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버 크리스마스 코펜하겐

슬램덩크 - 호열 / 대만 (크리스마스 합작)

메리 요미츠마스! 합작 글입니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덴마크 코펜하겐에 와서 돌아다니는 글.

Image by Artem Shuba from Unsplash

공항은 퍽 쌀쌀했다. 추운 바람을 품고 천장에서부터 밝은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짐을 끌고 걷는 미토와 미츠이의 눈에, 문득, 길, 그들이 교차하는 공간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였다. 무릇 푸른색이어야 할 나무가 하얀 무언가를 뒤덮고 (혹은 처음부터 가짜인 나무일지도 모른다) 새하얀 빛을 발산하며, 빨강 초록 금 진주빛의 장식을 단 채로 그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하얀 곰인형이 그 밑에서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멋들어진 영어로, 메리 크리스마스. 

미토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지금은 11월이다. 여기는 벌써부터 유난이구나. 미츠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미토는 답했다. 

사람들이 짐을 찾고 연락을 하느라 모인 곳에서 미토와 미츠이는 플라스틱 함에 들어 있던 안내 책자를 하나 가져갔다. 관광지 목록인가. 미토는 혹 그들이 알지 못하고 온, 괜찮은 곳이 또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미토 대신 그걸 읽어나가던 미츠이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크게 걸렸다. 이거, 관광지 얘기는 없고 순 크리스마스 행사 안내야. 미츠이가 말했다. 여긴 정말 진심이구나. 거의 두 달이 넘게 이러는 모양인데. 김이 빠진 미토는 책자를 뺏어 함에 다시 돌려놓았다. 보니까 하나는 내일 하는 것 같은데, 관심 없어? 미츠이가 물었다. 몰라. 미토는 대답했다. 밤은 늦었고 빨리 숙소로 가서 자고 싶었다. 침대에서. 미츠이의 옆에서. 

택시(taxi)가 여기서는 탁사(taxa)군. 도착한 숙소 앞에서 멍하니, 그들을 싣고 온 검은 택시의 옆면을 읽으며 짐과 기다리던 미토는 값을 치르고 차를 보낸 미츠이가 혀를 내두르는 것을 보았다. 왜 그래? 비싸! 생각보다 비싸. 미츠이의 입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웬만하면 택시는 정말 필요할 때만 타야겠어. 그래, 그러자. 그리고는 미토는 푸흡, 웃어 버렸다. 야, 너. 미츠이의 얼굴이 붉었다. 비단 추운 밤 공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기사를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창피함이 떠오른다. 미츠이가 이 여행을 오기 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연습했던 숙소의 이름은 덴마크어로 전혀 다른 발음, 복병이었다. 브리겐. 브리겐? 브리겐. 브히근. 뭐? 브히근. 노, 브리겐. 노, 노. 영어로 쓰여있다고 다 같은 게 아니군. 회화 책이라도 구해 읽어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뒤늦게 찾아왔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이제 그만 웃어! 미츠이의 발이 미토의 정강이를 찼다. 아야, 엄살을 떨면서 미토는 체크인을 하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득 잠에서 깬 미토는 암흑 한가운데에 있었다. 어둠이 그의 눈으로 스며들고 스며들다 조금씩 옅어질 즈음 그는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처럼 얕게 깨어 밤을 받아들이던 미츠이가 곧 끄응, 소리를 내며 미토 위로 팔을 걸쳤다. 지금 몇 시지? 나도 몰라. 째깍째깍. 시계의 음은 들리는데 도저히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웬만하면 새벽이 아닐까. 좀 더 자자. 응. 서로 기대고 포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올라온다. 

아무리 봐도 머리가 추울 것 같은데. 미츠이는 계속 말한다. 어제 느꼈던 바로는 무조건 모자가 있어야 해. 괜찮다니까. 미토는 물러서지 않는다. 듣기로는 여기가 좀더 따뜻하다고 들었고, 비도 자주 온다는데 굳이 모자를 써 봤자- 그러면서 문을 연 미토는 그대로 굳었다. 바람이 쏟아지는 폭우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쏴아, 들어온다. 그들을 흠뻑 적신다. 숙소에서 품은 열이 빠르게 가신다. 시간에 비해 아직 늦게 뜨고 있는 아침해는 아무런 온기도 그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한다. 미츠이가 풋, 웃었다. 굳이 써 봤자 뭐? 괜찮아. 말은 그렇지만 미토의 표정은 조금 비장해져 있었다. 괜찮다니까. 

보니까 이 동네를 섬이라고 부르더라고. 이른 아침의 거리는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키워 귀로 돌려준다. 터벅, 미츠이의 발소리가 꼭 온 동네를 울리는 것 같다고 미토는 생각한다. 그 소리에 자신의 심장이 맞춰지는 기분. 여긴 물로 둘러싸인 동네인 모양이야. 그런데- 물은, 그들의 앞에 곧 나타난다. 잔잔하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곳. 철썩, 철썩 소리를 내며 드문드문 정박한 하얀 배들과, 곳곳에 박힌 나무 기둥들에 물결이 부딪힌다. 건너편엔 아직 불을 켜지 않은 거대한 도시가 보인다. 저쪽이 분명 도심이리라 -강일까, 호수일까, 바다일까? 모르겠어. 미토는 부둣가를 닮은 길을 걸으며 말한다. 맛을 보면 알게 되겠지. 한번 들어가 볼래? 미츠이상. 까분다. 눈을 흘기던 미츠이가 아. 소리를 내며 저쪽으로 타닥 발을 딛는다. 오리들이 수영하는 저편에, 건너로 갈 수 있는 작은 다리가 하나 나 있다. 땡, 찌릉. 자전거들이 그들을 스치는 바람처럼 가볍게 다리 위로 지나간다.

미츠이의 발이 한 걸음, 한 걸음 다리를 건넌다. 그의 양 옆으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 채 지나친다. 이곳의 자전거들은 정말 바람 같구나. 잽싸게, 그리고 양떼처럼 한 방향으로, 감싸듯 옆을 바삐. 다들 각자의 삶을 살러 가는 중이겠지. 그러고 보면 학교를 다닐 시절, 이런 다리가 꼭 하나씩은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자전거들과 뒤엉켜서 한 방향으로 나란히 걷는 느낌. 아. 옛날 생각 난다. 미츠이가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좋아. 뒤에서 내내 불안했던 미토는 결국 말해 버리고 만다. 조금만 더 안쪽으로 걸어 줘. 

멋들어지고 고풍스러운 호텔을 지나친다. 티볼리, 라고 이름이 쓰여 있다. 티볼리, 티볼리. 그 이름을 어디서 보았더라? 미토는 생각한다. 분명 많이 봤는데. 익숙한데. 생각하며 조금만 더 걷다 보니 그들은 매우 커다란 건물 앞에 다다라 있었다. 도로 위 좁고 길다란 아스팔트 섬 주변을 여러 색깔의 버스들이 분주하게 돌고, 사람들은 입김을 내뿜으며 기다린다. 옆으로는 호텔의 그것과 비슷한 거대한 문이 있는데 그 안에도 많은 사람이 있다. 미토는 곧 전철을 닮은 그림이 있는 팻말을 발견한다. 아, 중앙역이구나. 그렇다면 여기서 서쪽으로- 

미토, 봐, 놀이공원이야. 미츠이의 살짝 들뜬 목소리가 그를 두드린다. 아. 그제야 미토는 기억을 한다. 티볼리 공원. 이곳으로 오기 전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었던 유명한 공원이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놀이공원 중 하나라나. 그러고 보니 나무로 된 열차가 달리고, 어린이들이 성탄절 때마다 음악대 행진을 하는 곳이라는. 그런 정보가 속속들이 떠오르면서, 미토는 미츠이에게 털어놓는다. 아까 지나친 호텔 이름이 익숙했는데, 여기 때문이었어. 어, 나도 그랬는데. 미츠이가 신기하다며 웃는다. 오면서 티볼리, 티볼리 생각밖에 안 났어! 어디서 들었지? 하고. 

오늘은 주말이므로 시청이 쉽니다. 뭐, 어쩔 수 없지. 미츠이는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광장에는 커다란 조각물도 있고 오고가는 사람도 많다. 응. 미토는 표정이 조금 좋지 않다. 본래 시청이 실내 견학을 무료로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오자는 의견을 낸 게 자신이었는데. 계획이 시작부터 좋지 못하다. 왜 하필. 미토는 애꿎은, 길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조각상이나 흘겨보았다. 그 조각상이 그 유명한 작가 안데르센이라는 사실은 지금 그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 

미토, 우리 배 타려고 했던 게 언제였지? 별안간 미츠이가 묻는다. 오후였는데. 미토는 자신이 노트에 써 내려갔던 계획을 복기하며 답한다. 흐음. 미츠이가 지도를 꺼낸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배라도 일찍 탈까? 봐, 아직 10시가 되기엔 조금 남았고, 첫 배가 10시랬잖아.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가 보자. 

좋아. 미토는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한숨을 한번 더 쉬고 미츠이의 손에 들린 지도를 본다. 그럼 저쪽으로- 아니, 저 길로 가 보자. 어차피 방향은 비슷한 거 아니야? 저기로 가다가 마지막에 꺾으면 될 것 같은데. 가자! 왠지 저 길이 느낌이 좋아. 미츠이가 미토의 말을 끊고 신나게 나아간다. 지도가 말하는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큰 길이다.

하아. 미토는 만약 첫 배를 놓쳤을 경우 둘째 배가 언제 올지는 모른다. 그런 걱정 없이 저렇게 막 나갈 수 있는 저 사람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미토 역시 그런 저 사람을 막을 생각은 없어서, 그냥 미츠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거 봐, 내가 느낌이 좋댔잖아. 대단한데? 미츠이가 선택한 길은, 그들의 머리 위로 화려한 장식들을 드리우고 있다. 아침이라 칙칙한 색깔이었지만 투명한 느낌을 담고 있는 재질로 보아 밤이 되면 저 안에 불이 켜져 매우 밝을 것이다. 하트와 별을 비롯한 가득한 장식들 밑으로는 죄다 상점이었다. 미토와 미츠이는 이제 막 생기가 붙기 시작한 큰길을 걷는다. 매끈한 유리 너머로 빵을 꺼내고 청소를 하고, 물건들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곳은 매우 북적일 것이다. 

잊을만 하면 길은 무언가 분위기가 있는 건물을 내놓았다. 어떤 것은 척 보아도 오랜 시간이 깃들어 있었고, 어떤 것은 그 안에 특유의 고요와 장엄을 품고 있었는데 미츠이는 그때마다 우와, 소리를 냈다. 미토는 조용히 보기만 했다. 걷다 보니 어쩐지 이 길을 택한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다. 길은 넓고 곧고 편안했고, 미토의 첫 생각만큼 어긋난 방향도 아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들이 둥글게 모여 서 있는 광장같은 곳을 지나고 보니 - 봐, 미토, 나 여기 어제 안내 책자에서 봤어. 성탄절 기념 시장이야. 뭔가 되게 많다 - 이윽고 말에 올라탄 누군가의 위풍당당한 동상이 나타났고, 푸른 물이 보였다. 배가 출발하는 곳이었다. 

배 안은 미토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일행별로 나눠 앉으라는 듯 구역이 테이블로 나뉘어 있어서, 미토와 미츠이는 한 테이블을 잡아 마주보고 앉았다. 이윽고 배가 철썩,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미토는 창밖을 보았다. 하늘이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맑은 날씨였으면 좋았을걸. 미토가 말하자 미츠이의 눈이 살짝 휘었다. 왜, 뭐, 왜 그래? 방금 가이드가 너랑 같은 말을 했어. 그런데 뭐,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아. 그래도 어둡진 않잖아? 아, 앞에 다리.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잠시 드리웠다 지나간다. 미토는 그제야 보이는 다리의 높이에 조금 놀랐다. 저렇게 낮았다고? 걱정 마, 가이드가 그러는데 안에 앉은 사람들은 고개 숙일 필요 없대. 이제 너랑 나랑 같네. 시끄러워, 미츠이상. 

가이드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뱃길은 계속 이어진다. 화사하고 밝은, 예쁜 색깔의 집들이 계속되나 싶다가도 배가 방향을 틀면 정박하고 있는 작은 배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대부분 집이었다. 가구와 식물을 안에 들이고 여유롭게 안에서 자기들의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찌된 일인지 아무도 창문에 커튼을 치지 않는다. 맑고 투명하게 자신들을 보인다. 신기하구나, 미츠이가 생각하는데 가이드가 말한다. 이중에 어떤 배들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여기에 있는 배들도 있어요. 다리가 지어지기 전에 들어왔다가, 나중에 다리가 지어지는 바람에 아예 못 나가게 된 거죠. 그런 배들을 사람들이 사들였어요. 그렇게 자신들의 집을 찾은 거예요. 목표를 잃은 것으로부터. 

-그리고 이제 대망의 인어공주입니다. 모두 오른쪽을 봐 주세요. 가이드의 말에 미츠이는 미토를 툭툭 쳤다. 배에 탄 사람들 역시 모두 고개를 돌리거나, 아예 더 잘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뭐가 보인다는 거야? 미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저 섬처럼 보이는 육지와 푸르디 푸른 물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저편의 사람들이 모인 지점이 보인다. 무언가 푸르스름하고 작은,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이 저 멀리, 미토와 미츠이 둘에게 등을 돌리고 다리를 늘어트린채 앉아 있었다. 

저게 인어공주야? 그런가 봐. 생각보다 작네. 네, 압니다. 실제로 인어공주는 많은 분들이 '직접 보니 실망스러운 조각상' 하면 단골로 나오죠. 하지만 그래도 역시 덴마크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가이드가 말을 이어간다. 저 정도면 굳이 앞모습을 보러 갈 필요도 없겠네. 여기서 봤잖아, 그치? 옆자리의 말도 들린다. 미츠이는 문득 미토를 살핀다. 옆자리의 말에 동조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아. 그러다 미츠이는 창밖에서 무언가를 하나 더 눈치챈다. 눈이다. 드디어 그는 내내 먹색이었던 하늘을 이해한다. 

내리기 시작한 눈은 비록 가루처럼 부스스했지만, 꽤나 오래 떨어지는 것이었다. 미토와 미츠이가 따뜻하게 데워진 배에서 나와 다시 바람이 부는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할 때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점점 떨리기 시작하는, 미토의 퍼지는 숨결에 미츠이는 웃었다. 내 모자 빌려줄까? 아니. 지금 꽤 추운데. 괜찮다니까. 킁. 하지만 이미 나온 소리를 미토는 막을 수 없었다. 미토는 어깨를 힘차게 한 번 털고 분명히 말했다. 난 괜찮아. 그렇지만 그 뒤에 미츠이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자기 외투 주머니에 넣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미토가 계획해두었던 점심 장소가 취소되었다. 아직 그치지 못한 눈과 멈추지 않는 바람으로 날이 빠르게, 너무 추워진 탓이었다. 미츠이를 위해서였다. 미츠이가 추워해서. 절대 미토의 머리가 얼어버릴 지경이 되어서는 아니었다. 아무튼 서둘러 시청 앞 광장으로 돌아와 그 주변에 있는, 익숙한 패스트푸드 상표를 단 간판들 중 아무거나 골라 들어갔다. 그렇게 메뉴는 자연스레 햄버거와 감자튀김, 닭튀김과 콜라가 되었다. 콜라를 주웁 빨아들이며 미츠이는 생각한다. 미토, 지금 상당히 기분 나쁘겠네. 계획해두었던 모든 것이 그리 원하는 대로 가고 있지 않으니까. 다음으로 생각해두었던 곳은 어디려나. 그건 잘 됐으면 좋겠는데. 아, 아니면. 

미토. 일찍 자신의 몫을 해치우곤 눈을 감고 턱을 괸 채 다리를 흔들던 미토가 눈을 뜬다. 왜, 미츠이상? 나, 인어공주를 다시 보고 싶어. 이번에는 앞에서. 미토의 눈이 깜박거린다. 사실 인어공주를 보러 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야 하고 시내에서는 조금 많이 멀어서. 어차피 배에서 한번 지나치니 그걸로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직접 보러 가는 것은 계획해두지 않았는데. 인어공주를 보러 가려면 계획을 아예, 다 깨 버리는 것이 낫다. 어떡할까? 미토는 생각한다. 고민한다. 미츠이의 손이 조용히 그의 앞에 놓인 쓰레기를 치운다. 

여긴 어딜 가나 이런 건물이 있네.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또 마치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오래되고 거대한 교회다. 미츠이는 잠시 그 교회의 왼편, 오른편으로 갔다 하면서 뭔가를 읽다 미토의 곁으로 돌아왔다. 벽에 무언가 연도와 함께 써 있었다고 했다. 건물의 역사같은 걸까? 글쎄. 라틴어인지 뭔지 영어는 아니어서 모르겠어. 그렇게 열심히 추측하며 둘은 걸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음식점보다는 소품이나 꽃집, 그리고 사무실들이 더 많이 보였다. 커다란 건물들의 사이로 조금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탁 트인 공간이 나오면서 추운 바람이 훅, 그들의 얼굴로 불어온다. 우왓. 찌푸리고 얼굴을 털고 보니 커다란 공원이 나왔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공원의 문 앞에서 핫도그를 파는 상인과 재잘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여기의 군고구마 장수 같은 걸까. 미토가 묻는다. 그렇지 않을까. 광장에서도 있었던 핫도그 장수를 떠올리며 미츠이가 답한다. 하나 먹을래? 아니. 그저, 그냥 어딜 가든 사람들 사는 것은 다 비슷하구나 생각을 했어. 이렇게 북극에, 세상의 한 극점에 가까운 나라에 와도, 사람들은 비슷해. 무언가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미토와 미츠이는 그렇게 핫도그 가판대를 지나 이 눈오는 날씨에도 아직 얼지 않은 물이 흐르는, 눈밭의 공원으로 들어갔다. 헤엄치는 오리들이 꾹, 울어대며 사람들을 반겼다. 

물가를 걸었다. 얼어가는 버드나무를 보았다. 뛰노는 개를 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잔씩 파는 상인을 보았다. 위풍당당한, 물은 나오지 않지만 기세를 뽐내는 화려한 분수대도 보았다. 그 모든 것을 지나 미토와 미츠이는 이윽고 인파에 섞여, 밑과 사이로 물이 찰랑거리는 돌들 위로 걷고 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마 곧 볼 수 있으리라. 인어공주의 얼굴을. 

미츠이의 앞을 가리고 있던 사람이 그들을 보고 미안하다며 옆으로 빠진다.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들은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인어공주, 그의 앞모습을. 아니, 그마저도 그는 그들 쪽이 아닌 저 멀리 수평선을 보고 있다. 그의 뻗은 다리는 이제, 자세히 보니 한 발목에 꼬리지느러미가 달려 있다. 변신을 끝내고 이제 막 뭍으로 올라온 인어공주. 그렇다면 왜 성이 있을 곳을, 왕자가 있을 곳이 아닌 물을 돌아보고 있을까? 분명 들뜬 마음이었을 터인데. 마지막으로, 바다에게, 두고 온 이들에게 보여주는 얼굴인 걸까. 그래서 그는 그리 행복한 표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표정은 미토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미츠이상이 이걸 보고 싶어했는데. 지금 미츠이상은 어떤 기분일까. 미토는 미츠이를 살핀다. 바람을 맞아 조금 빨개진 그의 얼굴은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표정도 아니다. 흥미로움에 빛나는 표정도, 실망에 부루퉁해진 표정도 아니다. 미츠이는 그저 평소의 그, 편안한 표정으로 인어공주를 보고 있다.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참 그러던 미츠이는, 이윽고 미토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렇구나. 왠지 그냥, 그래도 보고 싶었어. 역시 그렇게 막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로 온 게 후회되지는 않아. 미토, 넌 어때? 

나는, 미토는 잠시 말을 삼킨다. 동이 트던 길, 티볼리, 넓던 아침 시청 광장과 안데르센. 장식이 곳곳마다 달려 있는 크고 칙칙한 거리와, 유서 깊은 것들을 지나 도달한 배 매표소. 다리 높이에 딱 맞던 배, 색색깔의 집들, 바람, 흐린 하늘, 물가에 떠있는 집들. 결정이 보이는 눈, 거리 곳곳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시장 가판대,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들. 공원, 오리, 개, 그리고 인어공주. 인어공주의 얼굴. 미츠이의 표정. 나는. 미츠이의 얼굴. 응, 미츠이의, 웃음. 정말 그래, 미츠이상. 

미토와 미츠이는 뒤에 도착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변두리의 돌 위로 물러났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길게, 조금 오래오래 인어공주를 보며 그곳에 서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오후 3시를 향해 갔고, 겨우 구름 뒤에서 나온 해는 이제 낮게 낮게 떠 질 준비를 했다.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두 사람의 일정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숙소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된 아침을 먹었고, 다리를 통해 물 건너편으로 갔다. 시청을 중심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유명하다는 과자집도 가 보았고, 옛날엔 천문대로 쓰였다는, 동서남북으로 도시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는 높은 탑 위로도 올라가 보았다. 과거, 그리고 현재의 왕족들이 살았고 지금도 가끔 방문한다는 궁전들도 여럿 들러 보았다. 그 안에서 목격한 왕족들의 사치에 미토와 미츠이는 혀를 내둘렀다. 예쁜 식물 그림들이 그려진 고급 식기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 벽에 붉은 벨벳이 발린 방에 발을 들였을 때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미츠이가 아, 이거 체육관에서 휘장으로 쓰는 그거지?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인상이 조금 저렴하게 내려앉긴 했지만.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다가 - 결국 성탄절 기념 시장에서 밥을 사 먹은 날도 있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감자튀김과 팬케이크, 핫도그를 산 건 좋았는데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미츠이의 얼굴이 제법 웃겼다고, 아직도 미토는 생각한다 - 해가 내리면 숙소로 들어와 씻고 저녁 시간까지 빈둥거렸다. 배가 고파지면 숙소에서 가까운 마트에 가 간단한 냉동, 즉석식품으로 해결하기도 했고, 레스토랑에 가기도 했다. 한 작은 가게에서 사먹은 나폴리식 피자와 파스타는 꽤 맛있어서, 한입씩 입에 담고 서로 놀란 시선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렇게 끼니를 해결하면 잠이 들 때까지 또 침실에서 빈둥거렸다. 

어떤 때는, 빈둥거림이 그러다 야릇한 놀이가 되기도 했다. 이불 아래나 소파 위에서 서로의 옷 속에 손을 넣고 놀린다. 키득키득, 킬킬 웃으며 뒹군다. 그리고 서로를 놀리는 말을 나지막히 속삭이고 있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것이다. 밖을 보아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지나 있다. 어차피 이곳의 오후는 4시부터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있고, 미토와 미츠이는 이곳 사람들과 다르게 온 집의 커튼을 치지 않고는 못 배겼으므로. 시계의 침만이 그들에게 시간을 실체화시키는 유일한 손이다. 그것을 보지 않는 동안, 두 사람은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에 흩어져 있는 무언가가 되어, 서로만을 껴안고 만지고 파고든다. 그리고 마지막엔 완전히 해체되고 섞이어, 누가 누구인가, 이것은 누구의 것인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엉망진창. 둘은 엉망진창이 되어 시간이 다시 구체화된 무언가가 되길 기다린다. 

날이 갈수록 미츠이의 가방에는 크고 작은 기념품들이 늘어갔다. 덴마크의 전통음식을 표현한 것이라는, 지역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든 작은 냉장고 자석, 사계절의 꽃들을 그려놓은 엽서책,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할 수 있는 화려한 장식 등등. 반면 미토는 그런 것들을 절대 자기 돈을 주고 사지 않았다. 날이면 날마다 그대로이던 그의 소지품에 셋째 날, 마침내 하나가 슬쩍 추가되었다. 얇은 털실로 꼼꼼하게 짠 털모자. 그날은 체감온도가 영하 이십도 아래로 내려간 날이었다. 

떠나기 하루 전,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낸 하루는 또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여긴 비가 오는 나라라더니 완전히 속았어. 미토가 모자를 눌러쓰며 투덜거렸다. 어찌된 일인지 일주일에 네 번은 눈이 오는 나라라는 덴마크의 잿빛 하늘은, 그들이 도착한 이래 눈을 내리면 내렸지 비를 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면 길도 미끄러워지잖아. 조심히 걸으면 되지. 미츠이가 어깨를 털며 말했다. 자, 오늘은 또 어딜 갈까?

마지막 날은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던 박물관과 미술관을 주로 돌아다녔다. 잠깐, 박물관 직원들은 열이면 열 그들을 붙잡고는 말했다. 옷이랑 가방은 맡기고 들어가세요. 말을 그렇게 해 놓고 물건을 맡는데 돈을 받는 곳도 있었다. 다행히도 마지막 날이 되자 그동안 꾸준히 돈을 썼던 미츠이의 주머니에 동전이 충분해서, 그 사실이 그리 문제가 되진 않았다. 평소에 미술품이나 역사, 잡학 지식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둘이었지만 날씨가 그쯤 되면 실내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해서, 이왕 들어온 것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설명을 읽게 되는 것이었다. 미츠이는 그날 코펜하겐 도시의 시초가, 그들이 셋째 날 방문했던 그 많은 궁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배웠다. 미토는 코펜하겐에 큰 화재가 꽤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여기가 주변 나라에 비해 꽤나, 커피 값이 비싼 나라라는 것도. 다음엔 참고해야지. 미토는 생각한다.

커피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커피에 손을 뻗던 미토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방금 나와서 뜨거울 게 분명한, 우유 크림이 소복이 올라간 커피가, 그에게 익숙한 모양의 커피잔이 아닌 유리컵에 들어가 있었다. 어라? 이런 건 보통 차가운 음료를 담을 때 쓰지 않나? 이걸 여기다 담아도 되나? 아니면 그렇게 뜨거운 커피가 아닌 걸까, 생각하며 컵의 몸통을 잡은 미토는 바로 진저리를 치며 손을 떼었다. 뜨거워! 이게 뭐람, 장난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아, 미토. 미츠이가 봐, 하며 저쪽의 다른 자리 쪽으로 고갯짓을 한다. 내가 보기엔 여기 있는 손님들 다 그런 것 같아. 특이하네. 그러게. 일부러 이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천천히 식히며 마시라고. 그런가. 일주일에 못 되게 이곳에 있었지만 미토에게는 아직도 이 나라가 어려웠다. 절대 커튼을 치지 않고 집안을 바깥에 훤히 보이는 사람들부터 - 미토는 첫날 도착해 미츠이와 같이 옷을 갈아입다 반대편 방이 여기서 다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둘 다 기겁을 했던 것을 떠올린다 - 이런 유리컵에 뜨거운 커피를 담아 주는 카페까지. 카페의 주인이 친절하게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미토는 정말로 그가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고 확신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커피도 커피지만 밥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갔던, 좁고 작은 햄버거 가게는 (본디 시내를 달리던 전차를 개조하여 만든 가게라고 했다) 미토와 미츠이에게 익숙한 그런 작은 햄버거가 아닌 매우 거대하고 고급져 보이는 무언가를 내놓았다. 이래서 비쌌구나, 생각하며 햄버거를 힘들게 들고 먹던 미토의 눈에 문득 저편의 손님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그걸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먹고 있었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듯. 미토는 당황했다. 그처럼 햄버거를 먹는 사람은 꼭 그 한명 뿐인 것 같았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내려놓고 썰어 먹을까, 고민하는데 미츠이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햄버거를 두 손으로 들고 꼭 쥔 채로 먹었다. 웃으면서. 그리고는 말했다. 맛있다! 그래서 미토는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미츠이와 함께 양손으로 든 채 햄버거를 먹으며 감자튀김을 나눠먹었다. 신기하게도 케첩이 두 배는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잘 가요, 커피를 다 마시고 나가는 그들에게 기념품 가게를 정리하던 박물관 직원들이 인사를 한다. 구경 잘 하고 가요, 미토와 미츠이도 고개를 꾸벅하고는 바깥의 어둠으로 발을 디뎠다. 마지막 날이라 그들은 해가 지고도 남은 저녁 여섯 시까지 돌아다녔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야지. 밥은 어떻게 할까? 미츠이가 묻는다. 글쎄, 생각하던 미토가 이내 아- 하며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 그냥 가면서 생각하자. 그래.

지도를 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방향은 꽤 단순하다. 꺾는 것은 단 두 번, 그 외에는 그저 앞으로만 쭉 가면 되는 길이었다. 다만 걷기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미토는 조금 머뭇거린다. 또 쌀알 같은 눈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그냥 택시를 타고 갈까? 하지만, 이 정도는. 하루 내내 추위를 맞은 탓인지 이제 몸이 조금 적응한 것 같다. 또, 여기서 어두운 저녁의 거리를 그리 오래 걸어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미쳤다. 미토는 용기를 내어 물어 본다. 미츠이상, 우리 그냥 걸어서 돌아가지 않을래.

사박, 사박. 발 밑에서 부서지고 밀려나는 녹은 눈의 소리만이 그들을 감싼다. 가게들은 이미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그들이 달고 있는 조명들 덕분에 길은 밝고 따스한 분위기마저 든다. 그동안 항상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다녔는데, 이 길은 광장을 거치지 않고 외곽으로 나가는 방향이다. 그들이 건너는 다리마저도 다른 다리일 것이다. 하아. 눈송이가 날리는 것을 보며 미토가 숨을 쉰다. 차가우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목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좋다. 꼭 한밤중을 걷는 기분이야. 아니면 세상이 망하고 우리 둘만 남은 거리라든가. 미츠이도 중얼거린다.

십여 분 쯤 걷다 보니 다리가 나타났다. 그들이 항상 자전거들에 부딪힐까 조심하며 좁게 좁게 걸었던 다리와는 차원이 다른 넓고 편한 인도가 나 있는 다리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역시 성탄절을 기념하는 불빛이 가득 달려 있었다. 꼭 빛나는 덩굴에 휘감긴 것처럼.

다리의 중간쯤 갔을 때 먼저 가던 미츠이가 멈춰 물을 내려다본다. 쿡쿡 웃고는 미토에게 손짓했다. 미토, 저것 봐. 미토도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물 위로 솟은, 대여섯 개의 기둥이 이어진 나무 구조물이 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예전 이 다리를 세우기 전에 있던 다리의 흔적일까? 그러나 미츠이가 웃은 이유는 고작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 위에 있는 것 때문이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구조물 위로 올라가 얌전히 몸을 모으고 잠에 들어 있었다. 나는 갈매기가 잠을 자는 걸 처음 보는 것 같아. 다들 여기 와 있었구나. 신기하다, 그치? 여긴 사람들도 일찍 자고 갈매기들도 일찍 자나 봐. 아직 저녁 여덟 시도 안 됐는데. 웃으며 조잘는 미츠이의 얼굴을 보는 미토는 문득 아까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유독 조용하던 전시관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구석에서 남들 몰래 입을 맞추던 연인들을 맞닥뜨렸다. 민망해서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잽싸게 지나갔었다. 그걸 본 미츠이가 웃었다. 어린이야? 왜 그래. 분위기 있고 보기 좋구만. 아니, 그냥. 여긴 공공장소잖아? 괜히 그런 말을 했더랬다. 유난이야. 유난. 크리스마스도 분위기도 낭만도 사람도. 여긴 그냥 모두 유난이라고.

미츠이상. 미토가 미츠이를 부른다. 응. 고개를 돌린 미츠이는 갑자기 무언가 결연한 표정의 미토 때문에 놀란다. 왜 그래? 미츠이상, 나. 미토가 한 발을 내딛는다. 미츠이에게 한 발 더 가깝게. 가깝게. 그 품과, 얼굴로 가깝게. 내가 이런 말 하는 것 웃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 나도. 손을 뻗어, 자연스레 자신에게 눈높이를 맞춰 주는 얼굴을 잡는다. 그의 의도를 눈치 챈 미츠이가 배시시 웃는다. 나도, 유난 떨고 싶어져서. 그냥.

마지막 날이라서일까? 그것은 문득 떠오른 미토의 충동이었다. 이곳의, 이해할 수 없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의 사람들처럼, 한껏, 크리스마스와 밤의, 조용한 분위기에 젖어. 그는 미츠이에게 눈 오는 날 빛나는 다리 위에서 입을 맞추었다. 미츠이니까. 이런 바보 같고, 어리석고, 모순적인 자신의 그런 충동도 다 받아 줄 것만 같아서. 이 여행 내내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를 잃은 것 마냥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만 한 그를 단단히 잡아줄 것 같아서. 기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는 미츠이에게 그의 마지막 허세를 내던지고 입을 맞춘다. 입김을 섞는다. 혀를 내밀었다. 나를 받아 줘, 미츠이상. 이번에도. 그런 마음을 담아.

미츠이는 그런 미토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두꺼운 외투에 감싸인 팔이 미토의 등을 받치고, 그림자를 그의 눈 위로 드리웠다. 그렇게 오래오래, 둘은 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코펜하겐의 눈 오는, 빛나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밤에. 둘이서. 함께.


펜슬이라는 서비스가 생겨서 시험 겸 처음으로 써 봅니다. 괜찮네요. 그렇지만 채널을 옮기는 건 조금 생각을 해 봐야 할지도...

제가 최근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코펜하겐에 다녀온 기억을 되살려 여행하는 호댐을 써 보았습니다. 역시 유럽은 어딜 가든 크리스마스에 진심이구나, 싶었습니다. 뭐 관광하는 부분은 (제가 힘들어서)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썼으니 만족하네요.

정신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사랑합니다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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