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츄어리

태섭대만 / 생츄어리 2

714 by Ha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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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이 제 몸의 이상함을 어머니에게 모두 털어놓자 어머니는 예상 했다는 듯이 태섭에게 주소가 적힌 종이 하나를 건넸다. 거기에 가면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거라고 했다. 미리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너는 괜찮을 줄 알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첫째인 준섭은 더 이른 나이에 상태가 드러나서, 그 나이를 지난 둘째 아들은 괜찮겠지 싶었던 것이었다.

[“그 어르신 말대로 해. 꼭. 반드시 그래야 해.”]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 태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바다같은 소리 하네.

너희 집구석은 그놈에 감성적인 부분이 문제야. 살고 죽는 일에 감정적으로 굴어서 사달을 내지. 애비고 첫째고 하여간 꿈같은 소리를 지껄였구나. 잘 들어라 송가의 둘째 자식아. 진실은 말이다.

인간을 사랑한 요괴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 저와 오래, 아주 오래 같이 살길 바랐어.

그래서 인간 모르게 제 살점을 떼어 먹였지.

인간은 서서히 요괴가 되어갔고, 둘은 오래오래 같이 살았단다.

이게 진실이야. 너희는 그 요괴가 사랑한 인간의 자손들이다. 더 많이 보고, 더 멀리 보고, 더 큰 힘을 쓸 수 있는 것? 다 그 요괴의 잔해야.

그리고 요괴가 사랑한 건 딱 한 사람이야. 자신과 일생을 살았던 너희의 조상. 그 외의 인간이 설령 사랑하는 자의 자손이라고 해도 요괴의 힘을 견딜 수 없었지. 그나마 지금은 대를 거듭해 요괴의 피와 살이 옅어져 그나마 인간과 비슷한 생애를 살수도 있지만, 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의 너희 일족들은 참 쉽게도 죽어 나갔다.

“수 많은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 곧 아주 멀리 보게 될 거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힘을 쓰게 될 거다. 너는 이미 발현 되었고, 그걸 막을 수는 없을 게야. 씨앗이 움트면 남은 건 자라는 일 뿐이다. 생명이 태어나면 죽기 직전까지 살아가는 것처럼. 네가 가진 건, 비범한 능력 때문에 미쳐가거나 단명하는 거다.”

종이에 적힌 주소에는 집안의 당숙이라는 영감이 홀로 살고 있었다. 방금까지 혼자 지껄이던 이 영감의 말이 정말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준섭이 해줬던 말처럼 그럴싸하게 들리긴 했다. 오히려 영감 쪽이 더 설득력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잔뜩 인상을 쓰고 듣던 태섭을 보더니 영감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중에서도 살아남아 네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요괴의 파편을 억누를 수 있는 '특이한 인간'을 만났기 때문이지.“

태섭이 마지막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처구니없게도 아버지와 형을 욕보이는 말에 반박할 말도, 물어보려 했던 말도 영감이 꺼낸 ‘특이한 인간’이라는 말에 누군가를 떠올리고 태섭은 눈만 깜박였다. 

“만났구나. 그런 인간을.”

영감의 말에 태섭이 다시 인상을 팍 쓰고 영감을 노려봤다. 뭘 묻느냐는 눈빛에 영감이 크고 거칠게 웃었다.

“보다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그 인간을 곁에 있어라. 반려가 되면 더 좋겠지. 네가 만난 그 인간은 유일한 존재는 아니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인간도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

태섭은 당숙 영감의 집에 나오면서 정대만을 떠올렸다.

대만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전날 그가 태섭을 집 앞까지 데려다줬을 때였다. 아마 태섭이 도중에 집이 아닌 딴 길로 샐 까봐 그런 것 같았다. 괜찮다며 집으로 곧장 갈 거라고 으름장을 놓고 혼자 갈 수도 있었지만, 따라 나오는 대만을 보며 태섭은 입을 꾹 닫고 같이 걸었었다. 태섭과 대만의 집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태섭은 나란히 걸어주는 대만을 흘끔 올려다보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유가 필요한데. 다시 만날 이유. 농구를 하니까 농구 코트에 가면 있지 않을까?

[“자.”]

그런 태섭의 생각을 멈춘 건 역시 대만이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 걸음을 멈추자 대만은 웃으며 태섭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건넸다.

[“농구 하고 싶으면 전화 해. 딴 가족이 받아도 그냥 끊지 말고 나 바꿔달라고 하고.”]

대만은 그새 태섭이 할 행동을 예상하고 당부했다. 대만에게 간파당해 귀 끝이 뜨끈할 정도로 달아오른 태섭이 대답도 없이 쪽지를 노려보다가 낚아채듯 받았다. 병원에는 꼭 가보고. 다음에 보자! 대만은 그렇게 인사하며 몸을 틀어 다시 제집으로 되돌아갔다. 멀어지는 대만의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태섭 또한 집으로 들어 갔었다.

[그 인간 곁에 있어라]

당숙 영감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쳐 들려왔다. 집으로 갈 수 있는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에서 태섭의 걸음이 멈췄다. 정대만의 곁. 뛰어난 청력에 휘둘려 헤매던 밤에 대만을 만나 소음이 가라앉고, 그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으로 향하면서부터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긴 했다. 태섭은 여태 주머니에 있는 대만의 집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손안에 굴렸다. 농구 하고 싶으면 전화 하랬지. 태섭은 주변을 둘러봤다. 완전한 교외 지역이라 주변엔 공중전화 하나가 없었다. 그때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왔다. 태섭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는 아주 먼 곳에서 오는지 아직 커브 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리는 들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버스 엔진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게 들리고 태섭은 얌전히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동네 까지 가야 해. 초조함을 애써 달래고, 잠시 뒤 다가와 정류장에 멈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 대만이? 잠깐만-. 대만아!”]

동네로 돌아온 태섭은 대만의 집 근처까지 달려가 근처 공원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고, 대만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먼저 일러준 대로 자신이 어제 신세를 진 송태섭이고 정대만과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차분하게 말하자 그녀가 기다려 달라며 아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수화기에서 어렴풋이 대만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태섭은 정확히 그가 “가요!” 하고 말하는 게 들렸다.

[“참. 태섭아.”]

“아. 예.”

[“우리집 전화번호, 너희 엄마한테도 전해줄래? 전해주기만 하면 아실 거야.”]

“네, 네.”

[“대만이 바꿔줄게.“]

[“여보세요?”]

바꿔준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만이 전화를 받았다.

“아…저. 나…….”

대만의 어머니의 부탁에 말려 순간적으로 용건을 잊은 태섭이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태섭이지? 왜?”]

말을 더듬는 태섭을 두고 대만이 대뜸 먼저 물었다. 어쩐 일… 대만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태섭이 목소리를 냈다.

“농구…하고 싶어서.”

[“오. 그래? 어디야? 지금 볼래?”]

태섭이 자신이 있는 곳을 말하자 대만은 조금 놀란 목소리를 내더니 곧 갈게 하고 말했고, 수화기 너머에서 대만의 모가 저녁 먹기 전엔 들어와야 한다. 하는 말이 작게 들려왔다. 대만이 전화기를 조금 떼어내고 알겠어요. 하고는 거기서 기다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수화기를 한 번 봤다가 내려두고 태섭은 공중전화 부스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정대만은 10분 만에 태섭의 앞에 나타났다. 옆구리에 농구공을 끼고 벤치에 앉은 태섭의 앞에 서서 당당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가자. 이 엉아가 재밌는 거 알려준다.”

농구. 체육 시간에 배운 구기 종목 중 하나였다. 준섭도 종종 집 근처 야외코트에서 제 친구들과 즐기던 놀이였다. 또래보다 키가 큰 준섭이 거의 압도적으로 유리했지만, 준섭의 친구들은 '놀이'에는 별 불만 없이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두 살이나 어린 태섭이 같이 놀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언젠가 같이 농구를 하리라 다짐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공을 저기 림을 향해 던지면 점수를 얻고, 상대보다 더 많이 얻으면 이기는 스포츠야.”

“링?”

“아니. 림.”

설명을 듣던 태섭은 대만이 잘못 말한 줄 알고 되물었으나 대만은 다시금 맞는 말임을 확인시켜주듯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태섭에게 농구공을 건네고 골대를 향해 던져보라는 듯이 턱짓했다. 태섭은 대만이 건넨 공을 한 번 봤다가 그대로 위로 치켜들어서 림을 향해 던졌다. 태섭의 손을 떠난 공이 허공을 나르다가 림에 닿지 못하고 앞으로 뚝 떨어졌다. 공이 들어가지 않자 태섭의 눈썹이 제각각 움직였다. 하하! 그걸 본 대만이 짧게 웃으면서 떨어진 공을 주워서 위로 들었다.

“무작정 던지지 말고, 끝까지 힘을 줘서 던져야 해.”

설명은 굉장히 추상적이었지만, 이 이상 자세히 설명한다고 하여 태섭이 알아 들을 리도 없기 때문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만은 말을 하며 저도 똑같이 공을 던졌다. 태섭은 하늘을 가르는 공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공은 제자리를 찾듯 림 안으로 쏙 들어갔다. 공이 들어간 걸 본 태섭의 시선이 다시 대만에게 향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저를 보며 어때? 잘했지? 하고 태섭을 바라봤다. 사람이 저렇게 반짝일 수 있는 건가? 태섭은 대만이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에 놀랐다. 공을 넣을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태섭 또한 심장이 콩콩 뛰었다.

“어때? 대단하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전해지던 벅차오름이 대만의 한 마디에 흔적만 남아버렸다. 태섭은 시선을 피하면서 뭐. 연습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고 반문하자 대만이 입을 쭉 내밀면서 당연하지 인마. 죽어라 연습한 거거든? 라며 골난 소리를 냈다. 거저 되는 게 아니었구나. 대만이 죽어라 연습했다는 말에도 놀라 태섭은 입을 닫았다. 그런 거라면 비하할 생각이 없었다. 너도 넣고 싶으면 연습해야 해. 대만이 공을 주워 땅에 드리블을 몇 번 하다가 다시 태섭에게 패스했다.

“슛이 제일 중요하지만, 드리블, 패스도 잘해야 해.”

대만이 패스한 공을 받아서 한 번 내려다 봤다가 이내 땅이 드리블을 몇 번 했다. 오. 잘하네. 공을 놓치지 않고 드리블하는 모습에 대만이 칭찬을 건넸고, 태섭은 대답 없이 몇 번 더 튕기다가 다시 공을 잡아 들고 대만에게 말했다.

“알려줘. 농구.”

짧게 말하는 태섭을 보며 대만은 씨익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농구부 부원이거든. 교체 맴버로 뛰고 있는데, 내년엔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중학교가 강호는 아니지만, 지금 부원들이랑 우승을 목표로 함께 열심히 하기로 했어!

뒤쳐질 순 없어서 따로 훈련도 하는 중이고.

태섭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대만은 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놨다. 그냥 놀이 삼아 하는 건 아니었구나. 대만이 농구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나니 태섭 또한 그가 알려주는 농구를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지루했던 건 절대 아니고, 태섭 또한 대만과 하는 농구가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땀까지 흘리며 복잡한 생각도 하지 않고 즐겁게 코트 위를 뛰어다녔다. 그날 오후를 그 곳에서 다 보내고, 해가 다 질 때쯤에야 서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대만이 저의 집 근처니까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며칠 전에도 본의는 아니었지만, 대만의 집에서 신세를 졌고, 어머니를 걱정시킬 수는 없어서 그냥 돌아가겠다고 했다. 대만의 얼굴에 잠시 아쉬운 기색이 돌았지만, 곧장 그래. 아주머니 걱정하시겠다. 여기서 헤어지자. 하고 농구공을 챙겨 들었다. 태섭은 대만이 곧장 갈 채비를 하자 갑자기 조급함이 몰려와 그의 등에 대고 대뜸 말했다.

“또, 또 같이 농구 해.”

“엉? 그래. 나야 좋지.”

농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태섭을 바라본 상태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태섭은 대만과 눈을 마주했다가 피했다가 다시 흘끔흘끔 보기를 반복하며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재밌었어. 농구.”

“그치? 또 연락 해. 이 엉아가 놀아줄 테니까.”

태섭은 눈썹을 들썩였다. 그놈에 엉아 소리. 태섭의 불만스러운 표정에도 대만은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했다. 저가 엉아라고 하면 태섭의 반응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태섭이 곧장 획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발걸음도 옮겼다. 먼저 코트에서 멀어졌고, 대만은 멀어지는 태섭의 뒷모습을 보며 또 보자! 하고 외치고는 제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던 태섭의 발걸음이 멈췄고, 뒤를 돌아 이번엔 태섭이 멀어지는 대만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 인간 곁에 있어라]

정대만의 곁. 하지만 정말로 정대만일까? 

[“그 어르신 말대로 해. 꼭. 반드시 그래야 해.”]

어머니의 당부가 떠오른 태섭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로 태섭은 종종 대만과 농구를 했다. 대만이 처음 시합에 출전한 일이나 어떤 시합에서는 득점을 많이 따고, 지기도 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할 거라는 다짐이라던가. 그런 대만을 곁에서 지켜보던 태섭은 그에게 감화되어 저도 다니는 학교에서 농구부에 들었다. 학교 농구부에서는 정말 기초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고, 점점 농구에 빠져들었다. 체력을 다지고, 기술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격렬하게 부딪히며 공과 림과 팀원들에게 집중하다 보면 제가 가진 특이한 일을 잠시 묻어 둘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만과 종종 만나긴 했지만, 그의 사정으로 못 만나는 날이 길어지면 온 감각이 예민해졌다. 소리와 시야가 너무 광범위하게 들리고 보이기 시작하면, 근력 또한 비정상적으로 강해져 부 활동을 쉬어야 할 때도 있었다. 제어할 수 없는 한계점에 근접할 때마다 태섭은 자신이 거대한 사슬에 묶여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야도 청각도 근력도 무엇 하나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너무 괴상하고, 자신이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숨 쉴 때마다 느꼈다. 이런 상태가 정대만을 만나면 모두 사라진다는 점이 자신을 가장 괴상한 생명체로 느껴지게 하는 동시에 가장 평범함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게 아이러니 했다. 정말 제어할 수 없는 걸까. 이럴 때마다 버티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래서 당숙 영감을 다시 찾아가 상대가 없이 제 상태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임시방편일 뿐이고, 그것은 특별한 인간의 곁에 있는 것만큼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켜줬다. 그리고는 태섭의 앞에 향낭 하나를 내밀었다. 향낭에서는 제사상에서 피우는 향의 냄새가 났다.

[“일단 내가 가진 건 그것 뿐이다. 이 냄새가 싫다면 다른 것도 좋아. 감각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청각보다는 후각이 나을 거다.”]

[“명상이라도 하라는 거예요?”]

[“말했잖냐. 임시방편이라고.”]

그렇게 원하던 답은 아니었으나 당숙 영감이 주는 향낭을 받아서 들고 태섭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해, 대만은 정말로 주전은 물론이고 주장이 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다. 농구로 고등학교도 진학할 거라면서 중등부 시합에 더 열중하여 임했다. 고등학교 입시 공부라던가, 농구부 훈련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했고 태섭은 제 신체에 외줄을 타는 나날이었다. 당숙 영감이 알려준 대로 폭발하는 감각을 억누르기 위한 후각 집중 훈련을 위해 어머니에게 부탁해 원하는 향수도 준비했다. 만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대만이 노력하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옆 동네 아는 동생이 제 미래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그나마 태섭의 모와 대만의 모가 친분이 생겨서 대만의 모를 통해 그가 언제 시간이 나는지 종종 알려줘서 태섭은 방해가 되지 않게 대만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섭의 연락을 받은 대만은 [귀신같이 연락했네] 하고 태섭이 연락을 타이밍에 놀라 하기도 했다.

태섭도 어느새 농구에 진심이 되어 팀 훈련을 일상처럼 소화하고, 개인 훈련도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농구를 하겠다는 태섭을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저 몸만 상하지 않게 하라는 말을 했다. 그래도 농구를 할 때는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각, 청각, 근력이 한 곳에 쏠려서 몸에 부하가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이 신체가 유리하게 적용되기도 했다. 미미했지만, 호흡이 빠른 스포츠에서 빠르게 판을 읽고, 키가 조금 작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근력은 태섭에게 좋은 무기였다.

이렇게 농구 하면서 종종 정대만을 만나고, 그렇게 지내면 괜찮을 거라고. 태섭은 생각했다. 더 앞서서 대만이 들어갈 고등학교에 자신도 입학해서 같이 농구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길 바랐는데.

해가 하나 더 지나고 그 시기에 몇 달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이에 중등부 전국 대회에서 우승 후 MVP가 된 정대만이 존경하는 감독이 있는 북산 고등학교로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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