맡아주던 시절부터 팬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슬램덩크’에서 리더이자 드럼을 맡고 있는 채치수의 친구이므로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백스테이지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슬램덩크’ 밴드 멤버 중에서 준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역사 상 처음 있는 ‘슬램덩크’의 팬 사인회인데 명색이 팬이라는 사람이 편법으로 사인회장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줄 서 있는 동안, 다른 팬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나눔 받은 덕에 준호의 가방은 팬들이 만든 비공식 굿즈들로 묵직해져 있었다. 준호는 온라인 활동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탓에 잘 몰랐지만 팬들 사이에서 준호의 얼굴도 알음알음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던 팬들이 ‘저기, 준호 님 맞으시죠…?’하고 말을 걸어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아무래도 치수의 친구인데다 오래된 팬이다 보니 가끔 밴드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언급해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준호는 심호흡을 하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인파에 새삼스레 감격이 몰려 왔다. 내가 파던 밴드가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역시 ‘슬램덩크’가 그렇게 엉망인 밴드는 아니라니까? 물론 처음에는 아마추어 티가 팍팍 나는 밴드이긴 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열성적인 멤버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드럼을 치는 치수도, 베이스를 맡은 태섭도, 기타를 치는 태웅이와 백호도.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게 합류해 ‘슬램덩크’의 전성기를 불러일으킨 보컬, 정대만도.
준호는 테이블 가운데 앉아서 팬에게 씩 웃어주고 있는 정대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대결절을 겪은 이후 다시는 노래 따위 하지 않겠다고 뛰쳐 나갔지만 결국은 음악을 잊지 못 해 돌아온 보컬을. 어떤 사람들은 정대만이 한동안 노래를 쉬다 온 탓에 성대가 아직 단단히 조여주지 못 하고 음이 플랫될 때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준호 입장에서는 그런 스킬 같은 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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