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협백호 카페 글엽서 협력 🏀

 빠져가지고 말이야. 백호는 세 번째 드리블 세트를 시작하며 툴툴거렸다. 불그스름한 저녁빛이 드는 체육관 안을 울리는 건 그가 튕기는 공 소리 뿐이었다. 정기검진을 받고 부리나케 돌아오니 이 모양이었다. 주말 연습을 연속으로 잡았으니, 금요일은 쉬어 가자던가. 어제 언뜻 들었던 것도 같은데... 딴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쉬어가자니. 헛소리!

 숫자를 세는 것도 잊은 채 중얼거리던 백호는 별안간 벌쭉 웃으며 즐겁게 결론을 맺었다.

 "그래, 평민들은 쉬엄쉬엄 하도록 해라. 이 천재의 노력으로 너희가 노는 몫까지 거뜬히 커버해 줄 테니까."

 내내 한 자리에 붙박혀 연습하던 백호는 충동적으로, 정면에 보이는 골대를 향해 발을 움직여 드리블해 나가려 했다. 그러자 공이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엉뚱한 방향으로 빨려들더니, 바닥과 오금을 차례로 때린 후 텅 빈 구석으로 털털 굴러가 버렸다.

 백호는 껌뻑대며 그쪽을 좀 쳐다보다가 뒷목을 긁적거렸다. 역시 좀 둔해졌나?

 - 조급해 하는 것도 좋아. 그만큼 그걸 강하게 바란다는 뜻이니까.

 초조함에 두근거리려던 심장이 금세 가라앉았다. 윤대협이 그 말 하기 전에 뭐랬더라.

 - 단계를 건너 뛸 수는 없어.

 백호는 터덜터덜 공을 주워다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드리블 연습은 참 편했다, 골대 앞으로 되돌아가거나 누군가 주는 패스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공 있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아무렇게나 하면 되고...

 쓸쓸해지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끄러운 녀석들이 등장했다.

 "불도 안 켜놓고 뭐 하냐!"

 "용팔이 알바하는 가게 냉장고에서 먹을 것 털어왔어!"

 박수까지 곁들여진 요란한 격려 속에서 신나게 나머지 세트를 마치고, 백호는 의기양양하게 다시 골대를 향해 공을 몰고 나아갔다. 친구들은 휘파람까지 불며 기뻐했다. 백호가 코트에 돌아온 모습을 보는 게 어지간히 기쁜 모양인지 열흘이 다 되도록 매일같이 별볼일도 없는 연습을 구경하러 나타났다.

 자유투 라인에 서서, 백호는 양 손에 공을 감아 쥐고 링을 올려다 보았다.

 - 차근차근 하면 돼.

 나중에. 조만간. 백호는 공을 물려 허리춤에 끼고 주먹을 들어 링을 힘껏 가리켰다. 친구들은 야유를 보내는 대신 조용히 눈을 돌리고 가져온 짐 쪽을 향했다. 백호가 합류했을 때, 그들은 이미 버거를 한 입씩 가득 욱여넣고 우물거리는 채로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음료 어떤 거 마실래?"

 "어... 파인 맛."

 치료사에게 배운 순서대로 다리를 접어 바닥에 앉은 백호에게 무심코 파인애플맛 탄산음료 캔을 건네려던 대남의 눈이 돌연 불길하게 가늘어졌다.

 "언제부터 파인맛을 먹었다고."

 "앙?"

 "파인애플 삐죽머리 남자친구가 그리운 거 아냐?"

 요새 놈들은 농구로 백호를 놀려먹기를 그만두고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내 한창 즐거운 참이었다. 재미도 없는 놀림에 좋답시고 함께 웃은 놈들까지 차례로 입을 다물게 만들고 나서(물리), 백호는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버거를 오물거리던 호열과 눈을 마주쳤다.

 "사랑은 많은 걸 변하게 하잖아? 식성이 바뀐 정도 가지고 놀릴 것 까지야."

 놈을 마저 닥치게 한 뒤, 백호는 주린 배에 식은 버거와 탄산 음료를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진짜로 윤대협을 생각해서 맛을 고른 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재활원에서 어쩌다 먹게 됐는데 맛이 괜찮았던 것뿐이었다. 정작 윤대협은 그 맛을 싫어했다. 늙은이처럼 맹물이나 설탕 안 들어간 레몬물 따위나 좋아하고. 라면도 국물은 아랑곳없이 겨우 면만 건져 깨작대고. 게임을 시켜 봤더니 동전 아깝게스리 죄다 3분도 안 되어서 죽어버리질 않나ㅡ 사실 조작 버튼을 누를 의욕이 아예 없어 보였다. 무슨 재미로 다니나 따라가 봤던 낚시터에서는, 입질도 안 온 빈 낚시바늘을 연거푸 걷어 올리며 길길이 날뛰는 백호에게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웃기만 하며 먹히지 않는 격려를 반복했다. 천천히 하는 거야. 초조해해도 괜찮아. 그만큼 고기를 잡아보고 싶은 거지? 사실 이 계절에 여긴 좋은 포인트는 아니야. 그런데 왜 여기로 왔냐고? 그야 네가 보고 싶어서? 하하. 농담이 아닌데.

 백호는 버거를 쥔 손을 늘어뜨리고 푹 한숨을 쉬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고 갑갑해서 버거가 얹힌 건가 가슴을 두드려 보고, 파인맛 음료를 벌컥 삼킨 뒤 일어서서 천천히 스트레칭을 했다. 윤대협을 생각해서 음료를 고른 것도 뭣도 아니었다. 친구 녀석들이 놀리는 그대로, 연애를 하면 온 세상이 상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찰 줄로 알았는데. 돌아온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고, 교실에서 잠을 자다 보면, 윤대협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꿈처럼 멀게 느껴졌다.

 - 언젠가부터 노을만 봐도 네 생각이 나더라.

 백호는 뜨끈해진 목덜미를 쓱쓱 비비며 생각했다. 나도 밤하늘이나 농구공 줄무늬만 봐도 네놈 까만 머리털이 떠오르고 그러면 좋겠네.

 "이야~ 많이 보고싶은가봐~"

 "누구라곤 말 안했다~"

 그대로 목을 두둑 꺾고서, 백호는 남의 속도 몰라주는 괘씸한 친구들에게 달려들었다.


2024 대협백호 카페 글엽서 협력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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